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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E.E. 샤츠슈나이더님께서 진행하신 "내 중국에 문혁은 필요없다!"의 본편이 끝난 후의 이야기를 책 형식으로 쓴 외전입니다. 다른 분들이 원하신다면 본인들의 등장인물을 써드릴 수도 있어요. ㅎㅎ
* 표시는 각주입니다.
1. 샤오나이, 그는 누구인가?
중국은 지난 2세기 동안 우리는 제국주의의 총칼에 빼앗기고, 억눌리고, 쫒겨나고, 상처입고, 짓밟히는 굴욕의 세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내었습니다. 인민들의 일치단결한 의지, 당과 국가의 굳건한 지도력 덕분에 우리는 신중국을 건설하여 중화문명을 지켜내고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고통받은 이들을 해방해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라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우리는 이러한 자리에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초강대국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이유는 우리 혼자만의 힘이 아닌, 라이벌들의 교만과 중국을 믿고 따라준 우방들의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처럼 자만감에 빠져 다른 이들을 억압하고, 무시하고, 빼앗으려 들다면. 우리는 더 이상 대국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겸손하고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아무리 강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 샤오나이 당시 국가주석, 2019년 10월 1일 건국절 행사에서
현대 중국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8대 재정부장, 2대 CITIC 회장, 2대 국가개발평의회 의장, 3대 국무원 총리, 7대 중국 공산당 총서기, 7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을 역임한 샤오나이 전 주석이다. 그런데 그가 정확히 어떤 자이기에 은퇴한 후인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까?
샤오 가문은 본래 충칭의 상인이었던 샤오줘가 세운 집안으로 중견 상가를 경영하며 살아가던 집안이었다. 보통의 상인 가문이었던 샤오 가문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된 이유는 집안의 32대 손인 샤오즈푸가 중국 공산당에 합류하며 충칭의 평범한 상인 집안이었던 샤오 가문은 순식간에 중앙 정계의 중심부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샤오즈푸는 마오쩌둥의 측근으로 정강산 투쟁 당시부터 공산당의 자금 수급과 관리를 도맏아 한 사람으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후 상무부장에 임명되었고. 당시 정무원 부총리 겸 재정경제위원회 주임 및 중공업부장인 천윈, 당시 재정부장인 보이보, 인민은행장인 난한쳰과 함께 중화민국 시기에 중국 대륙을 괴롭힌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성공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 전문가로 꼽히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인해 중국 대륙이 피폐해지자, 그는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류샤오치에 의해 재정부장에 임명되었고. 류샤오치, 덩샤오핑을 도와 중국 경제의 회복을 이뤄내며 공산당 내 입지를 점점 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이 닥치며 그의 정치적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마오쩌둥의 측근이라는 점 덕분에 신체적 위협은 없었으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고 칩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체적 위협이 없었다는 것도 본인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친척들이 홍워병의 공격을 받아 숙청당하는 것 까지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샤오 가문은 중국의 정계에서 점점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샤오나이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정세는 180도 바뀌게 된다.
