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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三國志天下 원문보기 글쓴이: 객손
주몽이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니?
- 김운회 동양대 교수가 미디어다음에 기고한 ‘우려되는 드라마 - 주몽’ 중에서
3. 드라마 ‘주몽’ 문제의 본질 : 주몽의 실존성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은 해모수와 유화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금와의 아들로 자라고 스승이 아버지임을 알지못한 채 사별하고 만다. 주몽은 일생동안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그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 이별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과 슬픔을 극복하고 빼앗긴 고조선의 하늘을 되찾고 고구려를 건국해 한민족에게 가장 벅찬 역사를 안겨주는 민족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한 마디로 “고조선의 하늘을 되찾은 고구려의 왕”이라는 것이다.
-- 이건 문제될 부분이 아니다.
그런데 좀 엉뚱한 얘기같지만 주몽은 과연 실제 인물일까? 설령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몽은 실존인물이 아니며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의 표상(Symbol)이라는 것이고 이 때문에 부여 고구려 백제 몽골이 모두 하나의 민족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자자 여기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니며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의 표상이란다. 우리민족의 건국시조의 표상은 ‘단군’이 아니던가? 왠 느닷없이 주몽이 건국시조의 표상이야?
주몽신화는 부여의 신화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기 1세기경의 기록인 『논형(論衡)』, 3세기경 책인 『위략(魏略)』, 4세기의 『수신기(搜神記)』, 5세기의 『후한서(後漢書)』등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의 신화는 칭기즈칸의 몽골 시조 신화와 거의 같으며 부여 및 백제의 신화와 대동소이하다.
-- 몽골시조신화가 어떤 내용인지 내 알바는 아니며, 부여랑은 비슷하나 백제의 신화와 대동소이 하다니? 온조와 비류가 ‘알’에서 태어났냐? 아비가 다른 것은 같지만 유화의 경우와 소서노의 경우는 틀리다. 유화는 해모수에게 겁탈을 당하여 아이를 가지고 금와에게로 간 것이고, 소서노는 이미 애 둘을 가진 상태에서 주몽을 만나 결혼을 한 것이다. 이게 뭐가 대동소이하다는 거야? 소서노는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애를 가진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했던 것이다. ‘미망인’이라는 신분이 같다는거야?
(뭐 소서노의 남편은 우태다. 아실분이야 아시겠지만 고로 비류와 온조는 우태와 소서노의 자녀되겠다. 남편 사별하고 나서 주몽을 만난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광분하지 말고 재미있게 보면 되지...)
고구려 신화와 부여의 신화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은 고구려와 부여가 같은 민족임을 의미한다. 이것을 달리 보면, 주몽과 동명이 같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주몽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으므로 시기적으로 고구려의 건국과 부여의 건국은 최소 수백년의 차이가 나는데 그 시조가 거의 동일인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여의 건국이 고구려보다도 2~3백년 전이라면 BC 2~3세기의 사건(부여 건국), BC 37년의 사건(주몽의 고구려 건국)이 동일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되어 모순이다.
-- 고구려 신화와 부여 신화는 거의 비슷하다. 같은 북방민족이기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여의 시조 동명왕과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신화는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그게 왜 주몽과 동명이 같은 사람 아니면 주몽이 실존인물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지 참 모르겠다. 고구려는 부여보다 나중에 건국된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그런데 김운회 교수가 실수하는 것은 ‘주몽과 동명왕은 같다’라는 명제에 대한 반박의 자료로서 이 글이 가치가 있는 것이지 ‘주몽과 동명왕은 다르다’라는 명제에 대한 반박의 자료는 전혀 되지 못한다. 주몽과 동명왕은 다른데 왜 ‘둘이 같다면 몇백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 동일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되므로 모순이다’라는 해명은 전혀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동명왕과 주몽이 같은 인물이라는 거야?
