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장]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설교]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편지입니다. 기원후 66년경 바울이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 교회는 큰 어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일을 네가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당시 아시아 지역에 있던 많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핍박하기 시작했으며, 복음을 믿지 않는 거짓 형제들이 교회로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당시 수많은 교인들은 그들에게 고난이 닥쳐오자 깊은 탄식과 함께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는 복음을 믿는데, 나에게 고난이 닥쳐오나!”라고 탄식하는 가운데 많은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버리고,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성도들은 복음을 믿는 것과 고난을 당하는 일을 함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믿던 복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이제 목회자 디모데에게 편지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의탁한 것,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 곧 복음을 지키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2절 말씀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는 일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교회가 범하는 악행들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비록 이런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 주님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고난은 그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 가운데 결단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은 세상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더욱더 담대하게 만듭니다. 왜요? 그것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은혜가, 곧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제 이 세상 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의 복락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이러한 복음을 믿는 자들이 어찌 세상 가운데서 당하는 고난당한다는 이유만으로 복음을 버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복음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당부합니다. 12절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믿는 분을 자신이 안다고 고백합니다. 이때 바울이 믿는 분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바로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이야말로 사도 바울이 믿는 분이요, 또한 바울에게 복음을 위탁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오해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복음을 전할 사명을 그분의 종들에게 위탁하셨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위탁 받은 자들은 결코 스스로의 힘/자기의 힘으로 이 일을 감당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복음을 사람에게 맡기시고는 가만히 뒷짐 지고 구경만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탁 받은 자들로 앞으로도 계속 능히 이 사역을 감당토록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주관하십니다.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바울이 의탁한 것, 곧 복음을 능히 지키신다고 말씀합니다. 간혹 사람들은 복음을 지키고,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단적으로 이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말하자면 복음을 위탁 받은 자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도구일 뿐, 복음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지키시고 보존하시는 분은 순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히 구원하실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교회를 능히 복음으로써 지키시고 보존하실 교회의 통치자라는 사실 역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따금 교회를 세워가는 일이 대개 인공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가령 교회의 성도들이 뭔가 활력을 잃어버린 것만 같고, 교회의 모임들이 뭔가 생기를 잃어버린 것 같은 때에, 사람들은 대개 인공적인 방식을 동원하여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이러한 인공적인 방식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전히 복음으로 말미암아 세워 가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며 묵상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본문 14절에서 바울이 말씀하듯이, 교회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또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을 세워가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바르게 인정하며, 우리 교회를 향하신, 또한 우리 각자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오늘 아침, 계속적으로 우리 교회가 ‘복음에 대한 담력’과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결코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십시오. 더불어서 우리 교회가 계속적으로 복음의 능력을 맛보며,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인해 우리 각 성도님들의 삶이 온전히 세워질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이러한 기도로서, 오늘 아침 우리 모두의 신앙과 삶이 다시금 복음 아래서 온전히 조명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