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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람이 문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순간, 쇠채찍을 들고 맹수들을 거느리고
있던 검은 얼굴의 산신상이 갑자기 열리면서 네 척 길이의 채찍이 조각조각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거대한 산신상도 산산 조각이 나서 땅에 떨어졌다.
먼지가 가득 피어 올랐지만 육소봉은 산신상 뒤쪽 벽에 누군가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몸에 흐르는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죽은 사람이었다. 마치 그를 거기
에 못박아 놓은 것처럼 하나의 판관붓이 그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판관
붓에는 관 앞에 세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깃발 같은 두 조각의 누런
천이 펄럭이고 있었다.
"피로써 피를 갚다."
"이것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 본보기이다."
이와 같은 두 마디의 말이, 똑같이 피로 적혀 있었다. 그 핏자국은 흥건히
스며들어 있었다. 육소봉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고도 그가 누
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독고방이었다!
유여한이 아니라, 독고방이었다. 죽으려는 사람은 죽지 않았고, 생각지도
않는 사람은 이렇게 죽은 것이다.
육소봉은 못 견디겠다는 듯 한탄스럽게 말했다.
"신상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고, 죽은 사람을 바로 거기에 놓아두곤 우리
들이 와서 볼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야." 화만루의 얼굴색이 창백해지
면서 급하게 물었다.
"죽은 자가 상관비연인가?"
"죽은 자는 독고방이야. 나는 정말 두 번째로 죽은 사람이 그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화만루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는 왜 여기에 왔을까? 상관비연은 왜 여기에 왔을까? 정말 그녀가 사
람을 해친 것일까? 정말 그녀가 벌써 청의루의 부하가 돼버린 걸까?" 육소
봉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는 항상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데, 그녀의 일만은 왜 그렇게 일부러
나쁘게만 상상을 하는 것인가?" 화만루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을 하더니 말
했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 관심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렇다! 관심이 있으면 생각을 할 수밖에 없고, 생각을 많이 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끝까지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해하기가 쉽고, 헤어질 때도 더욱 고통
스러운 것이다.
육소봉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쨋든 그녀는 아직 살아 있네. 어떤 사람이, 목에 칼이 가까이 있는데
어찌 그리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육소봉은 젓가락으로 술잔
을 두드리며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인생의 즐거움은 사라지기 마련이니 달빛 아래서 술 한잔 하지 않을 수
없나니....." 노랫소리가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부르는 것은 이 두
소절뿐이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화만루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화만루가 마침
내 입을 열었다.
"나는 결코 자네의 노래가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네만, 자네 두 소절을
바꾸어 부를 수는 없겠나?" "그럴 수 없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나는 이 두 소절밖에 모르거든."
화만루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육소봉이 아주 뛰어나고, 총명하기 이를 데가 없으
며 게다가 어떤 무술이든지 배우기만 하면 잘한다고들 말하던데, 실제로 자
네 솜씨는 나귀보다 더 엉망이야." "내가 노래부르는 것이 싫다면, 왜 자네
가 직접 부르지 않나?" 그는 화만루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다그쳤다. 왜냐하
면 그는 지금까지 화만루가 이렇게 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본 적이 없
었고,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대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술은 절대로 좋은 술은 아니었다. 산속 허름한 여관에서 어떻게 좋은
술을 구할 수 있겠는가? 좋은 술은 아니지만 화만루는 한 잔을 다 마시고는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구름 한 조각과 옥 하나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린 여자의 짙게 그린 눈썹
과 소라 모양으로 쪽찐 머리 같구나. 가을 바람과 비가 서로 어우러지고, 방
밖의 파초는 긴밤 어찌하겠는가." 이 '장상사(長相思)'는 남당(南唐)의 마지
막 군주 이욱(李煜)이 그의 죽은 부인 대주후(大周后)를 생각하면서 지은 것
이었다. 슬픔에 사로잡힌 노래 가사에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묘사되어
있었다.
육소봉은 화만루가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고, 그토
록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사랑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
되었다.
그러나 상관비연은 어떤가?
그녀의 행방은 정말 묘하고, 하는 일도 아주 이상해서 육소봉조차도 그녀
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화만루는 이미 사랑의 늪에 빠져 버리지
않나? 육소봉이 말했다.
"내 노래가 비록 좋지는 않지만, 자네 노래는 오히려 더 엉망이야. 내 노
래는 적어도 자네를 웃기기는 했지만, 자네 노래는 나를 웃기지도 못했어."
