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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의 뿌리는 동양에서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TV …. 이제는 단 며칠도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문명의 이기들. 그런데 서양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라고 믿고있는 현대 문명의 시원이 사실은 동양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최근 빅뱅 우주론의 거장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인 태극, 음양, 팔괘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한마디에 동양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음을 직감하였을 것입니다.
인류문명의 아버지, 태호 복희
태호 복희씨는 5,700년 전 배달국의 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서, 성은 풍씨(風氏)요 이름은 방아(方牙)이며, 호는 태호(太昊)로서 ‘크게 밝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삼신(三神)이 강령하는 꿈을 꾸고 백두산에 가서 천제를 지내고 내려오다가, 천하(天河, 송화강)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나타난 상(象)을 보고 하도와 팔괘를 처음 그려 역(易)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복희씨 때 상과 수로써 상징되는 하도와 팔괘가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세상에 드러나자, 역학의 도맥은 문왕, 주공, 공자를 거쳐 이어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손룡자, 추연 등을 거쳐서 음양오행의 변화원리로 체계화되고, 노자 열자 장자에 의해 논리를 넘어 우주신비경의 궁극을 설명하는 우화형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로써 역(易)은 동양사상의 최고봉이자 문화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생활철학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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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료조사 중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배달 신시에서 태어나 송화강(추정)에서 팔괘를 그으시고 산동성 어대현(현재 미산현)에 묻히셨다고 한다. 이를 볼 때, 복희씨의 이동경로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중국 동쪽 해안선을 타고 내려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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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국학자들의 입장은 그와 반대로 중국대륙 서쪽 깊숙한 곳(현재 감숙성 천수시)에서 태어나 하남성 회양현에서 도읍을 정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셨다고 본다. 하남성 회양현에서 조금만 동쪽으로 가면 산동성 미산현이 있다. 즉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복희씨의 이동경로는 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주해 왔는데, 산동성까지는 뻗어 나오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명확히 엇갈리는 두 가지 이동경로,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이든지, 아니면 둘 다 지어낸 이야기?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복희씨에 대한 문헌기록은 「제왕세기」이다. 거기에 따르면, 복희씨는 ‘구이에서 태어나 성기(成紀)에서 자라고 어대현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성기(成紀)라는 지명을 중국대륙 서쪽에서 찾다보니 현재 감숙성 천수시 주변의 ‘성기’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구이에서 태어났다는 대목은 구이족(九夷族, 동이족의 다른 말)이 아닌 구지산(仇地山)에서 태어난 것으로 끼워 맞추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복희씨를 동방 동이족이 아닌 서방 중국인의 조상이며, 동방으로 문물을 전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언제 이러한 관점이 정해졌을까 하는 점이 궁금해졌다. 현지 답사 중 알게 된 것은 강택민 주석이 천수시에 ‘희왕고리(羲王古里)’라는 글을 써준 이후 천수시를 복희씨의 고향으로 정해 버렸던 것이다.
중국 전역에 펼쳐진 수많은 복희묘와 복희사당은 문화혁명(1966∼1976) 때 파손되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그런데 강택민 주석이 글을 쓴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묘와 사당이 새로이 복원, 보수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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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에 나오는 산동성 미산현의 복희묘는 현재 중국 복희묘 중 규모가 가장 작으며, 더욱이 사당 내부는 사당을 보수하는 인부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었다.
산동성의 복희묘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몇 가지 단서만 찾아낸다면 한민족의 조상인 복희씨의 역사, 나아가 배달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를 손에 쥘 수 있을 듯했다.
이미 중국사가 되어버린 태호 복희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희망은 하북성 신락시의 ‘복희제의’라는 축제에 참석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절실히 실감했다. 하북성 신락시는 소림사가 있는 석가장시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도시다.
그 신락시에 제곡고신께서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세운 최초의 복희묘인 ‘인조묘(人祖墓)’가 있다. 그곳에서 지난 5월 2일부터 5일까지 제3회 ‘복희제의’가 벌어졌다. 원래 그 축제기간 동안 신락시는 외국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행사 참가는 물론 촬영도 불가한 지역이다.
그런데 북경에서부터 안면을 튼 복희문화연구소 소장, 신락시 시장, 축제관계자 등의 인맥을 통해 운 좋게도(?) 신락시 행사관계자의 자격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 관람인원이 약 2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 규모를 실감케 했던 큰 행사였다. 또한 그곳에 200명 가량의 복희 전문가들이 모였다. 국내에서 복희씨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복희씨에 대한 자료의 빈곤함, 강단사학계과 재야사학계의 견해차 등으로 인한 어려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복희씨 연구와 관련해서 단 한 명의 제대로 된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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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의 조상인 복희씨를 그 이름조차 잃어버린 사이, 이곳에선 복희씨에 대한 제사는 이미 그들의 생활 일부였고, 인류의 시원문화가 복희씨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자부심이었으며, 그 힘으로 자기네들이 세계를 통일 지배할 수 있다는 역사적 우월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천하제일묘’라 불리는 하남성 회양현의 복희묘는 행사가 열리면 100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저력을 무시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상고사를 밝혀 세계무대에 우리의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술 더 떠서, 중국의 수많은 학자들은 ‘태호 복희씨는 동이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동이족은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한족에 흡수된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에 불과했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문화의 태일신(泰一神), 태호 복희
이렇게 태호 복희씨를 추앙하고 있는 중국 땅에서 아이러니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많은 사당과 무덤에 수많은 팔괘와 육십사괘가 그려져 있지만 제대로 그려진 팔괘는 단 한 곳(하남성 천하제일묘)밖에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실소하기도 했다.
태호 복희씨의 사당에 가보면 웬만한 곳에는 일획개천(一劃開天)이란 글귀가 써 있고 용마상이 있으며 복희씨의 업적도가 그려져 있다(하지만 미산현에는 없다). 업적도를 한 장씩 사진으로 담으면서 지금까지 글로써만 읽어왔던,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태호 복희씨의 업적을 마음속에 새겨볼 수 있었다.
복희씨께서는 인류문화의 모태라고 하는 팔괘와 하도를 지어 후세에 전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문자를 만들고, 인류의 최초의 성씨를 열었으며, 결혼제도를 세우고, 가축사육법을 개발하는 등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류문화의 근간을 이루어 놓았던 것이다.
