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TmQU4jEgJw?si=OO8VLhDTKHGZ9das
Beethoven Diabelli Variations Op 120 Alfred Brendel piano
'함머클라비어'보다 4년 후인 1823년 베토벤은 디아벨리라고 하는 출판업자의 보잘것없는 왈츠 멜로디를 주제로 하여 33개의 거대한 변주곡을 작곡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원래 디아벨리의 계획은 당시 명성을 날리던 작곡가들에게 공통의 주제를 주어 한 개씩의 변주곡을 부탁하려고 했던 것이었으나, 베토벤은 이를 거절하고 독자적인 자신만의 변주곡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리듬, 구조, 화음, 선율을 기본으로 베토벤 특유의 유머, 비웃음, 고집, 인간미, 매료, 너그러움과 자비, 번민이 표현되며, 바하, 헨델, 모차르트, 하이든이 짤막하게 느껴지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그의 음악세계를 집대성한 곡이다. 원제에 ‘variation' (변주) 대신 ’verandung' (변화 혹은 변질의 뜻) 이란 단어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베토벤은 애초부터 흥미롭지 못한 주제에 신세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1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연주시간 동안 베토벤다운 큰 스케일의 표현과 극단적인 다이내믹, 다성부적인 처리와 변화무쌍한 기교적 패시지 등 연주자의 피와 땀을 요구하는 ‘디아벨리’ 는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음반으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아직도 미답의 경지가 많은 문제작이기도 하다.
베토벤,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이 곡은 건반악기를 위한 변주곡으로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쌍벽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는 다른 방식으로 피아노를 위해서는 매우 어려운 작품이다. 이거대한 변주곡에만 관한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만년의 음악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음악사의 대가인 D.J.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를 인용하자면 '숭고한 것과 기괴한 것이 공존하며, 또한 심원한 것과 매우 소박한 것이 공존한다'. 초기와 중기의 공통점인 객관적인(즉 고전파적인) 음악이라기보다는 베토벤 한 사람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환상(이것은 낭만파 작곡가들의 낭만성 및 환상성과는 일치하는 점이 거의 없다 )이 음악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베토벤의 사고 과정이 음악으로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베토벤 자신의 즉흥 연주라고 불러야 할 이러한 주관적인 후기 작품군 중에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마 이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일 것이다.
베토벤의 가장 탁월한 재능은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주제 동기를 유기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방식과 함께 다양한 작은 소재들에서 대곡을 빈틈없이 구성하는 능력이다. 이 디아벨리 변주곡도, 후기 베토벤 작품의 특징인 개인적인 사색과 환상을 디아벨리의 단순한 주제에 놀랄 만큼 성공적으로 적용한 명작이다
https://youtu.be/ESqSzWfoaRo?si=KC_brKf5HVXc70mQ
Beethoven - Op.120 Veränderungen über einen Walzer ('Diabelli Variations')
안톤 디아벨리(Anton Diabelli, 1781∼1858)는 작곡가로서는 현재 소나티네 등으로 초보자의 연습곡으로서만 이름이 알려져 있다. 아마 베토벤의 이 곡이 아니라면 고전음악 애호가들은 그의 이름을 알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당시에 빈에서 1818년 디아벨리 운트 카피(Diabelli und Cappi) 출판사를 설립해 경영하고 있었는데, 이 출판사는 만년의 베토벤이 아르타리아(Artaria), 쇼트(Schott), 슐레징거(Schlesinger)등과 함께 자주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던 곳 중 하나였다.
1819년 그는 자신이 작곡한 왈츠를 주제로 하여 당시의 유명한 작곡가들에게 1곡씩의 변주곡을 위촉하여 변주곡집을 출판하려고 계획했다. 베토벤까지 포함하여 이들은 총 51명으로,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Carl Czerny)와 루돌프 대공(Archduke Rudolph로, 베토벤은 제자이자 좋은 후원자인 그에게 피아노 협주곡 4,5번, 피아노 3중주곡 7번 '대공', 피아노 소나타 26,29번, 장엄 미사 등의 매우 많은 작품을 헌정했다), 슈베르트, 모셸레스(Ignaz Moscheles), 칼크브레너 (Friedrich Kalkbrenner), 훔멜(Johann N.Hummel)등과 함께 어린 리스트도 포함되어 있다.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의 것과 따로 출판하기를 원했는데, 그의 작품이 변주곡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곡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처음엔 별로 내켜하지 않아서 베토벤 자신이 멸시했던 왈츠가 이 위대한 변주곡의 주제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흥미있다.
