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운명
중국 한자 개혁은 한자가 생기면서부터 있었다. 그 간체자가 갑골문, 금석문, 소전, 예서, 해서에도 있고, 당·송 이후에도 발달하고, 태평천국(1851~1864: 홍수전들이 중국 광시성에 세웠다가 이홍장들에게 망한 나라) 때에는 실용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 1900년에 왕자오(왕조)가 닿소리 50, 홀소리 12, 성조 4개로 2,000음절을 적을 수 있는 ‘관화 합성 자모’를 발명하고, 1918년에 ‘주음 자모’(닿소리 21, 홀소리 16)를 공표했다. (지금 한국·일본에서도 한자 사전들에 한자 음을 나타내는 ‘주음 부호’라고 쓰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루페이쿠이(육비규)는 1921년에 ‘정리 한자의 의견’을 냈고, 쳰쉬안퉁(전현동)은 1922년에 ‘감생 현행 한자 필획안’에서
“문자를 표음으로 바꿔 쓰는 것은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고, 필획을 줄이는 것은 일 시적 해결 방법이다.”
라고 했다.
그 뒤 1926년에 ‘국어 로마자 병음 방식’이 발표되고, 1928년에 ‘국어 로마자’가 공표되고, 이어서 ‘송·원 이래 속자보’(1930), ‘국음 상용자회’(1932), ‘간자 표준표’(1934), ‘간체자보’(1935), ‘간체자전’(1936), ‘상용 간자표’(1936), ‘간체자표’(1937)들이 나왔고, 1941년에는 ‘중국자 라틴화 운동 연표’를 펴내 로마자 운동이 계속되었다.
중국 한자 없애기 운동은 지배 계급 사회에서는 시대 요구에 따라 줄기차게 이어졌으나, 뜻밖으로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먹고 사느라고 한자를 배울 겨를이 없어 문맹 상태인 농민들은 자나깨나 언젠가는 한번 배워야겠다고 역사 이래 대대로 별러 오는데 한자를 없애다니 안 될 말이라고 버틴 것이다.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제일비 간체자표’(1951)를 공표한 데 이어 우위장(오옥장)이 1955년 4월에
“한자 표음화 이전에 간체화해서 쓰는 데 어려움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고 했고, 1956년에는 ‘한자 간화 방안’을 공표했다. (곧, 간체자는 한자 로마자화의 준비용임을 밝힌 것이다.)
1958년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문자의 개혁’이라는 영문 소책자가 나왔는데, 그 책에 저우언라이(주은래)의 ‘중국 문자 개혁에 관한 당면 과업’이란 글이 실려 있다. 그 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 한 가지 남은 의문은 중국 한자의 운명이다. 우리는 모두 한자가 지울 수 없는 공헌 을 역사에 남긴 것에 대해서 동의한다. 한자가 앞으로도 영구히 변함없이 살아남을 것이 냐, 원래의 형체에서 변할 것이냐, 또는 표음문자에 의해서 대체될 것이냐, 그 대체 문자가 라틴문자일 것이냐, 또는 그 밖의 어떤 표음문자일 것이냐,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성급한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다. 문자의 변천에서 실증하는 바와 같이 어떠한 언어도 과거에 변 했고, 또 장래에도 변할 것이다. … 인류의 언어 발전 추세는 모든 언어가 서로 접근한다 는 것이며, 그것은 드디어 각 언어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중국 문자 개혁 위원회는 1964년에 ‘간화자 총표’를 펴냈는데, 2,238자 가운데 ‘簽·須’ 2자가 겹쳐 2,236자를 수록했고, 1986년에 공식 발표했다. 중국에서는 ‘鞦韆’(그네)을 버리고 ‘秋千’으로 적는다. 이 ‘秋千’이 [츄췐]이라는 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간체자는 뜻이 없는 소리 적기 노릇을 한다. 그 뒤에도 760여 자 더 간화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로마자를 일부에서 실용화하고 있다. 약상자에도 중국 베이징 동인당에서 만든 ‘동인 우황 청심환’이란 한자 옆에 중국음 [퉁런 뉴황 칭신완]을 로마자 ‘TONGREN NIUHUANG QINGXINWAN’으로 적고 있다.
중국 과학원 어언 연구소 사전 편집실에서 엮은 <현대 한어 사전> 앞 표지에도 아래쪽에 한자로 책이름을 적고 그 위쪽에 로마자로 ‘XIANDAI HANYU CIDIAN’으로 적고 있다.
그 뒤 사전들의 한자 벌임 차례도 획순이 아니고 로마자 A B C 차례로 ‘一’이 아닌 ‘阿’자가 맨 처음에 나오고, 낱말마다 로마자(한어 병음 자모)로 음이 달려 있다. 저우언라이가 말한 대로 한자가 소리글짜(간체자. 로마자화 방안)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쓰고 있는 한어 병음 적기는 1986년에 유엔에서 채택한 것인데, 대만에서는 2000년 10월 7일에 통용 병음 적기를 채택하여 2001년부터 소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두 안이 비슷하지만 ‘興, 大龍’을 중국에서는 ‘Xing, Dalong’으로, 대만에서는 ‘Sing, Dairung’으로 적는다.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해마다 주는 세계 인류의 문맹 없애기 공로상 이름이 세종대왕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이 상을 1995년에는 9월 8일에 에콰도르 농촌 여성 문맹 없애기 모임과 중국 부녀 연합이 받았다.
지금 중국에서는 한자를 없애고 간체자를 쓰고 있다. 그래서 경제가 살아나 산업 물결이 우리를 쫓고 있다. 간체자는 한자 같지만 실제로는 한글과 같이 뜻이 없는 소리글짜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중국이 버린 번체자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제 글짜 놔두고 한자를 쓰자고 하니 깔보고 동북공정이 날름거린다.
1984년의 일이다. 일본에서 강연할 때 칠판에 ‘猥褻’이라고 적었더니 초등·중등 교사 850명이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외설’이라는 한자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인구 13억이라지만, 1억이나 알까 12억은 모르는 상태다.
실제로 중국 말글살이에서는 ‘외설’을 한자로는 몰라도 그 음을 로마자로 적은 ‘weishie’로는 안다.
한자의 운명은 리진시(여금희)가 1950년 11월 5일에 광명일보에 보낸 글에서,
“언젠가는 없어지되, 언제까지도 두지는 못해
잠깐은 꼭 남겨 두되, 갑자기는 없애지 못해“
라고 한 바 있다.
우리는 1960~70년대에 한글 전용으로, 한자 배울 그 시간에 살 궁리를 하여 잘 살게 되었다. 20세기를 보내면서 한자를 끌어들여 경제가 흔들린다니 안타깝다.
우리 한자 문제는 국민 전체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필요한 사람만 따로 간체자나 가르치고 배우면 된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로마자보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한글이 나으니까 중국에서도 속으로만 앓지 말고 한글을 쓰도록 깨우쳐 주어야 한다. 저우언라이가 말한 "라틴문자(로마자) 아닌 표음문자"는 한글일 수밖에 없다.
옥스퍼드 대학교가 1990년대에 합리성·과학성·독창성을 기준으로 세계 글짜 가운데 으뜸으로 꼽은 한글이, 지금 디지털 문명 시대에 걸맞게 컴퓨터나 손전화 글짜판에 입력하기도 쉽고 빠르다.
어느 나라 말이든지 어느 나라 글짜보다도 훨씬 많이 적어 나타낼 수 있는 한글을 쓰면, 중국에서도 그냥 문맹의 씨가 마르고, 앞선 문화 강대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