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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방관(袖手傍觀)
손을 소매 속에 넣고 옆에서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나서야 할 일에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이다.
袖 : 소매 수(衤/5)
手 : 손 수(手/0)
傍 : 곁 방(亻/10)
觀 : 볼 관(見/18)
(유의어)
오불관언(吾不關焉)
출전 : 한유(韓愈)의 제유자후문(祭柳子厚文)
옛날에는 옷에 주머니가 거의 없었으므로 소매가 의복의 주머니 역할을 하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가만히 있을 때나 날씨가 추운 날에는 주머니 대신에 소매에 손을 넣기도 하였다.
수수방관(袖手傍觀)은 소매에 손을 넣는다는 뜻의 수수(袖手)와 곁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는 방관(傍觀)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당(唐)나라의 유명한 문학자 한유(韓愈)의 제유자후문(祭柳子厚文), 즉 유자후는 유종원(柳宗元)을 말하며, 그가 죽은 뒤에 한유가 쓴 제문(祭文)에서 찾을 수 있다.
凡物之生, 不願爲材.
犧尊靑黃, 乃木之災.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은 쓸모 있는 재목이 되길 원치 않는다. 나무가 쓸 만하면 제사용 술잔이 되어 청색 황색의 장식을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나무에게 재난이다.
子之中棄, 天脫 羈,
玉佩瓊 , 大放厥詞.
당신은 벼슬길에서 중도에 쫓겨났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늘이 그대의 속박을 풀어준 것으로, 그대의 문장은 힘차고 옥처럼 아름다워 그대의 문재를 충분히 발휘하게 했다.
富貴無能, 磨滅誰紀.
子之自著, 表表愈偉.
돈 많고 지위가 높아도 무능하여 그 명성이 점점 사라지니 그 누구를 역사에 기록하겠는가.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명성이 드러나게 하여 훨씬 훌륭하게 되었다.
不善爲斫, 血指汗斫,
巧匠旁觀, 縮手袖間.
나무를 잘 베지 못하는 사람은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는데, 나무를 잘 베는 장인은 오히려 옆에서 쳐다보며 손을 거둬 옷소매 속에 넣고 있다.
子之文章, 而不用世,
乃令吾徒, 掌帝之制.
그대의 문장은 세상에 쓰이지 않고, 뜻밖에 우리들이 황제를 위해 문장을 쓰는 일을 맡게 됐다.
子之視人, 自以無前.
一斥不復, 群飛刺天.
당신은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용감하게 나아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결과 배척받아 더 이상 다시 중용되지 않으니, 수많은 유언비어가 황제의 귀까지 들렸다.
수수방관(袖手傍觀)
수수(袖手)는 ‘팔짱을 끼고 있다’는 뜻이고, 방관(傍觀)은 ‘어떤 일을 하지는 않고 지켜 보기만 한다’는 뜻이다. 즉, 어떤 일에 관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뜻이다. 해야 할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으로,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뜻의 오불관언(吾不關焉)과 비슷한 말이다.
옛날에는 옷에 주머니가 거의 없었으므로 소매가 의복의 주머니 역할을 하였다. 아무런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가만히 있을 때나 날씨가 추운 날에는 주머니 대신에 소매에 손을 넣기도 하였다. 수수방관(袖手傍觀)은 소매에 손을 넣는다는 뜻의 수수(袖手)와 곁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는 방관(傍觀)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가까운 곳에서 큰 일이 일어났으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관심없이 팔짱을 끼고 바라보기만 한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와 같은 뜻으로,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는 태도를 보일 때 쓰인다. 어떤 해야 할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말이다.
방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곁에서 보고만 있음, 곁에서 바라봄'이라고 나와 있다. 즉 일을 앞에 놓고도 손님의 위치에 서서 팔장을 끼고 보고만 있는 자를 방관자라 한다. 이 방관자야 말로 한 가정이나 공동체, 사회 조직에 있어 솎아버려야 할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자이다.
