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중국 신화통신 2012-10-15 (번역) 크메르의 세계
[속보 및 화보] 캄보디아의 국부, 노로돔 시하누크 상왕 서거
Cambodian former King Norodom Sihanouk dies at age of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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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2004년 8월 18일 신화통신과 단독 인터뷰를 하던 노로돔 시하누크 상왕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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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ters) 캄보디아의 훈센(좌측) 총리와 노로돔 시하모니(우측) 국왕이 10월15일 아침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만나 노로돔 시하누크 상왕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이들은 주요 인사들과 더불어 시하누크 공의 유해를 캄보디아로 운구하기 위해, 함께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프놈펜 / Xinhua) -- 캄보디아의 전임 국왕인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상왕이 지병을 치료 중이던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향년 90세를 일기로 자연사했다고, 중국 의료진 의사들과 캄보디아의 넥 분처이(Nhek Bun Chhay) 부총리가 월요일(10.15) 확인했다. 넥 분처이 부총리는 본지(신화통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전임 국왕 폐하께서 월요일 새벽 2시경 베이징에서 자연사 하셨다. 이러한 일은 캄보디아에는 커다란 상실이다. 우리는 매우 슬프다. 전임 국왕께서는 그 백성들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위대한 대왕이셨다." |
넥 분처이 부총리에 따르면,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이 월요일 중에 시하누크 상왕의 유해를 운구하여 베이징을 출발해, 캄보디아에서 '전통적인 장례식'을 거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1922년 10월 31일생인 고(故) 시하누크 상왕은 암과 당뇨병, 그리고 고혈압 등 여러 질병들에 시달렸고, 지난 수년 동안 베이징에서 중국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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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격동적인 아시아의 20세기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았던 영웅 한사람이 서거했네요..
전제 군주, 예술가, 혁명가이자 반군 지도자, 대중 정치인..
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줬던 정말 드라마틱한 인물이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연합뉴스에서도 속보로 캄보디아 상왕 시하누크 서거 소식이
잠깐이지만 자막으로 나오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 몰라도...
이 분의 무능함과 좌충우돌이....결과적으로는 킬링필드로 이어졌다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물론 주변 강대국들에 의한 힘의 역학 관계가 결정적이었겠지만)
아, 잘 모르겠습니다....ㅠㅠ 어렵네요. 역사란...인물평가란.
진짜...캄보디아의 국부라는 점에는 동의해야 할 듯 합니다.
아마 일정 부분은 맞는 생각일 겁니다..
다만 그것을 "무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좀더 생각해봐야 할듯 해요..
20세기 캄보디아 역사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날고 기는 영웅들이 무수히 등장했고..
또 무수히 형장의 이슬이나 암살의 대상으로 사라져가기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라면
어떤 천재도 쉽지 않았을겁니다만..
어찌됐든
특히 시하누크의 외교 부문 정책은
대단히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저도 특정한 결론을 내리진 못하겠더라고요..
아마, 다음번 술자리를 "시하누크"라는 주제로 모이면
그런 형식이라면
이런저런 이야기는 함 나눠 볼 수도 있을듯 해요,,
근데 말이죠..
시하누크 공의 의미는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의 통합>을 상징했던 인물이란 점 아닐까 합니다..
이런 저런 정치세력이 존재했지만..
어찌됐든 그의 참여가 없다면 의미가 없어지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이번 사망에 있어서도
여야는 물론이고 재야단체까지도 대부분 애도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죠..
물론 일부에서는
그를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보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그런 것 같습니다.
시하누크 개인적으로는 캄보디아를 위한다는 지극한 충정에서 좋게 보면 중립적인 태도,
신의(신뢰)라는 면에서 보면 좌충우돌하는 변덕스런 행보를 보였는데,
캄보디아의 불교적 힌두교적 대중은 캄보디아의 수장으로서 시하누크를 신왕 (Divine King)으로 본 듯합니다.
이 신왕사상을 통하여 시하누크는 캄보디아 국민통합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가 중국에 망명 중일 때는 캄인들은 그의 귀국을 메시아의 귀국으로 이해하고 고대하기도 했고요.
교수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종교적 성격도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표현이
정말 적절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