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 가족 21-17, 하은이 집에 갑니다
“하은이 집에 갑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은이와 함께 인사한다.
소리를 듣고 나온 동료들이 은이를 배웅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기숙 선생님이 말한다.
붉어진 눈시울이 보인다.
“내 일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나지. 은아 잘 갔다 와.”
2018년 11월에 은이가 이사 오고 처음 구미 부모님 댁에 간다.
거창 친척댁이나 합천 외가댁과 느낌이 다르다.
부모님 댁, 은이가 살던 곳, 3년 만에….
“은아 잘 다녀와.” “오래 있다가 와.” “은이 좋겠네. 방학도 하고 엄마 아빠도 보고.”
“집 간다고 예쁜 옷도 입었네.”
저마다 건네는 배웅 인사에 은이는 어리둥절해 보인다.
진작에 설명했지만 그래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이제 겨울방학이라고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더니 짐 가방이 맞이하고,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잘 다녀오라며 인사한다.
어머니는 ‘다른 건 집에 있으니’ 간단한 짐만 부탁했지만,
괜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챙기다 보니 짐이 한가득이다.
새로 산 겨울옷도 더 들어가지 않을 만큼 넣었다.
‘다른 건 집에 있다’는 그 풍경이 좋고, 의미를 모르지 않지만
은이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아끼던 옷, 좋은 것 다 챙겨 주고 싶었다.
1층 현관까지 배웅이 이어진다.
인사를 건네고 차에 짐을 싣는 동료들이 고맙다.
구미 가는 길은 누구보다 은이와 가족이 바라던 일이었겠지만,
매일같이 은이를 돕는 직원과 동료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월평빌라에서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창문을 열고 은이와 함께 한 번 더 인사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은이는 월평빌라 304호에 사니 구미는 부모님 댁이 되지만,
어쩐지 구미도 집이라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아직 학생이어서 그런가?
구미 집 가는 은이, 아들 기다리는 부모님….
차가 IC를 지나 고속도로에 접어든다.
한 시간 반쯤 달려 내비게이션이 알려 준 목적지에 다다르니 저 앞에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어! 은아, 저기인 것 같은데. 맞아? 은이 집 맞아?”
룸미러로 뒤에 앉은 은이를 보며 묻는다.
은이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부답.
골똘히 무슨 생각 중인 것처럼 보인다.
부모님이 일러준 대로 아파트에 들어서니 마중 나온 아버지가 보인다.
“은아! 은이 왔어?”
아버지가 자동차 문을 열고 은이를 안는다.
은이가 환하게 웃는다.
아버지가 은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간다.
거창에서 챙겨 온 짐 가방을 들고 부자를 뒤따른다.
“선생님, 오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은아, 우리 은이 왔어? 엄마야, 엄마.”
어머니가 주방에서 나와 맞이한다.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다.
은이 올 시간에 맞춰 한창 저녁 준비 중인 듯하다.
어머니가 은이와 인사하는 사이, 아버지가 은이 누울 자리를 살핀다.
거실 가운데, 이미 은이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여기 거실이 은이 방이었습니다. 은이가 여기서 지낸다고 집에 소파가 없습니다.
은이 누울까? 여기 기억 나? 어딘지 알겠어?”
아버지 말에 그제야 집을 둘러본다.
작은아들이 이사 나간 지 3년, 그사이에도 집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은이 방이었다는 거실에는 여전히 소파 없이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다.
거실 한가운데 가족사진에도, 그 옆 어린이집 졸업 사진에도 작은아들은 그 자리 그대로다.
떨어져 살아도 여전히 함께인 걸 보던 순간에는 한없이 기쁘기만 했는데,
나중에 은이와 인사하고 혼자 거창으로 돌아오면서는 그게 슬펐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작은아들 얼굴을 보는 부모님 마음은 어땠을까 싶어서….
한 방울 떨어진 눈물을 닦고 일부러 웃었다.
그래서 오늘이 더 기쁜 거라고,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한 거라고 믿었다.
은이네 저녁 식사에 함께했다. 자리에 앉고 나서 은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챙기느라
아버지는 몇 번이나 주방과 거실을 오갔고, 어머니는 자연스러운 듯 당신보다 은이 식사를 먼저 챙겼다.
“어머니는 은이 챙기느라 항상 식사가 늦으시겠어요.”
“네, 은이 있을 때는 그렇죠. 괜찮아요. 은이 먹고 먹으면 돼요. 선생님도 그렇죠?”
“저도 은이 도울 때 어머니랑 똑같습니다.
은이 먼저 챙기다가 적당히 시간 봐서 도중에 같이 먹기 시작하면 비슷한 시간에 식사가 끝나더라고요.”
“맞아요. 맞아요. 저희도 그래요.”
“이거 맛있는지 모르겠네.”
어머니가 은이 식사를 돕다가 이야기한다.
은이 먼저 챙기느라 미처 맛을 보기 전이었다.
어머니 말과 이 상황에 공감하며 말한다.
“맞아요. 저도 은이 돕다가 도중에 ‘아! 이거 맛있나? 안 뜨겁나?’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렇죠. 은이 먼저 챙기다 보니까 모를 때가 있죠.”
