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펠 냉장고
26년 된 보물 ‘지펠 냉장고’가 아프다. 여러 차례 큰 수술과 간단한 치료를 받으면서 주방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냉장고 내부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갑갑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놀리는 친척 말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어쩌면 성격 탓으로 가전제품이 구시대 유물이 되도록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냉동실에 얼음이 얼어서 두 차례 얼음 깨기 대작전을 했다. 서비스 센터에서 방문 서비스 받은 일도 있었지만, 드라이기를 사용해서 얼음을 녹이는 ‘빙하 녹이기 대작전’을 세 번이나 했다. 수건으로 녹아내리는 얼음물을 닦아내며 온종일 씨름하면서도 우리는 투덜거리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쓸데까지 사용하고 수명이 다하면 새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했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답답하거나 짠돌이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다지 알뜰하지 않다. 그냥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뿐이다. 냉장고가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정말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긴 시간 애썼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아쉽지만 보내줘야 한다.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이제 냉장고가 힘에 부치는지 되다가 안 되다가 하면서 정말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서 애를 쓰는 것 같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기쁘고 소리가 안 나면 숨이 가빠서 쉬나보다 이제 보내줘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느꼈다. 너무 힘들지 않게 보내줄 생각이다.
26년 전, 지금 사는 신축 아파트로 입주할 때 친정엄마가 선물로 사 주신 것이다, ‘지펠 냉장고’라고 그때는 한창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제품이다. 어쩌면 나의 손길이 가장 많이 간 애장품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친구다. 가족의 건강 지킴이로 오랜 시간을 곁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한 소중한 친구다.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예약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받을 때 엔지니어가 이 제품은 단종 되어서 부품을 구하기도 어렵고 수리비가 더 나오니까 새로 사는 것을 추천했었다. 그 후로 별 탈 없이 수년 간을 버텨주었는데 엊그제 빙하작업을 하고 나서부터 급격히 기력이 떨어졌다, 이제 새로 사야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쇼핑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진짜 보내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오늘 서비스 센터에서 방문하기로 했다. 마음이 이상하다. - 2024년2월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