작곡은 1819년 초에 23개의 변주곡을, 1822∼23년의 겨울에 나머지 10곡을(1, 2, 15, 23∼26, 28, 29, 31곡) 완성했으며, 같은 해 6월에 디아벨리 출판사는 이 곡을 작품 120으로 다른 작곡가들의 것과 별도로 출판했다. 안토니아 폰 브렌타노(Antonia von Brenntano)에게 헌정되었는데, 참고로 말하면 이 여인은 피아노 소나타 30번 E장조 op.109를 헌정한 막시밀리안 폰 브렌타노의 어머니이며, 음악학자 솔로몬(Maynard Solomon)의 치밀하고 설득력있는 연구 결과로 베토벤의 유명한 '불멸의 연인'이라는 것이 거의 확증된 장본인이다. 나머지 작곡가들의 변주곡은 1824년에 다른 50명의 변주곡을 모아서 '애국적 예술가 연합 (Väterandischer Künstlerverein)'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베토벤은 디아벨리의 간단하고 매우 평범한 주제에서 33개나 되는 변주를 뽑아냈다. 물론 변주곡의 주제는 너무 개성이 강한 복잡한 것보다는 특징이 뚜렷하고 단순하며 인상에 오래 남는 성질을 가져야 하지만(자체로 너무 복잡하면 변주시킬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디아벨리가 가져온 주제는 정말로 너무나 평범 그 자체여서 베토벤은 '구두방의 가죽 조각'이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주제를 단순하다고 하여 좋지 않게 생각하기보다는, 베토벤이 변주곡에 사용한 주제 자체들도 매우 단순한 것들이며(교향곡 3번 끝악장의 주제가 되는 선율이나 베이스 주제나 모두 지극히 단순하며, 그에게 이런 예는 또 많음을 상기하자), 디아벨리의 주제도 그런 면에서는 '아주 나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용했을 것이다.
베토벤의 성격상 '변주곡의 주제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주제가 아무리 잘 되었다 해도 사용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생각으로는 너무 형편없는 이런 주제에 다른 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쓴 것에 베토벤이 '오기가 일어서', "그래, 이 볼품없는 주제로 어떻게 곡을 만들 수 있는지를 모두에게 한 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곡을 만들었다고 보고 싶다.
따라서, 디아벨리가 단순하고 평범한 주제로 베토벤에게 영감을 제공한 것에 후세 사람들은 감사해야 마땅할 것이다. 베토벤은 디아벨리의 평범한 작은 왈츠를 가지고 한없는 환상과 얼핏 보면 변덕스럽다 할 정도로 다양한 기분을 전개시키고, 끝곡으로 흔히 사용되는 푸가가 아니라 우아한 기분의 메누엣으로 이 장대한 변주곡의 끝을 맺었다. 전체적으로 그 때까지의 관례에서 매우 벗어난 이 변주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구조가 엄격하진 않으나 몇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절묘하게 통합되어 있다.- 출처:이영록의 음악 페이지
빌헬름 박하우스 (Wilhelm Backhaus, 1884.3.26~1969.7.5)
박하우스가 ‘건반 위의 사자’로 통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하지만 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박하우스의 모습은 주로 만년의 높은 정신성을 담은 구축적이고 균형잡힌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라! ‘독일산 사자’라는 별명은 그의 젊은 시절을 두고 일컫기에 알맞다. 외모도 외모려니와 그는 젊은 시절, 독일 피아니스트로는 드물게 화려한 기교와 강렬한 힘으로 각광을 받았다.
19세기 이후 피아노의 비르투오소는 동유럽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독일 작곡가들이 현란한 기교의 과시보다는 음악의 구축미를 중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기교파 박하우스의 등장은 20세기 초의 독일에서는 상당한 화젯거리였다.
라이프치히에서 정통 독일계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난 그는 7세 때인 1891년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가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10대 중반의 이른 나이로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1899년부터 당시 큰 스케일과 구축력으로 유명했던 위대한 피아니스트 오이겐 달베르트를 사사하게 되었다.
그가 남긴 음반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의 녹음일 것이다.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과의 연주로 50년대에 녹음된 이 전집 중에는 역시 1959년 녹음된 5번 ‘황제’가 가장 유명하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은 1950년대 초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69년까지 녹음된 것이다. 칼 뵘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과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위대한 명반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다.
글출처: 하늘바람꽃
https://youtu.be/m0ud7EwbPaY?si=yZsFvQhlGiY8OVOp
Diabelli variations- W. Backha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