『삼국사기』잡지 제사조에 보면, 백제의 경우 대개 동명제를 왕의 즉위시 처음으로 맞는 새해 정월에 지내는데 이것은 태양신(조국신)에 대한 제사를 의미하는데 반하여, 실질적인 시조인 구태제는 1년에 4회를 지내고 있다. 즉 동명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범한국인들 공동의 신(태양신, 천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 주몽은 동명이 아니라고 했다.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 고구려에서 나온 백제의 순이다보니 부여의 시조를 ‘태양신’으로 봐서 제사를 지내는 거야 문제거리가 될게 없다.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닌 또 다른 이유는 이 주몽이라는 말 자체가 ‘활쏘기의 달인’이라는 보통명사라는 점이다. 즉 주몽이라는 말이 명궁(名弓)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명궁은 모두 주몽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금와왕의 아들의 이름은 분명히 나오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문제는 이 시기가 중국에서는 역사학이 상당히 발달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문자가 없는 범한국인(동북방의 유목민)들의 사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형태로 구전되다가 사서들에 일부가 채록되어 전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물론 건국의 과정에서 영웅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있겠고 그 영웅의 가문이 부족통합의 핵심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업적이 이 가문의 시조에게도 돌려지고 그럼으로써 그 민족의 집단무의식으로서 민족적 표상으로 등장한 것이 주몽의 신화로 볼 수 있다.
-- 그래, 그건 알지 않은가. 주몽의 본명이 주몽(朱夢)인가? 아니다. 추모(鄒牟)다. 뭐 중모라고도 한다는데 추모든 중모든 본명은 주몽이 아닌거다. 그런데 원체 활을 잘 쏴서 별명인 ‘주몽’이라 부르다 보니 그것이 이름으로 굳혀진 바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고구려본기에서 동명성왕이라고 썼기에 그러한 것이지 고구려에서도 주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비에도 ‘추모’라고 적혀있다. 동명왕=주몽이 아닌 것이다. 김부식의 ‘실수’를 일반화 하지 말라. 뭐 김부식의 실수가 하나두개 겠는가. 삼한지역에 있던 72한국을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이라고 기록한 것도 잘못은 잘못이지. 하여간, 동명왕은 주몽이 아닌데 김운회 교수는 주구장천 ‘주몽은 동명왕이 아니므로 주몽은 존재하지 않다’라는 궤변만 하고 있는 셈이다.
주몽이 실존인물인지 여부를 좀더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다른 기록과 대조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삼국사기(백제본기)』는 주몽이 전한 건소 2년(BC 37) 2월에 남으로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소서노를 취하여 妃(비)로 삼았다고 하는데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에는 주몽이라는 말은 없고 고구려라는 말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소서노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 그럼, 한서와 후한서에서 오랑캐라고 부르는 타국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삼국사기에는 나오는데 한서와 후한서에 나오지 않는다고 ‘이는 거짓이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백제본기에서 소서노는 온조13년에 비류백제를 치다가 난전중에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고사기’에는 소서노가 온조와 비류에게 버림받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럼, 여기서도 ‘백제본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사기’의 기록을 따르면 우리가 ‘일본의 시조’가 된다는 말이다. ‘고사기’는 사기 역사서이기 때문에 믿을바가 안된다라고 한다면 ‘한서’와 ‘후한서’에서 남의 나라 역사를 자기네 역사처럼 상세히 하나하나 기록해야할 이유가 없다. 왜 한서오 후한서에 없다고 아니라고 판단하는가?
『삼국사기』는 고구려의 건국시기를 건소 2년이라고 하지만 소서노는 실존인물로 추정되는데 그녀가 활약한 시기는 AD 2세기 말~3세기로 무려 2백년 이상이 차이가 나고 있다. 쉽게 말해서 AD 2세기 말~3세기의 사건이 BC 37년의 사건들과 동시대로 묘사되어있는 것이다.
-- 삼국사기의 소서노가 사망한 해는 온조13년 80세의 나이라고 나와있다. 무슨 2세미 말-3세기야? 그건 어디서 나온 기록인가?
그렇다면 마치 백제의 계백장군과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서로 싸울 수가 없듯이 애초에 주몽과 소서노도 만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소서노는 실존인물로 확인이 되는데 반하여 주몽은 실존인물이라는 증거를 다른 책에서 찾기는 어렵다.
