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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연(盛宴)의 불꽃
성대한 연회가 조금 전 대금붕왕을 만났던 응접실에서 열렸다. 술과 요리
가 푸짐했고 모두가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술은 소흥황주(紹興黃酒)라는 오래 묵힌 고급 술이었다. 육소봉은 한잔을
다 마시고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도 좋은 술이기는 하나, 조금 전에 마셨던 페르시아산 포도주와 비
교한다면 아직 멀었습니다." 대금붕왕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종류의 술은 꽃을 앞에 두고 달빛 아래에 내어 놓아서, 한가로이
술잔을 기울이며 천천히 마셔야 하는 것인데, 당신들 두 분처럼 그렇게 마
시면 아무래도 그 술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화만루는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원래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고, 들이붓는 사람이라서 술이 어
떤 맛인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술을 그에게 주는 것은 바로
술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대금붕왕은 또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그를 잘 아는 것 같군요."
이 주인은 오늘 저녁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달리, 용이 몸을 둥글게 사리고 있는 모양의, 금으로 수놓은 비단 두루마기
로 바꿔 입고 나와서는 정말로 국왕이 출정 전의 대장군들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환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단봉공주도 평소보다 더 아름답고, 더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녀는 육소봉을 위하여 직접 술을 따라주고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들은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을 남자다운 기개가 있어 좋아합니다.
독약을 마시는 것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어떤 여인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금붕왕이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여인들은 술귀신들을 좋아하는 건가?"
단봉공주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술을 마시는 것도 당연히 약간은 결점이 될 수도 있지요." 대금붕왕이 말
했다.
"단지 약간의 결점인가?"
단봉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늙어 다리에 병이 생겨 다시는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는 화를 냅니
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 화를 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대금
붕왕은 계속해서 얼굴을 굳히며 말을 하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젊었을 때 술을 쏟아 부으면서 마셨는데, 당신 보다
절대로 늦게 마시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똑똑한 주인은 웃음으로써 손
님을 환대하는 것이 풍성한 술과 안주보다 더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소봉은 또 한 잔의 술을 마시고는 말했다.
"나는 내일 일찍 서문취설을 찾아갈 것입니다."
대금붕왕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저희도 도울까요?"
육소봉이 말했다.
"그 사람은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서 반드시 나 혼자 가서 찾아내야 합니
다. 누구도 필요 없습니다." 그는 몸에서 더럽게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더니, 넓게 깔고는 젓가락을 간장을 찍어, 종이 위에다가 생동감 넘치고 활
달한 글자를 써서 단봉공주에게 주었다.
"당신이 언제, 어느 사람에게라도 이 종이를 들려서 그를 만나보게 하면
그는 곧 그 사람을 따라서 올 것입니다." 단봉공주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내가 듣기로 당신들은 이미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육
소봉이 말했다.
"내가 그와 말을 하지 않는 것과 그가 여기에 오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
다." "그는 당신과 말도 하지 않는데, 겨우 당신의 서명만을 보고 그 낯선
사람을 따라 낯선 곳으로 올까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보아하니 이 주선생이라는 분도 이상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상할 뿐
만 아니라, 나쁜 놈입니다."
단봉공주는 이 종이를 접으려다 이것이 오천 냥짜리 은표인 것을 보고 놀
라서 물었다.
"이 은표는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인가요?"
"당신은 이것을 훔치려고 하는 것입니까?"
단봉공주의 얼굴이 빨개졌다.
"당신들이 원래가 좋은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이런 방법으로 그
를 청한다면 당신이 자기를 깔본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화를 내지는 않을
까?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육소봉은 웃으며 계속 말을 했다.
"그 사람의 유일한 장점은 바로 당신이 그에게 아주 적은 돈을 주더라도
그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봉공주가 살짝 웃으며 말했
다.
"이것은 그도 위선자가 아니고 당신도 아니기 때문이군요." 육소봉이 담담
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당신의 친구가 배가 고픈 것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그는 속세의
화식을 먹지 않는 신선이라고 아첨을 하여, 굶어 죽을지언정 남에게 구걸하
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또한 당신의 친구가 돈을 빌리러
온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에게 위안과 격려를 하며 그에게 자력 갱생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말하는 사람이면, 그리고 만약 당신이 정말로 이런
사람이면 나는 당신의 유일한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상관단봉은 이런 사람이 아니라, 벌써 육소봉의 뜻을 잘 아는 사
람이었다.
아름다운 얼굴 이외에 그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었다. 이 두 가지는 원래 여인에게서는 찾기가 힘든 것이다. 총
명한 여인은, 이해하고 아는 것이 마음을 움직이는 용모보다 더 남자를 움
직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소봉은 자기가 점점 이 소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이 깊었다. 방안에는 등불도 없었다. 봄바람이 가볍게 불어와 방안가득
꽃 향기를 가지고 왔다.
