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에 관한 단상
심청전은 판소리 여섯 대목에 들어가는 , 널리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은 구전설화에서 동리 신재효에 의해 조선 후기에 음악적 요소를 곁들인 판소리, 창극으로 발전해 온 대표적인 민중전승 이야기이다.
심청전은 흔히 효의 개념을 극대화한 사연이 권선징악이라는 불교적 색채를 바탕으로 행복한 결말을 유도한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상황을 살펴보면 그리 즐거운 줄거리도 아니요 어떤 섬찟한 정황들이 가끔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우선 심봉사네 집 상황이 무척 심각하다. 가장인 심학규는 애초부터 앞을 못보는 장님이요 아들 한 명없이 첫딸이 태어나는 와중에 아내마저 산후 조리를 못해 그만 이승을 떠나고 만다.
철없는 딸은 젖을 달라고 칭얼대고 먹을 것 없는 심봉사, 동네를 젖구걸하며 심청이를 키운다. 딸아이라도 무사히 커서 아비의 지팡이를 이끌고 물건너 산너머 마을마다 밥공양 구걸을 해야 할 운명이 선명하기만 하다.
자 판소리사설에 따르면 황해도 어디 고을이 주 무대로 설정 되는데
이는 중국과 가까운 어느 해안마을이나 고을을 암시적으로 내비치는 것으로 결코 우연한 배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심청전을 정리 요약하면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딸을 뱃사람들에게 팔아, 남은 부모들은 그걸로 연명하고 딸은 어쩔 수없이 중국가는 배 선원들에게 이끌려 알 수 없는 지역으로 가는 도중 어느 해역(인당수)에 풍덩 빠져 용왕의 재물로 바쳐진다는 것이다. 슬프기 그지없는 사연이다.
당시에 중국 연안지방으로 고려 혹은 조선의 많은 어린 처녀들이 자의와는 무관하게 싼 값으로 팔려가고 있었다는 반증을 심청전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하겠다. 당시의 우리 민중의 생활상태가 궁핍해 가솔(입) 하나를 덜기 위해 딸을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리라는 것이다. 또 중국의 해상족들이나 연안 어민들도 자신들의 종족번식을 위해 가임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리라는 추정은 쉽게 떠오른다.
한반도의 해안가가 반드시 황해도 바닷가일 필요는 없다. 진도 또한 중국과 지정학적으로 매우 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맹골도 닭울음소리가 산동반도에 들린다) 많은 해상어민들이 떠돌며 중국지나와 여러 해역을 왕래하며 살고 있었다. 진도 향토사가인 박주언씨는 해상족(에브네. 두무악)이 해적 혹은 왜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중국상인들은 주로 정식적인 교역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교역의 교환물로서 젊은 여성을 가끔 요구했다고 해서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고 본다. 요즘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지의 여성들이 거의 헐값(공식적으로 팔구백만원)에 팔려 대만이나 한국으로 공녀처럼 시집을 가는 현상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여성의 지위가 절대적으로 기울었던 시대에 어찌 보면 심청은 수난받는 여성들을 위안하기 위한 재림성모의 성격을 띤다고 보여진다. 팔려가도 혹은 팔려가지 않더라도 제도와 남성본위사회 가정에서 인간존엄을 애초부터 거세당한 여성들의 한이 바로 팔려간 심청이가 용왕아들의 도움으로 중국의 황후가 되어 다시 바람피고 줏대없는 심봉사 애비를 상면하게 하는 것은 남성들의 헛껍데기 권위를 마음껏 비웃고 조롱하면서도 선선이 용서해주는 카타르시스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실잔치에 초청되는 모든 봉사들은 그 시대의 수난받는 피압박민중을 대표하는 것일 뿐이다. 오직 희망이라곤 자신들의 의지와 사회적 포용력이 아닌 황제나 기적에 기대일 뿐인 세상이 심청전의 사회적 시대적 배경이다.
거기에 비하면 뺑덕어미는 상당히 사실적인 디테일을 갖추고 있으며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심청전의 가장 성공적인 인물전형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불교는 거의 절대적 비의성을 내보인다. 거의 엄포에 가까운 공양미 삼백석을 빌미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대가성의 약속은 사실 종교적 본질인 관용과 무한한 사랑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이는 당시의 불교가 지나친 권위를 부여받고 왕실과 귀족의 비호를 받는 종교단체로 공공연히 백성들을 위압하고 합법적인 수탈을 자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심봉사를 비롯한 많은 가난한 백성들은 불교라는 종교에 깊이 기대일 수 밖에 없다. 상당히 이중적인 구조가 아닌가. '범종을 만든다 불사를 한다'는 등 이리저리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수단이 정당화되고 이를 거부하는 이는 하늘로부터 응징을 받는다는, 중세 크리스트교의 면죄부 발행을 연상시키는 게 바로 공양미 삼백석이다.