『용봉문화원류』의 저자 왕대유는 이러한 복희씨에 대해 “태호 복희(太昊伏犧)는 인류문화(人類文化)의 태일신(泰一神)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감숙성 천수시에서 복희씨의 업적도를 보며 진정 인류문화의 시조이신 태호 복희씨, 가슴속에서 그 분이 큰 태양처럼 밝아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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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의 발원지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새파란 하늘 아래의 천수시 복희묘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용마를 만날 수 있었다(참고로, 용마라고 하면 중국에서도 대부분 용의 머리에 말의 몸을 가진 괴수를 생각한다.
그런데 용마란 본래 8척(2.4m) 이상의 아주 큰 말, 혹은 물에서 나왔으므로 비늘이 있는 말을 뜻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도 문질러서 콧등이 반질반질해진, 비늘까지 달려있는, 실제와 가장 가까울 것이라 생각되는 용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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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씨가 그린 하도에는 자연 그대로의 형상을 상수학으로 기본법칙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제 복희왕이 밝혀놓으신 역(易)의 원리가 인간생활 문화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고, 인류 문명사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사례를 통해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는 만물의 척도
수학은 서구문명의 발전과정에서 문화적으로 중요한 힘이 되었습니다. 수학은 과학의 등대 역할을 수행하면서, 과학이 현 문명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도달하도록 끊임없이 도움을 주어왔습니다. 현대 과학은 수학 때문에 발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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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수학의 발전에 초석을 다진 인물은 B.C. 532년경에 활동한 피타고라스입니다. 에게해의 사모스섬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유학하는 동안 동양으로부터 전해진 낙서, 마방진 등의 지식을 얻게 되고, 이후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게 됩니다.
탈레스는 우주의 근본을 물(Water)이라 보았고, 데모크리토스는 원자(Atom)라고 본 데 반해, 피타고라스는 우주의 근본을 수(Number)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수, 수적 비례, 그리고 조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수는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하였으며, 사물은 수(數)들로 구성되어 있고 수(數)는 사물과 닮았으며 많은 경우 사물 자체라고도 했습니다.
즉 수학의 원리야말로 만물의 원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수들은 직선과 곡선, 정지와 운동 같은 사물의 대립된 성격을 설명해 주는데, 심지어 추상적인 개념들마저 고유의 수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방진의 비밀
마방진은 낙서(洛書)로부터 유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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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천여년 전, 우(禹) 임금이 치수공사를 하던 중에 물 속에서 나온 거북이 등에 있는 무늬를 보고 낙서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낙서의 수를 그대로 옮기면 3차 마방진이 되는데, 가로·세로·대각선의 합계가 모두 15가 됩니다
그 후 사람들은 마방진의 부적같이 신비한 이미지에 매혹되었고, 인도·페르시아·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중동·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마방진은 한마디로 숫자 속에 숨겨진 우주의 질서를 의미합니다. 내부의 숫자들이 제멋대로 존재하지 않듯, 백사장의 모래알이라든지 이른 새벽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혹은 숲속의 이름 모를 잡초라 할지라도 마방진의 숫자처럼 제 위치에서 전체 조건 값에 참여하면서 질서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자들도 수 천년 동안 숫자의 합이 일정한 마방진에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명쾌한 답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신비한 성질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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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서양의 수학이 동양의 상수원리에 일관된 뿌리를 두고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수학의 기본개념이 역학의 상수원리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팔괘의 행렬은 선형방정식의 해법이고, 그 순열조합은 확률론과 게임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복잡한 수식을 떠나 수학은 인류문명사를 통해 예술·철학·종교·사회·과학에 개입하면서, 문화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되어 살아있는 귀중한 사고 덩어리를 형성한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현대 서구 문명의 형성자 노릇을 아낌없이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팔괘에서 시작된 이진법의 원리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은 과연 무엇일까요? 비행기, 핵폭탄, 텔레비전, 장기이식, 유전자 복제 등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벅찬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대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컴퓨터의 발명’이야말로 빠뜨릴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컴퓨터는 이진법의 계산원리에 의해 작동됩니다.
그 이진법에 관한 생각은 주역의 64괘 표기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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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이진법은 17세기초에 고안되어 나왔는데, 이원론에 심취해 있던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주역 이론에 이진법이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체계를 정립시켰습니다.
그는 베이징에 있는 프랑스 전도사 부베와 편지를 교환하면서 주역을 배우고 괘상(卦象)을 스스로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한문으로 쓰여진 주역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동양을 다녀온 신부들의 보고서를 입수하여 주역을 공부하였습니다.
마침내 1697년 ‘파리 과학 학술원’에서 자신이 구상한 개념을 정리하여 「이진법 정수론 주해」 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것은 그 역사적인 논문의 부제가 ‘0과 1의 기호를 사용, 고대 동양 복희의 괘상에 나타난 이진법 산술이 갖는 의미와 그 효용성에 관한 고찰’ 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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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1701년 부베가 라이프니츠에게 ‘복희 64괘 차서도’와 ‘복희 64괘 방위도’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이 도표를 받고 팔괘의 배열이 인류역사상 수학의 ‘이진법’ 원리를 제일 먼저 나타낸 것이라는 발견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1709년에 복희팔괘와 함께 이진수를 나타낸 분석표를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주역은 모든 과학의 열쇠이다.” 라는 부베 신부의 신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복희팔괘는 세 개의 효(爻)를 이용하여 ‘건태리진손감간곤’라는 여덟 개의 괘상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양(1)을 1, 음(0)을 0으로 생각하고 고쳐 쓰게 되는데, 팔괘를 이진수로 나타내면 111, 110, 101, 100, 011, 010, 001, 000과 같습니다.
이후 부호논리학의 대가가 되면서 “나의 불가사의한 이진법의 새로운 발견은 5천여 년 전 고대 동양의 복희왕이 발견한 철학서이며 문학서인 주역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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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을 보면 공자가 한평생 공부하고 나서, 모든 변화가 귀결되는 곳 즉, 선천세상이 마무리되고 후천세상이 처음 열리는 곳을, 팔괘의 방위로 “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고 하였습니다. 간방에서 말씀을 이룬다, 완성된 진리가 나오는 곳이 동북 간방이란 말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간艮은 열매입니다.