육소봉은 침상에 누워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런 깊은 밤에 왜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일까? 사람을 기다리는 것일까?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분
명히 화만루가 아니었다. 화만루는 조금 전에 그와 헤어져 돌아갔다.
밤은 조용했다. 이슬이 꽃잎에 물방울져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했다. 그래서 그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자국소리를 들을 수 있었
다.
발자국소리는 아주 조용했지만, 그의 가슴은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
발자국소리는 그의 문 앞에서 멈추었다.
문은 빗장이 걸려 있지 않았고, 문 앞의 사람이 가만히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또 가만히 문을 닫았다.
방 안은 아주 어두워 이 사람의 키가 큰지 작은지 조차도 구분이 잘 안
되었다. 그러나 육소봉은 침입자가 누구인지 미리 알고 있기나 한것처럼 그
가 어떤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발자국소리는 조용하고 느려졌다. 침입자는 천천히 걸어서 그의 침대 머
리맡까지 와서 천천히 손을 내밀어 가만히 그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의 손은 차가운 물처럼 섬뜩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꽃 향기를 띠고
있었다. 육소봉의 몸을 애무하던 손길이 그의 수염을 만졌다. 이제서야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이 바로 육소봉인 것을 확실히 알아챈 침입자는 안도의
한숨을 살짝 몰아쉬었다.
육소봉은 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고, 벌거벗은 몸이 그의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그녀의 몸이 곧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떨고 있었
다. 움직이는 불꽃처럼 육소봉을 자극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참 후 그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미리 경고하건대 나는 유혹을 참아내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은 무엇 때
문에 여기를 왔소!" 그녀는 말이 없었고 몸은 더 떨고 있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비단처럼 부드러운 피부에
는 냇물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소름이 돋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가슴을 그
의 가슴에 꽉 밀착시켰는데, 그녀의 가슴은 비둘기처럼 가냘프고 부드러웠
다.
육소봉은 갑자기 그녀를 밀어내고는 놀란 듯이 물었다.
"당신은 혹시..... 당신은 누구시오?"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고 몸을 더 웅크리고 있었다.
육소봉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가슴을 만져 보고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
럼 놀라서 말했다.
"너는 사촌 언니로구나!"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이 사촌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요."
육소봉은 화살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침상에서 도망치면서 물었다.
"너는 도대체 뭐하러 온 거냐?"
상관설아가 말했다.
"나는 왜 여기에 오면 안 되는 거죠? 당신은 조금 전 제가 누구인 줄 알
았어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화가 나 있었다.
여인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은 아마 남자가 그녀를 다른 사람인줄 알
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일일 것이다.
육소봉은 결코 말을 못하는 바보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어떻
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상관설아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올 수 있고, 나는 왜 올 수 없는 거죠? 말해 보세요." "나는 너에
비하면 노인이나 마찬가지야."
상관설아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이미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에게 증명하기 위
해서였어요. 내가 거짓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당신이 믿는다면, 당신은 내
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당신도 내게 도취되어 있다구요!"
그녀의 음성은 말을 하면서 점점 커졌고 점점 화가 나서 거의 우는 것 같았
다.
육소봉은 마음이 약해져 손을 내밀어서는 그녀의 머리를 살짝 만져 주었
다. 그녀를 위안하는 듯이.....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어두웠던 방안이 일시에 밝아졌다. 어떤
사람이 손에 등을 들고는 문 입구에 서 있는 것이었다. 눈처럼 하얀 두루마
기를 입었고, 얼굴은 그녀의 옷보다 더 창백하게 보였다.
상관단봉이었다!
육소봉은 침상 밑으로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그녀가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설아의 얼굴 표정도 부엌에서 사탕을 훔쳐먹다가 들킨 어린아이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곧 당당하게 벗은 몸을 일으켜 입을 삐쭉이며 육소봉을 향
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왜 그녀가 올 거라고 알려주지 않았나요? 그랬다면 내가 좀더 일
찍 갔을텐데." 상관단봉은 그녀를 바라보고는 입술을 떨기 시작했다. 말을
하려고 하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설아는 태연스럽게 옷을 입고는 고개를 들고 그녀 앞을 지나가면서 입을
삐죽이며 비웃듯 톡 쏘았다.
"사실 당신은 화낼 필요가 없어요. 남자들이란 원래 모두가 이 모양이니
까요." 상관단봉은 움직이지도 않았고, 입을 열지도 않았다. 그녀의 몸은 뻣
뻣하게 굳은 것 같았다. 설아의 발자국소리가 멀어져갔다.
