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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랑의 비가(悲歌)
(1)
만매산장에는 매화가 없었다.
지금은 사월이라 복숭아꽃과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다. 온 산 가득 피
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앞에 두고 화만루는 여기를 떠나고 싶지가 않았
다. 평화가 깃든 그의 얼굴에 갑자기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이 나타났는데,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가 연인을 만난 것 같았다.
육소봉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흥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서문취설은 손님을 만나지
않아." 화만루가 말을 했다.
"자네도 만나지 않으려 할까?"
"황제의 할아버지가 와도 만나지 않을걸세."
"만약 그가 없으면?"
"그는 반드시 있어. 매년 그는 많아야 네 번, 사람을 죽일 일이 있을 때만
나가거든." "그래서 그는 매년 많아야 네 명을 죽이는 건가."
"그러나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모두 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야." "누가
죽어 마땅한 사람인가? 누가 그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결정을 했지?" 화만루
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 혼자 그를 찾으러 가게, 나는 정말 여기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기를
원한다네." 육소봉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사람을 잘 알고 있
었기 때문이다.
화만루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가 한 번 결정한
일은 누구라도 그의 뜻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는 온 산 가득한 꽃을 마주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를 만나면, 먼저 내 방법을 시험해 보고 나서 자네의 방법을
시험해 보게."
방 안에는 꽃이 보이지 않았지만 꽃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은은하고 조
용한 것이 꼭 서문취설 같았다.
육소봉은 푸른 등나무로 만든 부드러운 의자에 앉아서 그를 보고 있었다.
잔에 있는 술은 연한 백옥색이었고, 그의 몸에 있는 것은 눈처럼 하얀, 가볍
고 부드러운 옷이었다.
봄바람보다 부드러운 피리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는데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피리를 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육소봉이 말했다.
"당신은 살아오면서 진실로 걱정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서문취설이 대
답했다.
"아뇨."
"당신은 지금 현재의 생활에 만족합니까?"
"내가 바라는 것이 그리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대로 만족하며 삽
니다." "그럼 지금까지 당신은 자신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 적도 없
나요?" "지금까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당신을 찾아와서 부탁을 해도, 당신은 응낙하지
않을 건가요?" "그럴 것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부탁을 하든, 부탁하는 것이 어떤 일이든, 당신은 응낙하
지 않을 건가요?"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와서 부탁을 해도
소용이 없고, 누구라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당신의 집에
불을 지르려고 한다면요?" "누가 내 집에 불을 지를 수가 있나요?"
"접니다."
서문취설은 웃었다. 그는 웃음이 적은 사람이고, 그래서 그의 웃음은 비웃
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여기에 온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
해서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거절한다면, 나는 당신 집에 불을 질러서 깨끗하
게 태워 버리려고 생각했습니다." 서문취설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고는
느릿느릿 말했다.
"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기껏해야 두세 명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 나의 친구입니다." "그래서 나도 당신에게 부탁을 하러 온 것입니다."
"당신이 언제 내 집을 불태우든 상관이 없고, 어디서 시작을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육소봉은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멍
하니 있었다. 이 사람이 말한 것은, 쏘아버린 화살과 같아서 지금까지 번복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쪽에 있는 골방에는 송진과 기름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거기
에서 태우기 시작하는 것이 좋겠고, 이런 불꽃은 저녁에 가장 보기가 좋으
니 저녁때 태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갑자기 육소봉이 말했다.
"당신은 대통, 대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서문취
설은 쌀쌀맞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대답해 내지 못한 문제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로 그들이 모든 일을 다 알던가요?" "당신은 못 믿어요?"
"당신은 믿어요?"
"내가 그들에게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당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를 물어
보았었는데, 그들이 아무 방법도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아하니 그들이 정말 당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서문취설
은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들도 틀렸군요."
"뭐라구요?"
"당신이 나를 감동시킬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나요?"
서문취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의 수염을 깨끗이 깎기만 한다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당
신과 같이 갈 것입니다."