샤오나이는 본래 헝가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인재로, 헝가리에서 경제학 교수를 하며 살아가던 중 1975년 저우언라이의 부름을 받고 중국으로 귀환했다. 그는 문화대혁명을 끝내는데 공헌해 문혁의 광기를 멈추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본업인 경제 부문에서도 괄목할 성과들을 많이 남기었는데. 화궈펑 주석의 측근이었던 위안차이나와 함게 농업 개혁을 이끌어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피폐해진 중국 농촌을 재건하는데 성공했으며, 외교부 국제경제사 부주임을 역임해 포괄적경제협력기구를 출범시켰으며. 아프리카개발원조기구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해 아프리카의 번영을 이끌어냈다. 샤오나이는 그 후로 CITIC 부회장 및 재정부장, 국가발전개혁평의회 의장, 인민은행 금융위원회 주임 등을 역임하며 중국의 개혁개방을 총지휘해 현재의 초강대국 중국을 만든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1987년, 국방부장 후종밍의 군사정변으로 인한 제2차 중국 내전이 발발하며 그 또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는것만 같았다. 허나 후종밍은 실패했고, 그는 승리했다. 그는 내전 당시 혼란스러운 정통정부의 교통정리를 하여 질서를 회복하였고, 후방의 보급을 총지휘하고, 후종밍군의 돈줄을 차단하고, 외국의 지지를 받아내어 내전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샤오나이는 1987년 제2차 중국 내전이 끝난 후 국무원 총리에 취임하였다. 그는 총리로 재직할 당시 내전으로 파괴된 화북의 재건사업, 그리고 유라시아 경제협력체의 창설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업적 덕분에 천윈 과도정부가 끝난 후 선출된 주룽지 정부에서도 총리직을 유지했으며, 위안차이나 정부에선 당 총서기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국가주석의 자리에 오르며 중국의 1인자가 되었다. 샤오나이 정부는 주룽지 정부에서부터 시작한 자유화의 흐름을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해나가 중국의 민주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는 다당제 허용, 표현-언론-집회-결사의 완전한 자유 보장 등 정치적 자유화의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경제적 자유화에 중점을 두어 완전한 자유시장을 만드는데 총력을 다했다. 적절한 규제 완화 및 감세, 기업에 대한 지원은 중국 경제가 더욱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 덕분에 그가 퇴임할때인 2020년에는 완전한 자유시장이 만들어져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2위에 꼽히는 기엄을 보이기도 하였다.*
*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는 1991년 이후 쭉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주룽지-위안차이나-샤오나이로 이어지는 30년은 중국사에서 요순시대, 강건성대를 능가하는 최고의 전성기로 꼽힌다. 특히 2022년부터 매년 8% 성장을 기록하던 중국 경제가 점점 저성장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이 시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 3명의 평가는 더욱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샤오나이의 영향력은 정계가 아니라 재계에서 더욱 강하다. 그 이유는 다음 단락에서 설명하겠다.
2. 재계의 절대 권력자 - 현대의 4대가족
성공의 비결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 분야에서 제1인자가 되려고 하는 데 있다.
-앤드류 카네기
2010년 그가 국가주석의 자리에 오르면서 역임하고 있던 재정부장, CITIC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30년이 지난 2040년 현재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재계에서 샤오나이의 이름이 들리지 않는 곳이 없고, 샤오 가문의 사람이 아닌 경제인이 없을 정도로 재계에서의 샤오나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것을 보고 "나이 주석의 부친이 재정부장, 상무부장이었으니 아버지의 인맥 덕분에 재계를 장악할 수 있던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전혀 틀린말이다.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부친인 샤오즈푸 역시 반강제로 은퇴해야했고, 그의 사람들 역시 문혁의 광풍 속에서 거의 전부 하방, 퇴직, 숙청당했는데 재정부와 상무부에 인맥이 남아 있겠는가? 현재 그의 영향력이 이렇게 막강하게 올라설 수 있던 까닭은 본인의 노력 때문이다.
