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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詩를 映畵로 읊다] 〈52〉 아! 그리운 옛날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재스민은 파산 후에도 화려했던 삶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벤트 디 제공
우디 앨런 감독(Woody Allen, 1935- )의 ‘블루 재스민(Blue Jasmine)’(2013년)에서 재스민은 동생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되어서도 과거 뉴욕에서의 호화로운 삶을 잊지 못한다. 명말청초(明末清初) 장대(張岱/1597~1689?) 역시 자신의 장원(莊園)을 잃고 소작농(小作農)으로 전락한 뒤에도 풍요롭던 옛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연명(陶淵明)의 가난한 선비를 읊은 시에 화운하여 쓰다 7수(和貧士七首)’중 첫 수
추수철 되어 모두 희망 있지만,
가능 반딧불이만 의지할 곳 없구나. (중략)
산에 비 내려 주룩주룩 적시니,
날개 젖어 날 수가 없네.
산모퉁이 짐짓 다리 뻗고 앉을 만하지만,
떠도는 처지라 다시 어디로 돌아갈까.
저물녘 맑은 바람 불어 오는데,
어찌 춥고 배고프지 않으랴?
처량하게 옛집 생각하노라니,
폐허가 되었음에 갑자기 슬퍼지네.
秋成皆有望(추성개유망), 秋螢獨無依(추형독무의). (중략)
霏霏山雨濕(비비산우습), 翼重不能飛(익중불능비).
山隈故盤礡(산외고반박), 倚徙復何歸(의사복하귀).
淸飇當晩至(청표당만지), 豈不寒與飢(기불한여기)?
悄然思古苑(초연사고원), 禾黍忽生悲(화서홀생비).
반딧불이, Luciola cruciata, 개똥벌레(학명: Luciola cruciata),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에 속하는 곤충.
영화와 달리 시인의 처지는 시대의 격변과 관련이 깊다. 그는 강남(江南)의 산음(山陰,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에서 집안의 장서(藏書)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학자로서 풍족하게 살았다. 하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뒤 모든 것을 잃고 산속에 은둔하게 된다. 이때 시인은 왕조 교체 뒤 세상을 등진 채 고결한 가치를 지켰던 도연명(陶淵明, 365~427)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도암(陶庵)’이란 호를 스스로 짓고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위 시에서는 가난을 주제로 희망 없는 가을 반딧불이(Luciola cruciata, 개똥벌레, 반디)의 상황에 자신을 투영했다.
안중식 필 매화 서옥도(安中植筆梅花書屋圖: 매화꽃이 핀 서옥) 부분도,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그 무렵 시인은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모든 감각을 되살려낸 ‘도암몽억(陶庵夢憶)’이란 책을 썼다. 재스민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뉴욕 시절의 고급 맨션과 상류층 파티를 떠올렸다면 시인은 매화(梅花) 가득한 서재, 훌륭한 공연과 아름다운 여배우에 대한 기억이 자신의 삶을 소멸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인은 옛 시절에 대한 미련이 허망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도암몽억(陶庵夢憶) 서문(序文)에선 두 종류의 꿈을 예로 든다. 하나는 지고 가던 술독을 깨버린 짐꾼이 “꿈이라면 좋으련만!”이라고 하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한 선비가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 축하 잔치에서 “꿈은 아니겠지?”라고 황홀해하는 꿈이다. 시인은 똑같은 꿈인데 누군가는 걱정하며 꿈이길 바라고 누군가는 꿈일까 두려워한다며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평했다. 자신 역시 한바탕 꿈에 불과한 옛 시절에 연연하는 잠꼬대 같은 글을 쓰고 있다고 탄식했다.
영화 마지막에 재스민은 행복했던 시절 들었던 노래 ‘블루문(Blue Moon)’을 떠올려 보지만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추억에만 집착하면 마음의 병이 된다. 희망 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살아가야 할 것은 현재와 미래다.
[Project.ACT] 밤의 노래 (Blue Moon) (자작곡/Composition)
우디 앨런 감독(Woody Allen, 1935- )의 ‘블루 재스민(Blue Jasmine)’(2013년) 영화. 남편을 잘 만나 호화롭고 우아한 생활을 하던 여성이 패가망신한 후에 평범한 삶을 사는 여동생에게 얹혀 살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다. 1947년 말론 브란도, 비비안 리 주연의 저명한 영화로 초연한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 케이트 블란쳇이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여우조연상,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 줄거리
뉴욕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남편 할이 사기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 자살한 뒤 빈털터리가 된 재스민은 동생 진저의 집에서 잠시 머무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오게 된다. 언니를 만나기 전에 진저는 전 남편 오기에게서 두 아들을 데리고 오는데, 오기는 재스민과 금전적인 문제로 악연이 있는 듯하다. 그래도 동생 진저는 재스민의 남편 할이 사기꾼이었지, 재스민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언니를 두둔해준다. 두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진저는 언니를 따뜻하게 맞이하지만, 남편을 잘 만나 호화롭게 살던 재스민과 달리 캐셔 등의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온 진저는 돈도 없고 빚까지 있는 상태의 언니가 아직도 루이비통 캐리어를 들고 다니고 일등석을 타고 왔다는 것에 어이없어한다.