혹자는 방관자를 다음의 6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첫째 혼돈파(混沌派)로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는 부류로서 조금 있으면 끓어 오를 솥 안의 미지근한 물 속에서 봄철의 강물이 따뜻해질 것으로 아는 물고기와 같은 자, 둘째 위아파(爲我派)로 나에게 이익이 없고 나에게 손해되는 일이니 내 어찌 모험을 하랴 식의 무리, 셋째 명호파(鳴呼派)로 한숨과 눈물과 통곡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사업으로 삼는 자, 넷째 소매파(笑罵派)로 무슨 일에든 냉소와 매도(罵倒)를 일삼는 자, 다섯째 대시파(待時派)로 바람이 어디로 부는가를 기다려 보다가 바람이 동쪽으로 불면 동쪽으로 따라가고 서쪽으로 불면 서쪽으로 따라 가면서 그것을 천명이니 신의 섭리니 자연의 도리니 운운하는 가장 교활한 무리이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것을 창조해 내고 이루어내는 신의 실체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존재로부터 진실이 흘러 나와야 나 자신이 변화되고 나아가 내 주위가, 사회가 우주가 변화 되어진다. 오늘날 귀하게 만난 우리가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는 큰 사랑의 가르침을 듣고도 올바르게 자유율법(自由律法)대로 살아가지 못함은 아직도 위아파적(爲我派的)인 이해관계에 우리의 행위가 기초하고 있음이 아닐까?
올바른 사랑, 이 우주를 완전히 하나로 통합하고 변형시킬 만한 웅대한 사랑은 우리의 에고(ego; 나라는 존재의식)가 사라진 때 부터만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에너지는 항상 마찰을 통해서 창조된다. 나 자신과의 진정한 싸움이 없이는 그 어떠한 변화도, 힘도 기쁨고 사랑도 창조되지 않는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은 선(善)과 악(惡), 이 두 개의 속성은 끊임없는 마찰을 통해서 만 비로서 한 편의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그리하여야만 긴 싸움 끝에 마침내는 모든 에너지 전체가 우리에게 흡수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대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며, 장마가 들어 집채가 떠내려 가고, 오랫동안 가믐이 들어 흉작으로, 사람과 짐승들이 굶어서 죽어가는 상태를 알고서도, 못 본채 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방관자라고, 일반적으로 부른다. 이 때에 '우리'라고 하는, 1인칭인 복수대명사는 사람과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연결해 주는, 그러한 기능수행적인 역할을 하듯,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용어이다.
또한 '우리'라고 할 땐, 그 안에 자신도 포함된 공동체적인 동질성에 따른 연대감이 자연스럽게 마음속 깊이 와 닫는다. 뿐만 아니라 나가서는 남녀들 사이에선 '우리'라고 말할 땐, 어느 사이에 한 몸이 된 운명 공동체적인 느낌이, 가슴속에 뜨겁게 스며드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는 이미 한 몸이 아닌, 복수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인칭인 단수대명사인 '너'라고, 부를 땐 '나'와는 아직은 결합체가 아닌 의미가 명확히 구분되어 들어가 있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너'가 '나'와 동질성으로 결합되기 위해선, 반드시 일정한 조건부가 걸려있는 용어이다. 따라서 '나'와 '너'는 현재까지 운명을 같이할 정도로 결합된 사람은 아니다. 이러함에서 개인차원적인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인 범주에선 '나'와 '너'라는 용어는, 완전히 남남임을 말한다.
그런데 개인차원이 아닌 '우리'라는 용어는 사회적인 범주에서 통용되듯 어느 사이에 '나'를 사회공동 운명체에다가 포함시킨 용어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럴 땐 '나'는 사회공동체 운명에 속한 하나에 객체로서 존재하고 있음에서 의미를 띤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 유기체적인 사회운명공동체이다.
인류는 아득히 먼 옛날엔 원시시대인 씨족사회에선 바로 '우리'만이 통용되었다. 네것과 내것을 따로따로 가를만한 생산물이 없었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는 시대였다. 돈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구가 변변치 못해 때로는 사납거나 등치가 큰 짐승들도 잡아서 먹고 같이 살아가려면 어차피 일심동체로 단합해서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득히 먼 옛날엔 일심동체인 '우리'만이 통용되었다. 그러한 때로부터 인류사회는 사적 소유를 알게 되면서, 사적 소유격차가 점점 심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일심동체 공동사회는 사적 소유발달로 말미암아 허물어지고 말았다.
