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 삶아내던 바로 그 ‘걸쭉한 맛’
성남 닭죽마을
예전에는 계곡에 발 담그고 닭백숙 먹던 게 일상다반사였다. 요즘은 산행을 즐기더라도 그런 여유로운 모습은 언감생심이다. 환경 문제로 산자락의 백숙집들은 자취를 하나 둘씩 감췄고, 계곡에서 천연덕스럽게 닭죽을 끓여 먹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남한산성 일대 뿔뿔이 흩어질 뻔했던 닭죽, 닭백숙집들이 한곳에 모두 모였다. 바로 성남 단대동 닭죽마을이다. 가게를 옮기고 간판도 새로 달았지만 맛만큼은 '계곡에 발 담그던' 태평성대 시절의 맛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왼쪽/오른쪽]닭죽마을 전경 / 닭죽식당은 20여곳 들어서 있다
'닭죽촌 민속마을'에 들어서면 구수한 냄새가 가득하다. 남한산성 초입,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닭죽촌에는 닭죽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20여 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식당 외관과 조리 방법은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30년 정성만은 변함이 없다. 20여 개의 식당 중 30년 외길인생을 걸어온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장마담집과 함께 초가집, 초원의집 등이 30년을 함께한 식당들이다.
15년 전만 해도 닭죽집들이 모여 있던 곳은 이곳 단대동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일부 허름한 식당들이 은행동 산 밑에 천막을 치고 닭죽 장사를 했다. 생활이 어려워 닭을 팔았고, 남한산성에 놀러온 사람들은 계곡에 발 담그고 닭을 먹던 시절이었다.
30년 정성이 깃든 백숙 식당들
"예전에는 닭도 어머니가 손수 잡으셨죠."
닭죽촌의 장마담집은 닭죽만 끓여온 지 40년 가까이 되는 대표적인 닭죽집이다. 욕쟁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들, 며느리가 2대째 식당을 꾸려오고 있다.
"그때는 가마솥에 닭을 삶아서 죽하고 같이 먹었죠. 밑반찬도 달랑 김치 한 가지였네요." 며느리는 "간판도 없이 어렵게 장사를 시작했던 어머니가 4남매를 다 키워내셨다"며 추억에 잠긴다.
[왼쪽/오른쪽]닭은 별도로 삶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 뚝배기에 담겨진 닭백숙
요즘은 닭죽을 끓일 때 가마솥 대신 뚝배기(도가니)를 이용한다. 욕쟁이 할머니가 개발한 도가니탕 조리법을 이제는 닭죽촌 대부분의 식당에서 다 함께 쓴다. 퓨전 닭죽에는 찹쌀, 인삼, 대추, 마늘, 밤 등 7~8가지 재료가 골고루 들어간다. 미리 고아낸 육수에 닭을 넣고 20분 정도 펄펄 끓이면 구수한 닭죽이 완성된다.
이곳 식당들은 대부분의 음식에 국산만을 쓰며 가장 좋은 재료를 고집한다. 며느리의 기억 속에서도 어머니는 늘 시장에 가서 가격에 상관없이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만을 고르던 분이었다.
[왼쪽/오른쪽]펄펄 끓이는게 포인트인 닭백숙 / 전복한방백숙과 닭죽
요즘도 각종 재료는 현지에 직접 주문해서 쓴다. 쌀은 부여에서 가져오고, 인삼은 풍기 것을 쓰며, 한약 재료는 제천 한약시장에서 들여온다. 최근에는 완도군 노화읍에 자리한 노화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전복을 직접 공수해와 전복도가니탕을 메뉴로 내놓고 있다.
장마담집은 식당 이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장마담의 '장'은 '장인'을 의미한다. 욕쟁이 할머니가 음식을 만들 때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며 만든 이름이다. 가끔 술집으로 오해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름을 바꿀 생각은 없다. 장인정신은 음식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육수 내는 법을 배우는 데만 10년이 걸렸다"는 며느리는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만은 한없이 너그러웠던 어머니의 뜻을 잇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전한다.
전복, 오가피, 동치미가 어우러지다
육수 맛은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각자 고유의 육수 비법을 간직하고 있다. 닭죽에 녹두나 오가피를 넣어 맛을 돋우는 집이 있는가 하면, 닭과 궁합이 맞는 재료를 찾기 위해 주인이 한약재 공부에 나선 곳도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중국산 닭을 파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이 일대 식당에서 파는 한방백숙과 옻닭도 별미이며 동치미와 백김치도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왼쪽/오른쪽]각종 한방재료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식당들 / 동치미가 어우러진 닭죽정식
닭죽촌의 터줏대감 격인 식당들은 굳이 원조라는 간판을 달지 않았다. 몇 년 됐다는 얘기도 없다. 식당의 개성을 유지하느라 출입문 위에 욕쟁이 할머니의 사진 등이 위엄 있게 걸려 있을 뿐이다.
닭죽촌 욕쟁이 할머니의 일화는 인근 식당 사람들 사이에서 재밌는 추억거리로 전해진다.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할머니는 음식이 늦게 나온다며 손님들이 투정하면 "이 X아, 어제 오지 무엇 하러 오늘 바쁠 때 왔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기 일쑤였단다. 단골이었던 전 시장님들도 혼이 날까봐 다 먹은 그릇은 치워놓고 가고는 했단다. 1998년 이후 단대동에 닭죽촌이 조성된 후로 식당들은 경쟁과 공조를 유지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맛과 정성도 살갑게 다져지고 있다.
[왼쪽/오른쪽]남한산성 순환로 / 산성길 걷기
닭죽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으면 남한산성을 둘러볼 차례다. 산행 후에 닭죽을 맛봐도 좋고, 배를 채운 뒤 소화 삼아 산성 주변을 슬슬 거닐어도 좋다. 닭죽마을에서 순환로를 건너면 곧바로 남한산성도립공원으로 연결된다.
남한산성은 걷기 좋은 성벽길로 소문난 뒤로 주중, 주말에 관계없이 사랑 받고 있다. 7km에 이르는 길 중 닭죽마을과 가까운 것은 남문에서 시작되는 길이다. 남문에서 수어장대를 거치는 코스는 남한산성길의 대표적인 코스이다. 성벽길은 경사가 완만해 평상복 차림으로도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거닐 수 있다. 닭죽마을에서 남한산성까지 버스가 오가며, 남문 초입에서 산성역까지도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성남시청 → 산성역에서 좌회전 → 남한산성로 초입 닭죽촌(주차는 무료,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
* 대중교통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33-1, 88, 462, 4419번 버스로 약 10분 소요. 민속마을 닭죽촌에서 하차
2. 맛집
장마담집 : 닭죽도가니탕 / 031-745-5700
초원의집 : 닭죽 / 031-742-5449
초가집 : 닭죽 / 031-747-1332
대청마루 : 닭백숙 / 031-743-5389
3. 숙소
킹호텔 : 금곡동 / 031-711-6900
황토방모텔 : 성남동 / 031-757-5185
호텔 갤러리 : 서현동 / 031-702-8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