사실 한 그루 나무에 우주의 섭리가 다 들어있습니다. 뿌리는 손巽이고, 땅 위에 뻗은 줄기는 진震입니다. 진손震巽이 일체다. 또 꽃은 태兌고, 열매는 간艮이고, 천지기운을 받아 나무가 자라니 하늘은 건乾이고, 땅은 곤坤입니다. 그리고 일월의 물과 불기운으로 모든 생명이 생성됩니다. 그게 감괘坎卦 이괘離卦입니다. 이렇듯 한 그루의 나무에 천지 조화의 이치가 그대로 다 들어있습니다.
문명의 열매를 맺는 곳, 지구촌 문화를 통일하여, 전 인류를 보편적인 새 진리로 건져내는 그 곳이 바로 간방이란 말입니다. 지구촌 동북 艮方! 인류 문화가 바로 이 간방에서 시작되고, 최종 종결도 여기서 이뤄집니다.
유, 불, 선, 기독교가 인류의 뿌리종교 신교로부터 흘러 나왔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아 보기로 합시다.
1) 유교의 나들이
유교의 정신이 동방 東夷族인 한국의 신교정신에서 나왔음은 흔히들 다음의 중용 30장에 나오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증언으로 자주 인용합니다. [공자께서 후천 大同세계를 궁극이상으로 하여 펼친 유교 도덕의 원시조는 요, 순과 문왕, 무왕을 본받은 것이라 하였다.]
- 仲尼는 祖述堯舜하시고 혜(?)章文武하고, 上律天時하시고 下? 水土하시니라. 중용30 -
또한 요(堯)와 순(舜)임금은 그 혈통이 모두 동이(東夷)족 출신입니다. 요는 황제 헌원의 5세손이라 하고(史記 卷13), 황제는 동방의 우리 백민(白民, 백의민족이라는 뜻)에서 출생하였으므로 요임금은 동이족인 것입니다. 맹자는 순임금이 東夷사람이라 증언하였습니다.
유교의 종장인 공자 역시 혈통을 따지면 결코 중국인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뚜렷한 증거는 예기(禮記三篇檀弓上)를 보면 [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하였는데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 황하유역)지역은 중국학자(徐亮之, 林惠祥등)들에 의해서도 여기에 살던 은족(殷族)은 곧 동이사람이라는 것이 통설화 되어 있습니다.이상에서 우리는 유교의 정신적, 혈통적 뿌리가 신교의 종주국인 동방한국에 두고 생겨나서 역수입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불교의 나들이에 대한 증거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불교의 원형]이 한국에 실존해 있었다는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 많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몇해전에 이미 고인이 된 최인(崔仁)선생은 심혈의 역작인 [한국의 재발견]에서 "한국이 불교의 본래 발상지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임승국 교수의 말과 같이 그가 던진 엄청난 파문의 투석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를 실증해 주는 많은 역사적인 실례가운데 몇가지 만을 살펴보겠습니다.
◆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은 그의 아들인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이 나라(신라)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경도(京都)안에 절터 7처(處)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시(前佛時; 석가부처님 以前의 부처시대)의 절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하기 전에 한국에 부처가 있었으며 불교의 원형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과 제가전기(諸家傳記)에 모두 이르기를 "신라의 월성동용궁(月城東龍宮) 남쪽에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으니 그 곳은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본사(本師) 석가불은 제4존불(尊佛)이며 가섭불은 제3존야(第三尊也)라고 되어있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석가불 이전 가섭불(迦葉佛)시대에 이곳이 불국사(佛國寺)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한민족의 특징은 백의(白衣)입니다. 그런데 고대에 인도인이 백의를 입고 관세음보살이 백의(白衣)를 입음으로 백의대사(白衣大士)라고 합니다.
◆ 화엄경에는 불교의 종주국이 바다건너의 나라임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날로부터 모든 보살들이 그 산중에 살고 있으며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진리를 강설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법기는 중국 동진(東晋)시대(317 ~ 419년)사람인 담무갈(曇無竭)을 말한다. 옛날부터란 동진이전의 시대로서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372)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인 선생과 임승국, 송호수 교수의 말과 같이 중국과 인도에서 한국 불교도들이 한국을 찾아 온것은 본산지인 성지(聖地) 순례(巡禮)를 하기위해 모국을 찾아와서 수도하였다는 말입니다.
3) 기독교의 나들이
기독교의 역사는 서구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수메르인들에 의하여 성립된 것입니다. 그리고 수메르인들의 뿌리는 바로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고대국가인 환국(桓國)의 12 제후국중에서 [수밀리]라는 한 국가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중근동(中近東)의 유프라테스강.티그리스강 유역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개척한 족속은 동방(東方)으로 부터 이주해온 슈메르족이었으며, '슈메르'는 '수밀리'라는 단어가 음가(音價)만을 달리 했을뿐 같은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이것은 곧 기독교의 근원이 우리 한민족의 정신세계인 환국(桓國)의 신교(神敎)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기독교가 한민족으로부터 비롯된 구체적인 증거를 하나하나 찾아 보겠습니다.
◆ 크렘머와 다글라스氏(美)
슈메르인은 東方으로부터 왔다.
◆ C.H 고든박사(英)
슈메르인들이 중근동(中近東)에 들어오기 前에 무슨 고대문자적(古代文字的)기호를 가지고 온듯하다.
◆ 上野景福(日本)
슈메르인들이 사용한 설형문자는 약 5000년전 태호복희씨(동이족)가 사용한 8괘 부호등과 비슷하다.
◆ 大英百科辭典
슈메르語와 한국어는 동일한 [교착어]로서 그 語根을 같이 한다.
◆ 삼성기(三聖記)<국내자료 : 환단고기>
고기(古記)에 이르되 桓因氏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넓이가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이니 통괄하여 桓國이라 하였으며 그 환국에는 分國이 12나라였다. 그 12국 가운데 우르(虞婁 : Ur)國과 슈메르(須密爾 : Sumer)國이 끼어있다.
기독교 진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모세五經의 뿌리를 살펴봄으로서 과연 기독교가 어디로부터 연유(緣由)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모세의 5경인 구약의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 쓰여진 제사음식.性행위.종족번식.사회규율 등의 율법은 그 제정 유래 및 각 法條의 형식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함무라비法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무라비法의 기원은 바로 한민족과 인류최초의 법전인 수메르법전에 둘 수 있습니다. 다음의 구체적인 예를 봅시다.
