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돈을 버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1편 보기
10월 첫 만남 이후 매주 금요일 아이가 하교할 시간보다 조금 일찍 교실 뒤에 도착해 기다렸다. 첫 만남에 예고 없이 데리고 온 게 영 마음에 걸려 이번에는 아이에게 맞추려 노력했다. 학교 앞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만나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했다. 학교 급식은 맛있는지, 운동은 뭘 좋아하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을 물어보았다. 다행히 첫 만남처럼 강렬한 인상은 주지 않았다. 이 녀석, 첫날은 나와 기싸움 한 건가!
여러 차례의 회의 끝에 성민이를 위해서 수시 입시를 마친 19살 자원봉사 청소년 도현이(가명)를 섭외했다. 도망가도 따라잡을 수 있는 날쌘 형아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형이 온다고 하니까 도망갈 생각은 접었다고 순순히 말했다. 도현이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수시를 치르는 사연 많은 형이다. 성민이가 아무리 게임을 잘한들 형님 아래 뫼이다. 형 앞에서는 순한 양이기까지 하다. 심지어 화기애애하기까지! 형은 왜 성민이가 이렇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이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운 놀이터에서 축구를 해도 되는데, 도현이는 성민이를 데리고 한강에 나가 공도 차고, 배드민턴도 치고 서점에도 같이 갔다. 아, 고마운 도현이.
12월, 드디어 도서관 놀이터에 축구를 하러 왔다! 성민이는 처음부터 골키퍼를 자처하며 소극적인 모습이었지만 2주, 3주가 지나면서 수비수, 공격수까지 확장한다. 놀이터 활동가 김명희 선생님과 19살 도현이가 저돌적인 축구를 하며 혼을 쏙 빼놓는다. 물론, 다른 어린이들의 축구 실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성민이는 체력이 부족해서 금방 지친다.
2023년 12월 말 후견인 사업이 종료된 1월에도 2번 정도 혼자 버스를 타고 축구하러 왔었다. 기특하고 귀여운 녀석. 하지만, 방학 동안 게임에 더 빠졌는지 하루는 오후 5시까지 자고 있다. 이를 어쩌나… PC에 셧다운 프로그램을 설치했지만, 핸드폰 게임으로 넘어가는 풍선효과만 생겼다.
12월 말 사업 종료 시기 즈음, 성민이의 잃어버린 실내화와 낡은 책가방이 미음에 걸렸다. 옷도 맨날 같은 옷이긴 하지만... 새 가방과 실내화를 사서 성민이에게 주려 했더니 아이는 한사코 거부한다. 자기는 지금 메고 다니는 가방 괜찮으니 필요한 사람 주란다. 같이 골랐어야 했나. 당연히 받을 거라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주는 것은, 받을 것을 강요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심리적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더 세심했어야 했다. 도움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 자체가 아이에게는 수치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책가방 대신 돈으로 달란다. 집이 너무 가난하다고.
성민이는 2024년 6학년이 되어서도 계속 우리와 교육후견인제로 만나고 있다. 올해는 나보다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해주시는 김명희 선생님과 연결되었다. 아침마다 버스로 3~40분 걸리는 성민이네 집으로 가서 거의 매일 아이를 깨워 학교를 보내고 있다. 자기 아이도 중학생인데 말이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방학에는 게임에 몰두하느라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아이를 활동하게 하려고 명희 샘이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다. 2학기가 되어 명희 샘이 활동하기 어려운 날에는 나를 포함 다른 사람이 가서 깨우고 등교시킨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게임에 빠져 있고, 교육복지센터장님은 이렇게 아이를 내버려 둘 거면 별거 중인 엄마에게 아이를 보내라고 성민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성민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거칠게 변할 거라는 우려와 달리 게임에 몰두할 뿐 인성과 행동은 나쁘지 않다. 학교 친구들도 고운 마음으로 성민이를 돕고 응원한다. 지난 9월, 명희 샘이 부재중이라 성민이를 데리러 내가 두어 번 집에 갔다. 추석이 막 지났을 때인데도 식탁 위에는 불닭볶음면만 즐비했다. 연휴 내내 그것만 먹었나 보다.
마을도서관 활동을 하며 성민이를 포함한 여러 아이를 만났다. 아이들에게는 금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좋은 어른의 존재가 절실하다. 다문화 아이들에게 정책적으로 경제적 지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표정은 늘 어두웠다. 반면 돈이 없어 핸드폰도 없고 치과도 못 가는 한 중학생 아이는 늘 밝고 긍정적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자녀에게 최선의 모습으로 대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가난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고, 당장의 생존을 지켜내느라 온 마음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도 감사를 잊지 않으며 사는 그 부모님이 존경스러웠다. 흔하지 않은 경우다.
가난은 사람의 영혼을 갉는다. 그러나, 가난으로 한 인간의 삶이 벼랑까지 내몰리는 건 막아야 한다. 우리는 성민이와 일부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만남이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훗날, 나는 너에게 어떤 어른으로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