“네, 네. 그래서 중간에 한 입 먹어 보고….”
“은이가 뭐든 잘 먹으니까 더 그래요. 안 먹거나 가리거나 하면 알아차릴 텐데, 뭐든 잘 먹으니까….”
부모님 대화에 공감할 수 있어 기쁘다.
이 공감이 부모님에게 부모님 자리 대신이 아니라 떨어져 지내는 미안함에 위로처럼 느껴지기 바랐다.
구미 집에서 대화하니 주제가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까지 이어졌다.
“그럼 은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누가 같이 계시는 거예요?”
“네, 은이 엄마가 같이 있습니다. 잠깐 일 쉴 때 데리고 있으려고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같이 있나 싶고 해서요. 평소에는 출근하니까 같이 있고 싶어도 힘들고요.”
“아! 그렇네요. 어머니 시간이 맞으셨나 보네요.
그럼 은이가 거창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초등학교에 다녔던 건가요?
은이 전학할 때 보니까 학적은 구미혜당학교로 되어 있었는데, 어린이집에서 써 주신 소견서도 있더라고요.”
“둘 다 다녔어요. 저희가 일을 하니까 학교 먼저 갔다가, 마치고 나면 어린이집 이런 식으로요.
어린이집에 있다가 퇴근하면서 같이 집에 오고…. 그 어린이집에서 은이를 잘 봐주셨거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어서 학교에 늦게 간 것도 있어요.”
“그래서 은이 학교가 2년 늦네요.
누가 나이 물어보면 ‘중학교 3학년 나이인데, 학교는 중학교 1학년 다니고 있다’라고 합니다.
혼자 생각해요.”
“저희도 그래요. 원래 중학교 3학년 나이….”
“그럼 은이 형은 이제 고등학교 다니겠네요? 많이 바쁘겠습니다.”
“네, 맞아요. 밤 열한 시는 돼야 들어옵니다. 윤이 오면 좋아하겠네. 동생 와서.”
“‘나이는 중학교 3학년, 학교는 중학교 1학년, 형은 은이보다 한 살 많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
“맞아요, 맞아요. 저희도 그래요.”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
부모님은 직원의 말에 위로를, 직원은 부모님 말에 공감을 얻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나서 얼굴 보는 일의 유익을 절절히 체감한다.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몸으로 느낀다.
“일 주에서 이 주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정확한 날짜는 천천히 의논하면 좋겠습니다.”
“네, 아버님. 은이 거창으로 돌아갈 때 오늘처럼 제가 도울 수 있으니까요. 날짜 보시고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은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가족과 함께이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재차 사양에도 아버지가 직원을 따라 나온다.
배웅하며 차가 나갈 길을 알려 준다.
“아버님, 추운데 들어가세요. 저 이제 내비 찍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정 선생님. 조심히 가시고요.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생수와 비타민 음료를 건네며 말한다.
다시 인사하며 차에 올라탄다.
둘이 왔다가 혼자 돌아가는 길, 심심하지만 적적하지는 않고, 울컥하지만 한없이 기쁘다.
참 이상한 기분이다.
페달을 밟아 이번에는 구미IC를 지난다.
월평빌라에 도착하니 저녁 여덟 시쯤 되었다.
당직 근무 중인 김향 선생님이 컴퓨터로 일하다 말고 일어나 버선발로 맞이한다.
“아이고, 선생님. 잘 갔다 왔어요? 은이는 어때요? 좋아하죠?
내가 은이 집에 간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깜깜한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김기숙 선생님과 김향 선생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고마운 마음, 고마운 동료. 오늘 참 좋다.
차에서 내리면 왠지 별도 더 반짝일 것 같다. 하나도 춥지 않고.
2021년 12월 28일 화요일, 정진호
은이가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합니다.방학 때마다 구미 집에 간다는 소리 들었으면 좋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신아름
읽다가 울었습니다. 선생님처럼. 코로나 때문에 생이별한 소식을 뉴스로만 접했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네요. 이번에 주선하고 다녀오느라 애썼습니다. 모든 일정 순조롭고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물고를 틔웠으니 형편 될 때 종종 다녀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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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은아들이 이사 나간 지 3년, 그사이에도 집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은이 방이었다는 거실에는 여전히 소파 없이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다.
거실 한가운데 가족사진에도, 그 옆 어린이집 졸업 사진에도 작은아들은 그 자리 그대로다.
떨어져 살아도 여전히 함께인 걸 보던 순간에는 한없이 기쁘기만 했는데,
나중에 은이와 인사하고 혼자 거창으로 돌아오면서는 그게 슬펐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작은아들 얼굴을 보는 부모님 마음은 어땠을까 싶어서…."
떨어져 살아도 늘 그리워했을 가족 마음을 생각하니 덩달아 뭉클해집니다.
가족과 시간 보내다 거창 집으로 돌아온 하은 군의 후덕해진 얼굴이 반가웠습니다.
볼살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던 정진호 선생님의 말과 그 속에 담긴 마음도 기억납니다.
일지 보며 감동하고 감탄하고 배웁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