◆ 뮐러(Muller)
유대인의 시조(始祖)인 아브라함이 우루 땅에서 함무라비 왕의 고향인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오면서 함무라비 법전을 가져 왔을 것이다.
◆ 크레이(Clay)와 루즈(Lutz)
바빌로니아의 제1왕조의 제6대왕인 함무라비(BC 1704 ~ 1662년)왕이 공포한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 왕의 창작이 아니라 그 이전에 존재했던 슈메르 법전의 수정 보수판이다.
◆ 中田薰(일본 : 前동경大교수)
모세 5경의 母法은 함무라비法이고 함무라비法의 母法은 슈메르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방 한민족의 한 지류(支流)인 수밀리(=수메르)족이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유역으로 흘러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키고, 이 문명이 곧 기독교 문명을 태동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시조인 아브라함은 이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태어난 슈메르인의 후손으로서 성장 후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던 것입니다. 유대교를 창설한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인 모세는 자기 민족의 수호신인 여호아를 중심으로 한 자기 민족의 정신적 단합을 도모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유대교의 사회 환경속에서 성장한 후 율법의 형식주의와 유대교인들의 타락을 보고서 그 한계점을 극복한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교인들에 의해 신흥 사이비 종교의 교조란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의 형성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기독교의 형성이 한민족과 인류의 뿌리종교인 한민족의 신교(神敎)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도교(道敎)의 나들이
일반적으로 중국의 道敎始祖를 황제와 노자라고 하는데 황제의 혈통은 동이족입니다. 노자의 국적도, 한(韓)씨의 성을 이(李)씨로 바꾸면서 자신이 동방 사람임을 말하였듯이 모두 동이족의 한국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황제가 중국에서 폈던 도교의 가르침은 동방 청구국(靑邱國, 치우 천황 때의 우리 국호)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紫府)선사(仙師)를 만나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음부경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갔다는 사실을 보면 도교의 뿌리가 동방 한민족의 신교(神敎)의 한 아류(亞流)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신교가 점점 퇴화하면서 다른 3대 종교와 더불어 역수입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고자 하는 관심의 촛점은 이들 4대문명의 구심점으로서 그 이전에 실존한 전 인류의 아버지 문명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즉 중앙아시아의 어느 곳으로부터 현 인류 최초의 고대문명이 태동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의 여러가지 기록에 자세히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석유환국(昔有桓國) - 옛 昔,있을 有,밝을 桓,나라 國 즉, 광명의 제국(桓國)이라는 뜻.]이라 하여 이 문명은 천산(天山)산맥을 중심으로 실존한 한민족과 인류공동의 최초의 고대국가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국문명은 천산 즉 파내유산의 아래 [동서가 2만리, 남북 5만리]인 방대한 문명의 대국으로서 파내유국으로도 불리웠습니다. 모두 <12환국>으로 나뉘어졌는데, 최고 지도자인 '안파견' 환인은 그 이름이 곧 '만인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광명의 제국(桓國)의 문명은 동,서 4대문명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이에 대한 고고학적인 근거는 북미의 오리건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가 동이족(東夷族)의 짚신과 흡사한데 방사선 탄소의 측정에 의하면 이는 약 9천년 전의 것이라고 합니다.
송호수 교수는 1982년 10월 7일에 현지 조사를 하여 미국 워싱톤 인디안 박물관(스미소니언)에는 이외도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베틀, 어망, 물레 등 우리 선조들이 쓰던 생활도구와 동일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고 합니다.(한민족의 뿌리사상, 26쪽)
이를 시간적으로 소급해 올라가 보면 인류문명의 주산(主山) - 천산 산맥은 그 주맥이 동북 쪽으로 거세게 뻗어흐르고 있어서 소련과 케나다의 국경인 베링해협까지 이어져 있다. 당시 1만년 전에는 베링 해협이 육교(陸橋)의 역할을 하여 이 곳을 타고 우리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민족의 이동은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붙어있었던 약 25,000년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합니다.(한국 상고사의 쟁점, 24쪽)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은 백계(白系) 러시아 민족이 아니라 만주의 한민족이 빙해(氷海)를 넘어 알래스카를 거쳐 카나다로 가고 여기에 남는 것이 에스키모족이요, 더 진행한 것이 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이요, 또 더 진행한 것이 잉카(Inca)민족이라 하겠다.
지금도 잉카에는 한국고유의 풍속인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새긴 목인형(木人形)이 여기저기 남아 있음을 본다. 알래스카의 박물관에는 불상(佛像)을 비롯하여 향로, 곡옥(曲玉), 촛대, 청자기등 무수한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즉, 동양민족이 흘러간 발자취를 쉽게 인정할 수가 있다. 카나다의 에스키모족이 기르고 있는 개(犬)는 소위 한국에서 간 개(犬)인 것이다. (민족문화의 연구,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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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의 12제국 중에서 수밀이국이 있었다. 그들이 서방에 문명을 세웠으니 현재의 수메르 문명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중 가장 그 기원이 오래된 곳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곳에서 인류 최초로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웠고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설형문자들을 발견하고 판독해 가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인류의 시원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수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고,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인도 샨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세 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수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 세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언어는 우리 한국어다. 먼저 언어의 특징이란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붇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수메르어와 한국어 발음과 뜻 비교 | |
슈메르어 발음과 과 뜻 |
한국어 발음과 뜻 |
아누(Annu) 최고신 |
하느님 上帝 |
안(An) 하늘, 天 |
하늘, 天 |
기르(Gir) |
길 (Gil) 路 |
라 (Ra) ...에서 |
로 (Ro) 조사 (助辭) |
아비 (Abi) 아버지 |
아비, 父, 지아비 (夫) |
움마 (Uhma) 엄마 |
엄마 (Uhma) 母 |
니므 (Nim) 님, 任 |
님 (Nim) 사람 |
바드 (Bad) 밭 田 |
밭 (Bat)밭, 田 |
나 (Na) 나, 일인칭 |
나 (我) 일인칭 |
그 (Ge) 3인칭 |
그 (Ge) 3인칭 |
이. 1일칭 |
이. 지시대명사 |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수메르의 문화 속에는 Ziggurat 이라는 인조산을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동일하게 받드는 군사부 일체 제도가 있었는데 동방 한민족의 문화와 거의 유사하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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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일치: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최고의 사제가 되었으며, 신권 정치가 실시되었다. |
제천의식: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가진 신전이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
천문학: 인간의 운명이 천체 운행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
태음력: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들었다. |
60진법: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겨레 최고의 보물, 천부인(天符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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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가 다섯 개인 동경. 동경은 제사장인 단군이 의식을 집전하기 위해 쓰던 것이다. 직경19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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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가 네 개인 동경의 세부. 정교한 빗살문양은 0.000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으며 현대과학으로도 복원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직경 21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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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백동경. 직경 20센티미터. 아직 세계 고고학계에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유물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동검 가운데서 가장 큰 동검. 길이 85센티미터. 흠 없이 온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
세형 동검과 청동 방울들. 청동거울과 동검, 청동 방울 이 세 가지가 곧 단군 이야기에 나오는 천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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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세문경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북한으로 반출된 것에 대한 문화일보 2003년 4월 28일자 기사.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者) 환웅(桓雄)이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 보니,가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弘益人間)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개를 주어, 내려가서 이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 선(善) 악(惡)등 무릇 인간 360여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무리를 교화시켰다."
