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91
금타선사의 가르침(2)
우리 스스로가 불교를 역사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공부를 해야 어떤 법이 어느 시대에는 더 융성했고 어떠한 법이 어느 시대에는 더 쇠미하였던가를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금타선사께서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 아주 관심을 많이 두고 육조 혜능스님 법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육조 혜능스님은 화두공안을 의심한다든가 묵조를 한다든가 또는 염불선을 특별히 한다든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안 두고서 오직 부처님 가르침을 그대로 신수봉행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육조혜능스님께서 떠나신 지가 1300년이나 됩니다. 그런데 1300년 동안에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는 육조 혜능스님법을 그대로 계승한 분이 금타선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까 우리가 보리방편문의 그 내용을 간단히 읽었습니다만 보리방편문이라는 내용이 육조 혜능스님께서 하신 선법하고 똑같습니다.
그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번역하셨는데 육조단경은 참선의 교과서 같은 경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서 연구발표도 숱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저도 육조단경을 번역하려고 또 다시 몇 번을 봤습니다.
몇 번을 보니까 육조혜능 대사가 스스로 공부도 하시고 일반 중생들한테 교화하신 법문내용이 말하자면 보리방편문 내용하고 똑같습니다. 육조단경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요.
육조스님께서 한 몇 천명 모인 대중 앞에서 여러분들이 지금 마음을 단정히 해서 내 말씀을 잘 들으시오해 놓고서 여러분들이 지금 나 혜 능따라서, 세 번씩 되풀이하십시오하셨습니다. 육조단경의 고본이 돈황본인데 돈황본보면 석 삼(三)자 부를 창(唱)자, 삼창(三唱)이라고 써졌습니다.
육조스님께서 내 입 따라서 세 번식 부르시오 한 그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 귀의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또 우리 마음에 있는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합니다 라는 내용입니다. 육조단경이라는 경전의 내용의 핵심이 거기에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가 다 이른바 그 가르침을 주석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내용을 금타선사께서 조금 더 풀이해서 알기 쉽게 해 놓으신 것이 아까 스님이 읽은 보리방편문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을 삼위일체로 종합하면 아미타불입니다. 혜능스님께서는 참선의 그야말로 할아버지같은 그런 분 아닙니까? 그런데 그이가 한 것을 알고보니까 내내야 염불이란 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염불 그러면, 가장 쉽고 차원이 낮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화두공안을 의심하면 훨씬 차원높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있다면서도 부처님을 너무나 소홀히 생각합니다. 너무나 홀대합니다. 내 본래면목이 부처고 천지우주 또한 바로 보면 부처아님이 없습니다. 천지우주가 모두다 진여불성 덩어리입니다. 그 부처님을 생각한 것이 염불 아닙니까? 본래 부처인 우리 마음이 망상에 젖어있다가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본래 부처인 가르침을 우리가 받아서 다시 또 부처가 되어가는 것이 우리네 공부입니다.
육조 혜능스님은 참선의 할아버지같은 분입니다. 참선하는 사람치고 육조혜능스님을 들먹이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육조 혜능스님이 그러한 말씀을 했는데 그것은 비단 육조혜능스님의 말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조 홍인스님, 특히 사조 도신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대부분 옮긴 것입니다.
그러기에 달마때 부터 1조 달마,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인데 3조 승찬 시대까지는 탁발하고 지내면서 일정한 처소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4조 도신스님때 비로소 도량을 꾸며서 오백명 칠백명 같이 단체로 공부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조 도신스님께서 법문을 굉장히 많이 하셨습니다. 능가사자기에 다 나와있습니다.
4조 도신법문 가운데서 중요한 것을 그대로 계승해서 밝혀 놓으신 것이 육조단경에 있는 일체삼신자성불(一切三身自性佛)입니다. 우리 마음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있고, 이것이 우리 마음의 본체입니다. 또는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 이것은 우리 마음의 공덕상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천백억화신불, 이것은 우리 마음의 모든 작용을 말합니다. 체(體)와 상(相)과 용(用)을 다 겸비한 것이 말하자면 이른바 삼신불입니다. 이러한 삼신불 귀의라는 사상이 육조단경의 중심사상입니다. 육조단경을 번역하신 분들도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안두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재주가 있어서 그것을 터득한 것이 아닙니다. 다행히 육조단경의 세계라는 김지견 박사가 낸 책이 있어요. 그 책에는 일본사람 중국사람 대만사람 등 세계적인 불교학자들이 육조단경에 대해서 연구한 논문이 실려있습니다.