19세기로 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론 '우리'라는 인류 공동체적인 삶은 뿔뿔이 흩어져 '나'와 '너'라는 개별사회인 삶으로, 빠르게 분화되어 왔다. 대문명사적(大文明史的)인 오늘날엔 '나'와 대화해야 할 교접상대인 '너'를 점점 잃어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무너졌다. 그래서 하느님에 구원도, 사회구원이 아니라, 첫째로는 개인구원으로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젠 오직 '나'만이 홀로 남아, 저마다 고독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날을 따라 '우리'라는 연대감이 매우 빠르게 희박해져 가는 건, 사적 소유를 중요시하는 개별사회에서 끝없이 분열되어 나가듯, 현대문명이 낳은 현대 인간들에 정신파멸인 벌거벗은 나상(裸象)이다.
'나'와 '너'가 서로 연대감을 자꾸만 상실해 나가듯, 분열적인 개별사회에선 모든 물체가 '나'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며, 온갖 권력과 명예와 권위와 재산들이 오직 '나'에 삶을 위해선, 첫째로 '나'에게 먼저 주어져야 한다. 이처럼 현대 인간들은 정신 파괴적인 삶 쪽으로만, 제어할 수 없도록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분열적인 현대 개별사회에선 '나' 아닌 '너'에 처지나 입장을 생각해 주기 싫다. 그런 건 '나'에게 귀찮기 때문이다. 다만 '나'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면, 그 이득을 가져다 주는 일정한 기간만 '너'를 필요로 하는 전제조건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이득이 되질 않은 건, 모두 다 귀찮다. 그러므로 귀찮은 방관을 부른다. 따라서 방관은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가끔씩 구경꾼으로 등장한다. 구경꾼은 제3자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적인 일에 책임을 지질 않는 자이다. 이러한 방관에 역사는 자기 삶에만 빠져왔듯, 때묻은 기성세대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1인칭인 '나'가 2인칭인 '너'와 연대하여 결합해서 이뤄야 할 공동체 곧 1인칭 복수대명사인 '우리'마저 팽개치고 3인칭을 선택하여 '그'와 '그들'을 구경하는 방관자로 나서는 게 현대 개별사회가 가져다 준 현대인에 정신상태인 벌거벗은 나상임을 다시 지적한다.
이 벌거숭이 정신상태는 인간을 사랑하는 더운 피가 고동침이 멎고 잿빛가루만 휘몰아치는 썰렁한 가슴으로 황량한 영혼에 갇혀 스스로 무덤을 파가듯 옛 추억에서 아름다웠던 그리움마저 상실해가는 냉담한 인간으로 변형된다.
정의(正義)도 분격(憤激)도 다 상실했듯, 침묵으로써 일관하는 냉담과 허무로, 자아에 무덤을 부질없이 파가는 방관자인 구경꾼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형인 방관자는 자기중심을 극대화시켜, 폐쇄적인 생활자세로 일관한다.
자기 중심적인 방관자는, 세계에 중심엔 언제나 자기가 서 있다. 세계는 나를 위하여 움직이어야 하고, 그 중심인 노랑자위에 자기가 존재한다는, 그런 착각에 빠져 산다. 그러므로 내가 없는 세계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내가 의미를 띠는 존재로 되기 위해선 세계가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며 또한 변화해야 한다.
그로므로 너가 속해 있는 또는 너와 합일해서 살아가야 할 우리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미 나하고는 무관하며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일에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또는 분노를 느낀다는 건 내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나는 오직 내가 살아가는 데만 충실해야 한다.
자기 중심적인 두터운 껍질을 둘러쓰고 너와 내가 서로 협력하여 이뤄나가야 할 우리 사회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어떤 불행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고통을 조금도 느끼질 말아야 한다. 그러한 불행들은 그들에게 해당된 불행인 것이다. 설사 사람이 옆에서 죽어가는 절박한 일이 버러지더라도, 내가 손을 뻗어 구원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일들은 그런 일들을 담당하는 그들이 처리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처럼 철두철미한 냉혈적 방관자에 죄는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가? 먼저 인간애증(人間愛憎)을 상실한 사회 의무를 배반한 데 있다. 사회 의무는 그러한 그가 세상에 태어났음은 이미 인간사회 공동체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가 먹고 입고 잠자고 배우고 경험하여 한 인간으로써 성장하기까지, 인간사회가 이룩해 놓은 바탕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과정에서 사회에서 입은 혜택에 대해서 일정한 정도로 복무해야 할 의무가 도리로 주어져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방관에 죄를 우리사회에다 비춰보면 나라와 민족에 대한 반역이다. 나라와 민족이 없이 그가 존재할 수 없기 땜이다. 나라와 민족은 그가 성장하여 살아온 구체적인 생활터전이었다.
