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01-21)
< 외롭게 크는 참외 >
- 文霞 鄭永仁 -
길거리마다 참외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다. 참외가 참외밭에서 본격적으로 익어가는 계절이다. 하우스 참외가 나온 지는 오래지만, 지금은 밭 참외가 참말로 익어가는 철이다.
일찌감치 일명 ‘성주참외’ 라 하여 노랑 골참외를 실은 1.5톤 트럭에 가득 싣고 사거리마다 진을 치고 있다.
이즈음 참외라 하면 노랑 골참외 하나뿐이다. 혹 가다 어디선가 개구리참외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작금의 시대를 다양한 문화시대라고 표방을 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더욱더 획일화 시대로 갈마들고 있다. 참외는 성주참외, 등산복은 고어텍스…….
참외만도 그렇다. 지금은 노랑 골참외 한 종류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참외밭에서는 여러 종류의 참외가 뜨거운 햇볕을 쬐며 익어가고 있었다. 호박 같이 크고 텁텁한 맛이 나던 호박참외, 오이처럼 길쭉하고 오이 맛이 나는 오이참외, 겉 무늬가 마치 개구리 모습 같다하여 늦 참외인 개구리참외, 겉과 속이 새파란 청사과, 겉은 하얗지만 깎으면 발갛게 익은 색이 나타나는 백사과, 일본 참외라는 골이 없이 노란색인 긴마까, 노랑 골참외 나일롱참외, 그리고 개똥참외!
특히 청사과 참외는 겉은 파란 색이지만 깎으면 하늘색이자 속은 발갛게 익어가는 황홀한 색깔이었다. 백사과참외도 마찬가지였다. 기중에 가장 연한 것은 늦참외인 개구리참외였다.
참외하면 그 맛만 연상케 하는 것이 아니라 숱한 아름답고 향기로운 추억의 고향이었다. 참외밭, 원두막, 참외서리, 그리고 어느 소년의 첫사랑, 밤에 떨어지는 별똥별과 미리내 밑의 원두막을 휘돌아다니는 개똥벌레의 자맥질들!
기중에 시골출생은 참외서리가 으뜸 추억거리로 남아 가끔 유년시절의 애틋한 향수로 줄달음치게 할 것이다.
서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하는 것이다. 서리는 늙은이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유소년과 청소년 즈음에 하는 장난이다. 참외, 수박, 닭, 콩 등.
또 나잇때에 따라 서리의 양상이 달랐다. 청년은 주로 수박, 닭서리를, 우리 나이 또래는 참외, 콩서리가 주를 이루었다. 그 당시 서리는 짓궂은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자본주의 꽃이 피는 지금은 절도로 변모하게 된다.
서리를 할 때는 다 때가 있었다. 주인 할배가 저녁을 먹으러 갔거나 어스렁 달밤에 식곤증으로 초저녁잠으로 꾸벅꾸벅 조실 때가 가장 적기다.
우리가 때에 참외서리를 할 때는 우리만의 암호체계가 있었다. 암호문은‘기롱기롱, 따롱따롱, 오롱오롱’이다. 으레 한 명이 파수꾼이 된다. 파수꾼이 ‘기롱기롱’ 하면 안전하니 참외밭 고랑으로 기어가라는 신호다. ‘따롱따롱’ 하면 참외를 따라는 신호이다. 다급하게 ‘오롱오롱’ 하면 주인이 오니 빨리 도망치라는 신호음이다. 물론 들키면 보초는 자기 먼저 줄행랑치며 외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걸음아, 오금아 날 살려! 하면서 도망가야만 한다. 누가 재수 옴 붙게 잡히면 줄줄이 불고 우리는 굴비두름 엮듯이 다 잡혀서 주인할배나 아버지에게 잡도리를 당해야만 했다.
고무신을 두 손에 꼭 쥐고서 정신없이 줄행랑을 치다보면 숨이 턱에 찬다. 그때쯤이면 숨비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어스름한 구름 사이로 달님이 배시시 웃고만 있었다.
사실, 어슬렁 달밤에 익은 참외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박처럼 두드려서 소리로 익은 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구별하는 방법은 코와 입을 동원하는 것이다. 참외를 더듬더듬 더듬다가 코로 구분이 안 되면 마지막으로 입으로 한 입 비물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러는 참외의 배꼽 쪽이 상처 난 것들이 있었다. 그런 참외들도 상처를 아물리면서 외롭게 익어만 가야 했다.
참외서리에도 도(道)가 있었다. 되도록이면 참외 넝쿨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너무 많이 따서도 안 되었다. 만약에 참외넝쿨을 심하게 망쳐 놓으면 그해 참외농사는 망쳤고 혹은 겉보리로 몇 말로 배상을 해서 도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물론 부모한테 잡도리를 당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서리해온 참외를 먹는 장소도 대개는 은밀한 지정석이 있었다. 마음 뒷동산이나 공동묘지 오래된 봉분 둔덕이었다. 그때 내깔긴 참외 씨가 싹터 열린 것이 개똥참외다.
