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지옥을 알아야 현실이 됩니다.
우리 사회에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으면 죽은 후에 천당에 가게 되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집중하여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왜 죽은 다음에 천당에 가서 살아야 하나…. 지금 생명이 살아있어 숨을 쉬고 살아갈 때에 천당을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불교의 윤회설에서 근거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윤회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필자는 예수를 믿는 성도의 인생은 죽은 다음에 천당에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아있을 때 천당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에 다른 분이 써놓은 설교 문을 이용하여 이렇게 설교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는 길에 사닥다리가 놓여있는데 한 주일 예배 빼먹으면 사닥다리 계단 한 개가 없어진다. 두 주일 세 주일 빼먹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다음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천당가는 계단에 못 오르게 된다.” 물론 이것은 교회 출석 잘 하라는 권유였겠지만 어린이들에게 천당과 지옥의 인식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필자에게 천당과 지옥이 실제로 있습니까? 하고 질문한다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실제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나 편견입니다. 만일 산간벽지에서 사는 사람이 비행기나 TV 컴퓨터 같은 것을 보지 못했으니 그러한 물건이 없다고 인정한다면 옳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더구나 사후에 대한 영혼 문제라든가 천당. 지옥 같은 것은 무형한 정신계에 지극히 어려운 문제인데 하등의 깊은 연구도 없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덮어놓고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참으로 우물 안의 개구리의 소견과 같이 자기의 어리석은 것을 드러내는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동차와 TV 컴퓨터 같은 것은 우리가 항상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원자폭탄은 우리가 눈으로는 보지 못하였으나 신문지상의 보도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서 확실히 있다고 믿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와 같이 천당․ 지옥에 대해서도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써 확실히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첫째로 성경말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말씀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들려 준 메시지 가운데 하나로써 사후세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천당과 지옥의 확실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보면, 부자가 누구인지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왜일까요? 창피 주는 것이 싫어서일까요? 제 생각에는 생명책에서 빠져서일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평생 ‘이름 값’도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실명으로 거론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 당당하게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자기 사욕과 죄악에 사로잡혀서 살면 결국은 지옥 불에 떨어져서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영생’이 아니라, ‘영멸과 영벌’에 해당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돈, 명예, 권력과는 무관하게도 비록 거지로 살며 그 부잣집의 문전박대를 받으며 가장 천한 인간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끝까지 신실함을 버리지 않았던 나사로는 천당으로 갔습니다. 그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장소로 옮겨져서 살게 되는 ‘영생과 영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금생과 내생은 완전히 대조적일 수 있는 상황임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은 꾸며놓은 우화가 아니라, 정말 실화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지난 시절 우리는 이 얘기를 실화로 알고 실감 나게 받아들이며 꼭 천당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잘못된 종교학자나 불신자들 중에는 “이 땅에서 착하게 살라고 천당과 지옥의 이야기를 만들어놓았다. 겁주기 위해서 만든 얘기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어봤냐?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매우 정직한 것 같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천당과 지옥을 그림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천당과 지옥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이 천당과 지옥의 실재를 말씀하셨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하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천당과 지옥의 존재는 필연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법망을 슬슬 피해가면서 산 법꾸라지들이 피할 수 없는 장소가 바로 그곳입니다.