따라서 나라와 민족문제를 방관한다는 건, 우리시회에 대한 죄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러한 그가 깨닫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깨닫지 못한 만큼 죄를 범해온 것임을 말한다. 여기서 방관자에 죄는 특히 우리 정치에 대한 방관임을 말한다. 정치는 사회적 삶에 질을 변화시키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무관심은 우리 사회에서 인간존엄성을 파괴시키는 행위로 된다.
이처럼 우리 정치에 무관심한 방관자는 본질적으로 4천8백쯤에서 한 사람이 저질로 떨어뜨리는 확률임을 말한다. 따라서 이처럼 정치 방관자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를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없도록 질을 떨어뜨린 사람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치 무관심인 방관자들은 나라를 저질로 만드는 배반자들이다. 민족문제도 이러한 점에서 그 양상은 마찬가지다.
그러면 방관자에 죄는 어떻게 벌이 실현될까? 방관자가 너와 서로 협력하여 이뤄나가야 할 우리 사회에 무관심하여, 오직 자신에 삶에 몰두함에서, 나라와 민족과 정치 사회 문제들을 모두 그들에게 밀쳐두는 행위로부터 벌을 받게 됨을 말한다. 이처럼 무책임한 허울속에 빠진, 방관자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를, 방관으로써 끊임없이 파괴시켜 나간다.
그러한 방관행태로 말미암아 그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가 질이 점점 떨어짐에 있다. 그러므로 그런한 방관자도 질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방관자가 자행해 온 죄에 대한 벌이다. 이는 방관에 대한 죄인 대가를 틀림없이 스스로 치르게 되는 오묘한 형벌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방관자는 자신에 이기주의적인 컴컴한 동굴속에서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어 나와, 너를 다시 찾아 협의하여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가꿔 이룸과 더불어, 인류애적인 국제사회 문제까지 확대시켜 눈을 높여나가는 일들은 현대 지성인들이 당연이 담당해야 할 과제이다.
이는 작게는 나와 너 사이에 열려진 소통이며, 우리에게 협력하는 미래 전망적인 협동정신이며, 또한 정치 사회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의로운 자세이자, 나가서는 가난한 3세계 민중과 연대하는 인류애적인 현대 지성인에 책임이자 도리임을 말한다.
할아버지의 회초리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교육을 집안의 어른이 맡아하던 시절의 얘기다. 그때는 아이들이 바깥에서 잘못한 일이 있을 경우 집에 들어가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당연히 어른들의 불호령과 함께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지켜보지 않을 때도 언제나 행동을 조심했다. 집안에 어른이 있고 없음은 아이들 행동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아이들 교육에 남녀차별이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의 진로에 대한 중요한 결정권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다.
학부형이란 말도 있었다. 자녀교육이 남자들의 몫이었던 시절에 나온 말이다. 그 말이 슬그머니 학부모로 바뀌었다. 세태의 변화를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모회(慈母會) 혹은 어머니회로 바뀌었다. 간혹 학부모회(學父母會)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내용을 보면 기실 어머니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게 옳을 만큼 아버지들이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예전이라고 하지만 불과 십여년 전이다. 그때는 교사가 학생의 신상문제로 논의할 일이 있으면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와 접촉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자녀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탓일까. 아버지들은 이제 자녀교육은 어머니와 학교의 몫으로 돌리고 자리를 비워 버렸다.
그래서 요즘의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저 아이들 학비를 벌어주고, 값 비싼 장난감을 사 주고, 때때로 아이들과 같이 외식을 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보내고 공부시키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어머니와 학교의 탓으로 돌린다. 어머니가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그렇고, 학교에서 교사들이 무능해서 아이들을 망쳤다고 나무란다.