"그래서 결국은 우리들이 잠자코 술을 마시는 것만 못하다는 거로군. 그렇
다면 술이나 취하도록 마시자구." 그렇게 그들이 술잔을 들어 쓸 때 갑자기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육소봉 도련님이 아니십니까?"
밤은 이미 깊었고 사람들도 모두 돌아가 버린 이 산 속의 여관에 다시 올
사람도 없었고, 더군다나 육소봉을 찾아올 사람은 더 더욱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의외로 찾아왔으며, 뜻밖에 육소봉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의 차림새를 보니 산 속의 사냥꾼 같았고, 손에 든 대바구니 속에는 한
마리 잘 구워진 꿩이 담겨져 있었다.
육소봉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왜 육소봉을 찾습니까?"
사냥꾼은 대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것은 육도련님의 고모님이 특별히 보내신 겁니다. 저더러 육도련님의
술안주로 가져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나의 고모라고?"
"당신이 육소봉 도련님이십니까?"
사냥꾼은 놀란 듯이 물었다.
육소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도련님도 아니고, 고모 또한 없는데." "반드시 있을 겁니다.
틀림없어요."
"왜?"
"그분이 당신의 고모가 아니라면, 왜 은 다섯 냥이나 써서 이 꿩을 샀으
며, 또 은 다섯 냥이나 써가면서 나를 보냈겠습니까? 단지....." "단지 어떻다
는 겁니까?"
사냥꾼이 그를 쳐다보며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육도련님은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진 사람이어서 내가 금
방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당신은 눈썹이 두 조각밖에 없군요." 육
소봉은 정색을 하였지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은 눈썹이 네 조각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냥꾼도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보려고 왔습니다. 은 다섯 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고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린 고모입니다."
육소봉이 기가 막혀서 물었다.
"어린 고모라구요? 당신은 이렇게 큰 사람이 어린 고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냥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원래는 믿지 않았습니다만 그녀가 나이는 많지 않지만 촌수가 높아
서, 나이가 쉰 살이 넘은 화만루라는 증손자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육소봉
과 화만루는 마주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화만루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맞아요, 나는 한 분의 시고모가 있습니다."
사냥꾼이 멍해져서는 물었다.
"당신이 화만루입니까? 당신이 올해 오십 몇 살이라구요?" "나는 몸보신
을 잘해서 청년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냥꾼이 급히 물었다.
"어떻게 몸보신을 하는지, 저도, 저도 배울 수 없을까요?" 화만루가 담담
하게 말했다.
"그것은 쉬워요. 나는 매일 오십 마리의 지렁이와 스무 마리의 도마뱀과
세 근의 사람고기를 먹을 뿐입니다." 사냥꾼은 그를 바라보고는 눈동자를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도망가
버렸다.
육소봉은 끝내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화만루도 웃으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그 작은 요괴가 거짓말하는 것을 보니 정말 죽
은 사람이라도 그녀에게 속아넘어갈 것 같아." 그가 말을 하면서, 젓가락을
들어서는 왼쪽 편의 창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육소봉이 몸을 날려 공중에
서 창문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양갈래로 머리를 굵게 땋은 소녀가 창밖
에 숨어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들켜 버린 상관설아의 눈은 놀라서 더
욱 커졌고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육소봉이 그녀의 땋은 머리를 붙잡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바로 이 작은 요괴가 나의 고모 노릇뿐만 아니라, 자네의 시고모 노릇까
지 하는군." 설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나는 단지 우스운 얘기를 했을 뿐인데, 웃지는 않고 괜히 남의 땋은 머
리를 잡고는 화풀이를 하는군요." 화만루가 능청스럽게 덧붙였다.
"게다가 은을 열 냥이나 썼고 꿩의 맛도 좋을텐데, 감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결례는 하지 말아야지." 설아가 말했다.
"내 증손자는 양심이 있어 바른말을 하는군요."
육소봉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양심 있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보다 한 수 아래이지." 그가 방
심하며 웃는 동안 설아를 잡은 손이 느슨해지자, 그녀는 작은 여우처럼 육
소봉의 옆구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재빠르지 못해, 육소봉이 또 그녀의 땋은 머리를 붙잡았다.
육소봉이 그녀를 의자에 앉히곤,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내가 몇 가지만 묻겠는데, 너는 정직하게 대답해라." 설아는 눈을 깜빡거
리며 타이르듯 말했다.
"나는 원래 거짓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네가 지금 하는 말도 거짓말이다."