한민족(韓民族)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단군신화(檀君神話)〉의 전반부 내용이다.
환웅이 환인으로부터 받아 왔다는 '천부인(天符印)' 세가지에 주목해 보자. 천부인은 분명 세상을 다스리는데 용이한 신물(神物)임에 틀림없는데, 우리는 이 세가지 보물이라 할 천부인의 존재에 대해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었다.
어쩌면 우리'한민족의 기원과 미래'에 대한 비밀이 바로 이 천부인 세가지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신화니 역사니" 하는 논쟁에만 정열을 낭비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천부인'이 왜 중요한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건국이나 기원에 관련된 신화가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물증과 서로 연결되어지면 그것은 이미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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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국보 141호 |
명 칭 | 다뉴세문경 (多紐細紋鏡) |
분 류 | 선사유물 |
수 량 | 1개 |
지정일 | 1971.12.21 |
소재지 | 서울 동작구 상도5동 1-1 숭실대학교박물관 |
시 대 | 청동시대 |
소유자 | 숭실대학교 |
관리자 | 숭실대학교 |
구체적인 물증이라 함은 물론 고고학적인 발굴과 여러 실증적인 기물발견 등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로이전쟁'인데 '신화'가 '사실'로 변한 결정적인 계기가 고고학 발굴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단군신화도 천부인이라는 신화적 기물이 고고학적인 중요한 표지적 유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
천부경을 발견 해독하여 우리에게 전한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는 「난랑비 서문」에서 유, 불, 선 3교는 인류시원의 이 신교로부터 갈라져 나가 제2의 고등종교로 발전한 것이며, 유, 불, 선의 사상이 포괄된 모체종교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적어 전했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神史
국유현묘지도 왈풍유 설교지원 비상신사
우리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풍류교를 만든 근원은 신시역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 차여입즉효어가
우리 풍류교에 접목되어 각각 다른 종파로 분리되어간 유교, 도교, 불교의 삼교의 핵심이 다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출즉충어국 노사구지지야 처무위지사
집으로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공자) 유교의 취지요,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주주사지종야
매사에 무위로 대하고 말없은 가르침을 행함은 노자의 도교이며,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제악막작 제선봉행 축건태자지화야
악한 일들을 하지 말고 오로지 착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석가모니의 불교로 변해갔다
이처럼 최치원 선생이 밝힌 바와 같이 유불선의 모체종교가 우리나라에 있었고, 이 모체종교를 신교, 풍류도, 신선도 등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신교를 통해 심신을 수련한 엘리트가 있었고, 각 나라마다 주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배달국시대의 제세핵랑군 3000명이 그 뿌리라 할 수 있고, 고조선 시대의 삼랑, 부여의 국자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이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선조들은 ‘산지조종(山之祖宗)은 곤륜산(崑崙山)이요,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황하수(黃河水)라’고 하는 노래를 곧잘 불렀다. 지구의 축(軸)이 바로 히말라야에 있는 곤륜산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의 산줄기가 모두 곤륜산에서 비롯되어 다 뻗어 내려갔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봐도 동,서양 산이 다 곤륜산을 모태로 해서 갈려 나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맥이 구부러지고 틀어진 것이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것이 아니다. 지리를 모르면, 산천(山川)이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틀어지고 길쭉하고 모가 난 것으로 보인다. 모르니까 그렇게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리(地理)를 알고 보면 글자 쓰는 것과 같다. 하늘 천(天)자를 쓸 때, 먼저 한 획을 건너긋고 그밑에다 또 한 획을 건너긋고, 양쪽으로 삐쳐서 쓰듯, 또 날 일(日)자를 옆으로 잡아당기면 가로 왈(曰)자가 되고, 가로 왈(曰)자를 길이로 끌면 날 일(日)자가 되는데, 지리 역시 그렇게 명확한 것이다.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글자를 쓰듯, 지리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 지리를 알고 보면 산(山) 가지 하나 내려간 것을 봐도 ‘아, 요 밑에는 뭐가 나온다, 그 다음에는 무슨 방향이 나온다’ 그게 환하게, 조금도 어긋남 없이 글자 쓰듯이 나타난다. 지리를 통투(通透)하고 보면 그렇다. 들판이 생기려면 들판이 형성되어 나온 주산(主山) 마디가 있다.
산이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틀어졌지만 ― 한 마디가 한 10미터 되는 것도 있고 100미터 되는 것도 있는데 ― 마디가 있으면 들판이 만들어지게끔 되어 있다. 그것을 용절(龍絶)이라고 하는데 용절을 재 보면, ‘아, 여기쯤에서는 들판이 생긴다.’ 하는 그런 법칙이 나온다. 곤륜산에서 뻗은 여러 산줄기 중 하나가 우리 나라로 뻗어들어와 백두산을 일으켰는데, 그 중간에 큰 들판이 있다.
