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무림의 혈투
(1)
술자리는 연못가의 누각에서 열렸다. 사방의 연못은 아주 맑고 적벽돌로
둥글게 만든 교각은 운치있어 보였다.
진주로 만든 그물이 창문처럼 높이 솟아 있고, 바람 속으로는 연꽃향기가
실려오고 있었다.
벌써 사월이다.
화만루는 조용히 이런 갑부 특유의 넓고 향기로운 누각의 분위기를 만ㄲ
하고 있었다. 그는 곽천청의 생김새를 볼 수는 없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렸다.
곽천청의 목소리는 낮고 힘이 있었다. 자신의 말에는 주의해서 경청하기
를 바랐고, 또한 모두들 그렇게 했다.
이것은 그가 매우 자신이 있고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그는 원칙이 있었고, 매우 자신만만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런 그를 교만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화만루는 이런 사람을 특별히 싫어하지 않았고, 곽천청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손님은 두 사람 더 있었는데, 한 사람은 염(閻)씨네의 가정교사이면
서 식객인 소소경(蘇小卿)이고, 또 한 사람은 관중(關中)의 연합 표국(漂局;
옛날, 여객화물의 안전을 위해 산동 사람에 의해 경영 되었던 일종의 군송
업)의 주인인 '운리신룡(雲裏神龍)' 마행공(馬行空)이었다.
마행공은 무림에서 이름을 날린 지 오래되었고, 실력도 대단해 이름에 걸
맞는 사람이었다. 화만루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그가 곽천정에게 말을 할
때는 약간은 아첨하는 듯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무림의 호걸들은
어느 자리에서건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소소경은 술에 빠져 있는 사람 같았지만 진부한 사람은 아니었다. 곽천정
은 그를 소개할 때 학식이 풍부한 거인(擧人;명청시대 때 향시에 합격한 사
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들리는 그의 목소리로 봐서는 매우 젊은 사람 같
았다.
주인과 손님이 다 합쳐 다섯 명이었다. 이것은 화만루가 가장 좋아하는
손님 초대 방식이었다. 주인이 세심할 뿐만 아니라, 손님의 마음도 잘 안다
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직 술과 음식이 차려지지 않았다. 화만루는 급하지는 않았는데도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누각에는 등이 많지 않았지만 대낮같이 밝았다. 사방 벽이 모두 야광 구
슬로 장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슬의 밝기가 부드러워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소소경은 손님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남당(南唐)의 마지막 군주
의 풍류서사를 얘기하고 있었다.
"군주와 소주후(小周后)의 침실에는 등이 없었다고 합니다. 소설에 기록되
어 있기로는 강남의 대장군인 이 후주(後主;마지막 군주)의 귀여움을 받은
어느 후궁은 밤에 등을 보면 항상 눈을 감고 말했는데 연기 때문에 양초로
바꾸어서도 눈을 감고 말했다고 합니다. 연기가 더 심하다고요. 어느 날 어
떤 사람이 그녀에게 물었답니다. '궁중에는 왜 등불이 없습니까?' 하고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지요. '궁중의 수중 누각에는 밤이면 큰 진주를 걸어 그
빛으로 침실을 비추고 있어요'라고." 곽천청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 군주의 사치는 너무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당은 멸망했죠." 소소경이 말했다.
"정이 많은 사람은 황제 노릇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행공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만약 곽총관 같은 사람이 있어 재상을 시켰다면, 남당도 아
마 멸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육소봉이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욱(李煜)이라는 사람은 몇백 년 전에 태어났지만 지금 여기에 있었으
면 나보다 더 급하게 술을 마셨을 겁니다." 화만루가 웃었다.
곽천청은 허탈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했다.
"술과 안주는 벌써 준비되어 있지만, 주인 어르신께서는 오늘 육소봉과
화공자 같은 손님들이 오셔서 함께 모여 떠들썩하게 즐기기를 원하셨습니
다." 육소봉이 말했다.
"우리들은 지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까?"
곽천청이 말했다.
"만약 기다리시기 불편하시다면, 우리들 먼저 음식을 차려도 괜찮습니다."
마행공이 서둘러 말했다.
