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까지 케이티엑스. 한 시간 20분 가량도 걸리지 않은 듯.
역에서 내려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할 참이었는데, 마땅한 음식점이 눈에 뜨지 않아 그냥 세미나 장소인 장수마을의 뿌리공원이라는 곳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아침도 신통찮게 먹은 데다가 점심까지 걸러 헛헛. 하는 수없이 대전 시내버스 310번을 갈아타기 전 연시 두 개를 1000원에 사 들었다.
버스 좌석에 앉아 연시 두개를 먹어 치우고 나서야 눈이 보이기 시작, 차창 밖 풍경에 눈을 주었다.
기차를 타고 오는 중에도 보았지만 한가로운 늦가을 풍경... 가을은 복잡한 인간사와 상관없이 잘도 와 있었다.
찻길 옆으로 넓지 않게 흐르는 작은 여울, 여울 근처로 덜 핀 억새, 창문을 연다면 마른 잎 냄새가 코에 닿아올 듯... 내가 그리워 한 것이 바로 이런 풍경이었어. 중얼중얼...
뿌리공원을 바로 곁에 둔 장수마을 310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세미나 장에 들어섰을 때 세미나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곧바로 정선혜씨가 장미 꽃묶음을 건네 주었다. 언젠가 협회 인터텟 카페에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의 장미'를 올렸던 덕이었다.
장미를 한 송이씩 나눠야 옳았는데 아름다운 묶음을 풀어헤치는 일이 쉽지 않아 내내 들고 다니다 마침내는 집이 대전인 이경희씨에게 들려주었다.
동시에서 다뤄진 내용은 '동시문학과 현실주의'에 관한 것이었는데, 버스에서 오는 동안 읽은 내용으로 공부는 충분했으며 의미도 깊었다. 한편, 현실을 바탕으로 두지 않은 글쓰기가 과연 있을 것인지, 나름으로 짧은 결론을 내렸다.
동화는 '머리 대신 가슴으로 읽는 동화의 길 찾기' 였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한 중에도 '좋은 동화 쓰기'에 대해 가슴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어 뜻깊었다. 아조 징그럽게 깨닫게 하지 않고 변죽만 울려준 것이 오히려 고마운 일. 세미나란 무릇 변죽만 울려주어도 반은 성공한 셈 아닌지.
(공부를 아조 열심히,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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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면 눈에 들오지 않을 바깥 풍경이 아쉬워 나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키가 크지 않다면, 개미만큼 작아지기도 한다면 들락날락을 열번은 더했을 터인데... 세번 밖에 못 했다.
여차저차 저녁 식탁에 오른 파래김 무침과 비름나물 무침, 김치 두부전골은 아주 맛있었고 술 한잔도 입에 달았으며. 그러나 나는 노래 한 마디도 부르지 못하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경희씨 차로 대전역, 노원호 선생님과 유효진씨와 셋이 나란히 탄 케이티엑스.
'아, 되돌아가 놀고 싶고나! 나를 빼놓고 을매나 을매나 재미있게 잘들 놀고 있을꼬.'
자정이 가까워 도착한 집, 자리에 누워서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라면 되돌아 달려갔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10월 29일 일요일 아침이며 나는 중랑천 개울가를 한바퀴 돌아와야 직성이 플릴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뚜레주르에 들러 옅고 뜨거운 헤즐럿 한잔을 마실 것이다.
가을도 늦은 가을이다.
첫댓글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다 밝혀졌어요.
단풍 믈든 산야을 두고 공부라니... 가혹한 처사.
하여간에 마른 사람들은 힘들어... 공부시키려면 쇼파를 줘야해요 그쵸?
옹, 뼉다구 안 배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