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무역관 장수영 관장
자료원 : 밀라노 무역관 직접 촬영
우리가 열광하는 것들 중에 명품이라는 것이 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소비자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기를 희망하는 탐나는 상품이다.명품을 연상시키는 상품으로는 가방, 신발, 의류, 안경, 화장품, 시계, 가구, 자동차 등이 있다. 주로 우리가 직접 사용하는 완제품 소비재들이다.
명품은 일반 상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모든 나라, 모든 기업이 명품을 보유하기를 희망하는 이유다.그렇지만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 스위스 등 일부 선진국만의 전유물인 것이 현실이다.
위에 열거한 상품 중에서 우리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명품이 있을까를 생각해보지만 쉽게 떠올리기가 어렵다. 주로 가죽으로 만드는 고급 가방과 신발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쟁력이 워낙 강해서 우리가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의류는 명품 완제품 메이커에 직물을 납품하고 있는 단계로 아직까지 완제품 의류에서 경쟁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시계와 가구도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고,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이긴 하지만 명품 자동차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최근 화장품이 한류를 타고 전 세계시장에서 인기가 높아가고 있어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런 가운데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 만만찮은 경쟁력을 갖춘 우리 상품이 있다. 바로 안경테다.
<세계 안경, 밀라노에서 경쟁한다>
우리나라 안경테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장소는 2월의 밀라노다. 매년 세계 최대 광학전시회인 Mido를 통해서다.
올해로 48회째를 맞은 이 전시회에는 역대 최다인 1,305개 업체가 참가했다. 중국이 454개사로 가장 많았고, 이탈리아 310개사,프랑스 72개사, 홍콩 68개사, 그리고 한국에서 62개사가 참가했다. 독일(51개사), 영국(42), 대만(42), 미국(38), 스페인(33), 일본(28) 등이 뒤를 이었다. 안경테, 선글라스, 스포츠고글, 안경케이스, 악세서리, 광학렌즈, 콘텍트 렌즈, 광학장비 등 안경과 관련된 모든 상품들이 전시되었다.
개별 전시관에서는 최고의 브랜드들이 신제품을 전시하고 바이어와 상담을 한다
(자료원 : 밀라노 무역관 직접 촬영)
전시관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명품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개별 브랜드관이고, 그 다음은 동일 국가 기업들이 모여서 단체로 국가관을 구성하고 있는 국제관이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소위 안경 강국의 기업들은 대부분 브랜드관에 모여 있고, 국제관에는 주로 중국, 한국, 대만, 홍콩 등이 단체관을 구성해서 참가한다. 물론 한국, 중국 기업들 중에서도 개별적으로 브랜드관에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의 경우, 한국 업체 62개사 중 32개사는 국제관에 위치한 한국관에, 나머지 30개사는 브랜드관에서 개별적으로 전시를 했다.
한국관에 참가한 30여개 우리 업체들은 주로 OEM 수출을 위한 상담에 주력한다
(자료원 : 밀라노 무역관 직접 촬영)
<브랜드가 없으면 제값을 못 받는다>
브랜드관과 국제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브랜드관 참가업체들은 자체 브랜드 제품을 팔기 위해 참가하지만 국제관 참가업체들은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브랜드 업체들에게 OEM으로 납품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즉, 같은 전시회 참가업체지만 자체 브랜드의 유무에 따라 상대하는 바이어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관에 참가하는 안경테 생산업체들은 주로 외국의 유명 브랜드 업체들에게 납품하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스펙의 제품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우리 업체가 디자인한 제품을 바이어인 외국의 브랜드 업체들이 선택하게 해서 공급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더 이상 우리 업체의 것이 아닌 구매자인 외국 업체의 상품이 된다. 왜냐하면 이 제품에 사용된 브랜드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우리 업체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제조자인 우리 업체에게 돌아오는 것은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업체가 시장에서 매겨놓은 소비자가격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업체에 계속해서 납품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체 브랜드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은 마진이지만 오더가 필요하고, 남의 좋은 일 시켜주는 줄 알면서도 제품공급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한국산 명품 안경테 등장하나?>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가 만든 고가의 브랜드 안경테가 Mido 현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Mido 주최측은 브랜드관에 전시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심사를 통해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업체에게만 전시 공간을 제공한다. 즉, 브랜드관에 전시한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브랜드 제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인정받아서 Mido에 전시하는 우리 브랜드가 10개를 넘기고 있다.
브랜드관에 참가한 10여개 한국 기업들은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경쟁하고 있다
(자료원 : 밀라노 무역관 직접 촬영)
우리 안경테 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시장을 노크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최근 2∼3년 사이에 등장한 브랜드가 대부분이고, 오래된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6∼7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62년 광학조합이 설립된 지 50여년 만에 세계 시장에 우리 브랜드 제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브랜드 뒤에는 50년의 제조역사가 있다>
브랜드를 보유한 우리 기업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독특하고도 우수한 디자인으로 무장했다. Mido 현장에서 만난 한 한국 업체는 유럽의 주요 전시회에서 우수 디자인으로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각국 바이어들이 거래를 하자며 줄을 서서 경쟁할 정도였다고 한다.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직원 구성에 있어서도 디자이너의 비중도 높을 수밖에 없다. 직원 대부분이 디자이너로 구성된 회사도 있고, 제조는 외부에 맡기고 디자인과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유럽시장에서 통하면 세계시장에서 통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유럽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으며, 가격대는 명품보다 약간 저렴한 준명품급 가격대가 많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5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안경테를 만들어 온 우리 제조업체들의 역할이다. 주로 대구지역에 소재하는 이들 안경테 제조업체들은 브랜드 업체들이 요구하는 디자인을 최고의 제품으로 만들어 준다. 즉, 명품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이 되는 요건인 품질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기업들은 브랜드 업체들과 함께 디자인에 있어서도 협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제조업체는 브랜드 보유 업체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명품을 탄생시킬 절호의 기회이다>
안경테 산업이 우리나라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크지 않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안경테 산업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안경테 산업은 대표적인 중소기업형 산업이고, 고용창출 효과가 큰 산업이다. 작업 공정은 세부적으로 보자면 250개에 달할 정도로 복잡하고,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작업자의 숙련도가 제품 완성도에 큰 영향을 준다.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공정에 따라 기업간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업이다.
이런 조건들의 충족 없이는 명품 안경테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난 50년 이상(길게 볼 때는 70년 이상)을 버텨 온 우리 안경테 산업의 역사가 소중한 이유이고, 앞으로 우리가 안경 산업을 명품 산업으로 키워야할 할 당위성인 것이다.
Mido 전시회에 참가했던 우리 업체들은 지금까지 어렵게 유지해 온 제조 기반이 무너질까 걱정하고 있다. 작업장에 젊은이들의 유입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자동화를 위한 투자는 쉽지가 않다고 한다. 정부와 각종 지원기관들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명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흔치 않은 이번 기회가 국가 차원에서 소중하게 다뤄지기를 바란다.
밀라노에서 2월에 개최되는 Mido는 세계 최고 광학전시회로 명성이 높다
(자료원 : 밀라노 무역관 직접 촬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