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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경제가 비명을 지르게 만들어라-
1970년 9월 4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대통령에 선출된다.
남미를 앞마당으로 여겨온 미 정부와 칠레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미국 기업들은 '악'소리를 질렀다.
당시 미국의 30대 기업 중 24개가 칠레에 진출해 있었고 칠레의 18대 기업(은행을 제외하고)가 미국 회사의 자회사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 왈.
「48시간 안에 행동 계획을 완성하라. 1000만 달러를 주겠다. 필요하다면 더 써도 좋다. 칠레의 경제가 비명을 지르게 만들어라.」
사실 키신저 양반은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아옌데에 주목하고 있었다.
「무책임한 국민 때문에 한 나라가 공산화하는 사태를 왜 우리가 수수방관해야 하는가?」
-1970. 6. 27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칠레를 흔드려면 군부의 정치적 개입을 반대하고 있던 레네 슈나이더 장군(René Schneider)을 없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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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나이더 장군]
처음에는 슈나이더를 납치한 다음 아옌데 지지파가 이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꾸미고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면 그를 빌미삼아 의회가 아옌데의 취임을 거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결국 슈나이더 장군은 살해된다.
예정대로 11월 3일 대통령에 취임한 아옌데는 '빵과 포도주로 가득한 풍요롭고 정의로운 조국'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곧바로 개혁정치에 착수, 외국(대부분 미국) 자본이 소유한 구리,초석 등 광산과 은행 등을 국유화하고,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우유를 배급했다.
이런 그의 정책에 힘입어 인민연합은 36%에서 49.75%의 득표율을 기록한다.
-미국의 목조르기-
첫 타자는 세계은행(IBRD)였다.
세계은행은 개발 차관을 연 2억 3천만 달러에서 2천 7백만 달러로 확 깎아내렸다.
미국의 광산회사들은 칠레 정부가 구리광산을 국유화하면서 보상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칠레의 주요 수출품목이던 구리 수출을 방해하고, 미국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구리 생산을 방해하는 데다 덤으로 창고에 쌓여 있던 구리를 한꺼번에 국제시장에 내놓아 구리값을 '똥값'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호응하는 칠레의 자본가들은 공장 문을 닫고, 은행에서 예금을 대량인출하고, 생필품을 매점 매석했다.
칠레 최대의 신문(이자 우익신문) 엘 메르쿠리오(El Mercurio)는 정부에 불리한 '뻥'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았다.
미국이 칠레의 목을 열심히 조르면서도 유난히 관대했던 분야는 바로 [군부]였다.
아옌데와 칠레 군부는 별개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넌지시 압박을 가했다.
「아옌데가 저렇게 계속 정권을 잡고 있으면 니들도 곧 굶게 될걸?」
그러자 쿠데타가 한방 터졌다.
스페인어로는 Tanquetazo, 영어로는 tank putsch[putsch는 독일어로 반란,폭동]
중령 Roberto Souper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좆ㅋ망'
이때 군부에 살짝 물갈이가 가해져 육군 참모총장이 교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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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그렇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어이쿠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로구나
-쿠데타-
마침내 운명의 날 9월 11일 오전 7시.
산티아고의 외항 발파라이소(Valparaíso)에서 반란이 시작되었다.
칠레 해군과 해병대가 방송국들을 점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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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궁인 모네다(Moneda)를 포위한 쿠데타군]
-당시 군부의 무전내용 일부-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 「무조건 항복이오, 의논의 여지가 없어」
카르바할 제독(Particio Carvajal) : 「그러면 국외 탈출 제안은 아직 유효한 겁니까?」
피노체트 :「그렇소, 그러나 비행기를 비행 중에 격추시켜요!」
열두 시 경 칠레 공군의 호커 헌터 전투기가 날아와 모네다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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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 「열두 시 정각에 모네다를 공격하시오. 그놈이 아직 항복을 않고 있소. 놈은 탱크 속에 숨었소?」
카르바할 : 「아니, 아닙니다.」
피노체트 : 「알겠소, 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시오. 공격 준비! 완전히 개죽음을 만들어놓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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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의 마지막 모습.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카스트로가 선물한 AK-47이다]
-대통령 비서 콘트레라스의 증언 일부-
「그때 대통령은 독립선언서를 응시하더니 그것을 벽에서 떼어내도록 지시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내게 건네주며 말했지요.
'여기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네뿐이네(이 사람은 여자다). 이 선언서를 무사히 갖고 나가야 하네. 이것만이라도 남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독립선언서를 갖고 계단을 내려왔어요. 그러나 군인들이 개머리판으로 나를 마구 때리고 그것을 빼앗아갔습니다.
나는 '찢지 마!'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증오심에 불타던 그들은 그게 독립선언서인지 뭔지 몰랐지요. 무식한 군인들이었으니까요」
-대통령 주치의 소토의 증언 일부-
「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팔을 뒤로 묶인 채 모란데 가의 출입구 옆에 집합해 있었어요. 옆 사람이 울고 있어서 왜 그러냐고 물었죠.