친구들이 나중에 육소봉을 보면, 아마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진 사람이, 지금은 두 개의 눈썹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수
염이 났던 자리는 갓난애처럼 매끄럽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화만
루는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당연히 육소봉과 함께 온 서문취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미소를 지
으며 말했다.
"서문 장주(莊主)이십니까?"
"화만루."
화만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님이라 당대 최고 검객의 풍채를 볼 수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서문
취설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볼 수 없습니까?"
"장주는 '화만루는 눈이 있지만 박쥐처럼 장님이다' 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셨나요?" "당신은 어떻게 나의 발자국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그도 독
고방과 마찬가지로, 이 말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의 경공술과
검법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도 경공이 대단하였다.
화만루가 말했다.
"제가 일기로는 네다섯 명이 움직일 때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다고
하는데, 장주가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화만루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장주의 몸에 있는 살기(殺氣) 때문입니다!" "살기라고요?"
"날카로운 칼을 빼내 들면 반드시 검기가 있습니다. 장주는 평생 동안 얼
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어떻게 살기가 없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들어오시지 않은 것은 나의 이런 살기를 참을 수 없어서였군요!" "여기는
인적이 드물어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장주께서 더 많이 느끼시려고
만 한다면, 이 살기는 점차로 없어질 것입니다." "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어찌 사람을 죽일 때의 핏자국만 하겠습니까?" "뭐라구요?"
서문취설은 눈에 갑자기 이상한 빛을 나타내며 말을 했다.
"세상에는 죽이지 못한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들의
목에 칼을 찌르고 나서 당신의 칼에 터지는 핏자국을 보면, 당신은 잠시 동
안 휘황찬란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종류의 아름다
움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꽃밭에서 사라지고 있는 한 조각의 얇고 가벼운 천 같은 저녁 안개가 가
득하였고, 그는 그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화만루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서야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런 검법을 익혔는지 알 수가 있겠어." "뭐
라구?"
"그는 정말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신성하고 아름다운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야. 그는 이미 자기의 목숨을 이런 일에 바치려고 하고, 사람을 죽일
때만이 그는 살아 있는 것이고, 다른 때 그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에 불과한 거야." 육소봉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다행히 그가 죽이는 사람은 모두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야." 화만루는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없는 어둠이 이미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막 뜬 별들이 드문드문 있고, 미인의 눈썹 같은 하현달이 멀리 나뭇가지
에 걸려 있었다. 바람 속에는 꽃향기가 실려 있고, 밤은 신비하고 아름다웠
다. 화만루는 이미 신비롭고 아름다운 꿈속에 들어간 것처럼 천천히 산비탈
을 걸었다.
육소봉이 물었다.
"자네는 왜 나에게 일이 잘되었는지 아닌지를 묻지 않는 거지?" 화만루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그를 설득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자네가 안다고? 어떻
게 알았나?"
"그는 자네를 잡지도 않았고 보내지도 않았네. 자네는 화도 내지 않고. 이
것은 자네들이 벌써 만날 곳을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겠나." "자네는 내가 어
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도 아는가?"
"당연히 내 방법이겠지."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는 정이 없는 사람이지만 자네는 정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는 자네가 절대로 그의 집을 불태우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네. 게다가 자
네가 정말로 태웠더라도 그는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다." 육소봉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정말 대단하기는 하지만 어떤 한 가지 일은 끝내 생각해 내지 못
할 것이네." "어떤 일인가?"
육소봉은 수염이 있던 자리를 만지면서 물었다.
"자네가 천천히 맞추면 내가 알려주겠네."
화만루가 웃었다.
"내가 벌써 알아냈다면, 자네가 내게 알려줄 필요가 있겠는가?" 육소봉도
웃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화만루의 평화로운 미소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것을 알았다.
"자네 또 뭔가 발견했나?"
화만루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신비한 소리를 듣느라 그
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것은 그도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그는 갑자기 방향을 돌려 산비탈 아래로 갔다.
육소봉만이 그를 따르고 있었고, 별과 달이 모두 사라져 버린 뒤라서 밤
은 더욱 어두웠다.
육소봉도 멀고 어렴풋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
는 듯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율이었다.
