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용순 | 날짜 : 11-08-10 10:26 조회 : 1619 |
| | | 2, 울란우데
‘울란우데’, 러시아 자치주 ’브리얏트’공화국의 수도, 인구35만의 전원도시로 원주민인 브리얏트족과 서쪽에서 이주해온 러시아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부터 바이칼 동쪽 삼림지대에 살았던 브리얏트족은 징기스칸도, 제정러시아도 쉽게 정복하지 못하였던 거칠고 용맹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300여 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말도 잊고 러시아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16세기 러시아 황제, ‘짜르’는 용맹한 중앙아세아의 ‘코샥크족’을 앞세워 모피를 찾아 동진(東進)하면서 닿는 곳마다 원주민을 제압하고 러시아에 복속 시켰다. 이곳도 당시 ‘우데’강 하류에 세우진 코샥크 요새에서 유래되었다한다. 그들의 동진은 대륙의 동쪽 끝, 오호츠끄 해안에 이른다. 그 후 덴마크인 "베링"을 고용, 탐험대를 조직하여 베링해를 건너가 알라스카까지 러시아의 영토로 만들었다.
우리를 초청한, 브리얏트 국립대학 교수 자르갈을 만났다. 그의 안내를 받은, 일급호텔은 침대 스프링이 등을 찌른다. 더운 물은 나오지 않고, 물이 얼음같이 차 머리를 감은 후 한참동안 띵하다. 근처, ‘레닌‘광장에는 러시아에서 제일 큰, ’레닌’의 검은 흉상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주위에 대통령궁, 정부, 의회 등, 큰 건물들이 광장을 감싸고 있었다. 도시는 숲에 안겨있고 건물들 대부분 가로수와 키 재기를 한다. 따갑지 않은 햇살에 거리는 깨끗하다. 휴가철이라 도시가 텅 비어 행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경제도 여름별장, ‘다차’로 떠나는 행렬을 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저녁식사를 한, 알바니아식당의 으스름한 주차장에서 벌어진 남녀의 농밀한 라이브 쑈에 눈을 잃었다. 여름은 시베리아 사람들을 격정(激情)으로 이끄는 모양이다. 밤거리는 반팔 셔츠만으로는 쌀쌀하다.
레닌광장 한쪽을 환하게 밝힌 야외카페에 러시아인, 브레얏트인들이 어울려 맥주잔을 부딪친다. 자르갈이 우리부부가 한국인임을 소개하자, 그들은 친절하게 다가오며 맥주를 권한다. 브레얏트족의 생김새는 우리와 조금도 차이가 없어, 우리를 소개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어려운 현실의 그늘은 없었으며, 시베리아의 짧은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울란우데에는 3명의 교민과 재미교포 한명이 있다했다. 교민들은 한국식품의 수입판매, 맥주 집, 목재수출 등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재미교포는 백화점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 상품의 대부분은 중국산이며, 한국과 독일 제품은 가격이 월등하다. 이곳에는 마피아가 없다고 하였으나, 보석가계 앞에는 깍두기 머리의 경비원 두 사람이 얼음 같은 표정으로 조각처럼 서 있다. 유일한, ‘고려식당’의 고려인과 어렵게 소통 할 수 있었다. 그는 얼마전 우즈백스탄에서 온, 한인 3세라고 했다. 그가 차려낸 김치와 미역국은 국적불명 수준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 연해주에 살다, 우즈백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다고 한다. 스타린은 연해주 동포들이 일제(日帝)와 내통한다며, 20여만 명을 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 카자크스탄과 우즈백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가는 도중과 도착 후, 황량한 벌판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여 8만 여명이 죽었다. 그 이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리를 잡았지만, 소련이 해체되면서 다시 수난을 겪어야 했다.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의 민족주의가 살아나면서 이주민인 고려인들의 설자리가 없어져, 옛터전인 연해주로 되돌아오고 있다.
민속박물관을 찾아, 몇몇 전시 동을 거쳤다. 대부분 제정러시아 시대의 귀족들과 평민들의 가구, 생활용품과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전시 동에서는 충격이었다. ‘오보’와, 나무 조각은 성황당과 천하대장군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보던 농사용구와 생활용품들이 조금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다. 물레방아, 디딜방아, 키, 서리, 쟁기, 싸리 통발, 소쿠리, 짚 바구니 등등.....우리 민속박물관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다만 우리 농촌에서는 볼 수 없는 유제품(乳製品)을 가공하는 기구들이 있다. 유물들은 본래 우리 조상들의 터전이 이곳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안내도판에도 약 만년 이전,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남하한 방향 중, 한반도 쪽으로도 그려져 있다. 바이칼 동쪽에서 순록을 기르며 살아온 코리족 등 유목민들이 순록의 먹이를 따라 만주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목축이 농업과 결합하여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의 나라가 건국되었고, 한반도에 이르러서는 농업으로 전환되었다. ‘조선’이나 ‘고려’는 순록을 뜻하는 ‘코리’나 ‘고올리’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유물뿐 아니라 샤머니즘, 씨름 등의 풍습, ‘나무꾼과 선녀’ 같은 설화도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가 그 뜻을 모르는 ‘아리랑’과 ‘쓰리랑’은 시베리아 남부 에벤키족 말에, 아리랑은 ‘맞이하다’, 쓰리랑은 ‘알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시베리아의 장례문화에서 ‘새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이겨 낸다’는 의미로 추정된다한다. 한국인의 유전자형 70%가 전형적인 북방 몽고로이드 형이고 30%는 남방계다. 남방계는 쌀 문화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종족별 DNA 분석 결과 바이칼 주변의 야쿠트인과 부리얏트인, 아메리카 인디언, 그리고 한국인의 DNA가 일치한다고도 한다.
