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에 사는 이용재(41)씨는 올 초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단독주택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아 속을 끓이고 있다. 이씨의 집은 서귀포 시청 부근에 있는 대지 297㎡(90평), 건평 198㎡(60평)짜리 단층 주택.
1999년 법원 경매를 통해 1억3500만원에 구입했던 그는 몇 달째 집이 팔리지 않자 당초 2억5000만원이었던 호가를 1억8000만원까지 낮춘 상태다. 이씨는 “그동안 이자 비용과 세금 등을 감안하면 차익은커녕 손해를 볼 지경”이라며 “그나마 팔리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제주도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특별자치도법이 통과되고 각종 개발 발표가 잇따랐지만 주택·토지시장은 조용하기만 하다.
제주도의 지가 상승률은 지난해 2.1%로 전국 평균(5.6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002년 이후 5년째다.
아파트 등 주택 시장도 마찬가지다. 2003년 100이었던 주택매매가격종합지수는 최근 80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팀장은 “제주도 부동산은 2001년까지는 전국 평균을 웃도는 상승세를 보였지만 이후 바닥을 기고 있다”며 “제주도 땅의 상당 부분을 갖고 있는 수도권 거주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제주도 땅은 제주도민이 66%, 서울·인천·경기 거주자가 26.5%를 갖고 있다.
■인구증가 한계로 부동산값 상승 어려워=제주도 부동산 침체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육지로부터 인구 유입이 힘들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에 따른 부동산값 상승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주도 인구는 2000년 54만여 명에서 지난해 56만여 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수연(경제학) 제주대 교수는 “도 전체의 인구 증가가 미미한 가운데 제주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오히려 인구가 줄고 있는 추세”라며 “이런 상황에선 기반시설을 제대로 갖춘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경기를 자극할 다른 한 축인 관광업 중심의 개발도 아직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 제주도 관광객은 2000년 411만 명에서 지난해 531만 명으로 연평균 5% 미만의 증가율을 보였다. 관광객 한 사람이 사용하는 경비도 비슷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단체관광객과 육지로부터 오는 수학여행단 위주로 증가하고 있다”며 “부가가치가 큰 일본 등의 개인·가족 단위 관광객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을 잘 드러내는 게 골프장이다. 제주도엔 현재 건설 중인 곳을 포함해 40개 가까운 골프장이 있지만 내방객이 없어 파리를 날리는 곳이 적지 않다.
항공료 등 부대 비용이 비싸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교·국방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을 도가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특별자치도로 거듭난 제주도는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제주공항 자유무역지역 조성과 중문 관광단지 확장, 휴양형 주거단지 개발 등 ‘국제 자유도시 7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김우길 제주도 건축지적과 계장은 “최근 거래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토지거래허가지역 지정 등 강력하게 투기를 억제하기 때문”이라며 “개발계획이 구체화되면 전반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 계획이 너무 분산돼 있어 선택과 집중이 어렵고 역량이 분산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수요 위주로 접근해야=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쉽게 바뀌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인구 증가를 촉진할 뾰족한 수가 없고, 관광 개발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제주도 부동산 시장에서 개발 호재가 있는 일부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의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친환경적 생태도시’로 개발한다는 도의 복안도 개발 여부에 따른 부동산 값의 양극화를 심화할 요인이다.
서귀포 송악공인 장경업 대표는 “묻어 두면 오르겠거니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아무 데나 투자해선 성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전체의 65%에 이르는 지역이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수익성 있는 개발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장 대표는 “현지에 한 번도 안 와본 채 기획부동산 등의 말만 듣고 땅을 샀다가 후회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며 “지역 사정에 밝은 중개사를 통해 규제 및 개발 가능 여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육지와는 다른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신한은행의 고 팀장은 “제주도는 도로·전기·상하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토지가 많다”며 “육지에선 지하수를 개발하면 되지만 제주도에선 허가를 받기 어려워 건축이 힘든 땅이 많다”고 말했다.
또 해발 200m 이상 관리보전 지역의 경우 토지 분할이 불가능해 소유권 확보가 어렵다.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개발행위가 금지되는 오름(기생화산)이 380여 개나 된다. 관광도로나 해안도로를 끼고 있어 좋은 땅으로 보이는 곳도 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절대보전지역인 경우가 많다.
도로가 접해 있지 않은 이른바 맹지가 많고, 돌담으로 표시된 경계와 지적도상 경계가 일치하지 않아 소유권 분쟁이 생길 수 있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제주도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외지인이 땅을 살 경우 양도세 등으로 차익 대부분이 환수되므로 투자 목적보다 은퇴 뒤 거주나 별장 등 실수요 목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07.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