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네 입을 크게 열라
시편81:8~16
2014년 1월 26일 장안중앙교회 주일낮 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1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14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
15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그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16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설교:
몇 년 전에 아동 입양법이 바뀌어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법 때문에 미혼모들이 자녀를 낳고 버리는 경유가 허다하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 법이 바뀌었냐면 입양되는 아이의 인권을 소중히 하려고 국회의원 한 분이 발의해서 법을 개정했습니다. 그 법의 중요 내용은 이것입니다.
“미혼모가 아이를 입양시키려면 일단 출생 신고를 하고, 호적에 올렸다가 법원 판사의 허락 판결을 받고 입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결을 받기 전에 “熟廬(숙려)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 때문에 아이 입양이 어려워지고 그러니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고 버리는 것입니다. 화장실에도 버리고 터미널에다 버리고……. 16~19살 여자들이 혼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일부 교회에서‘베이비 박스’라는 것을 만들어 밤에 그곳에 아이들 넣고 사라진답니다. 그 베이비 박스는 따뜻하고 안전하니 위험에 처하지 않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베이비 박스 문을 누군가 열면 신호가 가서 교회 목사님이 달려와 그 아이를 받아 입양기관으로 넘겨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부모인지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의 인권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이 아이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꼴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입양이 어려워지다 보니 고아원에 보내지는 아이들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태어난 아이에게 가장 큰 아픔은 부모에게 버려지는 것입니다.
버려지는 아픔 보다 다 큰 아픔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형벌 중 가장 무서운 형벌도 “遺棄(유기)”입니다. 하나님“내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11절 이하를 보세요.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치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어 그들 마음대로 행하게 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무서운 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말을 안 들으니 자기들 마음대로 살라고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이 간섭을 안 하시니 좋을 것 같지요?
그러나 이것은 가장 무서운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결국 타락하고 결국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죽든 살든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큰 죄를 지어도, 그리고 주일을 범하고 십일조를 떼어 먹어도, 그리고 예배도 저녁예배 수요예배에 아무런 관심이 없이 살아도, 그래도 하나님이 징계도 안하고 그냥 넘어가시나요? 만약에 하나님의 자녀가 자녀답게 행동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의 징계도 없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포기하셨거나 진노를 참고 계시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던 죄의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 욕심대로 살면 그가 가는 길은 멸망으로 가는 것이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내 맘대로만 살게 두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가는 죄악의 길을 가로 막기도 하고, 선지자나 하나님의 종들을 세워 경고하시고 간섭하시고 계십니다. 그래도 듣지 않고 그냥 가면 결국 하나님이 내버려두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경고하고 간섭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면 무서운 채찍으로 징계하십니다. 그 채찍은 여러 가지입니다. 질병으로 치기도 하고 기근이 닥치게도 하고 큰 환난을 겪게도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믿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주신 본문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살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십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왜 입을 크게 열라고 하실까요? 여기 “입을 크게 열라”는 뜻은 무슨 뜻일까요?
“내가 채우리라”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오늘 이 시간, 이 뜻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를 살펴보며 은혜 받기를 축원합니다.
1.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리고는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을 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편기자를 통해 경고하십니다.
8절 이하를 보세요.
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신을 섬깁니다.
어떤 신을 섬기나요? ‘돈’신을 섬기고 ‘태양신’을 섬깁니다.
그래서 1월 1일만 되면 동해에 뜨는 태양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그 태양을 향해 소원을 빌고 생쑈를 합니다. “건강을 주세요.” “사업이 잘되게 해주세요.” “가정이 평안하게 해주세요.” 이런 것이 전부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기독교인 중에도 해맞이하러 가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허다합니다.
올해가 뭔해입니까? 갑오년이래요. 청말 띠 해라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제게 문자를 보내길 “청말 띠 해에 말과 같이 뛰어다니며 복음을 전하세요” 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기가 막혀 답신도 안 보냈습니다. 이런 것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다 우상문화입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양입니다. 그러니 주를 믿는 성도는 다 양띠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 하시나요? 10절 이하를 다시 보세요.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네 입을 크게 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상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입을 크게 벌려 기도하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채워 주시겠다고 하십니까?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우리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 이라는 것입니다. 당데에는 애굽왕 바로가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손에서 우리를 건진자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가 입을 크게 벌려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멘?
여기 “입을 크게 열라”고 요구하는 것은 큰소리로 소리 질러 기도하라는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큰 믿음의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의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입을 벌려 구하면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꼭 입을 크게 열라고 하실까요? 입을 크게 여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그리고 응답으로 채우는 것은 하나님 몫입니다. 그러기에 그 입은 크게 여는 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인 것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큰 믿음과 큰 꿈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문제를 무엇으로 해결하려 하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노력이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 않나요? 그러면 돈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지 않나요? 아니면 ‘돈’님이나 ‘자식’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나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나를 구원할 자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입을 벌려 구합니다. 그리고 큰 꿈을 갖고 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그 기도에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놀랍게 응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입을 크게 여시기를 축원합니다. 여시되 큰 믿음을 갖고 구하시고 꿈을 갖고 크게 열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주신다고 하십니까? “내가 채우리라” 여기 “내가”가 누굽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죄악의 땅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이 내가 입을 열면 하나님이 응답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 시골서 자란 것을 참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서 배울 것이 무척 많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제비가 날아오지 않지만 제가 어릴 적에는 봄이 되면 제비가 엄청나게 날아왔습니다. 그 제비가 저희 집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번식시킵니다.