호텔에서 민속공연이 있었다. 공연장에는 대부분 서양인 관광객들이다. 민족의상을 입은 남녀 출연자 십여 명이 전통음악과 춤을 공연한다. 그들의 의상과 모자는 몽골과 같아 보였다. 몽골도 지역에 따라 여러 민족이 있으며 그들의 복장 또한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는 구별하기 힘들다. 만주족 의복, ‘치파오’는 품이 좁아 몸매를 들여 내는데 몽골의복은 재료와 모양은 ‘치파오’와 비슷하나, 추위를 견딜 수 있게 안감으로 양털을 넣어 품이 넉넉하다. 특히 말을 타고 달릴 때의 충격으로부터 장기(臟器)를 보호하기 위하여 넓은 띠를 바깥 허리에 동여 감는다. 몽골의 대표적 악기 ‘모린호르(馬頭琴)’, 가야금 비슷한 야탁, 엑켈, 야망호르, 후치르, 모양이 우리와 비슷한 악기들의 연주와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울림과 여운이 길고 애절하다. 샤마니즘과 관계있는 듯, 영혼을 울리는 신비한 분위기를 만든다. 몽골에는 우리의 창(唱)처럼, ‘흐미’라는 유명한 전통노래가 있다.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며, 한사람이 청아한 고음과 낮은 음, 두음을 동시에 내는, 가축들에 관한 독특한 노래이다. 춤은 빠르고 격렬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양, 달린 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작, 기마와 사냥 등, 쉽게 알 수 있는 단순 동작들이다.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며 무대 앞으로 관광객을 부른다. 공연 후, 한 출연자와 자리를 같이 하였다. 그는 춤의 발동작이 빠른 이유를 이곳의 추위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발이 시려 동동 구르며 빠르게 한 발씩 바꾸어 딛는 동작들이 춤이 되었다했다. 인간은 어떤 자연환경에서도 적응하여, 익숙하게 살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
| 강승택 | 11-08-11 01:19 | | 김선생님의 자유분방했던 옛날 생활을 생각하면 요즘의 전원생활이 너무도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선생님의 소회는 어떠하신지 궁금하군요. 마치 거친 세파를 지나 이제 비로소 잔잔한 호수를 만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 |
| | 김용순 | 11-08-11 11:22 | | 강선생님, 선생님 말씀처럼 지난 40년은 작은 성공과 큰 좌절의 연속이였습니다. 이제부터는 편안하게 지내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또 다른 꿈을 이루어야지요. 이제는 돈하고 관계없는 여유로운 꿈입니다. 저의 작업실에는 몇 달씩 걸리는 일거리를 잔뜩 준비하여 놓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가 전화라도 한번 드리겠습니다. | |
| | 임병문 | 11-08-11 09:45 | | 김선생님을 좇아 북경을 출발해 울란바트로에, 그리고 다시 숨가쁘게 달려 낯선 땅 울란바데에 닿았군요. 낯선 곳에서 보는 물레방아와 서리와 쟁기와 통발들, 문득 황량한 벌판에서 느껴지는 내 조선인의 존재감, 그것은 절로 문학이고 가슴메이는 감회가 아니겠습니까. 그 소중한 감정을 얻으셨으니 참으로 값진 여정이었습니다. 여유로운 듯 무디지 않은 선생님의 감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잘쓰셨습니다. | |
| | 김용순 | 11-08-11 11:35 | | 임선생님,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잘 갔다 온 것 같아요. 사실은 사업때문에 갔다왔는데, 그 부분은 빼었지요. 열차여행이 참 재미있습니다. 북경에서 국제열차가 3개 노선이 있습니다. 북경--모스코바, 북경-- 베트남 하노이, 북경--평양, 북경 -평양은 겁이나서 못가고, 사실, 가려면 갈 수도 있습니다. 가짜 중국 주민등록증만 만들면 되거든요. 그리고 단동에서 택시로 당일 신의주 관광하고 올 수도 있는데, 혹시 걸리면 아오지탄광 가는거지요. 북경에서 모스코바까지는 못 가봤고, 북경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는 가 보았습니다. '남방기행'이라는 기행문이 있는데, 언젠가 올려 보겠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언제 한번 뵈어야 할터인데요. | |
| | 이언주 | 11-08-12 00:54 | | 바이칼,이라고 쓰고 바다라고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운남 속 티벳에서 돌아오니 선생님이 바이칼로 유혹하시네요. 4000m에서 고산증으로 고생하다 해발 100m도 안되는 광저우로 돌아오니 아직도 머리가 멍합니다. 낯선 곳을 떠도는 동안 언제나 경계인의 슬픔 같은 것을 안고 살기도 하지만 중심에서 떠나온만큼 더 멀리 또 떠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 | 김용순 | 11-08-12 20:57 | | 이언주선생님, 반갑습니다. 운남 서북부에는 티벳과 경계이지요. 운남성 리강에서 그 쪽으로 차마고도가 나있지요. 사천성 구채구, 황룡도 해발이 높아, 가까운 쑹반에서 머리가 아파 잠을 자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길이 험하여 벌벌 떨었던 기억도요. 아마 그쪽도 길도 험하였을 것 같네요. 언제나 낮선곳은 우리를 설레이게 합니다. 슬픔은 귀국하여, 마음대로 다니지 못 할 때 생깁니다. 지금이 행복할 때 이니까, 틈나는대로 여행하세요. 다음에 건강하고 명랑한 모습 뵙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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