요즘의 아버지들이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언제쯤일까? 아마 학기말쯤에나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일 것이다. 그나마 성적이 좋으면 외식이나 한 번 할 거고, 성적이 나쁘면 꾸중이나 한 번 하면 끝이다. 예전이 반드시 옳았다는 것도 아니고, 요즘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자녀들 교육은 어느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닌 아버지 어머니 모두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교육의 괴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산업화로 인해 아버지들이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진 탓도 있다. 또, 저출산과 핵가족화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이 집에서 귀한 아들, 귀한 딸로 자란 탓도 있다. 거기에 교육과정의 변화도 일조를 했다. 아이들이 열린교육이 강조하는 자유를 방임으로 받아들이는 역기능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핑계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방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과 십여년, 아버지가 아버지의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은 가치관의 혼돈과 사회성 결핍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하고 있다. 술과 마약, 섹스와 폭력 등으로 가정과 학교,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특히 학교는 더욱 폐해가 심하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구태의연한 말은 그만 두더라도 요즘의 아이들은 도대체 겁이 없다. 물론 일부의 얘기지만 교사 꾸중에 네가 선생이냐?, 입 닥쳐! 등으로 대꾸를 한다.
심지어 교사를 구타하는 경우까지 생기니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교사가 학생의 인성교육은 커녕 수업을 진행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렇게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학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전반으로 청소년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예전에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때는 이렇지는 않았다. 만약에 예전의 아버지가 지금도 있다면 아이들의 종아리가 제대로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훈계의 한계까지 넘어선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의 자리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아버지라는 말은 참 난해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전을 비롯한 많은 글에서 아버지의 의미는 어머니의 그것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미흡하다. 자녀가 자라서 사회적으로 덕망과 명예를 얻게 되면 그 뒤에 어머니의 이름은 있어도 아버지의 이름은 없다. 물론 맹모삼천(孟母三遷)을 비롯하여 신사임당(申師任堂)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있어 어머니의 역할이나 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위치가 그만큼 견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옆에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을 때는 어머니의 훈계보다는 아버지의 헛기침 한 번이나 회초리가 때로는 더 교육적이었다. 이렇게 자녀교육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회초리를 들고 엄하게 가르친 업보라고나 할까.
대신 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격려해 주었던 어머니가 자녀교육의 선도자로 역사에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리는 외롭다. 또, 아버지란 자리는 임기도 없고, 또 마음에 안 든다고 아버지 노릇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역할이 더 어려운지 모른다.
아이들은 미완성 인격체다. 아이들에게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다 싶으면 빗나가기 싶다. 아이들을 올바른 인격체로 키우기 위해서는 격려와 칭찬이 필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매로 다스릴 때도 있어야 한다. 예전의 어른들이 어디 자식이 미워서 종아리를 때렸으랴. 상황에 따라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대의 회초리가 더 교육적일 수도 있다.
이제 다시 아버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자. 아버지들이 눈을 교육으로 돌려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회초리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아버지는 있으되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는 세상. 당연히 사회의 질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가는 날 아이들의 교육이 바로 설 것이다.
▶️ 袖(소매 수)는 형성문자로 褎(수), 褏(수)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옷의변(衤=衣; 옷)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由(유, 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袖(수)는 ①소매(윗옷의 좌우에 있는 두 팔을 꿰는 부분) ②반소매 저고리 ③소매에 넣다 ④소매 속에 숨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통솔하고 지도하는 우두머리를 수령(袖領), 소매의 길이를 수장(袖長), 소매의 폭을 수장(袖樁), 소매 속에서 꺼내어 바친다는 뜻으로 자신이 직접 바침을 이르는 말을 수정(袖呈), 팔짱을 낌으로 어떤 일에 직접 나서지 않고 버려둠을 수수(袖手), 편지나 서류 따위를 몸소 가지고 가서 직접 전함을 수전(袖傳), 편지 따위를 가지고 가서 드림을 수납(袖納), 여럿 중의 우두머리를 영수(領袖),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단수(斷袖), 옛 군복의 붉은 소매를 홍수(紅袖), 폭이 너른 소매를 광수(廣袖), 폭이 좁은 소매를 착수(窄袖), 서로 소매가 맞닿았다는 뜻으로 교분이 아주 친밀함을 이르는 말을 교수(交袖), 손을 들어 소매를 안으로 여미면서 가슴에 대는 춤사위를 내수(內袖), 읍을 하는 예로서 소매를 들어 올림을 거수(擧袖), 저고리 소매 위에 덧씌우는 토시를 정수(淨袖), 짧은 소매를 단수(短袖), 양쪽 소매를 쌍수(雙袖), 춤추는 사람의 옷소매를 수수(舞袖),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말함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는 말을 장수선무(長袖善舞), 서로 소매를 나누고 헤어짐이란 말로 곧 서로 이별함을 이르는 말을 분수상별(分袖相別) 등에 쓰인다.