샤오나이의 영향력은 재계에 있는 자신의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이들은 전부 샤오나이에게서 선택, 배움을 받은 이들이다. 그 전부터 자신이 찾아낸 인재나 자신이 키운 관료들을 재정부나 인민은행, CITIC, 상무부, 국가발전개혁평의회 등에 추천하여 본인의 파별에 속한 이들을 앉히기도 하였지만, 그건 유능한 이를 알맞은 자리에 보낸다는 의미로 한 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한 행동이라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1987년 제2차 중국 내전을 겪은 후, 그의 전략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1988년 이후 샤오나이는 자신의 기반이었던 재계를 완벽하게 장악하는걸 우선시 하여 재정부, CITIC를 완전히 장악하기 시작했다.(이 시기 경제부서들에서 대대적인 인사이동의 정황이 포착된 점을 보아 경제부서들에서 엄청난 "물갈이"가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두곳을 모두 장악한 후에는 인민은행 및 상무부, 국가발전개혁평의회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 3곳은 다른 곳과 달리 자신의 사람을 부서장에 임명시킨 뒤 그들을 이용해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단행했다고 한다. 다만 국가개발발전평의회는 이러한 움직임이 신기하게도 1993년 이후에나 포착되었다.) 세무총국 역시 재정부에서 독립한 기관인지라 샤오나이의 사람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자신이 뽑아 키운 루진녠의 화웨이 그룹과 링이저우의 완다 그룹을 필두로 해 민간 재계에까지 영향력을 확장해갔다, 대화와 은혜라는 방법을 통해.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자신의 제자로 키우면서. 그는 점점 재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여들었고. 21세기에 들어서면 샤오나이와 친분이 없고, 그를 따르지 않는 재벌 총수들이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그가 적을 처리하는 방식은 상대의 생명 빼고 모든 것을 없애는 방식이었다. 그에게 적으로 찍히면 기업간 거래도, 은행 대출도 못받아 돈줄이 말라붙어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다, 승진도 못하고, 온갖 네거티브와 마타도어가 난무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하며, 온갖 죄목을 들고 공안들이 처들어와 싹 다 해집고 다니며, 직장에서 그런 사람은 원래부터 없던 사람 취급을 당하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 방식에 걸리면 탈출하는 방법은 단 두가지 뿐이었다.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지거나, 아님 자존심을 다 버리고 그의 앞에서 싹싹 빌든가.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재정부, 인민은행, 상무부, CITIC, 세무총국, 국가발전개혁평의회에는 샤오나이의 파별이 아닌 사람이 없고, 샤오 가문을 적으로 돌리면 재계에서 전혀 성공할수 없을 정도로. 샤오 가문은 재계에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재정부, 인민은행, 상무부, CITIC, 세무총국, 국가발전개혁평의회에 인사이동이 있을 때 각 부처의 장들이 베이징 근교에 위치한 샤오나이의 자택을 방문해 인사이동에 대한 명단과 정보를 보여주고 그가 손본 명단으로 인사이동이 단행된다는. "현대판 황표정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또한 그는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펀드, 채권 등 여러 부문에 투자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고*, 이로 얻은 자금으로 설립한 장학재단을 통해 미래의 경영, 경제인들이 될 이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길러내어 재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샤오나이의 아들인 샤오즈수와 딸인 샤오레이,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 역시 재계에서 거물로 활동하고 있다.
* 표면상으로 알려진 샤오 가문의 재산만 해도 2조 위안에 달한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재계를 장악한 샤오나이의 가문인 샤오가(肖家), 언론-문화계에서 1인자로 불리는 제자(말이 제자지 양아들과 다름없을 정도로 아낀다) 구웨이이의 가문 구가(顾家), 외교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의 의형재 화밍천의 가문 화가(花家), 며느리 천위안의 가문이며 교육계의 큰 손인 천가(陳家), 사위인 자오청즈의 가문이자 법조계의 사실상 1인자로 꼽히는 자오가(趙家)를 묶어 과거 중화민국 시절 정치, 경제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4대가족"에 비유한 "5대가족"이라 부를 정도이다.
이들 5대가족은 서로간의 끈끈한 유대를 기반으로 하여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 경제, 외교, 미디어(언론+문화), 교육, 법조 등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표면상으로 알려진 5대가족의 재산만 감안해도 중국 전체 부의 1.5%를 차지한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재산들을 포함한다면 비율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 5대가족의 재산이 정확히 어느정도인지 알 수가 없어 통계마다 제각각이지만, 최대한 적게 잡는 통계도 2.8%로 추산한다.
앞으로 중국의 재계에서 샤오 가문의 영향력이 약화되기란 쉽지 않아보이며, 만일 샤오나이가 21세기 내에 사망한다 하더라도 최소 22세기까지는 샤오 가문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ㅎㅎ... 왜 뇌절이라고 했는지 알것 같긴 하네요.
+ 저런 샤오나이를 잡을수 있을 유일한 사람 류메이란 주석 찬양해?
이제 아시겠죠?
