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교수님 부럽습니다.” 동료 교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가 웃으면서 불쑥하는 말이다. “내게 뭐 특별히 부러워할게 있나요?” 내가 의아해서 되묻자 그는 어떤 부부들이 모이는 모임에 갔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거기서 그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이 지금 다시 인생을 시작해도 지금 남자랑 다시 살 사람 손들어 보라 했는데 혼자 참석한 어떤 부인 한 사람만 손을 들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좀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어떤 때에도 느낄 수 없었던 아주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내 인생에 잘한 것이라고는 장가 잘든 것뿐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내 인생이 성공했다고 말해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큰 행복감에 잠겼다. 밖에 나가 사장이니 회장이니 거창한 직함을 달고 다니면서 어깨에 힘주다가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타박을 받는 남자는 얼마나 불쌍하고 초라한 인생인가! 오히려 밖에서는 별로 폼 나지 않아도 집에 들어오면 존중을 받고 크게 인정을 받는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결혼생활이야말로 행복과 성공의 기반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서 무너지면 다른 모든 명예와 자랑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요즈음 결혼이 매우 위태롭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에 인구 1천 명당 혼인건수를 말하는 조혼인율이 4.7건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한 세대 전(1996년) 9.4건과 비교할 때 완전히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동시에 작년의 조이혼율은 2.2건이라고 한다. 이는 인구 천명 당 4.7쌍이 결혼하고, 또 2.2쌍이 이혼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혼이 결혼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자의 평균초혼연령은 99년 29.1세에서 19년 33.4세로, 여자는 99년 26,3세에서 19년 30.6세로 3, 4년씩 늦어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결혼은 줄어들고 이혼은 늘어나고 결혼하는 나이는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혼율은 증가하고 만혼화 현상이 심화되는 통계적 현상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역시 통계청의 2018년 자료에 의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1.1%에 불과했고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람은 46.6%나 되었다고 한다.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미혼여성의 6%만 결혼은 반드시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배가 훨씬 넘는 14.3%는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 아닌 동거에 대한 관념도 56.4%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의 배경에는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를 둘러싼 혐오담론이 자리잡고 있다. ‘한남충’이니 ‘개저씨’니 ‘맘충’이니 하는 말들이 화살처럼 상대를 향하여 저격하고 있는데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이러한 혐오 문제가 개인에게서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이러한 혐오적 감정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33년 전 월요일에 처음 만나 그 주간의 금요일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전혀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이었다. 나중에 MBTI를 검사하니 나는 INTJ였고 아내는 ESFP였다. 결혼한 이래 늘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공동체 살림살이 때문에 돈에 관해서는 여유가 없었다. 며칠 전에는 문득 내가 세탁기 문도 열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게게 정말 미안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부부로 잘 살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부부되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 이 찬송이 자꾸만 입가에 머무른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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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는 지난 주 국민일보 칼럼 [바이블 시론]에 게재 되었던었던 글입니다. 내가 이 글을 아내와 아이들이 묶여있는 가족 단톡에 올렸더니 미국에 있는 우리 셋째 녀석이 카톡으로 시비를 걸어왔답니다. 그 대화를 여기에 올려볼까 합니다.
딸: 흠.. 아부지 그래도 세탁기 문도 열줄 모르는 건 좀 심하지 않나요? 그 부분에서는 “세탁기 문도 열줄 모르지만 난 결혼생활 잘한다. 다들 그래도 된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까봐 조금은 걱정되네용..?
나: 딸아. 그래도 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잘 살 수 있었다면 그런 것이 결혼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지. 네가 말하는 대로 하자면, 우리가 죄인임에도 구원을 받았다. 그러니 죄를 지어도 괜찮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딸: 그게 아빠의 입장이면 그걸 좀 더 명확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나: 세상의 모든 오해를 다 없앨 수는 없지.
딸: 그래도 오해를 없애려는 노력은 할 수 있잖아! 아빠는 여성 독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좀 속상해..
나: 나는 남자거든.
딸: 그러면 아빠.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해보면 어떨까? 그럼 더 잘 이해할 수 있잖아.
나: 그런 문화가 다 개선되고 나서야 결혼한다든지 행복할 수 있다면 죽어도 결혼하거나 행복해질 수는 없을 거야.
딸: 아빠가 지금 하는 말은 약간 밀양에 나오는 살인한 사람 같애. 나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으니까 괜찮다고 하는. 속상한 사람들에게 맑은 물 부어주는 과정이 없잖아. 엄마의 아빠와의 경험은 대다수 여성들의 경험을 대변하지 못해.
