글로벌 베스트셀러 캠리가 화려하게 복귀했다. 달리는 감각부터 전에 없던 주행 지원 장비까지 완전히 새롭다. 최강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덤이다
1800만 대. 토요타를 대표하는 중형 세단 캠리가 1982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팔린 숫자다. 캠리는 알찬 상품성과 기본기를 앞세워 세계 곳곳을 누비며 중형 세단의 기준을 세우는 선구자 역할을 도맡았다. 8세대로(일본 내수형은 10세대, 수출형은 8세대) 진화하는 동안 자동차 시장은 빠르게 변했다. 차종이 많아졌고 SUV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고급차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무난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토요타 역시 변화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토요타는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글로벌 전략 TNGA를 발표했다. 캠리 역시 TNGA 전략 위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TNGA의 핵심 중 하나는 주행 성능 업그레이드를 위한 저중심 설계. 프리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캠리 또한 전체적으로 높이를 낮추고 차체는 늘렸다. 한결 맵시 있는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던 배경이다. 낮고 넓어진 차체에 맞춰, 하이브리드 파워 컨트롤 유닛과 앞뒤 좌석 모두 전보다 낮게 설계할 수 있었고, 뒷좌석 뒤에 있던 리튬 이온 배터리를 시트 아래로 옮겨 뒷좌석을 접는 건 물론, 트렁크를 더 넉넉하게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골프백 4개가 거뜬히 들어간다.
과격하고 대담하게 바뀐 캠리의 외모는, 여러 차종에 위협받고 있는 중형 세단 시장에서 더 이상 보수적인 성향의 정통파 세단으로는 소비자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결과물이다. 강렬하고 개성적인 디자인의 영향이 컸을까? 사전 계약 2개월 만에 2000대 넘게 계약을 달성한 신형 캠리의 33%가 30대의 젊은 주인을 찾아갔다고 한다.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토요타의 의도가 잘 먹혀든 셈이다.
실내 디자인도 확실히 감각적이고 젊어졌다. 동시에 다양한 내장재의 부드러운 촉감을 동일하게 만들어 정갈한 분위기도 피어났다. 실내등의 표면은 마치 보석처럼 다듬어 감성을 자극했다. 운전하길 자꾸 권하듯 운전석으로 쏠린 레이아웃의 센터패시아도 새롭다. 운전석 시트 포지션이 전보다 22mm 낮아지고 뒤로 49mm 밀려났지만, 보닛과 스티어링 휠, 벨트 라인도 함께 낮춘 덕분에 창밖과 계기반을 바라보는 운전자 시야가 좋다. 하지만 토요타가 말했던 것처럼 스포티한 느낌은 아니다.
시승차는 2.5ℓ 4기통 가솔린 엔진과 2개의 전기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 흡기밸브 형상을 다듬고 연료 직분사와 간접분사 방식을 섞은 D-4S 기술, 전기모터로 작동하는 가변 밸브 타이밍을 결합해 프리우스보다 높은 41%의 열효율을 달성한 새로운 다이내믹 포스 엔진이 돋보인다. 8단 자동변속기를 올린 가솔린 모델도 있지만, 토요타의 대들보는 역시 캠리 하이브리드. 20년간 갈고닦은 직병렬 하이브리드 기술력은 이보다 더 나아질까 싶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E-CVT를 구성하는 2개의 모터는 각각 구동과 발전을 담당해 엔진과 어울린다. 일반적인 변속기가 없기에 구조가 간단하고 무게를 덜어내기도 쉽다. TNGA와 함께 새로워진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징은, 더 나은 운전 재미를 위해 연출하는 6단 변속 효과와 스포츠 모드. 하지만 사실, 효과는 크지 않다.
신형 캠리의 가장 큰 변화는 과격한 외모도 아니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도 아니다. 기존의 편하고 느긋한 승차감 대신 민첩한 성능을 위해 뼈대부터 바꾼 설계다. 앞서 말한 저중심 설계에 더해 차체 강성을 30% 높이고, 뒤 서스펜션을 더블 위시본 구조로 바꿨다. 구형 캠리를 타보진 않았지만, 신형 캠리는 확실히 빠릿빠릿하고 활기차게 내달린다. 스티어링 휠도 적당히 묵직해 고속에서 불안함도 없다. 아쉬운 건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엔진음. 내가 하이브리드 모델에 너무 많은 걸 바란 걸까?
캠리가 새롭게 품은 토요타 세이프티 센스라는 이름 안에는 차선 이탈 경고, 앞차와 거리를 조절하는 크루즈 컨트롤, 긴급 제동 보조 시스템, 오토 하이 빔 등 다양한 장비가 알차게 들어 있다. 모두 요즘 소비자가 즐겨 찾는 아이템들이다. 프리우스가 TNGA를 거쳐 새롭게 태어났듯, 캠리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이 알던 그 캠리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