설아는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한마디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와 얘기하겠다
는 거죠?" 육소봉이 이 작은 요괴와 말싸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말을 했다.
"묻겠는데, 너는 왜 우리 뒤를 따라왔지?"
"나는 당신을 쫓아오지 않았어요. 그러려고는 했는데, 따라잡을 수가 없었
어요." 이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들을 찾아내었지?"
"나는 당신들이 서문취설을 찾아올 것을 알고 미리 와 있었어요!" "너는
계속 여기서 기다렸니?"
"벌써 와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세수도 못해서 몸
에서는 냄새가 나요. 못 믿겠으면 와서 냄새를 맡아 보세요." 화만루가 또
웃었다. 그는 마른 기침을 여러 차례하고는 말했다.
"너는 왜 우리를 기다렸지?"
"비밀이 있어 당신에게 말하려고 해요."
"무슨 비밀이지?"
설아는 입을 샐쭉거리며 마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녀는 몸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제비 하나를 꺼내 놓으며 말을 했다.
"이걸 봐요. 이것은 내가 그날 저녁 꽃밭에서 찾아낸 거예요!" 육소봉은
그것을 보았지만 이것에 무슨 비밀이 있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설아가 계속 말을 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죽기 전에 언니에게 준 것이에요. 언니는 이것을 보
물처럼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어요. 내가 이틀만 빌려 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지금 나는 이것을 땅에서 주웠어요." 그러자
육소봉이 말했다.
"아마 그녀가 조심하지 않아서 땅에 떨어뜨렸을 거야." 설아는 힘껏 고개
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절대로 아니에요. 이것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체를 옮기다가 모르는 사이
에 떨어진 거예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어 정말로 아주 슬
퍼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육소봉이 말했다.
"너는 정말로 너의 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설아가 입술을 깨물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누가 죽였는지도 알아요." "
누구지?"
"바로 나의 그 재수없는 사촌 언니예요."
"상관단봉이?"
"바로 그녀예요. 그녀는 언니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소추우, 독고방, 유여
한까지 죽였어요." "그 세 사람 모두가 그녀에게 죽었다고?"
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직접 봤어요. 그녀와 유여한은 같은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
데, 갑자기 그녀가 비봉침(飛鳳針)으로 한 번에 유여한을 죽여 버리고는 그
의 시체를 침상 밑에 묻었어요." 육소봉이 한숨을 쉬었다.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었던 유여한이 이번에는 그렇게 빨리 죽었
군!" "비봉침은 그녀의 암기(暗器)로, 유퍼스 나무로 만든 거예요. 그리고 그
침은 맹독성이 있어 한방에 상대의 목숨을 끊어놔요. 언니도 분명히 그녀의
이 암기로 죽임을 당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녀가 언니의 시체를 어디에 숨
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
물이 흘러내렸다.
육소봉은 또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너의 말은 정말로 공평하고 합리적이어서 진실 같지만, 나는 한마디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당신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당신은 이미 그녀에게 홀려 있기 때문이에요." 육소봉은 눈물을 흘리며 마
를 하고 있는 설아를 보자 마음이 흔들려서 다시 물어보았다.
"그녀와 너의 언니는 사촌지간인데, 왜 언니를 죽이려는 거지?" 설아가 이
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 누가 알 수 있겠어요? 아마 그녀는 언니가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예뻐서 계속 언니를 미워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럼 유여한은?
그는 계속 충성스럽게 그녀를 위해 일을 해왔는데, 왜 유여한을 죽였지?" "
그녀가 독사처럼 독한 여자이기 때문이에요. 언니도 그 손에 죽었을 거예요.
그녀가 어떤 사람을 죽이지 못하겠어요?" "나는 네가 그녀를 미워하는 것을
알아. 그러나....." 설아가 갑자기 그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말을 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 때문에 그녀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내가 질
투를 하고 있다고 말예요. 그러나 아녜요. 그녀는 겉으로는 내게 잘해주지
만, 실제로는 어릴 때부터 뒤에서 나를 괴롭혀 왔어요." 육소봉도 그녀의 말
을 끊고는 말을 했다.
"그녀는 올해 열아홉이고, 너는 스무 살인데 그녀가 어떻게 너를 괴롭힐
수 있지?" 설아는 말을 하지 못했다.
육소봉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로 너의 언니를 생각한다면, 이제 마음을 놔도 좋아. 왜냐하면
나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거든." 설아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유여한을 죽일 때 나는 정말 창 밖에서 그 장면을 직접
보았어요. 그래서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상관단봉이 벌
써 침상 아래에 파묻었다는 유여한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밤안개가 짙고, 달빛은 어렴풋했다. 유여한은 천천히 흐린 달빛 아래에서
걸어와서는 작은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의 흉한 얼굴을 달빛 아래에서 보다 더욱 무섭게 보였다.
