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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2008.6.1.(일요일)
지난주 함백산에서 돌아올때, 처는 "다음주는 흘림골 가자" 하네.
처제와 동서가 오늘도 운전 해야 하는데 미안하구나.
새벽 5시 집떠나 방배동 처제네 아파트에 주차하고 동서차로
5시 55분 떠나 올림픽대로 미사리 팔당대교 양평 용문 홍천 인제 원통 지나
흘림골입구에 8시25분에 도착 한다.
전에 이길로 다닐때에는 꼬불꼬불 하고 길펴는 공사로 시간 걸리더니
이제 길은 편도 2차선으로 잘 되어 서울에서 두시간 반 걸린다.
흘림골입구
8시35분 산행을 시작하려는데,경상도에서 온 대형버스가 등산객을 풀어놓는다.
그들 보다 먼저 가려고 앞 섰더니 처와 처제가 그사람들을 보내고 뒤에 오니' 나도 기다릴 수 밖에......
흘림골은 20년간 자연휴식년제를 2004년 9월에 개방이 시작된 남설악의 비경 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년동안 묻혀두었던 자연의 모습은...
2년전 수마에 망가져 커다란 바위들이 여기 굴러오다 멈춰 있고, 나무들은 저기 뽑혀있다.
덕분에(?) 등산로는 계단이 죽---- 놓이고
아깝도다 ! 진작에 왔어야 하는 것을 ...
8시44분 부터 오른쪽으로 뾰죽뾰죽한 여러봉의 바위가 일열로 늘어선게 보인다.
계곡 옆으로 외길이라 밥자리도 마땅치 않아 물가의 공터에 앉아
8시50분부터 9시25분 까지 떡으로 아침을 먹고,
나무계단에 타이어 자른 고무를 깔아 완충을 준 계단을 오르는데,
처가 우측 늘어선 바위봉이 칠형제봉인가? 하니
처제는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세더니 일곱봉우리 맞다네.
그 봉우리들이 칠형제봉 맞나보다.
산목련(함박꽃)봉오리도, 핀꽃도 많네.
9시29분 계단에서 뒤돌아본 처는 칠형제봉이 잘 보이니 감탄이 쏟아진다.
칠형제봉은 고도를 높일 수록 다른 모양을 보여준다.
9시37분 처는 아래에서 더 올라가지 말고 있으라며 내 사진을 찍는다
위에서 처제는 형부 올라오지 마세요 한다.
아래 위에서 남편 형부 사진 잘 찍어 주나보다 생각하며
위를 보니 나무숲에 가려 처제는 보이지도 않는데.
9시38분 제법 오르고 보니 칠형제봉이 아래로 보이며, 그뒤로 설악산 서북능선이 멀리 겹쳐 보인다.
9시42분 계곡 왼쪽의 사태지역은 흙자루와 돌축대를 쌓고 그물망을 씌워, 사태를 방지 하여 복구 하고 있다.
9시49분 오른쪽에는 흘림골 1.2km, 용소폭포 2.8km, 약수터 입구 5.0km 이정목이 있고
왼쪽엔 여심폭포 0.3km 아래로, 등선폭포0.4km 위로 이정목이 있는걸 보니,
아뿔사 !!! 여심폭포를 지나쳤네.......
왼편으로 우선 등선대를 오르고 보자.
오르는 길에 30여cm 되고 가느다란 줄기에 노란 잘디잔 꽃을 보고
키작은 수수보따리(라일락)의 향내를 맡으며 오른쪽엔 커다란 바위를 지나 오르는데
앞서 오른 동서가 "형님! 막걸리 잡수세요 " 라 소리쳐 부지런히 계단 올라 가니,
먼저 온 등산객들이 동서 보고 막걸리 마시라는 걸 사양 하고 나를 불렀는데 그이들이 다 마셔버렸네.
아쉬워라.
선녀가 하늘로 오른다는 등선대(登仙臺)는 흘림골 산행의 절정이다.
기암괴석의 바위덩어리를 힘겹게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남 설악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사방에 뾰족바위로 뒤덮인 산들이 연봉을 이룬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만물상이다. 등선대는 만물상의 중심인 셈이다. 동으로는 칠형제봉과 그 너머로 한계령과 귀때기청봉이, 서쪽으로는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다. 도대체 이 곳이 어디란 말인가.
설악에도 이런 절경이 있었나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로 비경이다.
-누구인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등선대에서 360도 막힘없이 조망 하는데
남설악의 비경들이 발 아래로 깔리고, 온갖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며,
안산 ,귀떼기청봉에서.대청봉까지 서북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경치에 "역시나! 설악이야"
오늘은 이곳 한곳 만 보고 돌아가도 아깝지 않겠다.