그것을 만주 요동 칠백리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그 곳을 지나 보면, 워낙 들판이 넓어 하루종일 차 타고 가도 갈대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이 지리는 워낙 호호탕탕하고 큰 문제라서 천문(天文)보다 더 어려운 게 지리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난지자(難知者)는 지리(地理)라’, 알기 어려운 것이 지리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지구의 간방(艮方)에 위치해 있으면서 지구의 혈(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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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를 보면 우리나라를 일본이 가까이서 감싸주고 있는데, 일본을 내청룡(內靑龍)이라 한다. 쉽게 얘기하면 일본이 혈인 우리나라의 담장이고 성곽인 셈이다. 저 일본의 구주 같은 데는 부산 태종대에서 날씨 좋은 때 보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있다.
또 중국 대륙에서부터 싱가포르까지가 내백호(內白虎)다. 청룡은 비상하고 즉 청룡은 나는 것 같이 보이고, 백호는 순복하고, 순하게 엎드려 있는 것 같아야 지리가 되는 것이다. 중국을 보면. 백호가 첩첩이 에워싼 만첩백호(萬疊白虎)다. 그것이 다 내백호다. 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外靑龍)이고, 아프리카 대륙은 외백호(外白虎)다 그리고 호주 뉴기니아 앞쪽은 우리나라의 안산(案山)이다.
기운이 빠지는 곳, 물이 빠지는 파(破)는 대만해협이다. 언뜻 보면 구주에서부터 대만까지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륙되어 있다. 다만 높은 데는 물로 드러나고 얕은 곳은 몇 백 미터씩 물밑에 잠겨 있을 뿐, 사실은 대만까지가 전부 다 붙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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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점이 이어진 섬을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 하는데, 만주에서부터 요하, 난하, 황하, 양자강 물이 전부 황해로 쏟아져 나와 대만해협을 통해 빠져나간다. 그런데 그 기운이 설기(洩氣)되는 것이 다만 아쉬운데, 대만해협에 금문도(金門島)와 조종도(祖宗島)라는 섬이 있어 물 빠지는 입구를 아주 협소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동해와 서해는 내 명당수가 된다. 이렇게 지구의 기운을 혈자리인 우리나라에 다 몰아놓은 것이다. 알고 보면 구부러지고 틀어진 지구의 산천이 전부 동북 간방의 자리에 위치한 우리나라를 옹호하고 있는 형상이다.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가 전부 지구의 명당자리, 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곤륜산에서부터 지맥이 뻗어 나와 우리나라 요동 칠 백 리 만주 땅에 결인(結咽)을 하고(결인이란 지리학상의 술어로 맺을 결(結)자, 목구멍 인(咽)자다), 백두산을 일으켰는데, 백두산에서 금강산으로 뻗은 소백, 태백이 사람으로 말하면 24척추와 같다.
사람도 앞뒤가 있듯, 산에도 앞뒤가 있다. 곤륜산 중에서도 이 쪽은 산 앞이고 곤륜산에서 구라파 쪽은 산 뒤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처럼 24절후가 똑바른 데가 없다. 춘하추동 사시와 기후도 삼한사온으로 고르고, 물맛도 지구상에서 가장 좋다. 지구상에 이렇게 생긴 데가 없다.
약초도 우리나라 땅에서 생긴 것이 약성이 제일이다. 우선 인삼 하나를 예로 들어봐도, 우리나라 인삼 한 뿌리가 중국 인삼 다섯 뿌리의 약성에 해당한다. 인삼의 고향이 우리나라다. 중국인삼 닷 근을 먹어도 우리나라 인삼 한 근 약효도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도 민족성이 비뚤어졌든 어떻든 두뇌가 가장 영특한 게 우리나라 사람이다. 우리나라가 지구의 핵이다. 앞으로 우리 나라가 세계의 종주국이 되는 것이 지리학상으로 다 정해져 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신지비사]'구변지도'끝에 이루어지는 '대한' 고조선 6대 달문 단군(BC2083-BC2048) 때의 신지神誌 발리發理이다. 그는 대우주의 조화옹하나님이신 삼신상제님을 예찬하고, 한민족사의 뿌리 되는 역대 열성조의 성덕과 치적을 칭송하면서, 단군조의 앞날과 한민족의 국운에 관한 예언을 남겼다. 선에 이르는 역사를 담고 있으며 또한 신교의 해원사상이 명문화 되어 있는 희귀한 경전이다. 그 때 연개소문이 서문과 주석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중신 권근은 『양촌집陽村集』에서 '구변도국의 열여덟 자가 단군시대로부터 있었다.'고 말하였다. 이 외에도 신지비사의 예언 내용을 언급하는 사서와 고문서들은 많다. [구변지도九變之道]고 했다. 발리의 예언처럼 실제로 우리나라는 ①환국 → ②배달 → ③조선 → ③북부여(열국시대) → ⑤고구려(4국시대) → ⑥대진 국-신라 → ⑦고려 → ⑧조선 → ⑨상해임시정부 → ⑩대한민국으로 아홉번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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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신지 발리가 한민족 통사通史의 대강을 논하면서 전하고자 한 진정 한 뜻은 과연 무엇일까? 아홉번 변한다는 것은 열 번째로 나라이름이 바뀌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는 뜻이다. 번 변하면서 한민족이 선천 분열시대를 종결짓는다는 것이며, 나아가 10무극 의 통일시대인 후천을 열고 완전한 통일국가로 거듭 태어나리라는 의미인 것 이다. 또한 이때 동방의 한민족이 하느님의 10무극의 조화권으로써 세계 구원 의 대업을 이룰것이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자로 구분된다.
『진인도통연계(眞人道通聯系)』을 기록한「주장춘(朱長春)」은 명나라 신종 때 절강성 오흥현 사람으로 자는 대복 신종 만력 때(1573-1620년)에 진사에 올라 형주부사까지 오름.
저서로『관자각(管子閣)』이 있고. 그의 이름이 실린책은 명인소전3권 과 명시종54권 열조시집소전이 있다. 이 진인도통연계는 유교,불교,기독교 3 대 성자의 도맥이 이루어진 원리를 밝히고, 상제님의 강세에 대해 천지의 현기 (玄機)를 뚫어지게 보고 지도(地道)의 원리로 전한 실로 놀라운 소식입니다. 산의 근원은 곤륜산이니, 곤륜산의 본래 이름은 수미산이니라.
起脈七十二峯하니 運在子午卯酉라 故로 生孔子하여 七十二名道通也라. 이 니구산(尼丘山)을 낳아 72봉을 맺으니라. 공자가 니구산 정기를 타고 태어나 이 니구산 72봉의 기운으로 그의 제자 72현(賢)이 배출되니라.
