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 1
고정현
1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뛴 걸음으로 부지런히 사무실로 간다. 늦어도 한 참이나 늦은 것이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청담대교에서 사고가 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늘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던 그가
오늘은 혹시 차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에 차를 끌고 나온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겠지만,
만일 그녀가 시외로 나가서 식사하자고 할지도 모른 다는 예감 때문에 차를 끌고 나왔는데 청담대교 3개
차선이 한 시간이상 밀려버리는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는 어떤 차와 어떤 차가 어떻게 사고를 냈고 몇
사람이나 다쳤으며 하는 것들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저 꽉 막힌 도로에서 몇 대의 담배를 피워대며
툴툴거리고 짜증스럽게 침을 내 뱉으며 견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통통제가 끝난 후의 도로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무심하게 차량들이 지나가는 무게를 견디고 있었고, 그는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그는 사무실을 열기 전에 잠시 머뭇거렸다. 차라리 전화로 몸이 아프다 핑계하고 집에서 쉬는 것이 낳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이미 회사 정문을 통과하면서부터 그런 계획은 필요 없는 계획일 뿐이었다.
다른 회사도 그렇겠지만 그가 다니는 회사 역시 정문에 설치되어 있는 CCTV는 정직하게 그를 찍어두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라도 왜 늦었느냐고 물으면 청담대교 사고를 말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마음이
쓰이는 것은 바로 그녀와의 관계 때문이다. 사무실 직원들이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어쩌면 그와 그녀의 관계를
대충 눈치 채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와 그녀는 사무실에서 전혀 다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고, 오히려 그런 조심이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보다는 더 서먹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도둑이 제 발 저리다 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와 그녀는 업무 처리에 있어서 조차 서먹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그녀와 저녁을 먹은 후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런 부담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 다른 직원들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대하도록 하자고 말을 나누었음에도 그의 생각
은 다른 직원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분명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무실 문을 열고 호흡을 크게 하면서 조용히 발을 들여 놓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사무실의 분위기가
상당히 냉랭한 것이었다. 그가 한 시간이나 늦게 출근했음에도 전처럼 왜 늦었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고개 돌려 그를 힐끗 쳐다보는 사람은 있었지만 아는 체하는 것조차 사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면서 문득 그 자리가 비워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가끔 그녀가 자리를 비울 때가 있었으니 특별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녀는 분명 윗분에게 보고를 하러 갔거나 다른 부서와 업무 협력 차 다른 사무실에 가 있거나 아니면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분명 그녀의 자리가 비워졌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차마 누구에게 묻거나 확인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늦었지만 분명 회사를 지각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의 메일함에는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업무가 그녀의 손가락에 의하여 정리
되어 들어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업무상의 이유가 없으면 우리 과 회의는 없을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우선 자신의 메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그 날의 업무는 메일로 보내 드릴 것입니다. 업무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은 여러분들의 직속상관인 대리들께 물어 보시면 됩니다. 나는 가능한 여러분들의 업무적 시간을 빼앗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소설 시작하셨군요~~~
모 문예지에 발표 된 소설이기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소설이 지금 연재되고 있는데
그 소설도 연재가 끝나면 소개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