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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만수대표님의 카톡에서]
《플랜 75》
최근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플랜(plan) 75>는
하야카와 치에(早川千絵·45)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달 열린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에 해당하는
'카메라 도르 특별언급상'을 수상했습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원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라 아닌가."
근미래의 일본, 이런 끔찍한 주장을 하며 노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고령화가 불러온 사회 혼란 속에서 75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합니다. 죽음을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이를 '시행'해 주는 '플랜(PLAN)75'라는 이름의 제도입니다.
처음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일본 사회는 차츰 이를 받아들입니다. 75세 이상을 '후기 고령자'라고 부르는데, 감독은 이 단어가 주는 불편한 느낌에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인데 '네 인생은 곧 끝난다'는 식으로 '후기'란 말을 붙이는 게 기분이 나빴어요. 나라가 나이로 인간을 구분하는 것에도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영화에는 정확한 연도가 드러나지 않지만, 일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3년 후인 2025년을 떠올리게 됩니다. 2025년에는 일본 국민 5명 중 1명이 '후기고령자'가 될 것이란 예측입니다.
의료비·사회보장비 부담이 폭증하고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는 점점 악화, 노인으로 가득한 일본은 활기와 매력을 잃은 나라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깔려있습니다.
영화 속 '플랜75'는 '2025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입됩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공원에 나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유'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럽다"는 광고가 TV에서 흘러나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콜센터. 이 제도를 선택한 이들에게 나라가 위로금으로 주는 10만엔을 받아 마지막 온천 여행을 떠나는 여행 상품도 인기를 끕니다.
영화 후반에는 이런 뉴스 멘트가 나옵니다.
"정부는 '플랜75'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플랜65'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를 방치하면 다음 순번은 '당신'이 될 것이란 경고,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묻습니다.
"당신은, 살겠습니까(あなたは生きますか)?"
<이영희 중앙일보기자>
<연금개혁>
※요즘 일본에선 영화 ‘플랜 75’가 화제라고 한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작인데 설정이 섬뜩하다.
75세가 되면 건강한 사람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정부가 그 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담당 공무원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장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좋다’는 ‘공익 광고’도 한다.
제도화된 죽음으로 노인 부양 부담을 일거에 해소하려는 불온한 정책인 것이다.
10년 전에 나온 일본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더 극단적이다.
70세 사망법이 통과돼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2년부터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
연금제도 붕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에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런 입법은 국가적 수치다” “노후 걱정 안 해도 되니 좋다”는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연금을 포기하면 예외를 인정해준다는 소문에 포기각서를 들고 구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나온다.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리는 ‘우바스테야마’ 설화의 나라,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도달한 일본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력일까?
연금개혁 모범국인 일본은 올해 4월엔 연금 수령 개시 나이를 현행 60∼70세에서 60∼75세로 늘려 잡은 ‘75세 플랜’을 도입했다.
공교롭게도 노인 안락사법을 다룬 영화 제목과 같다.
75세부터 연금을 받을 경우 86세까지 살아야 손익분기점을 찍는다고 한다.
한국은 국민연금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방치하고 있다.
2055년이면 기금도 거덜 나니 그때부터는 일하는 세대가 월급의 최소 30%를 보험료로 떼어 줘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할까?
국민연금공단이 지난달 ‘경축 국민연금 수급자 600만 명 돌파!!’ 현수막을 내걸자
“이게 축하할 일이냐?” “완전 폰지 사기”라며 들끓은 게 젊은 민심이다.
‘미래세대의 반란’ ‘연금 지급을 끊는 연금 고려장’이 경고에서 끝날 분위기가 아니다.
윗세대보다 더 배우고도 못 버는 젊은 세대,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 폭탄을 떠넘기기보다 내 몫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만이 ‘그만큼 살았으면 그만 좀…’이라는 야만의 상상력을 이길 수 있다.
이제 살고싶어도 더 못 살날이 오고있구나
얼마 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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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모지(塗貌紙)를 아십니까?
황현 (黃玹 : 1855~ 1910)의 <매천야록
(梅泉野錄)>에 보면
흥선대원군이 천주교 도들을 처형할 때, 마을 장정들로 하여금
"마을 마당 한복판에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범인을 묶어 꼼짝을 못하게끔 한다.
그러고서 물에 적신 창호지를 범인의 얼굴에 붙인다.
한겹 두겹 붙여나가면 숨을 쉬기가 차츰 차츰 어려워진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죽어가게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 얼굴에 붙이는 종이를 '도모지(塗貌紙)'라 했습니다.
천주교도들은 아무리 도모지를 얼굴에 붙여도
한 사람도 배교(背敎)를 한다거나, 다른 천주교인 들이 어디에 있는지 입도 열지 않았다 합니다.
'아무리 해보아도 안 된다' 라는 뜻의' 도무지' 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인데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단어가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실제 삶에서 조금만 힘들어도 도무지 안 된다! 는
말을 쉽게 사용합니다.
도무지 라는 말이 순교를 각오한 결의에서 나온 말인것을 알고 나면
그 말을 함부로 사용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목숨을 걸고 해도
안되는 일’이라면 도무지가 맞지만,
그 외에 조금 힘든 일을
가지고 도무지라고 해서는 안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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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노력하는
사람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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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과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렸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4명 있는데, 한 명은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은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다.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지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 째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날씨가 쌀쌀하져 며칠동안 화분을
거실에 뒸다가 다시 마당에 내 놓았다.
그런데 생기있던 꽃들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걱정이되어 병이 들었나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자 차츰 꽃들이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렇다!
