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흑암의 역사카페 운영자중 한사람의 언급대로
빛과 흑암의 역사카페가 말그대로 빛과 흑암의 공존하는 것을 지향한다면
이 카페에는 기독교인으로서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빛과 흑암의 역사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카페라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빛과 흑암의 공존의 카페라고 생각하면 큰 오류이며 치명적인 모순입니다.
우선 온라인 카페는 그 자체가 비본질입니다. 해도 그만이며 안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카페에서 다른사람과 공격적인 댓글 논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급히 성내지 아니하며 악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 내느니라.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아니하나 예언들이라도 끝이 올 것이요,
방언들이라도 그치게 될 것이며 지식도 끝나게 되리라.
고린도전서 13장 4절 5절 6절 7절 8절
말씀과 다르게 살면서 뉴월드오더를 많이 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도 사랑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19절 ~ 23절
위의 말씀에 나타난 모습중에 이 카페의 모습이 어느 쪽에 가깝다고 보여집니까?
그런데 왜 이곳에서 모여서 다툼과 분노를 즐기는 것입니까?
이 카페에 좋은 글들과 정보를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겪어서 아시겠지만 논쟁을 즐기는 자들은 A를 이야기하면 D로 F로 댓글로 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논점을 흐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합니다.
이런 곳에서 좋은 글이란 그들에게 새로운 피해자를 공급해주는 미끼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에 이미쓴 제글들을 모두 스크랩금지로 바꾸었습니다.
왜냐면 그 링크하나로 누군가를 여기로 오게 될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카페에서 현 시대의 상황에 대해서 알게 되는 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장점을 보더라도 이 카페에서의 독한 논쟁은 그러한 장점을 마이너스로 만들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정보에 대해서는 우리는 성경으로 이미 결말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이뤄지는 지만 보는 것뿐입니다.
일루미나티의 어젠다가 담긴 영화를 봐서 무슨 새로운 정보를 알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일루미나티들도 거부할 수 없이 성경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이 오래살려고 버티는 것입니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박하와 아니스와 커민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율법과 공의와 자비와 믿음의 더 중요한 것을 빠뜨렸기 때문이라.
너희는 이것들도 마땅히 행하고 또 저것들도 저버리지 말아야 하리라.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구나.
마태복음 23장 23절 24절
상대방의 댓글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얻어지는 자신의 정당성에는 불을 키면서
그것들 보다 더 중요한 율법과 공의와 자비와 믿음의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위선자들의 행태를 이 카페에서 보게 됩니다.
왜 그런 것인가요? 카페는 비본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본질을 범하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까?
스스로 생각해 볼때 이 카페의 독한 논쟁과 서로를 물어뜯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자신의 영이 감당하기 어렵다면 이곳을 떠나거나 절제하기 바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카페의 논쟁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곳을 떠나고 절제하십시요. 왜냐면 당신은 스스로를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한 존재입니다. 포르노를 보면서 음란의 영에게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논쟁에서 이겨도 져도 서로에게 상처뿐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분들은 논쟁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제일 우선이며 일루미나티의 비밀을 조금 더 알았다고 우리 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논쟁도 중독입니다. 저도 그런 것을 느끼기에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 카페를 보시면 댓글이 수십개 이상되는 글의 조회수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높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글보다 서로 헐뜯는 논쟁을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는 그런 콜롯세움의 관중과 같은 악함이 있습니다.
논쟁을 이겨도 져도 남는 것은 안타까움과 아쉬운 회한뿐입니다.
이곳에서 눈팅으로라도 오랜 기간을 읽는 것은 자신의 영을 악한 자들이 갉아먹을 수 있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제일 먼저 피해자는 바로 당신이며,
그 다음 피해자는 당신과 논쟁하는 사람이며,
그 다음 피해자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며,
그 다음 피해자는 이곳을 이렇게 방치하여 운영하게된 사람들입니다.
순서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다른 것이 아니고 다 마찬가지로 보여집니다.
남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느니라.
실로 그가 서게 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서개 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
로마서 14장 4절
저도 이렇게 글을 쓰는데 망설임이 없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6장 41절
제가 가진 들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카페가 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말하여야 할때가 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은 전에 글에 쓴것처럼 이교도와 배교도의 수용입니다.
이전에 경고하였듯이 일정부분의 선을 넘는 순간 모두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자로에 핵반응시에 흑연을 감속재로 씁니다.
그런데 원자로에 감속재를 넣지 않으면 그 원자로는 터지고 맙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자유토론을 생각하다가 이 카페는 이미 악하게 바뀌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것을 봅니다.
자유라는 것을 하나님에 대해서 자유하려는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사탄이 됩니다.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의 의한 자유가 진짜 자유입니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제외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진짜 자유입니다.
금지하신 것을 먹고도 반드시 죽지는 아니하려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죄이며 교만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6절 17절
보입니까?
처음에는 생명의 나무의 과실은 먹는 것이 허락되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입니다.
그러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고 생명의 나무의 과실도 금지 되었습니다.
죄이며 교만은 우리의 자유를 없애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과거의 빛과 흑암의 역사카페와 선을 넘은 지금의 빛과 흑암의 역사카페는 이제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눈팅으로 논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 카페에 있으면서 자신은 이 카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다고 하는 것은
천주교에 있으면서 천주교의 교리를 거부하지만 천주교에 다니는 것과 같은 위선입니다.
이 카페를 즐겨찾기에서 없애고 방문을 자제하고 절제하십시요.
그리고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요.
그럴때 어설픈 운영자들도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되길 바래야 할것입니다.
스스로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구분이 되실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카페, 오래된 곳, 하루에도 많은 글들이 올라오는데
그깟 한 두 명정도되는 원불교인과 천주교 일치주의자 문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많은 사람들과 오래된것과 하루에도 많은 글들이 있는 것은 모두 비본질이지만
이교도와 배교도의 문제는 본질의 문제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는데
네가 이것을 삼 일 만에 세우겠단 말이냐?"고 하더라.
요한복음 2장 20절
사십육 년이 크게 보이지만 비본질입니다.
사십육 년이 비본질이지만 하루 하루는 본질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이런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큼의 사치가 없습니다.
시간은 아무리 부자라해도 더 얻을 수 없습니다.
비본질인 온라인카페에서 그것도 비본질인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됩니다.
텔레비젼과 온라인 카페에서 시간을 낭비하시는 것을 멈추고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십시요.
말씀 그 이상의 정보는 이런 온라인카페에 없습니다.
원불교도를 수용하고 배교도를 수용하면서도 이글을 삭제하는 것은 운영자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원불교도와 배교도가 수용되는 이곳에 남아서 논쟁을 즐기는 것은 카페 회원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사람들에게 천국을 닫아버려서 너희 자신도 들어 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
마태복음 23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