崑崙山第二枝脈이 入于西海하여 生佛秀山하고 佛秀山이 生釋定山하여 起脈四百九十九峯하니 運在寅申巳亥라 故로 生釋迦牟尼하여 四百九十九名道通也라. 기맥사백구십구봉 운재인신사래 고 생석가모니 사백구십구명도통야 이곳에 499봉이 솟으니라. 석가모니가 이 석정산의 영기(靈氣)를 타고 왔나니 그의 도통제자 499명이 나오니라. 起脈十二峯하니 運在子午卯酉라 고로 生耶蘇하여 耶蘇는 十二名道通也라. 예수는 이 산의 지기(地氣)를 타고 와서 12사도를 배출하니라. 崑崙山第四枝脈이 入于東海하여 生白頭山하고 白頭山이 生金剛山하여 起脈一萬二千峯하니 運在辰戌丑未라 故로 生甑山하여 天地門戶母嶽山下에 道出於熬也라. 기맥일만이천봉 운재진술축미 고 생증산 천지문호모악산하 토출어오야 故로 一萬二千名道通也라.고 고 일만이천명도통야 금강산을 수놓아 1만 2천 봉이 솟았느니라. 그리하여 이 기운을 타고 증산(甑山) 께서 오시나니 이분이 천지의 문호인 모악산 아래에서 오에서 (熬 팔진에 이르는 하나) 도가 나타나는 고로 1만 2천 명의 도통군자가 출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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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이란 미래의 일을 알아보는 것이다(知來者 易)
인류 문명사에서 易을 지은 주체는 동이족(東夷族)
중국학자 유절의 '중국고대종족이식사론'과 한국 유승국 교수의 '유학사상 형성의 연원적 탐구 - 인방문화와 관련하여 갑골문을 중심으로-' 등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오늘의 중국문명은 고대 동이족이 세운 동북아 문명(白族에 의한 白文化)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여기서 동이족이라 함은 지리적 혈연적으로 보아 우리 한민족의 직계 조상을 말하는 것이며, 문명의 핵심 내용은 역의 원리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유학 사상을 일컫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인류 역사에서 역의 원리를 처음으로 밝힌 고대 성왕들은 오늘의 한민족과 혈통 및 문화 배경을 공유하고 있는 동이족으로서, 우리는 주역 속에 한민족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일관하는 '역사의 섭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이에 대하여 "단군신화의 역철학적 해석"이라는 논문을 제4회 조선학국제학술토론회에서 발표한 바 있다. 1992. 8. 중국 북경대)
실로 주역이란 고대인들의 지혜와 신명이 농축된 미래에 대한 예견이며 삶의 지침으로서 필자는 그 속에서 한민족의 역사적 전개 방향에 대한 상징과 시사가 비장되어 있음을 온 몸으로 절감한다. 주역에서는 과연 한민족의 미래를 어떻게 예단하고 있는 것일까?
36번째 명이(明夷)卦 - 인류사에 등장하는 한민족의 사명
"明入地中 明夷"(태양이 아직 땅속에 있으면서 장차 떠오르려는 모습이 명이괘의 상이다)
=> 이는 인류의 문명사에 한민족의 역사가 그 나름의 사명을 가지고 등장 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국역사의 태동기에 그 주체적 소임을 맡은 箕子를 주역에서 직접 언명한 의미를 새겨들어야 한다.
"內難而能正其志 箕子以之"(안으로는 아직 어둡지만 장차 능히 그 뜻을 바르게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니, 기자 성인께서는 명이괘의 원리를 받들어 그 소임을 다하신 것이다)
"君子以 衆用晦而明"(이 때의 지도자는 모름지기 천하 백성을 그 어둠으로부터 밝은 문명세계로 향도하고 구제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 이는 한민족의 태초적 의지와 인류사회의 보편적 바램이 '문명적 이상세계'라는 공동지평에서 일치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37번째 가인(家人)卦 - 한민족의 국가적 정체성 정립
"男女正 天地之大義也"(남여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일은 그것이 곧 이 우주 안에 인류의 세계를 펼치고자 하신 하늘의 크신 뜻을 이루는 토대이다)
"父父子子兄兄弟弟 夫夫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각자 자기 이름에 걸맞는 자리에서 제 할일을 하게 되면 가정이 바르게 되고, 가정이 바르게 서면 이로 인하여 천하의 인류세계도 제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 인격적 삶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윤리를 통하여 인류의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유학의 기본 이념을 확인한 것으로, 괘의 순서를 명이괘 다음에 둠으로써 한민족의 자아정착 과정을 시사하고 있다.
38번째 규괘 - 남북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 갈등
" ... 二女同居 其志不同行"(남편은 하나인데 두 여자가 한집에 살고 있으니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 눈을 흘기며 반목하는 모습이 규괘이다)
" 孤 見豕負塗 載鬼一車"(서로 눈흘기며 살자니 외롭고도 처량하다. 그러다가 서로를 '진흙을 뒤집어 쓴 돼지'로 보면서 싸우게 되고, 결국 수레 한가득 시체를 치우는 비극을 맞는구나)
=> 북한의 조작된 혁명이념과 남한의 천박한 물신주의는 모두가 '진흙 속의 돼지'처럼 그 본질을 감추고 있는 허상이며 우상들이다. 여기에 현혹된 남북의 용렬한 지도자들이 끝내 피비린내 나는 6.25 전쟁을 일으켜 산하를 시체의 원혼으로 가득 채우는구나. 38선으로 상징되는 비극적 현실을 주역의 38번째 규괘가 설명하고 있는 것을 단지 우연한 일치라고만 할 수 있을까?
"先張之弧 後說之弧 匪寇婚 "(처음에는 서로를 죽이려고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으나, 머지않아 활을 내려 놓는다. 알고 보니 쏘아 죽일 적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시집오려는 약혼자일세)
=> 남북은 본질적으로 피를 나눈 동족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외래 사조에 눈이 멀어 서로에게 총질을 해댔지만, 결국은 남이 아닌 가족임을 깨닫게 되어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往遇雨則 吉"(가다가 비를 만나야 길하리라)
=> 남북이 서로를 받아들여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좋은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돼지의 진흙을 씻어내는 소낙비를 만나야 한다. 이념의 허상과 외래사조의 질곡에서 남과 북이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씻김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39번째 건(蹇)괘 -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험한 길
"蹇 難也 險在前也 見險而能止 知矣哉"(남북이 갈라진 절름발이 신세로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 구덩이가 앞에 있으니 무모하게 달려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멈출 때는 멈추고 나설 때는 나서는 것이야말로 어려움 속에서 생존하는 지혜로다.)