+ 5대가족은 아무도 못 잡을걸요?
@카라멜 마끼아또 충분히 알았습니다 ㅎㅎ...
+ 정치판에 "절대" 란 말은 없죠 ㅋㅋ...
@카라멜 마끼아또 보안위원회 지하에서 위안차이나와 샤오나이의 약점 잡아놓은게 잠자고 있습니다.. ㅎㅎ.. 체포가 반려당하고 나서 마련해놓은..
다만 뭐 진짜로 4대가족처럼 타락하지 않는 한(...) 아마 영원히 안 나오지 않을까요?
@렌지파일 그런데 메이란이 은퇴하거나 사망해 보안위원회 위원장이 붕 뜬다면 5대가족이 자기들 사람을 끼워넣을게 140%이라 만일 위원장이 5대가족의 사람으로 임명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ㅎㅎㅎㅎ...
@카라멜 마끼아또 다른 사람들을 원수같이 여기는데 보안위원회가 넘어가지 않을 대비는 해 놓겠죠.. 그래서 댓글에도 사망하면 안전부로 도로 격하되게 플랜을..
근데 사실 중국의 미래를 보면 격하되든 안되든, 어떻게 되든 보안위원회랑 손 잡을(....) 가능성이 제일 높아보이네요; 아예 넘어가지 않는다면 몰래 손잡고 서로서로 자금 세탁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애초에 사실 싸울 필요가..?
@렌지파일 5대가족의 엄청난 자금력과 정치력, 영향력에 정면으로 맞닥드리면 모두 무너질겁니다. ㅋㅋ
+ 5대가족들도 보안위원회를 적으로 돌리기보단 협력하는 쪽으로 기울겁니다.
@카라멜 마끼아또 아니 이거 완전 실로비ㅋ 읍읍..
@렌지파일 둘이 손을 잡으면 5대가족은 보안위원회를 통해 정적들의 약점을 잡을 수 있는데다, 사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보안위원회는 5대가족의 막강한 자금력과 영향력으로 1984스러운 텔레스크린을 만들어낼 수 있겠죠. ㅋㅋㅋㅋㅋ
@카라멜 마끼아또 중국인민:이거 해피엔딩 맞습니까..?
@렌지파일 5대가족과 보안위원회에겐 해피엔딩일겁니다. ㅋㅋㅋㅋㅋㅋ
후임 보안위원장들 중 한 사람이 샤오나이처럼 첩보계를 꽉 쥐고 좌지우지한다면 그 위원장의 가문이 5대가문에 합류해 6대가족을 만들 수도 있겠고요. ㅎㅎㅎ
@렌지파일 ???: 해피엔딩이라고 한적 없습니다..!
5대가족들에겐 해피엔딩이긴 하겠는데...
중국 재벌들과 명가들은 미국 재벌들을 보고 혀를 차고 있겠군요.
“저 바보들 왜 일을 저렇게 어설프게 하지?”
미국 재벌들이 직접 반재벌 감정을 키우는걸 보고 아주 혀를 끌끌 찰겁니다.
정치인으로는 지고의 자리에도 올라보고 사업으로는 악랄하지만 성공했다..? 이거 중국판 이명ㅂ....
하지만 샤오나이는 잡혀가지 않고 막후 실세로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죠 ㅎㅎ.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는 1991년 이후 쭉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 각주 이제 봤는데 너무 당연하네요… ㅋㅋㅋㅋ 중소기업은 좀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 체제라면 걔네들은 죄다 카르텔 밑으로 들어갔을테니…
미국은 2040년 시점에서는 대공황 이전의 자유방임주의 시대보다 더한 상황이라고 감안한지라.
@카라멜 마끼아또 아예 기업연합이 통화 주조권까지 보유한 상황이니까 당연한거죠..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그런데 5대가족이라는 거대한 권력층이 생긴 중공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제가 생각한건 진지한 것도 있고 좀 병맛인 것도 있는데.)
외적, 내적으로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서로서로 끈끈한 연줄로 뭉쳐있는 5대가족이 해체될 일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