노래 가사도 처량하고 아름다워서 사람을 감동시켰다. 어느 사랑스러운
소녀가 죽음에 직면하여 애인에게 그녀의 몰락하는 일생과 불행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육소봉은 가사를 자세히 듣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화만루의 기분이 이상
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네는 전에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나?"
화만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네!" "누가 부르는 것을 들
었나?"
"상관비연."
육소봉은 세상에서 그가 완전하게 믿는 것은 모두 열두 개 정도인데, 그
중 하나가 화만루의 귀라고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직접 보고서도 때론 잘못 볼 때도 있지만, 화만루는 지금
까지 잘못 들은 적이 없었다.
그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 표정은 지금 노래하는 것이 바로 상
관비연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실종된 신비한 소녀가 어떻게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것일까? 왜 이 깊
은 산속에 숨어서 이렇게 처량하고 원한 서린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그녀
는 누구에게 들려주려고 노래를 하는 것일까?
노래 가사처럼 몰락해 버린 소녀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의 애인에게 자
신의 쓸쓸하고 불행한 운명을 얘기하는 것처럼 그녀도 그런 것일까? 이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한 줄기 등불이 나타났기 때문에 육소봉은 더 이상 묻
지 않았다.
노랫소리는 바로 등불이 반짝이는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만루도 벌써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이 등불을 보지 못했을텐데도
그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조금도 틀리지가 않았다.
등불이 점점 가까워지자 육소봉은 그것이 작은 사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
었다. 모시고 있는 것은 산신일까? 토지신일까? 그런데 노랫소리가 갑자기
멈추어 버려서 세상이 아주 조용한 적막에 잠겨 버렸다.
육소봉은 화만루를 보고는 말했다.
"그녀가 정말로 자네에게 들려주려고 노래를 불렀으면, 가지 않을 거야."
그러나 그녀는 가버렸다. 등불은 아직 빛나고 있지만 음산한 숲 속의 사당
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얼굴의 산신은 쇠 채찍을 들고 있고 무서운 짐승들도 서 있었다. 어
두운 등불 아래서 보니 마치 선량한 사람들을 위하여 의분을 느끼고는 세상
의 나쁜 사람들을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채찍을 휘두르려고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칠이 벗겨진 상에는 낡은 놋쇠 그릇이 있었는데, 그릇에는 맑은 물이 가
득 있었고 물 위에는 한 가닥 검은 실같이 가느다란 것이 떠 있었다.
화만루가 물었다.
"자넨 지금 뭘 보고 있나?"
"탁자 위에 물그릇이 있는데, 물 안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떠 있어." "머
리카락?"
머리카락은 부드러웠고, 소녀 특유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소녀의 머리카락 같아. 방금 어떤 소녀가 여기서 노래를 부르며 이 물그
릇을 거울삼아 머리를 빗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보이지
않아." 그녀가 절대로 여기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화만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육소봉이 말했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시간에, 머리 빗을 기분이 들 정도면 분명히 예뻐지
려고 하는 소녀인가 봐." "십대 소녀치고 누가 예뻐지고 싶지 않겠나?"
"상관비연도 열일고여덟의 소녀가 아니겠는가?"
육소봉은 그를 보고는 슬쩍 떠보았다.
"자네는 전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져본 적이 있지!" 화만루가 웃었다. 웃
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의 이런 웃음의 의미는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육소봉이 물었다.
"이것이 그녀의 머리카락인가?"
그는 화만루의 귀의 예민함과 같이 그의 손가락을 믿었다. 그는 화만루가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고는 골동품의 진가(眞假)를 구분해 내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화만루는 머리카락을 받아 손끝으로 살짝 문질렀다. 그러자 얼굴에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모를 이상한 표정이 나타났다.
육소봉이 말했다.
"정말 그녀의 머리카락인가?"
화만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고,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그
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군." 화만루는 또 웃었다.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의 이런 웃음은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녀는 조금 전에 여기에 있었는데 왜 그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녀가
만약 그가 올 줄 몰랐다면 누구를 위하여 노래를 부른 것일까? 육소봉은?
모르는 체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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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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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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