그 논문 가운데 경도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다미키 고시로란 분이 있어요. 그 분은 나이가 아주 고령인데 임제종 선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열심히 한 분이에요. 학자인 동시에. 그래서 도를 깨달았다고 인가를 몇 번 받았습니다. 깨달았다고 인가를 받았는데, 생각하니 깨달은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아무런 공덕도 없고 신통한 지혜도 없고 그런단 말입니다. 그래서 선방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스승한테 가서 인가를 또 받았어요. 몇 번 인가를 받았지만 내내야 결국은 범부심을 떠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다가 육조단경을 다시 봤더랍니다. 재차 보니까 단경의 중심사상이 말하자면 우리 마음의 법신을 관찰하고 우리 마음의 보신을 관찰하고 우리 마음의 화신을 관찰해서 하나의 아미타불로 귀의를 시킨 법이었습니다.
따라서 육조단경의 가장 핵심 사상은 내내야 결국은 일체삼신자성불(一切三身自性佛)인 것입니다. 우리 자성불에 귀의하라는 그런 법문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더 연구해보니까 비단 육조혜능스님 말씀뿐만 아니라 사조 도신스님 때의 말씀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금타선사의 수행법은 육조대사의 그런 수행법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시간이라든가 정력을 낭비하지 않고서 올바른 정통으로 바로 갈 것인가, 즉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공부할 때에 있어서 필요한 그런 차서 문제입니다. 1년 동안 참선을 했는데 내 맘이 지금 얼마만큼 정화가 되었는가, 이런 것도 우리가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도 몇 십년 동안이라든가 몇 년동안 공부를 했으면 우리 맘이 얼마만큼 정화가 되었는가 가늠해야 할 것인데 통 그런 것이 없단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 그렇게 점차로 올라가는 과정이 없다면 또 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유식론이나 화엄경이나 또는 법화경이나 또는 능엄경을 보면 공부해서 올라가는 그런 차서가 있어요. 모두가 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차서가 있긴 있는데 우선 공부한 사람들은 맘이 급해서 그런 차서를 일일이 보고 있으면 골치가 아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보려고도 않고서 그런 것은 모두가 다 점수법이다고 합니다.
그런 한계도 모르고 자기 공부가 얼마만큼 되는 줄도 모르고 덮어놓고서 공부하는 것을 가리켜서 어두울 암(暗)자 증명할 증(證)자, 암증선 그럽니다. 몇 십년 동안 공부했다 하더라도 자기 공부가 얼마만큼 되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가늠할 수 있는 가르침이 원래 불경 가운데 없다고 그러면 할 수가 없지요. 우리가 새삼스럽게 연구할 수 없고. 그러나 원래가 다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 능엄경을 강원 나오신 분들은 다 배우셨겠지요. 능엄경에 세밀하게 올라가는 과정이 다 있습니다. 화엄경에도 열단계로 구분한 것도 있고 오십단계로 구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전혀 참고않고서 암증선이라, 어두운 가운데서 그냥 이렇게 암증모색하는 그런 식이란 말입니다. 암증 모색할 때 더러 맘이 활짝 열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맘이 활짝 열리면 그냥 내 공부는 이제 다 되었다. 한계를 알면 공부가 얼마만큼 갔겠거니 하고서 가늠할 수가 있지만 그런 것이 없으니까 자기가 그때그때 기분이 좋으면 아, 공부가 지금 잘 되어서 그런다이렇게 착각한단 말입니다.
일본에서 18세기경에 임제종의 중흥조란 위대한 선사가 있어요. 이 선사가 백은(白隱)선사라고, 흰 백(白)자 숨을 은(隱)자, 일본서는 아주 유명한 선사입니다. 이 분이 18세기 때 사람인데 임제종의 중흥조라고 그래요. 그래서 화두선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부처님같이 숭상하는 그런 분입니다. 이이가 공부를 몇 년 동안 하니까 마음이 활짝 열린단 말입니다. 마음이 열려서 통쾌하고 쾌적한 기운을 어디에 비길 데가 없단 말입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일본 참선불교에 있어서 3백년 동안 나같이 통쾌히 깨달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식으로 자부심을 냈습니다. 그래서 자부심을 가지고 대선사가 된양 하고 지내는데 나중에 얼마 안가서 차근차근 맘이 어두워진단 말입니다. 몸도 아파지고 말입니다.
