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왕 20년에 진나라 소왕(昭王)이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격파하고, 곧 바로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였다.
조나라에서는 곧 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동생 평원군(平原君)은 위나라 신릉군의 누이를 아내로 두고 있었다.
따라서 조나라와 위나라는 사돈 관계인 셈이었다.
위나라 안희왕은 곧 장군 진비(晋鄙)에게 10만의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구원케 하였다.
한편 이런 사실을 안 진나라 소왕은 즉시 위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이제 조나라의 항복은 시간문제요. 만일 위나라가 조나라에 가담한다면,
우리 진나라 군대는 조나라를 공략한 즉시 위나라에 보복을 할 것이오.”
안희왕은 겁을 먹었다. 그래서 즉시 장군 진비에게 전령을 보내어 위나라 군대를 국경인
업성(鄴城)에 머물게 하고 조나라 한단이 어떻게 될지 관망만 하라고 명하였다.
조나라의 평원군은 다급하였다. 그래서 계속 처남인 신릉군에게 사자를 보내어
위나라 구원군으로 하여금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해달라고 독촉하였다.
신릉군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안희왕에게 가서 국경에 머물러 있는 위나라 구원군의 출병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의 간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가야겠다.”
신릉군은 식객들에게 호소하여 전차 백여 대를 준비해 진나라 군대를 토벌하러 가기로 결심하였다.
이때 이문(夷門)의 문지기를 하는 후영이 신릉군을 찾아와 말하였다.
“분투를 빕니다. 이 늙은이는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신릉군은 몇 리쯤 가면서 생각하였다.
후영을 현인이라 생각하여 평소 존경하였는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분투를 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서 죽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되돌아온 신릉군은 후영을 찾아갔다.
“다시 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리 다급하기로 독단으로 식객들을 끌고 가서 진나라 대군과 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비유하건데 그것은 고깃덩어리를 굶주린 범에게 던져주는 것과 같아서 아무런 공도 세울 수 없습니다.
계책이 필요 합니다.”
“그 계책이 뭐요?”
신릉군은 두 번 절한 뒤 후영에게 물었다.
“제가 들으니 지금 10만 대군을 이끌고 국경에 가 있는 진비 장군의 병부(兵符)가 대왕의 침실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여희(如姬)가 대왕의 총애를 받아 침실을 출입한다 들었습니다.
여희의 힘이라면 그 병부를 훔쳐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여희의 아버지 원수를 갚아준 분이니,
직접 부탁을 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병부를 가지고 진비장군에게 가서 보여주면 공자님께서 군대의 지휘권을 인계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다급한 신릉군은 일단 후영의 말대로 여희에게 부탁하여 안희왕의 침실에서 병부를 훔쳐내는 데 성공하였다.
신릉군이 훔친 병부를 가지고 국경으로 출발하려 하자, 후영이 다시 찾아와 말하였다.
“진비 장군은 공자님께서 가지고 간 병부가 자신의 것과 꼭 맞다 하더라도 의심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저의 친구 주해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는 개나 돼지를 때려잡는 백정으로 그의 힘을 따를 자가 없습니다.
진비가 만약 공자님께 군사 통솔권을 이양하지 않을 경우 주해를 시켜 쳐죽이도록 하십시오.”
“진비는 용맹스러운 장군인데 꼭 그를 죽여야만 한단 말이오?”
신릉군은 진비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될 수밖에 없질 않습니까?”
신릉군은 후영의 말대로 주해를 찾아갔다.
그 전에도 신릉군은 후영의 소개로 주해를 몇 번 찾아가 집으로 초청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해가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저같이 신분이 낮은 백정을 몇 번씩 찾아와 주셨는데, 이번에는 그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전에 집으로 초청해 주셨을 때 거절 했던 것은,
저 나름대로 그런 하찮은 예의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공자님께서 위난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이제 몸을 바쳐 그 은혜에 보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주해는 만사를 걷어치우고 신릉군을 따라나섰다.
신릉군은 곧 병부를 훔쳐가지고 위나라 국경인 업성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진비에게 왕명이라 속인 후 병부를 내밀어 군사 지휘권을 인도하라고 요구하였다.
“지금 공자께서는 호위군도 거느리지 않고 와서 군사 지휘권을 달라고 하십니다.
병부는 틀림이 없으나 정말 왕명인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때 신릉군 옆에 있던 주해는 40근짜리 철봉으로 진비를 내리쳐 죽였다.
이렇게 하여 진비의 군사를 장악한 신릉군은 전군에 포고령을 내렸다.
“군사들 중에서 부자가 함께 종군하고 있는 자는 아버지의 귀국을 허락하고,
형제가 종군하고 있으면 형의 귀국을 허락한다.
그리고 외아들인데 종군하고 있는 자는 돌아가서 부모님을 공양토록 하라!”
군사들은 신릉군의 이 같은 배려에 모두들 머리 숙여 고마움의 표시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귀국을 하게 된 군사를 빼고 나자 8만의 병력이 남았다.
신릉군은 8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향해 진군하였다.
한단을 공격하던 진나라 군대는 위나라 군대가 들이닥치자 포위망을 풀고 철수하였다.
조나라 왕과 평원군은 신릉군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현자라 불리어 온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신릉군을 능가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편 위나라 안희왕은 신릉군이 병부를 훔치고, 왕명을 가장하고,
장군 진비를 죽인 사실을 보고받고 크게 분노하였다.
신릉군도 각오하고 있던 바였으므로, 일단 위나라 군대를 아래 장수에게 맡겨 귀국시킨 후
그는 식객들과 함께 조나라에 남았다.
-《인물로 읽는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