처는, "우리가 작년 1월초에 한계령 올라 서북능선으로 대청봉 눈산행 할때,
당신이 힘들게 오르던 끝청도 보이네" 하며 건너편 녹음 짙은 끝청과 대청봉을 가리킨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 누가 폭파라도 해 높이 좀 낮추어 주었으면 하며 애를 먹으며 올랐었다.
처제는 건너다 보면서 "별 것도 아니네" 한다.
(내가 속으로 눈 쌓였을때 한번 올라 가 보시지 그런 소리가 나오나.)
등선대 추락주의 난간에 가볍게 기대선 자매
여심폭포 지나쳤다 하니 옆의분이 쌍안경을 보라고 주는데 보아도 시답지 않다.
등선대 갈림길 다시 내려오니, 어떤이가 얼린 장수막걸리 한병을 꺼내어 같이 먹자는데
주인 먼저 드시라니 어르신 먼저 드시라 권한다.
이젠 젊은척 해도 안 통하고, 내마음만 젊은가.
누구의 눈에도 늙은이로 바로 보이나 보다.^^*
"0.3km 밖에 안되니 여심폭포 다녀 오자 " 하니
처제는 "내 사전에 지나왔던 길 다시 내려 갔다 오는 일은 없다" 며
용소폭포 방향으로 그냥 내려 간다네.
옆에 있던 어떤 부인은 자기도 안간다며 "집에 가서 봐야지" 한다.
내가 언제 자기보고 가자구나 했나.
그소리 들으니 웃음이 나 견딜 수가 없다.
세상에 여심폭포를 집에 가 보다니,
집에 가 뭘 보겠다는거야,거울 앞에 쪼그려 앉아라도 보겠다는 거야ㅋㅋㅋㅋ
부인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나혼자 킬킬킬.
언니는 동생 보고 천천히 가라 하고
10시15분 우리부부만 300m 여심폭포로 되 내려 가는데
처는 녹지않은 어름막걸리를 잔에 담아 녹을때 기다리며 들고 내려간다.
자기가 무슨 대단한 모주꾼이라고.
아까 올라갈때 처가 아래에서 나 올라 가지말고 있으라 하고 사진 찍어주던 곳,
처제도 올라 오지 말라던 그곳 보다 조금 아래에 여심폭포가 있는데
그때에는 칠형제봉에 홀려서 바로 길가에 있는데, 옆을 돌아 보지도 못했구나.
단체로 온 등산객이 연신 올라오는데, 대부분 그냥 지나 가기에 알려준다.
이정표가 없어서 앞만 보고 오르다 보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자연은 참 오묘 하다.누군가 이름도 잘 지었고 모양도 닮았네.
다시 허위단심 힘들게 등선대 갈림길에 오니 10시46분이다.
얼린 포도즙 먹으며 쉬는중에 장갑이 보여 소리쳐 주인 찾아 주고.
동서네랑 30여분 떨어졌으니 부지런히 따라 가야지.
11시4분 우측으로 낙차가 큰 등선폭포가 있는데 수량은 적다.
계곡엔 물에 휩슬려 굴러온 바위들이 제대로 자리잡아 보기에 좋아 지려면
몇백년은 지나야 될 것 같고
등선폭포
11시22분 등선폭포 지나며
머리들어 전후좌우 휘둘러보면 기암괴석의 봉우리들이 역시 설악이야 하는 탄성이 나온다.
걷는 길은 타이어 고무깔린 계단과 고무깔린 마루길에 계곡쪽으로는 추락주의 글이 붙은 난간이 있다.
난간없는 안쪽엔 연두색 야광 스티커를 붙여 밤에도 눈에 잘 들어오겠다.
11시41분 우측은 출입금지,좌측으로 가는데 12폭포라네.
왼쪽에는 채석강의 채석 같은 켜켜의 바위가 있고
11시46분 우측으로 폭포가 시작이라 조금 가다 보니 또 폭포.
12폭포라 했으니 폭포가 12개나 있으려나.
부지런히 가도 동서네가 안보이네, 30분은 따라 가기에는 먼 거리인가 보다.
11시58 우측의 폭포를 보는데,
언니! 부르는 소리에 아래를 보니 두사람이 쉬며 기다린다.
여러곳에서 기다렸는데 그때마다 단체 산객들이 몰려와 예까지 밀려 왔다네.
처음 왔으니 잘은 모르지만 전에는 계곡과 계곡옆으로 길이 있었나 본데
물에 휩쓸린 후에 말뚝을 세우고 마루판 깔고 타이어 자른 고무줄을 깔았는데
더우니 길에서 타이어 고무 냄새가 올라 온다, 한여름이면 더 심할 터이지.
동서는 마루길을 산(生)나무를 다치지 않고 깔아
좁은 곳은 나무를 감싸안고 돌아야 하는 친환경적인 길이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도는데...하는 정선 아리랑이 생각 난다.
