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모순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남북 관계는 가장 큰 모순 덩이다. 크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인종, 같은 역사를 공유한다. 하지만 두 분단국가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뒤로하고 우여곡절의 과정을 걷다가 오늘에 와서는 극단의 적대관계로 나서고 있다. 둘은 각기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적 권위주의 체제를 대표한다. 처절한 적대적 경쟁 구도에서 한쪽은 부유한 선진국의 위상을 즐기고 있고, 다른 한쪽은 최하의 빈곤 상태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한쪽은 비핵이지만 여타 재래식 첨단 무장으로, 다른 한쪽은 핵무장 말고는 빈곤한 군사 무장으로 자태를 과시한다. 6.25 전쟁 이후 쌍방 간의 실전은 없었으나 한쪽은 베트남 전쟁에 미국 중심의 연합군 진영의 참여로 다른 한쪽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 진영의 역군으로 참여하며 실전 경험과 세계 안보 전쟁에 관여한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 동맹군으로 참여하면서 기왕에 맺은 러시아와의 상호 안보조약에 더하여 가능한 한 ICBM 무장에 필요한 첨단기술 확보에 주력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러시아와의 밀착은 필연적으로 절친한 연맹인 중국과의 관계에 심각한 ‘거리 조정’의 과제를 던진다는 점이다. 흔한 얘기로 중국은 “개는 굶기면서 훈련시켜서 써먹는다”는 원칙으로 미지근한 정도로 북한의 생존을 도왔던 중국의 길들여 지배하기 태도에 대한 일종의 보복일 수도 있고, 나름의 “자주”의 포석일 수도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미군과의 직접 대척을 피할 수 있는 중간 완충지대 정도로의 현상 유지 정책을 재고해야 하는 계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김정은과의 직접 담판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법을 공공연히 말하는 트럼프 차기 대통령의 등장으로 한껏 고무된 상황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을 국제사회로 개방시켜 동북아의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의 길로 나아가려면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과 필요한 개방 협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여기에는 ‘북핵’ 문제의 처리가 핵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는 핵 포기가 아닌 ‘핵 동결’ 정도로 제안하고, 또 미국이 속심으로 원하는 북한의 ICBM 포기를 제안하는 대신 북에 대한 여타 각종 제제의 해제 및 포괄적 경제협력과 맞바꾸자는 제안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 북한은 최근의 경직화된 남북 관계를 빌미로 기존의 “통미봉남”의 원칙을 강화해 나갈 공산이 크다.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진짜 생동하는 생물은 외교관계이다. 기존의 “한미일” 해양 세력 연대나 새로 등장하는 “북러중” 대륙 세력 포진이 불변의 축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남한은 한미일 연대에 충실하면서도 북한을 제외한 “중‧러”와의 외교 통상 관계를 개방하고 발전시킨 지 오래다. 다만 이 정권 들어 대단히 악화시킨 점이 아주 불행이지만, 그동안 남북관계도 우여곡절의 과정을 지내면서도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었다. 세계적으로 치열한 ‘국가이익 경쟁’의 시대에 우리는 한반도의 미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분단의 대결 한가운데 살면서도 동시에 ‘분단을 넘어서 통일 한반도’를 꿈꾸고 대안을 마련하는 선진적 마음과 결의를 다져야 한다. 적어도 동북아 당사국 간에 “상호 이익”이 되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우리 몫의 국익’을 높고 넓게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