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
|
|
희망이요 사랑이신 예수님,
당신 뜻을 행할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단 한 순간이라도
제 자신의 손아귀에
내버려 두지 마소서.
저에게 힘을 주시어
제가 유혹을 이겨내고
제 자신과 맞서 싸워 이기게 하소서.
제의 육신, 영혼, 의지, 자유를
당신께 드립니다.
언제나 당신께 돌아설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
| |
오늘의 기도지향 |
|
|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고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들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어
주님께 대한 사랑 안에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 |
오늘의 말씀 |
|
|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루카 11, 29 – 32
그때에 29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 야곱의 우물 묵상 보기
| |
오늘의 복음 묵상 |
|
|
기적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
얼마 전에 광주 대교구 최창무 주교님께서 나주 율리아의 모든 것들이 거짓된 것임을 교령으로 반포 하셨습니다.
나주 율리아를 제가 처음 접했을 땐 저도 매우 신기했었습니다. 성체가 입 안에서 피로 변하였다가 다시 성체로 변하는 모습 등을 비디오를 통해 보았을 땐 정말 믿음이 더 깊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차차 하늘에서 성체가 떨어진 것은 자신이 쥐고 있던 제병을 던진 것이라는 증언과 자료를 보고 또 입에서 성체가 피로 변하는 것은 입 안에 나 있는 상처를 터뜨려 피가 나오게 했다는 것을 들었고, 몸에서 향기가 났다는 것도 그녀가 묵고 간 곳에서 향수병이 발견됨으로써 거짓이었다는 것 등을 듣고 나서는 그녀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특히나 그녀가 미장원을 할 때부터 많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또 그녀의 소변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여 사람들이 나누어 마시는 것 등을 보았을 때는 그런 기적들에 제 믿음의 바탕을 두지 않았던 것에 크게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또 얼마 전엔 수원 교구 최덕기 주교님께서 미리내 상주 데레사의 모든 것들도 거짓임을 교령으로 발표 하셨습니다.
제가 본당에 있을 때에도 수녀님들에 의해 그 계시 받아 그린 그림들을 보고 글을 읽어보며 신기해했었습니다. 역시나 그런 것들로 믿음이 커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배우며 그 때 보았던 많은 것들이 신학적으로 오류가 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것들이 마귀에게 속았거나 거짓으로 꾸며 낸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미리내 중앙에 있는 삼위일체상도 계시를 통해 보고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간단히만 말하면 예수님은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양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보인다는 것은 신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을 지으신 분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뜻인데 하느님께서 무엇에 제약을 받으신다면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영(靈)이시고 (요한 4,24) 아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본 이가 없다고 하고 (요한 1,18: 6,46) 교회의 가르침도 아버지는 볼 수 없는 분이라고 가르치는데 아버지를 보았다고 한다면 스스로 그리스도와 동급이 되려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저도 믿음이 이런 신기한 기적 같은 현상들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교회에서 그것들이 거짓이라는 발표를 할 때 믿음도 동시에 흔들렸을 것입니다. 다행히 저의 믿음이 그런 신기한 현상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고찰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신기한 경험이 있고 없고는 저의 신앙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도 어떤 분이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이 살아오면서 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가 몇 차례의 놀라운 기적 같은 경험이 있어서였다고 마치 신앙 간증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저는 그 분의 신앙이 그런 경험에서 이성적이고 영적인 과정을 통해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를 이렇게 나무라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의 기적이란 요나가 삼 일간 물고기 뱃속에 있다 나왔던 것처럼 예수님도 죽임을 당하여 땅 속에 있다가 삼 일째 되는 날 부활하리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수많은 표징들을 믿지 않았던 이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활의 표징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바탕이 당신을 깨닫고 알려고 하는 지성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먼 아프리카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오랜 여행을 했던 남방 여왕이 솔로몬보다 훨씬 크시고 성경과 교회를 통하여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기적만 바라는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란 의미입니다. 남방 여왕은 바로 이성적인 지혜를 갈구하여 오랜 여행도 마다 않았던 신앙인의 표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방 여왕처럼 눈으로 보이는 신기한 기적들이 아니라 이성으로 깨닫는 진리를 더욱 추구해야 합니다.