참외는 외로운 존재다. 참외의 ‘외’자가 뜻하는 바와 같이 ‘ 외짝, 외톨이, 외아들, 외동딸, 외길, 외나무다리…’처럼 ‘홀로’이거나 오직 하나임을 뜻한다.
참외는 쌍으로 달리는 작물이 아니란다. 홀로 달려 홀로 커가는 과일이다. 참외밭의 풍경도 그렇다. 허허 벌판 참외밭에 서 있는 원두막, 지키는 할아버지도 혼자다. 참외서리 하는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서리를 하러 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외짝시대(외톨이)라고 할 만큼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노총각에 노처녀, 홀로된 사람들, 기러가 아빠 엄마. 짝을 찾지 못한 외기러기, 짝을 잃은 외기러기들도 늘어만 간다. 그래서 홀로 사는 집도 늘어만 가고 고독사(孤獨死), 고립사(孤立死)라 하는 외로운 말들도 늘어만 간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이웃 일본만 해도 직장에서도 홀로 점심 식사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서 혼자 식사하는 사람도 있단다. 음식점이 일인용 칸막이가 있는 식탁이 늘고 이젠 홀로 살다가 홀로 죽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사후(死後) 처리도 자기가 하는 직장문화(直葬文化)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아이들 세태도 참외와 엇비슷하다. 참외는 박과에 속한 식물로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고 한다. 다른 식물은 대개 쌍꽃이 피고 열매가 쌍으로 맺는 것과는 달리 외만(박과) 홀로 피고 홀로 맺어 홀로 자란다. 이즈음 각 핵가정 가족 구조도 이와 비슷하다. 대개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하나만 두는 가정이 의외로 많고 늘어만 간다. 이 녀석들은 밤, 대추처럼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참외나 회오리밤처럼 홀로 커간다. 참외나 회오리밤은 혼자서 맘대로 몸을 불려가며 커간다. 둥글고 제멋대로 커간다. 그도 회오리밤이나 참외는 반듯하게 제 모습을 갖추며 커간다.
그나마 참외처럼 커가는 아이들은 홀로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간다. 엄마 아빠가 늦게 오는 날이면 홀로 라면을 끓여먹고 피자를 시켜 먹고, 홀로 게임을 한다. 그러니 종심소욕(從心所欲)하면 산다. 개성이 강하고 줏대도 서 있다. 홀로 견디며 살다보면 더불어, 함께 조화롭지 못할 때가 많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다. 쌍둥이가 아닌 다음에야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봉고트럭에 수북이 쌓아 놓은 참외들!
한 봉다리에 만원이지만 그들은 홀로 땡볕에 단물로 저장하고 견뎌가는 외로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참외에는 외로움이 익는 냄새가 난다.
외로운 놈들은 ‘외(瓜)’자가 붙는다. 고(孤), 호(狐), 호(瓠)…. 모과(木瓜)는 과일 망신시키고, 모과나무 심사(心思)만 외롭게 자라고 늘어만 간다. 그래서 모과 보고는 세 번 놀란다고 한다. 그 모양에 놀라고, 그 향기에 놀리고, 그 맛에 놀라고….
하기야 이즈음 세상은 놀랄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혼밥족, 혼술족, 혼영족, 혼쇼족, 혼여족 등의 홀로족이 늘어만 간다고 한다. 스마트 폰을 신주 위하듯이 끼고 살지만 갈수록 인간의 사이는 외로워지고 있나 보다.
하기야, 어제 나도 혼영족(혼자 영화 보기)이 되었다. 나도 외로운가 보다.
첫댓글 참외가 그런 뜻인 줄 오늘에야 알았네요. 진짜 홀로........ 그런 뜻인가요? 사실 더불어 산다해도 사람은 모두 참외죠.
아무도 본인과 꼭같이 아프거나, 고프거나, 슬프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부부도 별산제를 해야 하고, 자식이 보험이라
레알^^ (reai)과는 다르게 보험이라 믿었던 세월에도 레알은 보험이 아니었고,,,,, 지금은 내놓고 아니지요. 결국 모두
참외인 게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레알 더불어해 주실 주님을 찾는 것이겠지요.
@@@ 외로우니까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래서 짝을 찾아 결혼하고, 친구도 사귀나 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창조했거든요. 갈비뼈를 뽑아 여잘를 창조했듯이...
하기야, 세상에 진짜인 것이 어디 있습니까? 자식도 변하고, 부모도 변하고, 사랑도 변합니다.
심지어 태양도 식어집니다.
"그런 참외들도 상처를 아물리면서 외롭게 익어만 가야 했다.".. 숙명처럼 가야 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