-- 김운회 교수가 소서노의 기록을 잘못 찾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리고 주몽이 실존인물이라는 증거를 다룬 책이 없다니. 삼국사기 고구려의본기에서 김부식이 명칭상의 실수는 했지만 ‘동명왕편’에서 ‘주몽’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광개토대왕비에도 ‘추모’라고 적혀있다. 도대체 어떤 증거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김운회 교수는 동명왕이 고구려 시조이며, 주몽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그럼 부여는 누가 세운거야? 그럼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니면 동명왕이 부여를 세우고 고구려도 세웠다는 거야.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없다. 김운회 교수는 동명왕은 주몽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주몽은 없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증거도 빈약하고 논지 전개도 엉뚱하다.
참고로 동명(東明)도 고유명사가 아니라 부여민의 근간이 되는 예맥(濊貊)이 의미하는 동쪽, 해, 밝음(發 또는 博古), 해뜨는 곳, 쇠(금속) 등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보이므로 동명 또는 동맹이라는 말은 총체적인 예맥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서에 동명 또는 동맹 등과 유사한 한역어(漢譯語)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혁거세라는 표현과도 다르지 않다.
-- 이건 다 알지 않은가. 단군왕검이 이름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안다. 그게 ‘이름’이 아니다라는 것으로 논리의 설득력이 없다. 설마 동명왕의 이름이 동명이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 아닌가.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사실은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군신화에서 단군도 실존인물이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 전체의 표상이므로 오히려 그 때문에 민족의 이동이나 뿌리를 찾기가 수월한 것이다.
-- 중요한 문제다. 더군다나 [단군신화에서 단군도 실존인물이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 전체의 표상이므로 오히려 그 때문에 민족의 이동이나 뿌리를 찾기가 수월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단군이 실존이 아니고 표상이기 때문에 민족의 이동과 뿌리찾기가 수월하다니 말이다. 단군이 실존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경우냐? 박혁거세도 그럼 ‘실존’이 아니고 신라의 표상이란 말인가? 혁거세는 ‘통치자’라는 신라의 고어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한가지 예를 들자. 아주 먼 미래가 되었다고 보자. 그래서 지금의 사료를 살펴보는데 ‘대통령령에 의하면..’ ‘대통령에 따르면...’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하여 ‘20세기의 한국은 대통령이 다스렸던 나라’라고 했는데 김운회 교수같은 사람이 나와서 대통령은 하나의 표상일뿐 ‘실존하지 않은 인물’이다라고 하면 이 무슨 넌센스인가 말이다.
즉 우리는 부여신화와 고구려 신화를 보면서 이 두 나라의 구성원이 같은 민족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고 이를 계승하고 있는 백제(반도부여)와 몽골 또한 같은 민족임을 알게된다. 이것이 역사학에서 신화가 가진 최대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데 절망하는 것은 항상 ‘영웅’을 고대하는 우리들 자신의 부조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전 세계의 신화에 ‘홍수 신화’가 많은데 그렇다면 그것도 하나의 ‘구성원이 같은 민족’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인가? 로마도 그러하고, 북구신화도 그러하고, 중국신화도 그러하고, 인도, 일본 등등의 신화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홍수 신화’는 전세계민이 모두 같은 ‘구성원’이라는 말인가. 이는 아니잖은가. 지역상 거리가 가깝고 더군다나 주몽이 부여에서 독립해서 나라를 세웠고 후대 고구려 후손들이 고구려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위해서 신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인접해 있던 부여의 신화와 유사하게 만들었다고는 보지 못하는가 말이다.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절망하는 것은 ‘영웅’을 고대하는 우리들의 부조리가 아니라 ‘실존’을 부정하는 김운회 교수에 대한 우리들의 일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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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김운회 교수가 쓴 글에서 ‘주몽은 실존인물이 아니다’라는 글에 대한 비판이지 한의 철기문화가 고구려의 철기문화보다 강력하다는 것은 역사적 오류라는 평에는 동의한다. 왜 MBC는 한의 철기문화가 우리의 철기문화보다 우수하다고 드라마를 그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시정해야할 문제이다.
김운회 교수는 ‘역사적 오류’를 자주 일으킨다. 김운회의 ‘삼국지 바로읽기’ 역시도 그러한 문제점이 참 많다. 좋은 글도 쓰지만 가끔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글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Written by 나그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