재스민은 자신의 과거의 삶을 자주 회상하는데, 회상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등 신경쇠약 증상을 보인다. 과거의 회상에서 그녀는 할이라는 부유한 사업가와 만나 대학 졸업도 포기하며 결혼하였고, 의붓아들 대니와 함께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날 진저와 오기 부부가 뉴욕을 방문하는데, 재스민은 오기를 영 못마땅해하는 눈치이다. 당시 진저와 오기는 20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되어 사업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재스민의 권유로 복권 당첨금 전액을 할의 사업에 투자한다. 뉴욕을 유람하던 진저는 할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발견한다. 재스민의 생일 파티에 간 진저는 그 여자를 다시 발견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재스민의 친구이기도 한 레일린이라는 여성이었다. 진저는 재스민에게 할과 레일린이 바람을 피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지만 재스민은 레일린과 할을 믿기에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회상에서 돌아와서, 진저는 자신의 약혼자인 칠리를 재스민에게 소개해 준다. 칠리는 싱글인 재스민을 위해서 친구 에디를 데려왔는데, 아무래도 눈 높고 고상한 재스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 에디는 재스민에게 치과 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소개하지만 재스민은 그런 "하찮은"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재스민은 진저의 약혼자인 칠리 역시도 못마땅하게 여기며 동생에게 칠리도 오기와 마찬가지로 루저라고 이야기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재스민은 치과에서 일하게 되지만 그녀와 잘 어울리는 직업은 아닌 듯하다. 재스민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나, 수업을 받을 돈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공부하여 인테리어 디자이너 자격증을 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컴퓨터도 잘 모르는 탓에 컴퓨터 공부를 치과 일과 병행하기로 한다. 복싱 경기를 보려고 모인 칠리의 친구들이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재스민은 칠리와 싸우게 되고, 결국에는 진저가 칠리와 친구들을 밖으로 쫓아낸다. 어느 날, 재스민은 대니가 다니던 하버드 대학교에서 핼이 인상적인 강연을 하여 대니가 캠퍼스 내에서 자신도 덩달아 유명인사가 되었다며 뿌듯해 하던 모습을 회상한다.
한편 재스민은 일하는 곳의 치과의사가 자신에게 계속 관심을 보이자 부담스러워한다. 계속 집착을 보이던 의사가 강제로 키스를 하자 재스민은 이를 뿌리치고 일을 그만둔다. 재스민은 같이 컴퓨터를 배우던 동료 섀런에게 소개해줄 좋은 남자가 없느냐고 물어보고, 섀런은 파티에 그녀를 초대한다. 혼자 파티에 가기 부담스러운 재스민은 진저와 함께 파티에 간다. 진저는 파티에서 앨이라는 남자와 눈이 맞아 파티장에서 섹스까지 한다. 한편 재스민은 정치에 진출할 꿈을 가지고 있는 외교관 드와이트를 만난다. 둘은 잘 어울리는 듯하나, 재스민은 자신의 직업이나 결혼 상태 등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
진저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식을 들은 칠리는 진저의 집과 일터에까지 찾아와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지만 진저는 앨에게 푹 빠진 상태. 재스민은 드와이트와 만날 약속을 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한다. 재스민과 드와이트의 관계는 결혼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빠르게 진전된다. 집에 돌아온 재스민은 진저가 뿌린 향수 이야기를 하다가 프랑스산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과거를 회상한다. 회상에서 재스민은 친구에게 할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는 의심을 털어놓고, 친구는 재스민 본인 말고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며 레일린뿐 아니라 트레이너, 변호사, 프랑스 출신의 어린 하녀 등등 할이 만나고 다닌 여성들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회상에서 돌아와서, 반지를 사러 가던 재스민과 드와이트는 우연히 오기를 만난다. 오기는 재스민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자신과 진저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아들 대니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사실대로 말한다. 드와이트는 처음 듣는 얘기에 당황하며, 결국에 둘은 헤어지게 된다. 재스민은 오클랜드에서 중고 악기 가게를 운영하며 가족까지 꾸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들 대니를 만난다.
대니는 아버지가 사기꾼으로 잡혀간 소식을 듣고 부끄러워하며 대학교를 자퇴하고 자신을 찾지 말라고 떠났던 상태. 대니는 사실 그때 아버지 할보다 재스민에게 더 큰 분노를 느꼈다고 털어놓으며 앞으로 서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할이 어떻게 교도소에 가게 되었는지 드러난다. 남편의 불륜에 분노한 재스민은 할과 이야기를 시도하고, 할은 프랑스 출신 하녀와 진지하게 사랑을 나누고 미래까지 이야기하는 사이라고 솔직하게 밝힌다. 순간적으로 크게 분노한 재스민은 FBI에 연락해 할의 사기 행각을 신고하고 할은 이것으로 인해서 체포된 것이었다. 한편 진저는 앨이 기혼자인 것을 알게 되고, 칠리와 재결합한다.
집에 돌아온 재스민은 다시 깨를 쏟아내는 진저와 칠리를 만난다. 재스민은 둘에게 다시 폭풍 악담을 쏟아내고 자신은 드와이트와 결혼하여 집을 나갈 것이라고 허언까지 늘어놓는다. 집을 나온 재스민은 벤치에 앉아 다시 과거의 호화로운 삶을 살던 본인으로 돌아간 듯이 혼잣말을 한다.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기 마련이듯이
그런 사람은 살기가 쉬어,
다른 사람은
운명을 자기 속에서 느끼지.‘
◦ 그리움
끝없는 재스민의 과거를 향한 향수,
유치한 시인은 이와 같은 〈그리움〉을 그의 시
그리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3년 01월 26일(목)|문화 [漢詩를 영화로 읊다〈52〉 아! 그리운 옛날(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네 잘못이 아냐",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정보/ Daum · Naver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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