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직선제를 처음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건국 78년이 지나는 동안 모두 아홉 차례 헌법 개정이 있었다.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대통령중심제였다.
대통령 선출 방식은 국민의 직접선거였다.
1948년의 제헌헌법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접선거 대통령중심제였다.
간접선거제를 직선제로 바꾼 개헌이 헌정사상 세 번 있었다.
1952년의 제1차 개헌(자유당)
1963년의 제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
1987년의 제9차 개헌(현행헌법)이 그것이다.
“국민이 국가원수를 직접 선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이야.
그걸 누가 반대한다는 거야?
한국 국민이 민주주의를 할 만한 능력을 보여주게 될 때엔 그 권리는
국민에게 돌려줘야 해”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에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1948년 취임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지 않고 국회에서 선출됐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국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대통령 직선제 선거는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필자의 이 질문에 의외로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다.
6·25전쟁 중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였다.
필자 나이 되는 사람은 “부산 정치 파동”이라는 말을 안다.
이말은 자유당 이승만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로 인식돼 왔다.
피란지 부산에서 임기 만료를 앞둔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 간선제 선거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수행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6.25전쟁을 미국이 주도적으로 지원하고 있었지만 대단히 비우호적이라
이승만 대통령은 판단했다.
만일에 이승만 자신이 대통령이 안 되면 북진통일은 불가능하고 전쟁도
흐지부지 대한민국에 불리해질 것으로 판단했다.
이승만은 전격적인 개헌으로 재선을 추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개헌의 과정은 거칠었다.
그러나 당시 국민 대다수가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숭앙(崇仰)하던 분위기라
직선제는 승산이 있었다.
필자 기억에도 “이승만 대통령” 호칭보다 “국부(國父) 이승만 박사”로
더 많이 불려졌다.
재선(再選)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김일성 공산 침략군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그리고 미국의 한국전쟁 잔류(殘留)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 때 없어질 뻔했던 한국을 지켜냈다.
미국과의 외교를 통해 한국이 먹고 살 수 있게 하고 부흥할 수 있도록 한
건국의 아버지입니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미국이 내 말을 안 들어서 전쟁 났다.
당장 달려와 이 나라 대한민국을 구하라!”
6.25침략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대통령이 도쿄에 있는 맥아더 장군을 깨워
호통 친 첫 마디 말이다.
미국이 이승만의 무슨 말을 안 들어서 전쟁이 일어났던가?
그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요구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이 거절한 것이다.
2018.06.08.뉴데일리】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투르만 대통령 간에
진통 끝에 나온 결과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대규모 경제-군사원조다.
휴전동의를 애걸하는 미국에게 이승만은
“분단을 고착시킬 휴전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행동을 방해하지는 않겠다”는 딱 한줄 각서만 써주었다.
휴전협정이 조인(1953년 7월27일) 되고 나서, 1953년 8월8일 역사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것이다.
이승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필자는 1980년 컴퓨터를 배우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자료를 보는 대로
정리한 것이 수백 건 된다(TV. 신문. 책)등의 내용을 파일 정리를 하고 있다.
조선조 500년 대한민국 80년사를 통하여 이승만 같은 지도자는 없다.
이승만 하면
자유당 독재, 부정건거 4.19혁명당사자—등등 부정적인 면만 생각한다.
이승만의 유럽과 미국을 통한 독립운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반드시 이승만의 독립운동 전기를 읽어야 한다.
정말 독립을 위한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은 같은 애국자이지만 격이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김구선생의 독립활동 무대가 중국 상해에 한정된 반면에
이승만 대통령은 유럽과 미국이 무대였다
대한민국 독립을 보는 시야가 다르다.
오늘날 한반도 반쪽 대한민국이 있는 것도 오로지 이승만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만일에 이승만이 3.8선 이남 대한민국을 선포하지 않았으면
지금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고 김일성 독재국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1950년 1월 12일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Dean Gooderham Acheson)이 발표한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필립핀은 포함되고 대한민국은 빠졌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생각한 것이다.
지금 바이든이 삼성전자를 찾아오고
윤석열 대통령을 국빈 초청하는 것도 대한민국 GDP 3만 5천 달러 국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존재가 누구 때문인가?
이승만 박정희 때문이다 !
건국대통령 이승만에 대하여 국민이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간단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이 글을 쓰는 것도
윤석열 정부 보훈처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재평가할 시점”
(2023.03.27.아시아경제)
기사를 읽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대한민국이 제대로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다.
세계에 건국대통령이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
부끄럽지도 않은가?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