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부도
공수신퇴 공수신퇴 무슨 말인가 ?
노자(老子)가 말한 도덕경(道德經) 구장(九章)에 나온 말이다
한자로 쓰면 이렇다 功遂身退 공수신퇴 공을 세웠으면 물러나라.
직역하면 이렇다. 「공을 세웠으면 자신은 물러나야 한다」
왜 그럴가 ? 공을 세웠으면 마르고 달도록 옆에서 보좌해야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지만 그게 하늘의 도란다.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공을 세우면 자신은 물러아는 것이 하늘의 도다
노자는 공수신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들고 있다.
가지고 있으면서 더 채우고자 한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고
持而盈之 지이영지 不如其已 불여기이
뾰족한 것을
다듬어서 그것을 더 날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은 오래도록 보전할 수 없다. 揣而銳之 취이예지 揣의 음은[췌][취][단] 不可長保 불가장보
金과 玉이 집안을 가득 채우면 능히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金玉滿堂 금옥만당 莫之能守 막지능수
부유하고 귀하면 교만해저서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富貴而驕 부귀이교 自遺其咎 자유기구
공을 이루고 군림하게 되면
부자가 되고 귀한 몸이 되어
교만해지고 허물(咎)을 낳게 되니
물러나야 뒤탈이 없다는 말이 된다.
고로 공이 이루어지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功遂身退 공수신퇴 天之道 천지도
맹자도 같은 말을 했다. 하늘의 도를 지키면 살고 거스리면 죽는다고 했다.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 순천자는 존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하늘의 뜻을 따른 자는 살고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
△백양사 부도
노자의 공수신퇴를 역사적으로 봐도 실예(實例)가 많다. 중국을 두번째로 통일한 한(漢)나라의 시조인 유방(劉邦)도 그렇다.
유방이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 즉위식을 끝낸 뒤 남궁에서 피로연을 열었 때였다. BC202년 한고조 5년이었다. 「한초삼걸(漢初三傑」을 들멱였다. 한나라 초기 집권 삼걸(三傑)을 천명한 것이다.
傑이란 뛰어나다란 말이다. 특출한 인물이 셋 있어다는 이야기다. 소하 장양 한신이다.
소하(簫何)의 행정력(行政力) 장량(張良)의 계책(計策) 한신(韓信)의 전략(戰略)
이 세사람의 지략에 힘입어 한나라를 통일했다는 찬사였다.
한고조(漢高祖)가 이처럼 세 장수를 신뢰하면서 집권 초반기를 다져갔다. 녹봉도 후하게 내렸다. 세 사람을 각 지역의 제후(諸侯 =王)로 책봉했다.
장량에게 제(齊)나라 지역의 3만 호의 녹봉을 내렸다. 그런데 장량은 이를 사양했다. 대신에 전쟁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3천 호에 불과한 하남성 중부의 유현(留縣)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잠시였다. 몸이 아프다는 구실을 내세워 유방 곁을 떠났다.
노자가 말한 공수신퇴였다.
떠나도 다시 올 수 있는 곳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아주 첩첩산중을 들어가버렸다. 유방과 영구히 단절을 도모한 것이다. 유방은 식솔을 거느리면서 오지중의 오지에서 한평생을 살았다. 타고난 수명을 마친 것이다.
헌데 오늘날은 그곳이 세계의 관광 일번지가 되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장가계(张家界)이다.
보물 제1346호 (백양사) 조선 중기 고승 소요대사태능(太能 : 1562∼1649)의 묘탑. 대사가 입적한 시기(인조 27)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측.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가?
한신은 초(超)나라 지역 제후의 녹봉을 수여받았다.
열심히 노력했다. 군사도 강하게 길렀다. 그런데 그게 유방의 눈에 거슬리는 빌미가 되었다. 한신의 군대가 황제보다 강헤진 것에 눈밖에 났다. 녹봉을 수여한 지 9 개월만이었다. 한신 제거 계획을 수립했다. 유방이 운몽(雲夢)이란 곳을 순시하다가 제후들을 소집했다. 한신이 당도하자 반란죄로 체포했다. 한신은 자신이 올가미 덫에 걸린 것을 알고 그 유명한 「토사구팽」의 말을 되씹었다.
