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누구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헌신 정도에 따라 그 값은 천차만별이다. 프랑스 칼뱅주의 개신교도인 위그노만큼 큰 대가를 치른 이들도 드물다 . 1572년 8월 23~24일, 위그노들을 향한 가톨릭 신자들의 집단 폭력이 파도처럼 일기 시작했다. 이른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다. 이 사건은 파리에서 벌어졌지만 점차 다른 도심과 교외로 번지며 몇 주간 지속됐다. 그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희생된 인원을 오늘날에는 5천~3만 명으로 다양하게 추산하고 있다. 1598년, 프랑스 국왕 헨리 4세는 낭트 칙령을 발표하면서 위그노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1685년에 루이 14세가 칙령을 철회했다 . 위그노에 대한 적개심이 다시 폭발했고 40만 명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를 떠났다. 1730년에는 19세 위그노 소녀가 붙잡혀 프랑스 남부 에그모르트시의 콘스탄스 타워로 끌려왔다. 그의 이름은 마리 뒤랑(1711~76)이고 오빠가 개신교 목사라는 게 죄명이었다. ‘믿음을 철회하겠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뒤랑은 옥벽의 돌에다 ‘저항’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뒤랑은 38년간(1730~68) 옥살이를 하며 믿음을 지켰다. 여러분도 믿음을 위해 이 정도로 대가를 치르겠는가? 순교자들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다원적인 현대 교회의 고분고분한 믿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순교자들은 신앙이 허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았다. 환경에 관계없이 또 정계와 교계의 승인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은 진리를 고수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유 때문에 헌신은 많이 줄었다 . 정치적인 적절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주어진 자유를 누리되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며 우리의 믿음을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르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