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향한 정부방침에 대한 나의 생각>
1. 방역을 위해 국가가 교회에게 내린 결정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2. 어제 저녁 한시간 이상 동네를 걸으며 운동을 했다.
지나간 커피숍만 해도 수십개, 식당은 그 이상의 숫자, 10시 넘는 시간까지도 불야성이다.
20-30명이 모여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이미 취기가 오른 얼굴들로 사뭇진지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다.
물론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고 어깨는 서로 부딪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회사를 마친 회식자리임에 틀림없다. 독서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빵집에 가득앉아 잠을 깨우려는지 커피를 마시고 있고, 어디하나 사람이 가득차지 않은곳이 없다. 마스크? 거리두기? 걷는 사람들만 마스크와 거리두기를 하고 걷고 있었다.
3. 최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적용을 해보아도 정부의 방침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회사모임으로 모여도 되고, 개인으로 모여도 되고, 조기축구회, 계모임도 가능하지만 교회이름으로 저 식당에, 저 커피숍에, 저 빵집에 모일 수 없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모이다 보니 예수쟁이들이 교회옆 커피숍에 모일 수는 있지만, 예수쟁이들이 함께 교회에서 걸어나와 그곳으로 가서 모일 수 없다.
00고등학교 동기회로 식당예약은 가능하지만, 00교회 이름으로 식당도 예약 할 수 없다.
5. 중대본 발표가 나올때마다 발표자와 옆에 있는 참모들은 마스크와 거리두기와 아무 상관이 없이 전국 방송을 하면서 주일에 설교자는 마스크를 끼고 설교하라고 구청직원이 나와서 지침을 내리고 간다.
4. 주일예배 시간전에 사역자들이 모임을 가지고 예배를 준비할 수 없고,
교사들이 미리 모여 공과훈련을 점검하고 가르칠 수 없다.
예배시간에 와서 바로 마이크를 잡아야하고, 교실로 들어가 바로 가르쳐야한다.
정규예배가 가능하다면서도 정규예배를 할 수 있는 모든 모임은 원천 차단된 상태인것이다.
5. 교인도 국민이기에 국민을 보호하고 그것이 결국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강행한 원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다른 기관에 비해서 많이 나온것, 그리고 나오게 보인것도 이해한다. 결정하기위해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도 이해한다. 그래도, 그 결정이 너무 심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다. 모든 종교시설도 아니고, 모든 기관에 적용되는 몇명이상 집합금지 명령도 아니고, 교회만, 교회이기때문에 모이면 안된다는것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6. 식당을 닫아라, 커피숍을 닫아라는 말이 아니다. 모두 성도들의 기업이니 교회는 그렇게 말을 하지 못한다. 성도들이 힘들어 지면 안되니, 식당도 커피숍도 방역을 잘하고 문을 열면 좋다.
하지만, 식당과 커피숍은 밤이 새도록 열어두고, 마스크 한장 쓰지 않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새벽까지 앉아있는데,
시작부터 7대 방역을 다 하고 출입을 하기를 단 한주도 빼지 않고 실천했고, 단 한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은 전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몇교회의 사례로 일시에 모임을 금지시키는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7. 정총리가 기독교인라서 특별한 혜택을 기대하는것은 물론 아니지만, 피택장로가 될정도로 교회를 다녔다면 모든 교회에 이런 과격한 원칙을 일괄적으로 적용할 이유가 없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았을까.
8. 나라에 재난이 일어나면, 정치, 경제, 종교가 함께 힘을 합쳐서 국난을 이겨내야한다.
정치는 제도를 만들고, 경제는 제도를 시행할 자금을 보태고, 종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면서 합심해서 국난을 이겨내게 되어있다. 나라는 종교에 협조를 구하며 백성들이 좌절하지 않토록,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나가도록 몸에 코로나가 아니라 마음에 코로나가 생기지 않토록 격려하고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을 해야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입을 막으려고 한다. 코로나가 끝이 나도 절망해 버린 백성의 마음은 누가 회복시켜 줄 것인가? 코로나가 끝나도, 망해버린 사업, 흩어져버린 관계, 코로나 보다 더 심한 마음속에 시작되는 절망의 코로나는 누가 회복시켜 줄것인가?
8. 코로나가 시작할때부터 개척교회조차 헝겊을 찢어 마스크를 만들고 필터를 끼워넣어 길거리로 나가 재난당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나라에서 준 재난 지원금조차 다시 모아 더 필요한 재난 당한 사람들에게지원금을 사용한 많은 교회들의 미담들은 도대체 왜 한번도 알려지지 않는가.
대구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재난에 동참하고, 낙심한 백성들에게 힘을 내라고 힘과 용기를 주고, 상가교회의 월세를 대납해주어 한달 한달 버티는 그 사람들은 기독교인이지 한국국민은 아니라는 말인가?
교회가 한국국민 4분의 1을 살리고 있다고 생각할수는 없는것인가?
9. 많은 질문이 든다. 정치가 종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상식의 범위를 넘어가고, 타협의 지점에 균열이 생길때는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밝혀야한다. 기독교단체들의 하나된 목소리가 더욱 필요하다. 그것으로 인해 당하는 불이익이 있다면 기꺼이 감수해야한다. 교회제도는 국가아래 있는지 모르지만, 신앙은 모든 것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