그러나 그의 기분은 안정돼 보였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설아에게 말했
다.
"이제 밖에서 충분히 놀았으니, 나랑 같이 돌아가자. 왕할아버지가 특별히
나를 보내어 너를 데리고 돌아오라고 하셨다." 설아는 눈을 감고는 키득거
리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유여한의 눈에 슬픈 기색이 떠오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사촌 언니는요?"
"그녀도 네가 빨리 돌아오길 바라고 있어. 너는 지금 너무 어리니까, 더
크기를 기다려서 다음에 나와 놀아도 늦지 않아. 너의 사촌 언니를 봐라. 그
녀는 지금 어디를 가도 아무도 그녀를 상관하지 않잖니." 설아는 그를 보고
는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육소봉의 손을 잡고 큰소리로 말을 했다.
"살려주세요, 저 사람과 같이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요." 유여한이 말했다.
"너는 아직 더 커야 돼. 지금 너는 어린아이이고, 그분들이 하시는 일은
중요한 일인데 어찌 너를 데리고 갈 수 있겠느냐!" 그때, 갑자기 밖에서 말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밖에 서 있는 것은 육소봉이 타고 왔던 그 마차였
다.
유여한이 말했다.
"너는 빨리 마차에 올라라. 한숨 자고 나면 집에 닿아 있을 것이다." 마침
내 설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육소봉은 가련한 모습의 그녀가 마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
면서 중얼거렸다.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소녀인데, 왜 하필 거짓말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인지..... 쯧쯧." 화만루는 계속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어떤 사람들은 남을 속이려
고 거짓말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 그는 이어서 말을 했다.
"정말 가엾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동정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주의
를 끌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야." 육소봉이 말했다.
"그럼 설아의 경우는 그녀가 다른 사람의 사랑스런 보호나 동정이 결핍되
었기 때문이라는 건가?" "그렇지."
육소봉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곧 용서를 구하지. 아
마 내가 그들을 위해 좀더 생각을 많이 했어야 하는 건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유여한이 문밖에 나타나서는 그를 보고 조용히 말했
다.
"설아가 할말이 있다길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려고 왔소." 육소봉은 이
무서운 사람의 눈 속에 따뜻한 표정이 일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당신에게 꼭 할말이 있었는데, 그 말인즉, 당신은 수염이 없을 때
가 수염이 있을 때보다 젊어 보여서 더 멋있다는군요."
육소봉은 손가락 끝으로 입술 위의 수염이 났던 자리를 만지면서 수염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운 듯 만지고 있었다.
화만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에 불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
지. 그러나 지금 나는 자네의 그 수염이 깨끗이 사라진 것을 정말로 보고
싶다네. 도대체 어떤 모습인가?" "젊어 보이고, 멋있어."
"그럼 전에는 왜 수염을 길렀나?"
"내가 너무 멋있어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나에게 반하는 것이 두려워서
였지." 화만루는 웃으며 말을 했다.
"이틀 동안 자네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인가?"
육소봉이 쌀쌀맞게 대답했다.
"내가 왜 나에게 화를 내겠나?"
"왜냐하면 가엾고 사랑스럽고 거짓말을 하는 소녀에게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가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화를 낼까
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거야." 육소봉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떤 사람이 두 장의 초대장을 가지고 와 있었다.
<삼가 변변치 않은 술을 마련하여 귀하를 초대하오니, 꼭 왕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래쪽의 서명은 '곽천청(藿天靑)'이라고 되어 있었다.
간단한 몇 글자가 단정하게 적혀 있고, 먹이 아주 진해서, 각 글자가 약간
씩 볼록해졌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볼 수 있
을 만큼 튀어나와 있었다.
화만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곽총관이라는 분은 정말로 세심하신 분이시군." "어찌 세심한 것뿐이
겠는가."
초대장을 가지고 온 말주변이 좋은 젊은이가 문 밖에서 몸을 굽히고 말을
했다.
"곽총관께서, 두 분이 왕림하실 것을 허락하시면 저더러 마차를 준비하여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두 분이 주광보기(珠光寶氣)문 근처에 도착하시
면, 곽총관께서 두 분이 타신 마차를 공손히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
가 우리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젊은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 팔백 리 이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곽총관께서 모
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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