상관단봉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육소봉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
동자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았으니까요."
그녀는 발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육소봉이 쫓아가서 그녀를 잡았다.
상관단봉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무슨 말을 더 하려는 거죠?"
"나는 지금 무슨 말도 할 수 없지만, 나는 오로지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
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거요." 상관단봉은 고개를 떨구고 듣고 있었다. 한참
이 지나고 나서야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나도 원래는 오려고 한 거였어요."
"지금은요?"
"지금은..... 지금은 오히려 가고 싶어요."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육소봉을 바라보았다. 눈 속에는 원망과 애
석함이 뒤엉킨 복잡하고도 모순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육소봉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내가 설아와 무슨 일이 있었다고 믿는 거요?" 상관단봉은
손가락으로 그의 입을 막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렇치 않은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오늘 저녁은..... 오늘
저녁 나는 여기에 머무를 수가 없어요." 이런 기막힌 일을 보고 다른 일에
흥미가 생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육소봉은 그녀의 뜻을 알고는 그만 손
을 놓았다.
상관단봉은 갑자기 발꿈치를 들어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당신도 내가 가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육소봉은 웃으
며 말했다.
"지금 당신은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상관단봉은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당신에게 경고하겠어요. 그 계집아이는 정말로 요물이에요. 당신이 다음
에 그녀를 보면 재빨리 도망가는 것이 좋을 거예요. 내가 질투를 하면 사람
을 물지도 모르거든요." 밤은 더 깊었고, 조용했다. 온 세상은 평화와 안정이
가득하다.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가?
오전. 청석판이 깔린 거리는 벌써 태양이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길가의
가게들 중 문을 열지 않은 곳은 몇 집 없었다.
성안의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을 한다'는 습관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육
소봉과 화만루도 뜨거운 청석판 위에 서 있었다.
단봉공주가 꽃이 가득 장식된 마차로 그들을 여기까지 데려다 주고는 막
고개를 돌렸다.
"소식이 있으면, 곧 당신에게 알리겠어요."
"알고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린다. 그녀 같은 소녀가 당신을 기다린다는데, 어찌 당신
은 원망을 할 수가 있겠는가? 화만루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네가 조만간에 그녀에게 깨물릴까 걱정이야." 육소봉은 그
를 노려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 사람의 귀는 토끼보다 더 예민하군. 다음번에는 오히려 이 사람을 조
심해야겠는걸." "그녀가 말하는 그 요부는 바로 상관단봉의 동생인가?" "그
녀는 요부일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존재야." 화만루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마침내 물었다.
"그녀는 언니를 찾아냈다고 하던가?"
"아직 못 찾은 것 같던데. 내가 상관단봉에게 물어보도록 하지. 그녀는 아
마 제비가 날아간 곳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나?" "자네가 물어보지
않아도 좋아. 물어보면 그녀에게 깨물리고 말걸." "내가 물어보지 않더라도
설아가 물어볼텐데."
"보아하니 그녀도 물어보지 않을 것 같군."
그는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얼굴에 근심된 표정을 감추지는 못하였다. 육
소봉이 한참을 생각하고는 물었다.
"자네는 상관단봉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고 있나?"
"그녀가 양띠라고 말했으니, 올해 열여덟이겠군."
육소봉은 손으로 그의 수염을 마지며 중얼거렸다.
"열여덟의 소녀에게 스무 살의 동생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 형편을
봐야지."
육소봉은 멍해져서 물었다.
"형편을 보다니?"
"자네같이 똑똑한 사람이 이런 바보 같은 것을 묻다니, 열여덟의 소녀가
왜 스무 살의 동생을 가질 수 없나? 스무 살의 동생은 팔십 살의 아이를 낳
았을지도 모르는데!" 육소봉도 웃으며 힘껏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열여덟의 언니는 절대로 스무 살의 동생을 가질 수가 없어. 상관단봉도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거야." "뭐라고?"
"설아가 그녀의 언니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한 것은 일부러 그런 말을
해서 나를 놀린 거야. 지금에야 나는 그녀의 말은 하나도 믿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게 되었어." 화만루도 웃으면서 더 이상 그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
은 듯 화제를 바꾸어 물어보았다.
"자네는 여기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육소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취설은 여기에 있지 않아! 그는 원래 여기 있지 않아. 나는 다른 사
람을 찾아왔어!" "누구를 찾는데?"