"좀더 기다려도 상관없어요. 주인 어르신께서는 오늘의 흥취를 좋게 생각
하고 있는데, 우리들이 어찌 그의 흥을 없애버릴 수 있습니까." 갑자기 누각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도 여러분의 흥을 깰 생각은 없습니다. 자, 빨리 술을 내와라, 빨리 술
을 내와." 한 사람이 큰소리로 웃으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날
카롭고 가늘었다. 살결은 소녀같이 희고 포동포동한 얼굴이었고, 큰 매부리
코가 남자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화만루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원래가 대금붕왕의 내무총관이었던가, 태감이었던가?) 마행공
이 일어나서는 웃으며 말했다.
"주인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염철산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먼저 육소봉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면서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옛모습 그대로군요. 저번에 나와 태산에 일출을 보러 갔을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단지 눈썹이 어떻게 두 조각만 남았지요?" 그는 말을
할 때 산서(山西) 말투를 잊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그가 산서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육소봉은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돈이 없어 외상으로 술을 마셨더니, 술집 주모가 수염을 이렇게 밀어버
렸어요." 염철산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제기랄, 음탕스런 여자들은 자네의 수염난 얼굴에 비비기를 좋아할 거
요." 그는 돌아서서는 화만루의 어깨를 잡고는 말했다.
"자네가 정말 화(花)씨의 일곱째 아들인가? 몇몇 형은 여기에 왔었는데,
셋째와 다섯째 아들은 정말 술을 잘 마시더군." 화만루가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일곱째도 몇 잔은 마실 수 있습니다."
염철산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좋았어, 내가 숨겨두었던 분주(산서성 분양현이나 행화촌에서 생산되는
소주) 몇 항아리를 내놓아라. 오늘 취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나
쁜 놈으로 내몰 것이다." 산서의 분주는 정말로 오래된 것이었고, 음식들도
최고의 것들이었다. 특히 잉어 요리는 별미였다. 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긴
것, 기름과 설탕을 넣어 볶아 간장을 넣어 익힌 것들은 사람들의 손과 입을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염철산은 희고 부드러운 손으로 육소봉에게 계속 음식을 집어 주며 말했
다.
"이것은 우리 산서의 이름난 음식들이오. 그리 좋은 것은 아니더라도 다
른 곳에서는 절대로 먹어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육소봉이 물었다.
"주인 어르신은 고향이 산서입니까?"
염철산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원래 토박이오. 내가 보기에는 그냥 큰 달걀 노른자일뿐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제기랄." 그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제기랄'이라는 말을 말
을 써서 가능한 한 그가 남자이고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
게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육소봉도 웃었다.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고는 갑자기 물었다.
"엄총관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십니까?"
마행공이 급하게 말했다.
"곽총관이지 엄총관이 아닙니다."
육소봉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주광보기각의 곽총관이 아니라, 옛날 금붕왕조의 내무총
관 엄립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염철산을 바라보
고는 말을 이었다.
"이 주인 어르신은 분명히 아실텐데요."
염철산의 윤기가 흐르고 부드러운 얼굴이 순식간에 긴장이 되면서 웃고
있던 모습도 기괴하게 굳어버렸다.
보통 때의 그는 기쁘고 슬픈 것을 잘 나타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육소봉의 말은 채찍처럼 그의 수십 년 된 상처를 들춰냈다. 그의 치명적인
상처는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육소봉이 눈에 빛을 띠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주인 어르신이 그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는 수십
년 된 오랜 빚이 있는데, 지금 그를 찾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염철산은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
"곽총관."
곽천청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염철산이 쌀쌀하게 말을 했다.
"화공자와 육공자는 여기에 있고 싶지 않으신 것 같으니, 빨리 그들을 위
해 마차를 준비하여 그들이 즉시 갈 수 있도록 하여라." 그는 벌떡 일어나
서 고개도 돌려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서 나가버렸다.
그러나 그는 문을 나서지 못했다. 문 밖에서 웬 사람이 그의 갈길을 막고
냉정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돌아갈 마음도 없으며, 당신도 여기 있는 것이 좋을 것이오!" 눈
처럼 하얀 옷을 입고, 허리에는 아주 오래된 검은빛의 긴 칼을 찬 사내였다.
염철산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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