▶️ 手(손 수)는 ❶상형문자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마찬가지로 손의 모양에서 생긴 글자는 又(우; 또), 寸(촌; 치) 따위가 있다. 手(수)는 投(투; 던지다), 招(초; 부르다) 따위 다른 글자의 부분이 되면 재방변(扌=手; 손)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手자는 '손'이나 '재주', '수단', '방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다. 본래 '손'을 뜻하는 글자로는 又(또 우)자가 있었지만, 후에 뜻이 바뀌면서 금문에서는 手자가 '손'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손의 기능이나 역할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재주나 솜씨, 수단 등과 같이 손과 관련된 기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手자는 운전수(運轉手)나 가수(歌手)와 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手(수)는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두는 기술의 뜻으로 ①손 ②재주, 솜씨 ③수단(手段), 방법(方法), 계략(計略) ④사람 ⑤힘, 도움이 될 힘이나 행위 ⑥필적(筆跡) ⑦권한(權限), 권능(權能) ⑧가락, 곡조(曲調) ⑨바둑돌이나 장기 말을 한 번씩 두는 번수 ⑩손수, 스스로 ⑪쥐다, 손으로 잡다 ⑫속박하다, 묶어 두다 ⑬손바닥으로 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발 족(足)이다. 용례로는 죄인의 손목에 걸쳐 채우는 수갑(手匣), 손으로 움직이는 것을 수동(手動),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 방도를 수단(手段), 늘 가지고 다니면서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마한 공책을 수첩(手帖), 의료 기계를 써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을 수술(手術), 정해진 급료 이외에 경우에 따라 덧붙여 주는 보수를 수당(手當), 손과 발 또는 손발과 같이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을 수족(手足),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망을 폄을 수배(手配), 순서나 과정을 수순(手順), 손아래나 부하를 수하(手下), 일을 꾸미고 치러 나가는 재간을 수완(手腕),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을 적은 기록을 수기(手記), 어떤 일에 손을 대어 시작함을 착수(着手), 잘못하여 그르침 또는 그 짓을 실수(失手), 기쁨과 찬성과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거나 할 때 두 손뼉을 마주 두드림을 박수(拍手),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운동이나 기술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을 선수(選手), 얼굴을 씻음을 세수(洗手),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손에 들어옴 또는 손에 넣음을 입수(入手),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鼓手),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를 공수(拱手), 손에 땀을 쥔다는 뜻으로 위험한 광경이나 사건의 추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몹시 긴장됨을 이르는 말을 수악한(手握汗),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 함을 이르는 말을 수불석권(手不釋卷), 형제간의 우애를 일컫는 말을 수족지애(手足之愛), 자기에게 직접 딸린 병사 또는 자기의 수족과 같이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수하친병(手下親兵),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뜀을 일컫는 말을 수무족도(手舞足蹈),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손을 묶인 듯이 어찌 할 방책이 없어 꼼짝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뻔히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꼼짝 못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속수무책(束手無策),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을 양수집병(兩手執餠),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녹사수수(鹿死誰手), 쉽게 승부를 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타수가결(唾手可決) 등에 쓰인다.