나: 엄마가 그렇게 손을 들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문화를 초월하는 영성적 차원에 있었기 때문이지. 그건 엄마에 대한 아빠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딸: 엄마에 대한 아빠의 어떤 마음을 말하는 거야..?
나: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 것이 절대 선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고 행복해 하는 건 엄마가 절대 선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거지. 영성적 차원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딸: 이런 말해서 아빠가 속상할 수도 있지만 이런 글은 엄마가 쓰는 게 더 설득력 있을꺼 같아. 아빠는 아빠가 말 한대로 남자잖아. 역사적으로 결혼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억압받는 대다수는 여자고. 아빠가 남자로서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쓴 글이 이미 상처받은 여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나는 걱정이 돼. 영성을 외치기보다 먼저 맑은 물을 부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속이 까맣게 상한 사람들한테 공감되기 어려운 이야기 같아.
나: 맑은 물이 부어지니까 다시 살 마음이 있지. 엄마는 공동체 식구들에게 늘 그렇게 말하고 있어. 젊은 주부들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지만...
딸: 엄마 말고 이 글을 읽는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공동체 식구들은 엄마 아빠가 누군지 context가 있어서 오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신문 사설을 보는 사람들은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르잖아. 아빠의 글은 세탁기 문도 열줄 모르는 남편이랑 잘 사는 아내도 있는데 그걸 못 참아서 이혼하는 여성들은 문제다 라는 식으로 문제의 초점을 여성에게 돌리는 느낌이야
나: 남자들도 결혼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예요. 남자들도 요즘 여성들의 사고방식과 태도 때문에 결혼하기를 꺼려하거든.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상 결혼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거지. 사람들은 진리를 듣기 싫어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잖니. 그 이유는 우리가 진리 앞에 설 때 누구나 자기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지. 사탄은 상대의 문제에 집착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게 하시는 거야. 여성은 여성으로서 자기 문제를 생각하고 남성은 남성으로서 자기문제를 생각해야 되요. 여자가 남자의 문제를 공격하고 남자가 여자의 문제를 공격하니까 혐오 담론만 무성하지
딸: 아빠. 근데 영성으로 이겨내라고 이야기하면서 사회 전반적 문제 해결에 대해선 engage하지 않는 게 맞아요? 아빠 혐오라는 건 문제의 결과잖아요. 그 뿌리에 대해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야?
나: 각자 자기문제부터 해결하면 사회문제는 저절로 줄어든다고 믿어.
딸: 혐오를 보고 문제라고 하는건 암 걸린 사람한테 너 머리가 빠지는게 문제다. 라고 하는것과 마찬가지 아니야?
나: 문제의 뿌리는 자기 문제보다 남의 문제를 따지는 거지. 예수님은 혐오할 것이 없어서 사랑했나? 자신이 해야 할 일 만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을 뿐이다.
딸: ㅋㅋㅋㅋ.. 아빠랑은 점점 말이 안통하는 것같아...ㅠㅠ 역사적으로 억눌려온 사람들에게 너가 문제야 라고 하는 거에 대해선 어떻게 얘기 할 거예요 아빠? 억눌려온 것도 우리 탓인가요?
나: ㅎㅎㅎ 나랑 말 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가 중요할 뿐 이지 하나님은 억눌린 사람을 더 사랑하셔. 그래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거지.
딸 예수님은 억눌린 사람들 편에 서서 사회적으로 악한 상황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분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예수님은 더 사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그 사람들의 입장을 들으셨고 편드셨고 변화를 위해 주장하셨어.
나: 나도 항상 억놀린 사람 편에 서서 말해왔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사회의 구조를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딸: 근데 여성으로서 아빠의 글은 나에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
나: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혼을 하라고 하는 것이 여성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더 나가서 여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여성을 편들기 위해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야 할까? 남성 중심의 사회를 다 고치고 나서 결혼 하라고 해야 할까
딸: 여성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는 내용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결혼하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그게 빠진 것 같아.
나: 그런 건 너무나 당연 해서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거야.
딸: 결혼하라고 이야기 하세요 아빠. 그런데 남성들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해야죠. 세탁기 문 못열어도 괜찮다가 아니라. 그게 속상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아빠는 딸 얘기도 안들어 주잖아.. 딸이라서 안 들어 주는 거에요? ㅋㅋㅋㅋㅋㅋ
나: 이구...
딸: 진짜 이구..
(이 때 아들 녀석이 끼어들어서 한마디 합니다) 아들: -_- 토론방을 따로 만드셔요.
이 토론은 결말없이 끝났는데... 나도 딸과 이야기 하면서 많이 느끼고 성찰하게 되었답니다. 하여간 서른이 넘어가는데도 결혼할 생각이 없는 이 친구들이 정말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