"자네는 밖에 잘 나다니지 않으니, 아마 강호에서 아주 이상한 두 노인을
모르겠지. 한 사람은 위로는 하늘을 읽을 수 있고 아래로는 땅을 알아서 옛
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아주 이상한 일까지 모두 다 아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해결 방법을 알려 주는 사람이야." "자네
가 말하는 자가 대통(大通)과 대지(大智)인가?" "자네도 그들을 아는가?"
"나는 장님이기는 하지만 귀는 아직도 멀쩡하다네." "어떤 때 나는 자네가
귀가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네." 그들은 그늘지고 서늘한 기와 밑으
로 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중이 고개를 떨구고 단정하고 예의바르게 걸
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 중은 네모난 얼굴에 큰 귀를 가지고 있어 아주 복스러운 얼굴이었지
만, 걸치고 있는 옷은 찢어지고 더러운 것이었고, 신발은 닳아서 거의 바닥
이 너덜너덜해진 짚신을 신고 있었다.
육소봉이 이 중을 보고는 다가가서는 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중, 안녕!"
중은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그도 역시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요즘에 바보같이 변하지 않았나?"
"자네가 바보같지 않기를 기다리다가 내가 바보가 되어버렸어." 중은 그를
보고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보아하니 오늘은 특별히 기분이 좋은 일이 있나?"
"중이 무슨 좋은 일이 있겠나. 자네처럼 바보 같은 젊은이에게나 좋은 일
이 있지."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중은 얼굴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오늘은 정말 달라."
그의 표정을 보니 육소봉이 더 이상 묻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육소봉은 일부러 눈치도 없이 물었다.
"왜 그런데?"
중은 얼굴을 찌푸리며 조그맣게 얘기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오늘 나는 바보 같은 일을 한 가지 했거든." 그는
원래 말할 생각도 아니었고, 말하지 않을 수고 있었지만, 바보 같이 육소봉
의 질문에 말려들고 있었다.
육소봉은 더 흥미롭게 여기고 곧 다시 물었다.
"자네가 바보 같은 일을 했다고?"
"이것은 내 평생에 처음 있는 일이야."
육소봉은 더 흥미를 느끼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자네가 무슨 일을 했는데?"
중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더니 우물거리며 말을 했다.
"나는 조금 전에 구양(歐陽)을 찾아갔었어."
"구양이 누군데?"
중은 그를 쳐다보고는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였다. 마치 뽐내는 듯한 모양
으로, 또는 육소봉의 무지를 동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었다.
"자네는 정말 구양을 모른다는 말인가?"
"내가 왜 알아야 하지?"
중은 조용히 말했다.
"구양이 곧 구양정(歐陽精)이기 때문이지."
"구양정은 어떤 사람인데?"
중의 얼굴은 붉어졌고 말을 더듬으며 어눌하게 말했다.
"그녀는..... 유명한..... 기생이야."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서 마지막 두 마디를 했다.
육소봉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꿈에도 이 중이 기생을 찾아가리라고
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상히 여기며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말했다.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 중이 도리어
놀라서는 급히 물었다.
"이런 일이 흔히 있는 일이라고?"
육소봉은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중은 당연히 마누라도 없고, 첩도 없는 건강한 사람이야. 기생이라도 찾
아가지 않으면 그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비구니들을 찾아갈 것인가?" 중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육소봉은 이어서 말을 했다.
"하물며 고승과 명기는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원래가 밀접한 관계인걸."
"무슨 관계?"
"고승은 중으로 하여금 종을 치도록 하고, 명기는 술잔으로 종을 쳤을 것
이고..... 이런 관계가 충분히 밀접한 관계가 아닌가?" 말을 다 끝내지도 못
하고 그는 스스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웃었다.
화가 나서 중도 한동안 멍하니 있더니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어제 저녁에는 손나리를 우연히 만나더니,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육소봉을 우연히 만나는구나." 육소봉이 웃음을 뚝
그치고는 급히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손나리를 봤다고? 그는 지금 어디 있나? 나는 그를 찾아야 하네."
중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이 입 속으로 주문을 외고 있었다.
"아미타불.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제가 하고 말았으니, 보살님께서는
제게 기어가도록 벌을 내려주소서." 그는 중얼거리고 나더니 갑자기 땅에
엎드려서는 정말로 기어서 가는 것이었다.
육소봉은 그를 보고 웃기만 할 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화만루가 참을 수 없어 물었다.
"그가 정말로 기고 있나?"
"이 사람이 십리를 기어서 간다고 하면 절대로 얼마 가지도 못할 거야.
왜냐하면 그는 바보 같은 중이기 때문이야." "보아하니 그는 바보 같은 중일
뿐만 아니라 실성한 중이군." "아무리 미친 척해도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 또
렸하다구." "손나리는 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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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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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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