그때 제비 새끼들이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데 어미 제비가 날아 들어오면 어떻게 아는지 새끼들이 입을 쩍쩍 벌립니다. 얼마나 크게 입을 벌리는냐 하면 자기 머리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립니다. 그러면 어미는 그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줍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살펴보니 골고루 주지 않습니다. 차례차례 주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니 입을 제일 크게 벌린 놈에게 먹입니다.
왜일까요? 입을 크게 벌린 새끼가 배가 제일 고픈 놈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새끼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배가 부르면 입을 크게 벌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입을 크게 벌린 다른 새끼에게 먹게 합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입을 크게 벌립니까? 은혜에 배고픈 사람이 기를 쓰고 크게 벌립니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은 그 입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사모하는 심령이 되어 채워주시는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의 입모양은 사람의 마음의 감정을 표현한답니다.
불만이 많으면 입을 꽉 다물고 삐쭉입니다. 화가 나도 입을 악물고 사나운 표정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채워주시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즐겁고 기쁠 때는 입 꼬리가 올라가고 벌어집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입을 벌리게 됩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기도할 때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더불어 일할 수행할 능력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구하는 자가 얻고 찾는 자가 찾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입을 크게 열고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 입에 은혜로 채워주심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조카 롯이 살고 있는 소돔 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6번이나 간절히 구합니다. 결국 그 소돔성에 의인이 10명이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성에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 기도 때문에 소돔성에 사는 롯의 가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리고 길가에 앉아 있던 거지 소경을 아시지요?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입을 넓게 열어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잠잠하라고 소리치지만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부르짖습니다. 왜죠? 그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습니까? 결국 그는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입을 넓게 열면 하나님은 응답이라는 복으로 채워주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입을 크게 열면 대적을 물리쳐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입을 열고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겠다 하십니다.
13절 이하를 보세요.
1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14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도를 따르면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와 대적들을 주님이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물리쳐 주시나요? 14절 하반부에 보니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을 치리니” 했습니다.
그냥 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손을 돌려 치신다” 했습니다. 돌려 치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우리를 향해 심판하려는 손을 대적을 향해 돌려 치신다는 것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손”으로 치신다는 것은 “神人同性同格的 표현”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해 쓰는 표현입니다.
또한 “손을 돌려 치신다”는 표현은 “강한 힘으로 심판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발길질도 돌려차기가 위력적입니다. 태권도에 돌리차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강한 힘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도 맷돌을 돌려서 던진 돌이었습니다. 그러니 한방에 쓸어 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께 입을 크게 벌려 기도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는 대적을 한방에 돌려 쳐서 승리케 해주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짓누르고 있는 원수들을 눌러 주신다고 약속하심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성도가 마귀에 눌려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또한 입을 크게 벌려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남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세력은 어찌하든지 성도를 무너트리고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양적 파수꾼이 되어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 애굽의 바로왕도 그 백성들이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니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면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의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대적을 물리쳐 주시고 빼앗긴 것을 되찾아 주십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입을 크게 열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대적을 물리쳐 주십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그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입을 크게 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나라를 다스릴 때 사방에 태평을 주시고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게 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내가 하고 대적은 하나님이 물리쳐 주십니다.
내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대적을 물리쳐 주시고 죄에 포로 되었던 자녀가 해방되어 돌아오는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하면 사업의 어려움에 눌려 있는 남편이 살게 되고 죄악의 유혹에 빠질 위기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또,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임신이 어려웠던 한나가 하나님 성전에 올라가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주셨고 그 태에서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그 아들 사무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 블레셋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고 빼앗긴 것도 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약속은 그때 그들에게만 주시는 약속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하나님께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3. 입을 크게 열어 구하면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십니다.
16절의 말씀을 보세요.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기름진 밀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약속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입을 크게 열어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든지 좋은 것으로 주고 싶으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요 그분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아깝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식에게 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장모님 댁에 가면 우리 장모님은 이것 저것 차에 다 실습니다. 제가 안먹는 마늘도 파도 실고 살도 실어 줍니다. 그러면 제가 왜 이러시냐고 하지요. 그런데 저희 집사람은 괜찮다면 막 실습니다. 그래서 딸들은 도둑이라 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저를 막으면서 말합니다. “주사는 기쁨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아낌없이 주시고 우리가 만족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어떤 분은 본문의 “반석에서 나오는 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에서 나오는 꿀은 곧 “은혜와 진리”라는 것입니다.
좀 논리비약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에 만족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만족함이 없는 것일까요?
시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부족하고 늘 어려운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는 정말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고 정말 내가 그분의 양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입으로만 하나님이 목자라 하면서 다른 목자를 따르고 있지는 않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또 하나, 말로는 주님의 양이라 하면서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고 헛된 곳에서 헤매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목마르고 배고픈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8: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독자까지 아끼지 않고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은 중요시 하지 않고 부스러기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입을 크게 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기도의 폭을 더 넓게 열라는 것도 되지만 하나님만을 올바로 따르고 그분만을 향해 올바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아름다운 밀과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믿음의 입을 크게 열고 주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찬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수 마귀를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기서 모든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기도합시다.
http://cafe.daum.net/ilhwansermon
#위 제목이나 주소를 클릭하면 최일환 목사 설교카페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