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비록 보잘 것 없는 강론이지만 올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신자분의 요청이 있어 미약하나마 올립니다.
저에게도 올려드리는 것이 저를 추스리는 좋은 계기가 될 듯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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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우리 대만 한인 성당 공동체의 모든 분들과 가정에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내일 이면 설 명절입니다. 설에는 헤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준비한 음식을 서로 나누고 기뻤던 일들과 수고했던 일들을 서로 나눕니다.
전 설이 좋으면서도 늘 아쉬웠습니다. 엄마 은행^___^
나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기쁨을 자아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명절인 설을 통해 가족과 함께 사랑과 기쁨을 나누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힌 뒤에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라고 선포하시며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곧바로 가족과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따라나선다.... 이것은 인생을 도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님.
삶의 전환점을 만난 것입니다. 삶의 전환점은 우리에게 내적 갈등을 안겨 주고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외적 삶의 변화라기 보다 삶에 대한 태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탄생 2000주년을 맞이하여, 또한 성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을 맞이하여 더욱 뜻깊은 바오로 사도의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 과정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증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잡아 들여 죽이려 선두에 섰던 인물입니다. 배운 것도 많았고 출신도 고귀했으며 젊음으로 폐기가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께서 바오로 앞에 나타나셨고 그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적 갈등을 겪게 되고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끼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삶의 전환점 앞에서 바오로가 처음 대면한 것은 침묵과 어둠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이 침묵과 어둠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었고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 훌륭한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이러한 바오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당신이야 말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바오로에게 드러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둠과 침묵, 내적 갈등이라는 고통을 통해 바오로의 하느님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바오로의 기쁨을, 사랑을, 믿음을, 희망을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패션 어브 크라이스트에서의 어머니와의 대화-보십시오, 어머니 제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겠습니다.
빛은 눈보다 중요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눈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귀보다 소중합니다. 소리가 없으면 귀는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소리입니다.
다음의 요한 복음 말씀을 들어보죠.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1-5)
빛은 눈보다 소중합니다. 소리는 귀보다 값집니다.
그런데
빛이신 주님은 어둠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말씀이신 주님은 침묵속으로 당신 자신을 투신하셨습니다. 기쁨이신 주님은 고통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은 죽음의 구렁텅이로 자신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어둠은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침묵은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고통과 죽음은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토록 지겨워하고 싫어하고 두려워 하였던 십자가와 죽음은 사랑 안에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도, 내적 갈등을 그만 두기 위해서도, 슬픔을 모르고 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희망을,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십자가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참다운 내가 되기 위새, 다시말해 우리가 하느님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서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12)
첫댓글 신부님 강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