심청은 효녀이기 전에 연약한 희생물에 불과하다. 그에게도 소원은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강고한,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를 자기 대신 저 깊은 황해바다에 수장시키고 픈 마음이 연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깊은 바다속의 용궁은 심청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사회를 보여준다. 그러나 심청은 다시 현실로 와야 한다. 아비와 핍박받는 민중이 득시글거리는 사회로의 환원은 현실세계의 변혁이 절대적인 책무로 느꼈기 때문이다.
효와 일부종사 수절을 통해서 다음 대 자손의 영화를 일부 보장받던 중세봉건사회에서 극적인 신분의 변화를 꾀하는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심청은 어찌어찌하여 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심청은 그러나 어쩐지 잘 웃지를 않는다. 폐결핵을 앓던 중국의 미인 서시와도 같이. 그 이유가 자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봉사아비 때문임을 뒤늦게 알기 전 까지는.
실제 역사속에서 고려 말 원제국에 공녀를 차출되어간 여자들이 많았다. 어떤 젊은 여인들은 황제가 죽어 함께 순장을 시키려 하자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이국땅에 끌려가 이유없이 죽는 게 너무도 원통하여 슬피 울며 노래를 지어불렀다는 이야기가 오늘에 전해오고 있다. 또 한 고려 궁인은(기황후)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의 자리에 오르고 그 아들이 황제에 오르는 극적인 신분 상승의 신데렐라가 되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역사적 사실이 심청이라는 판소리에 녹아들어가 줄거리에 반영되었으리라고 본다.
선과 효를 권하는 아주 바람직한 사회모럴을 갖고 있는 한국의 중세사회에서 이 두 가지는 인간의 기본적 덕목임과 동시에 상층부에 대한 불만을 통제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지금도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차카게’살자고 외치면서 상을 남발하지만 정작 지배층 그들의 부도덕성과 이기적 행태는 극에 달해 있다.
늙은 서당 훈장(기득권)이 나는 ‘바담풍’해도 너희는 ‘바람풍’해라 외치지만 결국 이빨바진 잇몸에서 새어나오는 발음은 너희도 ‘바담풍’해라로 귀착된다는 해학적 결과를 맞는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어 많은 이들이 새 세상을 기대하며 들떠있다가 이제야 그게 단순한 숫자적 의미를 넘지 못했다는 자괴에서 서서히 벗어나 실질적인 사회변혁, 의식변화를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사회의 고착화된 보수화는 과거의 봉건지배세력과는 분명 대별되지만 그들은 민족상쟁의 전쟁을 통해 극대화된 반공이데올로기에 편승, 강고하니 이 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번 16대 대선에서 나타났듯이 의식의 기조에 전쟁공포감이 자리하지 않는 청년 신세대는 자유로운 자기 결정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선택하였다.
한국사회는 분명 희망적이다. 지정학적 위치나 분단이라는 현실이 그리 만만치가 않지만 우리 내부 구성원들의 사고가 잘 보이지 않아도 어떤 속도를 갖고 변화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방분권화, 여성의 사회적 진출, 소수층의 목소리 강화. 이질성은 있어도 이단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사회규범으로 당당히 진입되고 있다.
진도에도 분명 희망은 있다. 한때는 진도 자체가 늘 희망이었다. 한국인의 원형적인 문화와 의식 생활양식 등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었던 곳. 소설가 김훈은 그래서 진도를 '원형의 섬'이라고 규정했었다.
이제 우리들은 진도가 왜 희망이었는지 그 희망이 누구를 위한 희망이었는지 다시 물음을 가져야 한다. 혹여나 내가 우리가 심청이와 같은 처지는 아닌지. 혹은 심봉사와 같은 처지는 더더욱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그 찰진 공양미 삼백석을 개발이라는 미끼로 덥석 던져준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눈을 뜨더라도 제 피붙이를 마구 팔아 억지 개안을 한다고 세상이 무지개빛으로 가득해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