'각하께서 돌아가셨...'
이 층에서 격렬한 총성이 들려온 지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었죠.」
카르바할 제독 : 「혼선의 염려가 있으므로 영어로 얘기하겠다. 아옌데는 죽었다. 알았는가?」
통신병 : 「알겠습니다.」
카르바할 제독 : 「가족을 태울 비행기는 이제 서두를 필요 없겠지요.」
피노체트 : 「상자에 하나 하나 쑤셔박아서 가족들을 몽땅 비행기에 태워버려. 어디 적당한 데 묻어버리라고, 쿠바라던가... 이 자식 끝까지 처치 곤란이구만.」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역사의 전환점에서 나는 인민의 충성에 대해 내 목숨을 바쳐 보답합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가슴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게 될 것입니다. 적의 힘은 강대합니다. 적은 우리를 굴복시킬 겁니다. 그러나 사회의 진보는 범죄나 무력으로는 결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역사는 민중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곧 다시, 역사의 큰 길이 열려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칠레 만세!
칠레 인민 만세!
칠레 노동자 만세!」
쿠데타군은 야만적인 살생을 자행했다. 사망 3천여명. 실종 1200여명, 체포,구금,고문 15만, 망명자 20만에 달했다.
산티아고 경기장은 정치범 수용소로 변했고, 칠레 주재 미국 대사는 정치범 수용소가 시급히 필요하므로 '전문가'를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1981년 8월 피노체트는 8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88년 10월 임기 종료를 몇 달 앞두고 국민투표로 연임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다음 선거에서 패배한다. 그러나 육군 참모총장직은 98년 3월까지 놓지 않았고,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종신 상원의원으로 옮겨간다. 그전에 만들어둔 훌륭한 안전장치들을 믿은 것이다.
「상원의원 47명 중 9명은 군부가 지명한다(헌법 개정 불가)
군사령관의 임기(4년)은 법률로 보장된다(대통령이 멋대로 해임할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영 엉뚱한 곳에서 '딱 걸리'고 만다.
98년 10월 허리 수술을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가 체포된다.
스페인 사법부는 피노체트 재임 시절 91명의 스페인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해 영국 정부에 신병인도를 요구했지만 영국은 미적미적거렸다.
영국 고등법원은 면책 특권을 인정했지만 최고법원에서는 인도적 범죄에 면책특권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判示)했고, 피노체트는 가택연금에 처해져 2000년 3월 영국 정부가 그의 건강이 재판을 견딜 수 없다는 진단에 따라 석방할 때까지 500일 가량 영국에 매여 있었다.
칠레에 돌아오자마자 재임 시절 인민연합의 지도자 57명이 살해당하고 16명이 행방불명된 '죽음의 캐러밴'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1심에서 유죄가 나왔지만 2002년 7월 칠레 최고재판소는 [피고의 정신 건강이 재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진단을 들어 재판 종결을 선언했다. 판결 직후 피노체트는 종신 상원의원직을 내놓고 노후를 보내다 2006년 12월 10일 심장발작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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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칠레에서 아옌데와 피노체트에 대한 평가는 극을 달린다.
그러나 한 가지, 그 둘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보자.
현재 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모네다궁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산티아고 중앙묘지는 그의 추모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천수를 누린(91세) 피노체트는 사후 묘소가 훼손당할까 두려워 아예 유언에 따라 화장해버린 탓에 변변한 묘지도 없다.
-벤세레모스(Venceremos),우리는 승리하리라!-
[인민연합의 선거 음악]
첫댓글 평가가 극과 극이군요
아옌데, 위대한 인물이죠. 쿠바와 달리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사회복지국가를 이루려 했으나 외세의 개입으로 실패...
미국도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기위해 도와주는것일뿐이지요... 자유든 평화든 상관없죠...
그렇죠. 절대왕정 사우디와는 절친이면서 중동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인 하나인 이란을 '비민주적'이라고 성토하고...
아옌데 대통령... 군부는 국민투표로 승부하기엔 꿀리니까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 -_-ㅋ
아옌데랑 피노체트,,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Il Pleut Sur Santiago>" 영화 보시면 좀 괜찮을듯 합니다. 뭐 피노체트가 나름 개발독재래서 요즘은 좀 지지자가 생긴듯 합니다. 그래도 그 피값은 감당하긴 힘들겠죠.. 칠레가 그래도 중남미에서 준공업국과 와인등으로 ,,,, (중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은 프랑스령 기아나=> 빠삐용 이 있던곳..)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리뷰하신 vinappa님 =>http://www.movist.com/comm/m_view.asp?id=31292
피노체트가 평소 제일 존경하던 인물이 박정희였죠.
흠... 아옌데... 참 안타까운 인물이군요.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