둘째로 죽는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입관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의 경험을 빌리자면 죽은 모습을 보면 천당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영안이 열리는 시기는 첫째로 유아일 때 열립니다. 유아일 때 영안이 열리기 때문에 생소한 곳에 가면 아기들이 우는 것입니다. 그곳에 사납고 악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죽기직전에 영안이 열립니다. 영안이 열려서 보니까, 자신을 데리러온 사자들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거나 예수를 대충 믿자가 죽는 사람들은 지옥의 사자들에 험상 굳은 모습을 하고 데리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따라가지 않으려고 이를 갈기도 하고, 혀를 깨물기도 하고, 악을 쓰기도하고, 소 대변을 보면서 발버둥을 치기도 하다가 죽으니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으면서 천당을 누리면서 사시던 분들은 천당의 천사들이 날개달린 고은 옷과 악기를 들고 모시로 옵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아서 찬송을 불러달라고 하기도 하고,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이 환한 모습으로 영원한 천당으로 가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금 살아서 천당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것과 같이 선에는 선과가 있고 악에는 악과가 있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기회는 “이 세상사는 동안”입니다. 사는 동안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죄악의 노예로 산다면 아무것도 핑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불신자, 우상숭배자와 미혹의 영, 즉 사단에게 굴복하며 살아가는 이단들, 사이비종교, 음란을 일삼거나 동성 연애하는 자들 그리고 거짓말 하는 자들, 부정판결한 자들, 부정축재한 자들, 사악한 독재자들, 노름과 도박에 빠진 자들, 술중독과 마약에 빠진 자들, 살인이나 자살 자 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인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필자의 추정입니다만 부자와 거지 나사로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부자는 이 땅에서도 지옥을 살았습니다. 부자는 남들 보기에는 화려한 옷, 화려한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은 이미 지옥을 살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는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갈망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그것을 다 누렸으니까 행복했을까요? 필자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 부자는 인생의 목표가 잘못된 삶을 살았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미끼로 큰소리치고…. 그야말로 말 한 마디면 천하를 움직일 것처럼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인생의 결과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외면했습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척했을지 모르지만 교만하고 불의를 일삼은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무슨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냐?”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단을 쫓아다니고 클럽에 다니면서 춤추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서 주업 열매로 허기를 채우려는 인생들 또한 소망이 없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허전하고 그래서 취하고도 또 마시며 뒤범벅이 되어 살아가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남 부자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높은 지위에 올랐거나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 속에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들의 영혼에 천국이 없다면 나사로보다 훨씬 못합니다. 성령께서 주인 된 촘촘히 들어찬 알곡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세요. 거지 나사로는 ‘거지 딱지’를 붙이고 다녔지만 삶의 진정성과 의미가 세상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의 삶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산 것입니다. “나 오늘 죽어도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서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리고 그에게는 내세관이 뚜렷했습니다.
거지로 살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거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거지로 산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부러 거지로 살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밖에 나가서 노동을 할 만한 어떤 재산이나 건강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굳이 신분이라면 ‘거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고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고통이라면 그것이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늘나라가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밀어먹었을 망정 그의 마음은 항상 천국이었습니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지만 처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천당과 주 오심을 기다리며…. 마라나타”!!
필자는 시내를 잘 걷습니다. 어느날 길을 걷다가 서울대 역 앞에서 리어카 과일 장사를 보았습니다. “사과 사세요!” 하더니 찬양을 합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죽어서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나사로처럼!!! “당신은 지금 죽는다 해도 천당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
충만한교회 강요셉 목사 www.ka0675.com 02-3474-0675
천국은 지옥 알아야 현실 된다. 앞으로 발간될 책
1부 지옥을 알고 믿고 행해야 천당이다.
1장 지옥에 무지하고 관심 밖인 성도들
2장 지옥을 알고 믿는 성도가 복 받는다.
3장 죽은 후의 세계는 분명하게 있습니다.
4장 영생과 낙원과 음부란 어떤 곳일까?
5장 마음 안에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다.
2부 복음은 천당으로 인도하는 매개체
6장 5가지 복음을 온전하게 믿어야
7장 천당의 시발인 죄 사함의 복음
8장 천당으로 인도하는 성령인도의 복음
9장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십자가복음
10장 지옥갈 수 있다고 깨닫게 하는 복음
11장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회개의 복음
3부 지옥의 실상을 알아야 천당이다.
12장 지옥을 알아야 천당에 들어간다.
13장 천당은 실제일까 가상적일까?
14장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이다.
15장 천당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16장 지옥은 이런 분들이 들어간다.
4부 천당이 보장될 수 없는 신앙형태
17장 진리 비 진리가 섞어진 혼합신앙
18장 막연한 열정 행위를 중시하는 신앙
19장 사람의 미혹을 따라가는 껍데기 신앙
20장 무속신앙을 끊지 못하는 반 복음신앙
21장 죽어 천당가면 된다는 막연한 신앙
5부 천국이 현실이 되는 신앙생활
22장 성령의 인도와 지배받는 신앙
23장 성령으로 기도하는 신앙생활
24장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습관
25장 걸어 다니는 성전으로 사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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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1년 4-5월 경에 출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