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행복한 순간, 소중한 기억
“표가 없는데요.”
아내의 그 말이 귓전에 얹히는 순간, 나는 서류가방을 들고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뒤에서 아내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있긴 했지만, 그 말이 뭔 말인지 제대로 챙겨 들을 겨를이 없었다.
그냥 내달려야 했다.
아내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려고 발길을 돌리는 그 잠깐의 순간으로 인해, 이날의 내 일정을 망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엊그제인 2017년 12월 1일 금요일에, 내게 그렇게 다급한 상황이 하나 있었다.
거래은행에서 맡긴 근저당권설정 등기신청을 위해 경남 양산에 있는 울산지방법원양산등기소를 들러야 할 일이 바로 그 상황이었다.
서울 수서역에서 고속철도인 SRT 열차를 타고 울산으로 가야했고, 거기에서 다시 직행버스를 타고 오십여 리길의 양산으로 가야했는데, 그 일정이 너무나 빠듯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울산행 SRT 열차표를 예약하려던 아내가 당황스럽게 한 말이 곧 ‘표가 없는데요.’라는 그 말이었다.
그때가 낮 12시 반쯤이었다.
느긋한 시간이 아니어서, 순간적 판단을 해야 했다.
내가 직접 차를 몰고 갈까 하는 것도 생각했고, 비행기를 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차를 몰고 가는 것은 그 이후의 시간에서 내가 자유롭지 못한 것이 싫었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예약도 해야 하지만 이어지는 교통편이 불확실해서 접고 말았다.
서서 가는 입석으로라도 SRT 열차를 타는 것이 낫겠다싶었다.
우선 서초동에서 수서역까지 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때가 점심때였지만, 그 점심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끼니를 굶는 것은 법무사로서의 내 삶에서 이미 이력이 박혀 있어서 별 문제가 아니었다.
택시부터 빨리 잡아타야 했다.
택시 잡는다고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자칫 공무원들의 근무가 끝나는 오후 6시까지 등기소에 다다르지 못해서, 끝내 이날 일을 망칠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니 우리 사무소를 나서면서부터 그렇게 내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00여m 거리의 전철 3호선 교대역 14번 출구까지 허겁지겁 달려가야 했다.
얼마나 헐떡거리면 달렸던지, 스치는 몇몇 사람들은 내 그렇게 내달리는 모습을 힐끗 거들떠보기까지 했다.
다행스럽게도 택시는 곧 잡아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운전사의 그 말 한마디에, 내 감을 잡았다.
그래서 내 이리 물어봤다.
“문경이라요?”
내 그 말에 운전사는 반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하는 응대가 이랬다.
“대반에 알아보네요. 동로라요.”
그 긴박한 순간에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내가 지금 굉장히 급해요. 수서역까지 퍼뜩 좀 가 주이소.”
내 그렇게 당부를 했다.
“알았씸다. 걱정 마시이소.”
운전사의 답이 그랬다.
그리고 말을 더 이어갔다.
고향 이야기였다.
58 개띠 나이라고 했고, 동로 고향땅에 사시는 여든 연세의 부모님은 오미자 밭을 일구시고 계신다고도 했고, 이한성 전 국회의원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라고도 했고, 중학교는 문경중학교를 안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문경고등학교를 다녔다고도 했고,
물론 나도 고향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서로 고향 이야기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운전사는 대충 신호위반에 속도위반까지 해가면서 재주껏 달려, 30분만인 오후 1시쯤에 나를 수서역에 내려주고 있었다.
문제는 수서역에서였다.
좌석은 이날 하루 내내 없고, 입석은 아예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안 돼요. 난 무조건 가야해요. 못가면 망하니까요. 무슨 수를 써든 울산행 표 한 장 만들어 내세요.”
그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음으로만 구른 것이 아니다.
실제로 두 발을 번갈아 구르면서 폴짝폴짝 뛰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내 그 꼴을 보던 창구 여직원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이랬다.
“방금 표가 한 장 나왔어요. 축하드립니다.”
세상사라는 것이, 그렇게 순간적 반전이 있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경로 활인이 된 32,600원짜리 울산행 SRT 열차승차권을 받아들었다.
가슴 쓸어내리는 안도였다.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을 소중한 순간이었다.
하도 감개무량해서 그 열차승차권을 세심히 들여다봤다.
맨 위쪽에 한 줄 캐치프레이즈가 새겨져 있었다.
이랬다.
‘행복한 순간, 소중한 기억, 함께 하는 SR’
첫댓글 두드리니 열려구나!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