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사순절에 우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공하는
사순절 묵상집을 활용하여 그리스도를 묵상합니다.
아래는 그 소개의 글과 주제 해설입니다.
주제해설:
그리스도의 부활, 우리의 소망
슬픔의 시대, 기쁨을 찾는 여정
이사야서 61:1-3, 마태복음서 5:10-12, 빌립보서 4:4-7
정경일 | 평화와 신학
재난시대입니다.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팬데믹, 이태원 참사, 기후위기…, 끝없이 이어지는 전 지구적 재난의 때에도 인간은 전쟁을 하고, 재난을 초래한 탐욕과 분노와 무지의 삶을 계속합니다. 재난 속에서 생명을 가장 크게 위협당하는 이들은 재난 이전부터 삶이 재난이었던 작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아픔과 슬픔 속에서 기쁨을 어떻게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중심 상징인 십자가가 보여 주듯 인생과 세계의 아픔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의식하면서도 기쁨을 노래하는 종교가 그리스도교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죽음의 고통은 부활 생명의 기쁨과 이어져 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다가오는 것처럼, 부활의 소망을 간직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아픔 속에서도 기쁨을 감각합니다. 이 기쁨의 원천, 역설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입니다! 고통받는 자의 삶 가운데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의 어머니인 유대교 전통도 고통과 기쁨의 공존이라는 신앙의 역설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인이 유랑 생활, 노예 생활, 전쟁과 식민 지배와 같은 무수한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 오히려 고통 속에서 더 강한 하나님 신앙을 갖게 되었던 것은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함께 아파하시고, 앞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였던 자신들을 해방하신 하나님을기억하기에 오늘의 고통 속에서도 ‘기쁜 소식’을 믿으며 구원을 희망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고 실현하신 하나님 나라도 기쁨의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이중적 억압 속에서 몸과 맘이 부서진 이들을 치유하시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서는 스스로도 죄인이라 여기며 비참하게 살아가던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가 어엿한 사람 ‘썸바디’(somebody)가 되고, 특별한 존재 ‘스페셜바디’(specialbody)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박해 속에서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노바디들이었던 자신들에게 복음, 곧 ‘기쁜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신앙과 하나님 나라 복음에서 시작한 초대교회에도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고통 없는’ 기쁨이 아니라 ‘고통 속의’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은 고통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육체적 질병으로 고생했고, 종교적·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았고, 교회의 분열로 괴로워했습니다. 이처럼 삼중적 고통을 겪던 바울이, 당시 나이로는 노년인 50대 후반에 이르러 “사탄의 하수인” 같은 질병에 시달리면서, 박해를 받아 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교회의 분열소식을 들으면서, 게다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던 당시의 로마 제국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속에 있으면서,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씁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바울의 고통이 가장 극심할 때 쓴 빌립보서의 다른 이름은 ‘기쁨의 편지’입니다. ‘고통의 사람’ 바울은 ‘기쁨의 사람’ 바울이었습니다.
고통과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했던 예언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의 신앙과 삶은, 재난과 참사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프지만 외롭지 않게, 슬프지만 무력하지 않게 살아가는 지혜와 영성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끝없는 불행감과 불안감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것이, 고통받는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뿐만 아니라 불의하고 비정한 세상에 용기 있게 맞서는 저항이 된다는 것도 깨우쳐 줍니다. 고통과 기쁨, 그 신앙의 신비와 역설을 묵상하고 깨닫고 체험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