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리더십이 살아야 한다!(행6:1-15)
갈등
1. 사도행전 이야기(내러티브)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초대 교회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짓말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경험하였어요. 이후 성령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표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셨습니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던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과 감금, 위협이 있었으나 사도들과 초대 교회는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회의 본질을 좇아 나아갔어요. 초대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였던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가 직분을 막론하고 성도들이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행1:8,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 1절,“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교회의 역동적인(다이내믹한) 모습이 분출되며 교회는 계속 성장해갔어요. 이렇게 교회가 자라면서 생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2. 오순절 성령강림 후 이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약 3-4년이 지났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간이 이만큼 흐르면 아무리 좋았던 공동체도 갈등과 위기가 오기 시작해요. 이때 초대 교회에 발생한 문제는 과부들의 구제에서 형평성을 잃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홀대를 받았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헬라어를 쓰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헬라파 유대인들은 소수였고, 다수인 히브리파 유대인들-히브리어를 쓰는 이스라엘 본토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소외당했습니다.
이런 불평이 일자 2절,“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사도들의 멋진 모습입니다. 문제가 발생하자, 누구 탓을 하지 않고 바로 우리 탓이라고 사도들이 말했습니다. 모든 일을 사도들이 담당하다 보니 일손이 부족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사도들은 교회에 필요한 일군들을 선출하고, 그들의 본분인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했습니다. 이 일이 전해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사도들은 교회가 성장하며 필요한 일군들을 택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집사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사도행전21:8에서야 집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군들을 뽑는데 기준은 3절,“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섬길 일군들의 자격은 세 가지였어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야 했습니다. 이것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일군은 영적인 사람이라야 하지만, 칭찬받는 사람이라야 한다고요. 인격적인 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자격 요소를 갖춘 사람-일곱 명이 선택되었습니다. 5절,“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선택된 일곱 명의 일군들을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6절)
4. 사도들만 앞장서 일을 하다가 일곱 명의 일군들이 가세하면서 7절,“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일곱 명의 일군들이 사도들과 함께 일하니 교회가 더욱 자라갔습니다. 제사장들 가운데도 믿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이후 8-15절은 스데반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데반 이야기가 전해주는 바가 무엇인지 봅니다. 8절,“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일곱 명의 일군들은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제를 돕는 사역을 하기 위해 선출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들이 행한 구제의 일을 전하지 않고 오늘 본문 8절부터 7:60까지 스데반의 전도를, 8:4-40에는 빌립의 전도를 전합니다. 두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 10절,“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빌립도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랐습니다.(8:5-6) 일곱 명의 일군들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이렇게 전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실마리
5.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 과정이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났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질서 있게 되어가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성도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세상에서 언제든지 갈등이 일어납니다. 기득권을 가진 히브리파 유대인 성도들이 소수인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을 홀대했습니다. 양분화될 위기였어요. 이때 사도들이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일은 바로 우리 사도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들이 교회가 자라면서, 진작에 일군들을 선택하여 세웠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어요. 사도들은 먼저 갈등의 원인이 자기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해법도 제시했습니다. 일군들을 세우자고 했습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택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들은 본업인 기도와 말씀 사역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도들의 말에 성도들이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참 멋진 교회의 모습입니다.
6.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며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탄탄대로로 자라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말씀은 스데반 이야기입니다. 스데반은 일곱 명의 일군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선출되었어요. 초대 교회가 일군들을 택한 것은 사도들이 시간이 부족하여서 하지 못하던 구제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일곱 명의 일군들이 행한 구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요. 도리어 오늘 본문 8절부터 8장까지 스데반과 빌립의 전도 이야기만 전해줍니다.
스데반과 빌립은 사도들과 같이 말씀 사역-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담당했고, 그들이 이 일을 할 때 성령께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사역을 보면 사도들과도 같았어요. 사도행전에 이렇게 기록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사용하는 장로와 집사직은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교회의 직제입니다. 성경에 말씀하는 장로와 집사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곱 명의 일군들은 훗날 각 지역으로 흩어져 감독들이 되었어요. 오늘날과 같은 평신도 집사들이 아니었습니다. 일곱 명의 일군들은 사도들과 같이 대부분 순교했습니다.
7. 사도들과 일곱 명의 일군들을 포함하여 첫 번째 순교자는 스데반이었습니다.(7장) 두 번째 순교자는 사도 야고보였어요.(12장, 요한의 형제) 스데반과 빌립 이야기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직분이 중요하지 않았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사용하셨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사도들이나 평신도들이나 다르지 않았어요. 직분에 집착하는 오늘날 교회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자 유대 종교인들이 그를 당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님을 향해서 또 사도들을 향해서도 그들이 행했던 일이었어요.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죽이기 위해서 사람들을 매수하여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거짓 증인들을 세운 것과 같습니다. 거짓 증인들이 스데반을 고발한 것은 11절,“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13절,“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아니하는 도다.”
8. 유대 종교인들은 사형권이 없었지만, 성전을 모독하는 죄에 대해서는 사형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스데반을 죽이기 위해 거짓 증인을 세워서 고발했습니다. 이때 스데반의 얼굴은 15절,“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성령께서 스데반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성령충만이 최고에 이른 스데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도들도 보여주지 못했던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멋진 성령행전이 사도들과 더불어 일곱 명의 일군들을 통해서도 이뤄지며 초대 교회는 자라갔습니다.
복음 제시
9. 스데반을 음해하려는 거짓 증인들의 말 가운데 14절,“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예수님이 성전 청결을 할 때 유대 종교인들이,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고 말했어요. 이때 주님께서,“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답하셨습니다.(요2:19-20)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46년 동안 지었는데 네가 삼 일만에 세우겠다고 하느냐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자기 몸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후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주님은 놀라운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전혀 엉뚱하게 오해하고 말았어요. 주님은 모세를 통해 전해진 규례-율법을 고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던 율법을 바로 잡아주셨을 뿐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율법을 100% 지키셨습니다.(할례부터)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근본정신을 가르쳐주셨습니다.(산상수훈, 마태복음5-7장)
기대
10. 오늘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직분이 중요하지 않아요. 직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우리 각 사람의 관계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사도행전은 스데반과 빌립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요?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7년이 지나고,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새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슈바르츠 박사는 그의 책,『자연적 교회성장』에서 건강한 교회의 여덟 가지 요소를 제시했어요. 그중에 첫 번째가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입니다.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교회가 건강합니다. 목회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됩니다. 시간이나 에너지의 한계가 있어요. 제가 매주 목요일 오후 전도하며 두 가지 한계를 느낍니다. 하나는 시간이 부족하고, 또 하나는 나눠줄 빵이 부족합니다. 제가 기도하고 전도하고 치유 사역을 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행복 모임을 직접 인도하면 됩니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평신도가 한 명이 있으면, 우리 교회는 지금보다 두 배로 클 수 있어요. 세 명이면 세 배로, 열 명이면 열 배로 클 수 있습니다.
11. 그래서 오늘부터 제 생각을 좀 바꾸려고 합니다. 저의 사역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전도하고 가르치고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우들 가운데 이 사역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분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하루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성경 다섯 장 이상 읽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여의도 순복음교회 빨간 가방의 신화 주인공들-구역장들) 여러분들이 자원해주시고 협력해주시면 됩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내가 이 귀한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게 하옵소서.(오늘 찬양: 우릴 사용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