▶️ 傍(곁 방)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곁, 옆의 뜻을 갖는 旁(방)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傍(방)은 사람의 양편, 곁의 뜻으로 ①곁, 옆 ②가까이 ③방(한자 구성에서 오른쪽에 붙어있는 부수) ④흐릿한 모양 ⑤성대(盛大)한 모양 ⑥분주(奔走)하게 응대(應待)하는 모양 ⑦방황(彷徨)하다 ⑧엇갈리다 ⑨거스르다 ⑩기대다 ⑪곁에서 떨어지지 않다, 바싹 달라붙다 ⑫다가서다 ⑬넓다 ⑭모시다 ⑮부득이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일의 진상을 밝혀 주는 간접적인 증거를 방증(傍證), 직접 관계하지 아니하고 곁에서 보고만 있음을 방관(傍觀), 글 가운데에서 보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해 낱말이나 문장의 옆이나 위 또는 아래에 찍는 점을 방점(傍點), 곁에서 도와 줌을 방조(傍助), 청중들에게는 들리나 무대 위에 있는 상대방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으로 하고 혼자서 하는 말을 방백(傍白),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이 회의나 연설이나 공판 등을 가서 들음을 방청(傍聽),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을 방계(傍系), 도장의 옆면에 새긴 글자나 글자를 새김을 방각(傍刻), 본문 곁에 적음을 방서(傍書), 건넌방으로 안방에서 대청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방을 방실(傍室), 곁의 사람을 방인(傍人), 같은 주인 밑에서 일하는 동료 또는 같은 근무처에서 일하는 사람을 방배(傍輩), 측근에 있는 신하를 방신(傍臣), 어떤 일을 계속하여 열심히 하지 아니하고 틈나는 대로 함을 방치(傍治), 좁은 옆길로 정도가 아닌 부정한 방법을 이르는 말을 방혜(傍蹊), 길가나 길옆을 도방(道傍), 길의 옆을 노방(路傍), 가까운 곁으로 멀지 않은 바로 옆을 측방(側傍), 곁에 있음을 재방(在傍), 아주 가까운 곳을 근방(近傍), 양쪽 곁을 양방(兩傍),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방약무인(傍若無人), 좁고 꼬불꼬불한 옆길이라는 뜻으로 옳지 못한 수단이나 방법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방혜곡경(傍蹊曲徑),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말함을 수수방관(袖手傍觀), 뒷짐을 지고 옆에서 바라본다는 뜻으로 마땅히 관여하여야 할 일에 손도 쓰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음공방관(陰拱傍觀),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방고리(道傍苦李), 죄 지은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뜻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과 함께 있다가 죄없이 벌을 받게 된다는 말을 악방봉뢰(惡傍逢雷) 등에 쓰인다.
▶️ 觀(볼 관)은 ❶형성문자로 覌(관), 観(관)은 통자(通字), 观(관)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볼 견(見;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雚(관)으로 이루어졌다. 자세히 본다는(見) 뜻이 합(合)하여 보다를 뜻한다. 늘어 놓아 보이다, 자랑스럽게 남에게 보이다, 잘 본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觀자는 ‘보다’나 ‘보이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觀자는 雚(황새 관)자와 見(볼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雚자는 隹(새 추)자 위에 큰 눈과 눈썹을 그린 것으로 ‘황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雚자는 큰 눈과 눈썹이 도드라지는 황새를 잘 표현한 글자이다. 이렇게 황새를 그린 雚자에 見자를 결합한 觀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황새처럼 넓게 ‘보다’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觀자에는 ‘용모’나 ‘모양’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황새의 자태가 의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觀(관)은 (1)한자어로 된 어떤 명사 아래에 붙어 체계화된 견해를 뜻하는 말 (2)관괘(觀卦) (3)도교(道敎)의 사원(寺院) 등의 뜻으로 ①보다 ②보이게 하다 ③보게 하다 ④나타내다 ⑤점치다 ⑥모양 ⑦용모(容貌) ⑧생각 ⑨누각(樓閣;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⑩황새 ⑪괘(卦)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시(視), 볼 감(監), 바라볼 조(眺),보일 시(示), 볼 견(見), 볼 람/남(覽), 볼 열(閱), 나타날 현(顯)이다. 용례로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명승이나 고적과 풍속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관광(觀光), 자연 현상의 추이를 관측(觀測), 사물을 잘 살펴 봄을 관찰(觀察),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보거나 생각하는 각도를 관점(觀點),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 앉히고 깊이 생각하는 일을 관념(觀念), 영화나 연극이나 무용 등의 무대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을 관객(觀客), 연극이나 영화 따위를 구경함을 관람(觀覽), 사물을 꿰뚫어 봄을 관철(觀徹),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거나 음미함을 관조(觀照), 마음의 본성을 살핌을 관심(觀心), 구경하는 무리를 관중(觀衆), 사람의 상을 보고 재수나 운명을 판단하는 일을 관상(觀相),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말을 관과지인(觀過知仁),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얼굴빛을 자세히 살펴봄을 관형찰색(觀形察色), 풍속(風俗)을 자세히 살펴 봄을 관풍찰속(觀風察俗)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