찬바람 분다고 꽃을 거실에 놓아 두었기 때문에
꽃들이 약해졌던 것이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때로는 시련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있는 위대한 사람들 대부분이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불행에 묶여 있기보다 극복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운명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다. 🌈✝️
2022. 8. 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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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세월 속에서
천년을 살것처럼 아등바등
앞만 보고 살아 왔는데
중년의 세월 속에 기껏해야
백년을 살지 못하는
삶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중년 이었는데...
세월은 나를 어느새 중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부질없는 탐욕으로 살아온
세월이 가슴을 텅 비우게 했고.
머리속만 어지럽게 살아온
시간들이 었습니다.
이제 남은 세월은
모든 것 다 훌훌 털어버리고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채우며
서로 천년지기 처럼 소중히 애끼며
살아가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기억속에 사는
삶이 아니고
추억속에 사는 삶을 가꾸며
살아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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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아무리 모질고 긴 겨울도 때가 되면 봄을 낳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그가 사랑했던 딸 곁으로 갔습니다.
그는 “절대로 병원에서는 안죽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안녕’을 고하는 것이 내 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이다” 라고 말하며 암과 함께 살다 마지막 책으로 <메멘토 모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는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어쩌지 아직도 글 쓸게 남았는데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죽어야지 글 쓰는 사람이니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죽음을 글로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땅의 사람들과 헤어지기 전 후대의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이 책에 담았을 것입니다.
이 책 2부에서 그는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이 죽음과 대면 했을 때, 가톨릭 신부님에게 질문한 2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습니다.
24가지 질문 중 맨 앞에 나오는 질문이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신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살아서 부와 명예를 누렸던 이병철 회장이 이 질문은 서두에 둔 것을 보면 그도 어느 인간과 똑같이 죽음 앞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갈증과 굶주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대답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믿음’ 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근원의 세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은 과학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믿게 만드는 믿음은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지성인 중의 한 분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하였지만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딸을 통해 나타난 표적을 보면서 믿음의 대상으로 예수님께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딸이 전 캘리포니아주 검사를 거쳐, 청소년 범죄 전문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손자가 자폐증에 걸렸고 딸이 암에 걸리고 시력이 상실되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비하게도 기도하면서 15년 동안 앓아 왔던 암에서 치유되고 손자의 자폐증이 낫는 기적과 시력이 회복되는 능력을 체험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실제 옆에서 경험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다.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과 어둠이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라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성으로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2007년 세례를 받고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며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시작으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지성과 영성의 만남>,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밤중에, 새벽 3-4시에 가장 아프다. 그때 나는 신의 존재를, 은총을 느낀다”며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과 대면한다.
동이 트고 고통도 멀어지면 하나님도 멀어진다.
조금만 행복해도 인간은 신을 잊는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물이 풍부할 때는 물의 존재를 망각하고, 공기가 어디에나 있을 때는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고 삽니다.
그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신의 은총을 느낀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은 행복하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살기 쉽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절박한 순간이며 인생을 겸허하게 만듭니다.
그는 <메멘토 모리>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지.
우리는 낭만적인 메멘토 모리, 술 먹고 인생을 논하는 메멘토 모리쯤으로 죽음을 생각했잖아요.
이모털(immortal, 죽지 않는)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지.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어. 그게 원죄야.
이게 모털(mortal,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거지.
생명이라는 것은 다 죽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메멘토 모리를 다시 깨닫게 된 겁니다.”
메멘토(memento)는 라틴어로 '기억하다, 생각하다'라는 의미이고, 모리(mori)는 ‘죽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말입니다.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네로 황제 시대 로마의 젊은 장군 마커스 비니키우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개선 행진할 때 월계관을 높이 든 노예가 그의 뒤에 서서 계속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너도 언젠가 죽으니 너무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두려워하면서 철저히 준비하면서 죽음 바이러스에 대하여는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듯이 인생도 언젠가는 끝이 옵니다.
혹독한 겨울이 봄을 낳는 것을 아무것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인생의 죽음도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봄이 오면 죽은 것같은 들풀이 새싹으로 살아나듯 인간은 죽음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삶이 끝나면 그 후 또 다른 영생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 가리라 (마25:46)"
이어령 교수께서 구세주로 믿었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아멘 ~♡
받은글입니다 😅
- 이건 전달할 뿐이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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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노년에 대한 글/
노인과 어른---
※노인이 많으면
사회가 병약해 지지만
어른이 많으면
윤택해 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과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은
나이를 날려버린 사람이지만,
어른은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해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머리만 커진 사람이고,
어른은
마음이 커진 사람입니다.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지만,
어른은
어린 사람에게도 배우려 합니다.
노인은
아직도 채우려 하지만,
어른은
비우고 나눠 줍니다.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 알지만,
어른은
이웃을 배려합니다.
노인은
나를 밟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지만,
어른은
나를 밟고 올라서라 합니다.
노인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만,
어른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겉모습이 늙어가는 것을 슬퍼하지만,
어른은
속사람이 충만해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고
어르신은, 존경 받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몸과 마음,
세월이 가니 자연히 늙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자신을 가꾸고 스스로
젊어지려고 노력하는사람입니다.
노인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에게 이해와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상대를 자기 기준에 맞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좋은 덕담을 해 주고,
긍정적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상대에게
간섭하고 잘난 체하며,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알고,
알아도 모른 체 겸손하며,
느긋하게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대가없이 받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에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주변에 좋은 친구를 두고,
활발한 모습을 가진 사람입니다
노인은 이제 배울 것이 없어
자기가 최고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그 물건들을
재활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노인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그 댓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황혼에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괴테는 노년에 관한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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