=> 통일작업이 아무리 시급하다 해도 그 앞길에는 무수한 위험이 깔려 있으니 자칫하다가는 그 뜻을 이루기도 전에 함정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통일은 함께 해야 하는 것임에도 남북이 각자의 일방적 방식만을 고집하다가는 결국 절름발이 신세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利西南 往得中也 不利東北 其道窮也"(분단 상태에서라도 서남쪽의 노력이 이로우니 이는 그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동북쪽은 갈수록 불리해지니 이는 그 이치가 이미 궁색해졌기 때문이다)
=> 통일의 과업은 서남쪽의 이념과 방식(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이 주도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주체원리'를 근거로 삼기 때문이며, 따라서 동북쪽의 논리와 주장(공산 사회주의 신념과 현실)은 갈수록 불리해질 것이니, 이는 이미 그 이념적 소임과 역할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君子以 反身脩德" (통일을 준비하는 싯점에서 지도자가 해야할 일은 우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반성. 점검하고, 잘못이 있으면 과감히 수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인품을 닦아야 한다)
=> 남북의 정권 담당자들은 기존의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배타적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어느 일방이 상대에게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이 공히 스스로의 역량과 노력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大蹇朋來 以中節也" (절둑거리면서도 큰 뜻을 회피하지 않고 애써 나가다 보면 우리의 염원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고마운 벗을 만나게 되는 데, 이는 우리 한민족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굳게 유지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 세기적 전환점에서 우리가 주체성을 가지고 대처한다면 국제적 외교환경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우리 민족의 인류사적 정체성을 바르게 자각하지 못하고, 주변국의 상황 변이에만 피상적으로 따르다 보면, 한민족은 자칫 강대국의 이념적 소모품이나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40번째 해(解)괘 - 갈등을 풀고 통일을 성취함
"動而免乎險 解" (애써 노력한 결과 다행히 위험을 벗어나 소원한 바를 이루니 이는 해괘의 원리가 구현된 것이다)
=> 주역에 규괘 건괘를 지나 해괘가 예비되어 있음은 한민족에게 커다란 위안과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이 숱한 갈등과 험로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드디어 한민족에게 통일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구나.
"利西南 往得衆也 其來復吉 乃得中也"(서남이 이롭다 한 것은 자유 민주주의 이념이 인류보편의 바램과 다르지 않음이 확인됨으로써, 남북한 모든 인민의 지지를 얻어 통일을 성취하게 됨을 말함이며, 이로써 한민족은 본래자리-역사의 태동기에 지향했던 한민족의 하나된 본래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 민족통일의 주도권은 남한체제에 있으며, 자유 민주의 보편 가치만이 세계 인민과 한민족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雷雨作而百果草木皆甲坼"(고대하던 비가 힘차게 내리니 온갖 초목이 일제히 싹터 나오는구나)
=> 통일의 성취와 더불어 한민족의 역사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찾아오니, 허망한 이념의 잔재는 씻겨가고 민족의 새기운이 발양한다.
"君子以 赦過宥罪"(통일의 성취를 위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지은 허물과 과오를 사면하고, 그 죄를 오늘의 우리가 주체적으로 감당. 계승하여 회개하고, 나아가 서로를 위무하고 크게 반성하는 일이다)
=> 진정한 화해와 통일의 도래는 남북의 지도자들이 공히 역사의 죄업을 자기의 몫으로 고백하고 서로 흔쾌히 용서하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다시금 큰 눈으로 주역의 숨은 뜻을 새겨보니 오늘날 한민족에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쌓여온 옳고 그름의 이념 갈등을 해결하라는 역사적 업보로 주어진 남북분단(이것은 우주적인 역사의 시비를 푸는 것이다)이라는 비극적 실상은, 세계인류가 겪어야 하는 갈등의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모형화시켜 놓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때문에 인류의 장래를 가늠해 보려는 실험실의 표본처럼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민족이 이러한 인류사적 시선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세계 인민의 장래에 대한 긍정적인 실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면, 이는 인류 공동의 숙제를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해결해 냈다는 민족적 자부심으로 인정되고 또 인류사에 기록될 것이다.
역리에 비추어 볼 때 한민족에게는 인류사회가 성장기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구조를 모범적으로 해결해야할 문명사적 사명이 주어져 있다 할 수 있으니,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한 오천년의 장구한 역사계승이 그러하고, 냉전시대 분쟁의 첫 실험장으로 쓰였을 뿐 아니라, 마지막 해결장으로 남아있는 현실이 또한 그러하다.
무릇 천하의 만물은 그 씨가 뿌려진 곳에서 또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니, 인류문명이 싹튼 이곳 동방에서 끝내는 인류 역사의 성숙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동북방에서 반만년을 터잡고 살아온 동이 한민족에게 어찌 하늘의 숨은 뜻이 없을 것인가?
주역은 이에 대하여 "萬物出乎震...東方也...艮 東北之卦也...成言乎艮"(만물은 그 진괘에서 비롯되나니 이는 동방을 말함이며...간괘는 동북방을 일컫는 것으로 이 곳에서 만물은 모두 그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라고 단정하였다.
송재국(宋在國)교수는 1953 충북 청원 출생으로 대전고. 한남대를 거쳐 충남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청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 : "周易集論"(편저. 1989. 성정출판사), 易學特講1- "눈 들어 보니 거기 하늘이 있었네"(1996. 솔출판사), 周易의 王道政治原理-"천하가 물에 빠지면 道로써 건져야지"(1997. 솔출판사), 동양철학자의 한국정치특강-"국민의 뜻에 따르십시오"(1997. 언어문화), "송재국 교수의 주역풀이"(2000. 예문서원)등 다수.
주요논문 : "先秦易學의 인간이해에 관한 연구", "檀君神話의 易철학적 해석", "易學에 있어서의 陰陽論과 五行論", "主體思想의 철학적 평가" "周易의 王道政治思想", "周易의 三才思想과 인간이해"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