토사구팽은 춘추시대 만들어진 고사성어다. 월왕 (越王)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멸망시켰을 때였다.
법려(范蠡)와 문종(文種)이란 두 신하의 전략에 의해 월왕이 승리했었다.
녹봉도 상장군과 승상을 수여 받았다. 그러나 법려는 구천을 믿지 못했다. 언젠가는 자신들을 제거할 것이라 판단했다. 제(齊)나로 도주해 버렸다. 문종도 함께 가자 했으나 듣지 않았다. 제나라에서 범려가 문종에게 편지를 냈다. 「토끼를 잡은 개는 삶아지는 죽을을 당한다」는 편지였다. 兎死狗烹(토사구팽)이었다. 결국 문종은 구천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 고사를 한신이 들추어 낸 것이다. 사기(史記) 열전(列傳) 회음후(淮陰侯)에 전한다.
한신이 말했다. 信曰 신왈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구나. 果若人言 과약인언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영리한 사냥개는 삶아지고, 狡兎死良狗烹 교토사양구팽 날던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깊숙한 곳에 보관되며 飛鳥盡良弓藏 비조진양궁장 적국을 깨뜨리면 모신(謀臣)은 죽는다’라고 하던데, 敵國破謀臣亡 적국파모신망 이미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天下已定 천하이정 나는 마땅히 삶아지겠구나. 我固當烹 아고당팽」
한신은 그때 사면은 되었지만 결국은 유방의 군사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소하도 우여곡절을 격었으나 숙청은 면하여 목숨은 부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대표적인 것이 정도전(鄭道傳)의 사례다. 이방원과 손을 잡고 조선을 탄생시켰던 정도전이 공수신퇴를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인 지도 모른다. 왕은 옥좌에 모셔놓고 정치는자신이 할려고 했는 지도 모른다. 그게 화근이었다.
정도전이 장량처럼 물러날 줄 알았으면 목숨을 부지했었을 턴데 그렇지를 못했다. 결국은 태종인 방원의 칼날에 목숨이 날아갔다.
조선 중종때 조광조도 마찬가지다. 훈구파를 몰아내고 사림파의 막강한 힘을 행사하다 그만 중종의 눈 밖에 났다. 조광조의 권력을 중종이 두려워 한 것이었다. 대가는사약(賜藥)으로 막을 내렸다.
이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예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였다. 잘 나가고 있던 김종필 총리가 하루 아침에 자리가 날라가벼렸다. 이유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답변이 나왔다. 「자의반 타의반 自意半 他意半」이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명언으로 꽆이는 단어중 하나다
또 있다. 김영삼 대통령시절 이 무슨 총리도 그랬다. (총리께서 생존해 계시니 성함은 밝히지 않음)
자고로 통치자는 신하의 권력이 막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강해지면 가지를 치거나 잘라버린다. 이것이 정치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정치가들은 어떠한가? 대통령을 탄생시킨 참모들은 장량 같이 물러날 줄 아는 정객이 얼마나 될가.
끝으로 한번 더 되새겨 본다.
노자는 공수신퇴가 하늘의 도라 했고
맹자는 하늘의 도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 했다. 順天者生 逆天者亡
법려는 공수신퇴를 모르면 토사구팽 당한다고 했다. 兎死狗烹 토끼를 다 잡은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말이다.
쓸모가 없어지면 버러지는 것이 세상사다.
| 살면서
그것을 안다는 것도
큰 지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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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역사공부 잘 하였습니다.
권력이란 지키기위해서 피를 흘리고 뺏기위해서 피를 흘리나 봅니다.
세조도 국방력강화, 세제개편으로 국고확충, 경국대전 편찬으로 법질서 확립 등을 하여 왕권을 강화했으니 권력을 잡기위해 충신들도 죽이나 봅니다.
항시 좋은 글을 남겨주시어
감사히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