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야 우지 마라, 부아야 우지 마라
#신안새우난초
몇 년 전 왼쪽 눈에서 모기 몇 마리가
아무 소리도 없이 날개짓을 하며 고속으로 비행을 하고 다녔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 정체 불명의 모기에 적잖이 놀라고 걱정도 되었지만, 안과에서 '비문증(飛蚊症)'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다행스럽게도 크게 걱정 안해도 된단다. 반년 가까이 나를 괴롭히던 그 모기 같은 실루엣들은, 거짓말처럼 어느 날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석곡
홍도!
몇 년 전까지 넘사벽 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도새우난초와 신안새우난초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침만 꿀꺽 삼켰다. 자생지 위치도, 꽃 피는 시기도 불확실했고, 무엇보다 그 길이 위험하고 안내자가 없으면 찾기 힘들다는 먼저 다녀온 꽃친들의 말에 거의 포기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야생화에 진심인 사람들은 안다. 보고 싶은 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마치 주당들이 노릇노릇 잘구워진 삼겹살 앞에서 소주를 포기하는 술꾼들의 고통과도 같다.
#석곡
산속 자생지는 이정표도 없고, 명확하게 설명을 할 수 없는 길이 대부분이다. 가본 사람도 어디라고 딱 짚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 길을 찾기 위해 수 년에 걸쳐 홍도 자생지 정보와 숙박, 배편 등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기 같았던 홍도로 가는 길에 마침내 고속도로가 깔렸다.
#신안새우난초
작년에 “홍도 갑시다”라는 말을 꽃친들에게 꺼냈고, 올해 초 일사천리로 숙소와 배편 예약까지 마쳤다. 5월 둘째 주가 적기라는 정보로 예약을 하였으나, 육지의 꽃이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피는 것을 감안해 일정을 셋째 주로 조정했다. 날짜를 정해두면 시간이 더디게 흐르기 마련이다. 그렇게도 길게 느껴졌던 5월 세 번째 주말이 다가왔다. 드디어 홍도로 출발이다.
#혹난초
새벽을 가르며 두 시간 사십여 분을 달려 목포항에 도착했다. 시원한 대구탕으로 아침을 때우고 홍도행 배에 올랐다. 배 멀미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파도는 잔잔했고, 세 시간여 만에 홍도항에 발을 디뎠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우뚝 솟은 홍도의 비경은 말로 다 하기 어렵다. 꼭 직접 눈으로 보시기를 권한다.
#구실잣밤나무
간단한 점심을 먹고, 고대하던 신안새우난초와 다도새우난초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게 이어진 데크 계단길을 오르자 소사나무 군락이 우리를 반기고, 진한 너도밤나무 꽃향기가 낯선 남자의 향기처럼 코끝을 괴롭혔다. 데크 끝에는 동백나무가 군락으로 자라고 있었고, 그 아래에 두루미꽃과 흑산도비비추 군락지를 지나 드디어 첫 번째 자생지를 만났다.
#흑산도비비추
마침내 마주한 신안새우난초와 다도새우난초에 일행들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들떴고, 너도나도 신들린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나 짙은 구름에 가려 빛이 없었고, 숲속이라 셔터 속도 확보도 어려웠다. 사진은 대부분 흔들리고 초점도 빗나갔지만, "예쁘다 예쁘다"를 연발하며 SD카드를 채웠다.
#금새우난초
이렇거 첫날 탐하기는 석곡 자생지를 지나 혹난초를 그냥 지나치며 금새우난초를 대~충 보고, 또 다른 자생지에서 신안·다도새우난초를 만나며 신나게 탐하기를 마무리 했다. 저녁을 먹고 내일 일정을 논의한 끝에 두 분은 유람선 관광을, 나머지 일행은 다시 어제 탐한 길을 탐하기로 했다.
#다도새우난초
둘쨋날에 일행들은 어제 갔던 길로 가시라 하고 나는 청가시나무, 굴거리나무, 동백나무가 우거지고 쓰러진 잡목들이 얽힌 정글 같은 길로 들어섰다. 청미래덩굴 가시에 온 몸이 긁히고, 머리는 거미줄에 뒤덮였고, 오른쪽 안경 끝에도 벌레가 매달린 거미줄이 보였다. 아무리 털어내도 거미줄이 걸리고 또 나타났다. 신초 몇 개체만 확인하고 수확 없이 일행들과 합류하며 '거미줄만 뒤집어썼다'고 넋두리를 했다. 둘째 날은 날씨가 더없이 좋아서 그냥 셔터만 눌러도 예술 작품이 탄생 할 것 같은 날이었다 (실제는 사진이 엉망임ㅋ).
#신안새우난초
이제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때까지만 해도 ‘왜 오른쪽 안경 끝터리에만 거미줄이 자꾸 걸리는 거지?’ 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지 말던지 위험천만한 절벽 위의 멋진 풍경을 보며 어제 찾지 못했던 석곡을 찾고, 신안새우난초 무더기도 새로이 찾아서 눈맞춤한 후 하산하며 혹난초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비싸지만 맛있는 돌돔회로 늦은 점심을 먹고 일정을 마무리하고 여객선 대합실로 향했다.
#신안새우난초
대합실에 도착했을 쯤에는 거미줄이 더는 나의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다시 세 시간여 지루하게 배를 타고 목포에 도착하여 고속도로를 세 시간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집에서 짐을 풀고, 아내의 눈흘김을 뒤로한 채 샤워를 하다가—또 벌레를 두렁주렁 달고 있는 거미줄이 나타났다.
#신안새우란초
어? 어?
이건 거미줄이 아니었다.
이제서야 깨달았다. 몇 년 전에 온다간다 말도 없이 왔다가 사라졌던 비문증! 비문증 이었다~~~ㅠㅠ!
부아야, 우지 마라.
그건 거미줄이 아니고 비문증이란다.
비문증? 거 까이꺼.
며칠 괴롭히다 말겠지.
그러니 우지 마라~~~.
#신안새우난초
*신안.다도 동정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오동정 바로잡아 주세요.
*홍도에서 야생화 탐방의 퍼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그저 부럽습니다
거미줄.모기 까이꺼~~~
울지마시고 건강하세요
홍도 쥑입니다
아래에서 3번째도 신안새우네요
예 감사합니다
먼길 다녀오셨군요
새로운 종들과 대면을 축하합니다
우와...정성으로 담아주신 귀한 자연들을 덕분에 만나 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쁜 새우난초들의 많은 종류들 또 석곡 멋집니다
그 험한길 다녀오셨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가고픈곳이네요
적기에 만나셨군요.
안개 낀 모습이 오히려 멋집니다.
야생화에 대한 열정과 이야기를 구수하고 정감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십니다. ^^~
저도 오래도록 비문증이 심한데.. 평소에 느껴지지 않다가 어떨 땐 또 심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너도밤나무'는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아이로 위 식물은 '구실잣밤나무'로 보여 집니다.
아 맞습니다
구실잣밤나무 였어요
저는 비문증은 좋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