그래서 깊은 산중에 숨어있는, 그분은 불교인이 아니라 도가 공부를 하는 분인데(제가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만) 그분한테 가서 관법 공부를 해가지고서 일체유심조라는 맘 공부를 주로 하였습니다. 그런 관법 공부를 해가지고서 자기의 병을 낫게 했습니다. 조그마한 책자가 있어요. 거기에 즉 말하자면 공부하고 고생하고 스승 만나서 자기 병을 고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자기가 공부하는 것이 얼마만큼 깊이 들어갔는가, 그런 한계를 모르면 그런 오류를 범하고 고생을 많이 합니다. 불경 가운데나 불교의 여러 가지 논장 가운데는 올라가는 과정 과정의 말씀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런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도 범부의 머리로는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아예 무시를 하는 것입니다. 아예 무시해버리니까 화두만 들고서 죽도록 의심하고 몇 년동안 그렇게 지내지요. 그렇게 하다가 세월이 흘러서 몸도 쇠약해지고 억지로 의심하다가 상기가 되어 또 병이 들고 그러면 또 약 먹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지금 우리 한국의 보통 선원에서 하는 것이요. 금타선사께서는 그런 것을 해보다가 지극히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과거 숙세에 많이 닦아가지고 마음이 열려서 성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 뒤로 훤히 트인 머리로 각 경론을 참고해서 차서의 순서를 매겼단 말입니다. 그 후 이것이 이른바 해탈 16지입니다.
금강심론 가운데 해탈 16지란 장절이 있습니다. 해탈 16지에 부처님이나 위대한 조사스님들 그리고 우리 범부가 성불까지 올라가는 그런 한계를 조목 조목하니 비교해가면서 해설을 했어요. 어떠한 데에 올라가면 우리 마음이 어떻게 맑아지고 또는 우리 마음에서 어떠한 증상이 나오고 말입니다. 이런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참선을 오랫동안 안 해보신 분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시겠지만 참선을 적어도 10년이고 얼마고 해본 분들은 그렇게 공부를 무던히 했지만 깜깜하단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얻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아까 깨달음의 증상을 다 말씀드렸지만 부처님께서는 맨 처음에 업장이 다 녹아지니까 숙명통을 깨달으셨습니다. 숙명통은 과거를 다 훤히 아는 지혜란 말입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과거, 바로 앞에 있는 과거가 아니라 무시이래로 무한 세월동안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가 숙명통 입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는 그때그때 쾌적하고 기분 좋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경솔한 사람들은 그냥 내가 지금 공부해가지고 이만하면 무던히 됐겠지, 이렇게 착각한단 말입니다. 그런 때라도 숙명통을 못했으면 공부가 아직 멀었단 말입니다. 숙명통을 꼭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야 깨달았다는 증거가 된단 말입니다.
그 다음 무엇인가. 천안통 입니다. 천안통은 미래를 다 아는 것입니다. 아까 숙명통은 과거를 다 아는 것인데 천안통은 미래를 다 알고 또는 우주 만유를 모두가 앉아서 다 볼 수가 있단 말입니다. 태양의 중심을 볼 수가 있고 별의 중심도 볼 수가 있고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맘이란 것은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마음 깨달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무량공덕이 우리 마음에 다 들어있단 말입니다. 꿇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천안통이 생겨서 미래세계를 다 내다보고 우주만유를 그대로 통괄한단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진통이라, 우리 중생의 번뇌망상, 무명심을 다 없애버린단 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석 삼(三)자 밝을 명(明)자, 삼명통인데 삼명통을 해야 제대로 깨달은 것입니다.
이런 것은 공부를 학문적으로 많이 했다고 해서 할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문하고는 오히려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 통하면 되는 것입니다. 학문을 많이 해놓으면 자꾸만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다가 결국은 참선을 못해버리니까 우리 마음이 안통하지요. 어떤 경우나 꼭 삼매에 들어야 깨닫는 것이지 교리체계를 이리 뒤집고 저리 보태고 깎고 해가지고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자분들은 불교의 많은 교리를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하고 저렇게 공부하고 해서 여러 가지로 휼륭한 논문도 쓰고 하는 것은 갸륵합니다. 갸륵한데 그렇게만 해서는 도움이 못됩니다. 어느 때인가는 다 놔버려야 됩니다.