12시12분 동서는 "ㄱ"ㄴ"나무라기에 보니 나무가지가 "ㄱ"ㄴ"자로 굽었는데
"ㄹ"자 나무로 볼 수도 있구나.
12시16분 흘림골입구 3.5km,약수터 2.7km 이정목 지나 좌우로 우뚝솟은 바위봉 보고
좌측으로 용소폭포 0.5km 라는 이정목 보고, 갔다 오자니 처제네는 또 안 간다네.
처도 더 이상 갔다 오자는 말 못하니 그냥 지나 함박꽃이 많이 핀 나무 지난다
12시21분 금강문 보고
12시29분 널고 큰 우측 바위에 올라 사주를 올려보며 조망 하고
선녀탕을 망가지기 전 사진이 옆에 있어 비교해 보니 안타깝네.
비슷비슷한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으니 어떤이는 형제들 같다고도 하고
부자(父子) 같기도 하다는데
러시아 인형에 큰인형속에 작은인형이 겹겹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봉우리들도 포개면 그렇게 될것도 같다.
12시51분 五色石寺(성국사) 옆의 잘생긴 금강송 두그루가 죽어가고 있어 아깝다.
오색석사의 분출되는 약수는 당뇨,위장병,위하수,이뇨,위체,혈압,중풍(예방),위염,변비에
좋다는 안내판이 있어 물을 먹어 보니 좋아 500ml 한병 떠왔다.
2층 기단위에 3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란다.
기암괴석이 녹각림처럼 연호하여 산수미의 진수를 보여 준다니 설악산과 흘림골의 설명인가.
1시5분 아치형 다리건너, 1시 13분 약수교에서 산행을 마쳤다.
흘림골 입구에 약수터입구란 이정표에 약수터가 어딘가 했더니 오색 약수 있는 곳이로구나.
약수도 마셔 보니 옛날 보다 쇠냄새도 덜하고 쏘는맛도 덜하다.
이약수로 밥을 하면 녹두색이 나며 찰밥처럼 맛이 있고
미역국을 끓여도 맛이 있었는데 여전 하려나?
두군데 원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곳이 오색약수가 나오는곳이다
철분이 많아 물이 붉고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있다
방송국들은 가는곳 마다 식당 선전들을 많이도 해 주었구나.
방송에 안나온 식당 찾기도 힘드네
나는 대포항에 가서 회먹고 놀다 늦으막이 올라 가자하고
세사람은 이곳에서 밥 먹고 차 밀리기 전에 얼른 올라가자네.
3:1이라, 지난주에 이어 연속 원정산행을 했기에 일찌감치 돌아가기로 했다.
산채정식과 황태정식을 2인분씩 시켜 골고루 맛보고,
2시반에 식당에서 차로 흘림골 우리차 있는데로 와 항계령휴게소에서 잠시 조망 하고.
홍천을 지나는 길에는 막국수집이 많기도 하다.
견물생심으로 또 막국수를 먹고 ,양평으로 가는 중 점점 차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방배동 들려 집에오니 저녘 8시.
올때는 5시간도 더 걸렸네.
첫댓글 선생님! 산행기도 재미있고 기력이 참 대단하십니다. 청년보다 나으시니 앞으로 20년은 더 산을 타시겠습니다.
청계님 고맙습니다.30년 더 타려 했는데 청계님때문에 10년 줄여야겠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선생님의 해학은 아마도 가장 큰 젊은 의 밑천인겄 같습니다. 늫 행복한 산행 이으시길 바람니다.
뭐가 밑천인지 몰라도 젊게 사는게 좋지요.난테님 당부말씀대로 행복한 산행 잇겠습니다.
흘림골.. 산행지도가 없어 어디가 어딘지 잘은 모르오나 참으로 아름다운 비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칠형제봉의 암봉과 주위의 암릉이 여포창날이 따로 없군요. 여심폭포를 보기 위해 다시 내려가시는 것을 보면 두 분께서는 아직까지 정열이 식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드립니다. 수고하신 덕분에 여심폭포 감하고요, 요즘 기름 값이 장난이 아닌데 허구헌날 동서네 차만 얻어 타시지 마시고 이번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네 차로 가시기 바랍니다. (너무 직언을 했나요) ^^
한계령 휴게소에서 오색 약수로 내려 가는 중간에 흘림골 입구가 있습니다.반대로 오색약수터에서 오를 수 도 있구요.운전은 차가 더 좋고 젊은 사람이 해야 하고 기름값 못지않은 밥사면 되지요.
선배님 오색 약수에서 안올라가시고 바로 한계령 밑에서 우측으로 난길 따라 가셨다가 내려오셨습니까? 그전에 사태나기전에 칠형제봉 갈려다가 공단직원들땜에 못갔었는데,,,,(아들넘 면회 핑계로 올라갈려다가 못가고)덕분에 잘 봤습니다^^
그곳 맞습니다.망가지기 전에 갔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