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문 일부분을 수정해서 올립니다.
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10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마6:9-10, 새번역)
아침 시간에 기도하는데 어제부터 내 안에 올라왔던 억울함, 서운함, 자기연민 등이 다시 기도하는 나의 마음을 괴롭힌다. 제주에서의 삶이나 사역이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고, 골대를 향해 헛발질만 계속하는 것 같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그래서 매일 희망고문을 당하는 것 같은 감정이 나의 마음에 늘 존재해 있다(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자주 따지곤 했다).
오늘 아침 함덕 바닷가에서 밝아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데 – 특히 앞부분의 아버지 간청 세 가지 (1) 아버지의 이름, (2) 아버지의 왕국(나라), (3) 아버지의 뜻 – 성령님께서 이런 도전과 깨달음을 주신다. “무엇인가 이루어지지 않는 삶과 목회 때문에 괴로워 하지말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아버지의 왕국(나라)이 임하고, 아버지의 뜻이 너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춰라!”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꾸 나의 이름, 나의 목회, 나의 뜻이 인정 받고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아버지의 이름과 왕국(나라)과 뜻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도전하신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나의 어떠함(능력, 비전 등)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나를 통해 높임을 받으시고, 그 분의 왕국(나라)과 그 분의 뜻이 나의 순종을 통해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시급한 것이 철저한 ‘자기 부인’이다. 목회의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 다시 말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 이상준이라는 이름이 인정을 받고 주목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이상준이 하는 목회의 영역이 넓어지고,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를 보기를 원한다. 그런데 가정교회 개척 목회가, 제주도에서의 사역과 삶이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 같고, 응답이 없는 메아리 같아 허무함과 허탈함을 느끼며, 자꾸 이상준이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는 ‘내’가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나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이, 나의 왕국이 아닌 아버지의 왕국(나라)이,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을 점검할 수 있는 것이 그 사람의 기도이다. 무엇을 구하느냐? 무엇을 위해 기도하느냐? 말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면서 간구하는 내용이 자신과 자신의 필요 뿐이라면, 그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면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 인간은 그냥 놔두면 자기를 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기도도 온통 자신의 문제, 자신의 필요,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어 있다. ‘주기도문’은 그것을 철저하게 부인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가정 먼저 하나님의 왕국(나라)과 하나님의 의(주기도문에서는 ‘뜻’)를 구해야 한다(마 6:31~33). 이것이 ‘주기도문’이 우리에게 매일 도전하시는 것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가장 먼저 아버지의 이름과 그 분의 왕국(나라)과 그 분의 뜻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삶을 드리라고 초청하신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다. 철저한 ‘자기부인’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기도이다. 그냥 종교적으로 그리고 의무적으로 암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이방인이 했던 중얼거림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진정한 기도는 할 수 없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가지고 진짜 기도 하려면 가장 먼저 삶의 방향과 가치와 목적을 바꾸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조정하지 않고선 절대로 할 수 없는 기도인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고, 하나님의 뜻을 바뀌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을 뒤흔들고, 나의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란 책을 쓴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자신의 책에서 이 부분을 ‘조정’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주도적으로 일하시고, 택한 사람들 가운데 찾아오셔서 자신의 계획과 뜻을 계시하시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라는 초청인데, 이 초정은 항상 ‘믿음의 갈등’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고, 인간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선 반드시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계획을 ‘조정’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정이 없이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기대,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계획들을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선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왕국(나라)과 아버지의 뜻을 구할 수 없다. 물론 기도의 출발이 인간의 필요와 문제와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만으로 가득찬 기도는 어린 아이의 기도일 뿐이다. 우리의 기도는 간구에서 시작해서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딤전 2:1 참조). 성숙한 어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왕국(나라)과 뜻을 구하는 감사와 경배와 찬양의 기도이다. 이것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인 것이다. 그러니 주기도문을 주문처음 중언부언 하지말고(주기도문에서 ‘’기도'를 빼면 ‘주문’이 된다) 진짜 기도로 하나님께 드리자. 그리고 그것이 주문이 아닌 기도가 되려면 자기 부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