우리가 금생에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의 본래면목의 자리, 본분 자리는 부처가 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아까 입이 닳도록 소개한 육조혜능스님도 일자무식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일자무식인가 아닌가는 확증을 못하지만 아무튼 학문을 많이 한 분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랬어도 참선 그러면, 육조혜능 스님을 할아버지같이 우리가 존중 하지 않습니까? 그러한 모든 과정을 불경 내에 있는 것으로 총망라해서 16단계로 체계화한 것이 후학들을 위한 금타선사의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통해서 성자가 되는 한계를 분명히 외두시기 바랍니다. 꼭 삼명육통이 되어야 올바른 성인입니다. 아무리 자기 문중어른이고 또 역사적으로 이름있는 사람들이 숭앙을 많이 하더라도 도를 통해야 도인 아닙니까? 이름만으로 해서는 그때는 도인이 못된단 말입니다. 따라서 얼마만큼 공부를 해야 되는가, 얼마만큼 참선공부를 해야 되는가는 꼭 깊은 삼매들어야 합니다. 깊은 삼매에 들려면 또 무엇이 필요한가, 그냥 바로 삼매에 들 수가 없지 않습니까. 특히 우리 출가한 스님네들이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삼매에 들려면 철저히 계행을 지켜야 합니다. 시라불청정(尸羅不淸凈) 삼매불현전(三昧不現前)이라, 시라는 계율을 말하는 것인데 게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절대로 삼매에 못듭니다.
그러면 계율이 청정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음식 함부로 먹지 말고 남녀 이성간의 음욕을 떠나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못 떠나면 절대로 삼매에 못 듭니다. 우리 불자님들, 특히 재가불자님들은 그야말로 육재일을 꼭 지켜야 한다고 제가 그때그때 법문 때마다 역설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 스님네는 항시 육재일 기분으로 출가생활을 해야 되지만 재가불자들은 하다못해 육재일 만이라도 출가한 셈치고 하루 일종하고 고기나 술이나 기타 그런 잡스런 것을 먹지 마십시오. 또한 육재일만이라도 남녀이성간에(자기 내외라 하더라도) 꼭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들 능엄경을 보신 분들은 알지만, 능엄경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음식을 떠나지 않고서 삼매에 들려고 하는 것은 증사(蒸沙)가 작반(作飯)이라.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짓는 것이나 같단 말입니다. 모래를 삶아서 밥이 됩니까? 음심을 떠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외간이라하더라도 다생겁래의 휼륭한 도반으로 알고 사귀어야지 그야말로 세속적으로 사귀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렁저렁한 가르침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불하는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또는 우리 마음 가운데는 아까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한도 끝도 없는 무한의 공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위대한 성인들이 열반드실 때는 공중에 올라가서 신통을 다 하셨습니다. 다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한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능력이 우리한테 다 있는 것입니다. 우선 저 같은 사람도 한탄스런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래도 무던히 애쓰고 한다고는 했는데 지금껏 신통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변명할 여지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온전히 제대로 다 지키지를 못하고 온전히 공부를 못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그래서 삼매에 들라면 그 전제조건으로 해서 꼭 음식,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정도로, 가급적이면 일종하면 더욱 좋고 그렇게 못한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적게 먹어야 됩니다.
고기나 또는 오신채 그런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요. 그렇게 하고 남녀이성간도 같이 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데 하여튼 음욕만은 삼가십시오. 음욕하고 먹는 것 하고 그 두가지 못끊으면 능엄경 말씀마따나 증사(蒸沙)가 작반(作飯)이라,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짓는 것이나 같습니다.
그렇게 유의하셔서 꼭 삼매에 드십시오. 요즘 별 명상이 다 나오지만 가장 수승한 명상이 우리 참선법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법으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영광과 행복을 생각해서 부지런히 공부하십시다.
|
첫댓글 " 우리 마음에 있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 귀의합니다. (우리 마음의 본체)
우리 마음에 있는 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우리 마음의 공덕상 )
우리 마음에 있는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합니다. (우리 마음의 모든 작용) "
체상용을 다 겸비한 삼신불
삼신불 귀의라는 사상이 육조단경의 핵심 사상이다.
우리 자성불에 귀의하라는 일체삼신 자성불
하나의 아미타불로 귀의시킨 법.
금타선사의 수행법은 육조대사의 수행법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