성경 안에는 모든 진리가 들어있고 그것으로 조금만 진리를 깨달으려는 의지만 있어도 믿음이 솟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삶을 바꾸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들의 삶을 회개하고 변화시킬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나보다 더 큰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기적이 아니라 가르침을 추구해야 하고 가르침대로 실천할 마음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바로 이성적인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바티칸 성당에 가면 4명의 교부들이 베드로의 교황좌 의자를 바치고 있는 작품을 제대 뒤편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적이 아니라 신학의 바탕과 성령님의 감도 안에 굳건히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기적이나 신기한 이적과 같은 모래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성으로 당신께 다가오도록 인간에게 지성을 주셨습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 하고 그래서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마음만 있다면 주님께서 친히 우리 믿음을 굳건한 바위위에 세워져 흔들림이 없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믿지 못하여 신기한 기적들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우리 스스로가 거짓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믿지 못할 사람들이 되어있지는 않은지 반성도 해 보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도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됩니다.
나타나엘이 쉽게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그 사람 안에 거짓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만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합니다. 어린이와 같이 단순하고 깨끗한 사람은 그만큼 더 쉽게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큰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만 요구하고 찾아다니는 악한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 먼저 거짓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 되고 또 그래서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성적으로 믿어야 하는 타당성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주님은 인간에게 지성을 주셨고 그 지성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쓰여져야 합니다.
[전 삼용 신부님의 사이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30joseph)]
| |
영적독서 |
|
|
겸손과 평화에 대하여
누가 네 편에 있고 또 반대편에 있든지 걱정 말고 네가 하는 모든 일에 천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록 행하고 힘써라. 너의 좋은 양심을 보존하라. 그러면 천주께서 너를 잘 보호하시리라. 천주께서 도와주시고자 하시는 이는 어떤 사람의 사악이라도 그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일 네가 잠잠하고 참을 줄을 안다면 의심없이 주께서 도우시리라. 그는 너를 구할 시간과 방법을 아시니, 너는 너를 그에게 맡겨야 한다. 모든 일에 도와주시고 모든 혼잡에서 구원하심은 천주의 일이다. 우리가 겸손을 보존하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허물을 남들이 알고 책망하는 것이 가끔 매우 유익한 일이다.
사람이 제 허물로 인하여 자기를 낮출 때에는, 남을 쉽게 안위하고 자기에게 성낸 이의 마음을 쉬이 만족케 한다. 천주께서 겸손한 자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며, 겸손한 자를 굽어보시어 큰 성총을 내리시고, 그를 낮추신 후에는 영광으로 올리신다. 겸손한 자에게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다정히 당신께로 이끄시며 당신께로 청하신다. 겸손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여도 평화를 잃지 않고 잘 있으니, 그는 세상에 마음을 붙이지 않고 천주께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낮은 자라 생각하지 않거든, 완덕에 무슨 진보를 하였다고 생각지 말아라.
너는 네 자신을 먼저 평화한 가운데 보존하라. 그러면 남에게 평화를 줄 수 있으리라. 순량한 사람은 박학한 사람보다 더 많은 유익을 준다. 악습에 걸린 사람은 좋은 것이라도 악하게 만들고, 악한 것을 쉽게 믿는다. 순량한 사람은 모든 것을 선으로 돌린다. 평화한 가운데 잘 있는 사람은 남을 의심치 않는다. 모든 일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항상 불안한 사람은 가지가지의 의심이 일어나 번민을 느끼고, 결국에는 자기도 편히 못 있고 남도 편히 못 있게 하고, 말하지 아니하여야 할 것을 가끔 말하고, 해서 유익한 일을 하지 않으며, 남은 무엇을 할 의무가 있다고 잘 살필 줄을 아나, 자기의 할 의무는 소홀히 한다. 그러니 너는 네 자신에 대한 걱정을 먼저 하라. 그러면 당연히 남의 걱정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네 행동을 핑계하여 두호하고 가릴 줄을 잘 알면서, 남의 이유는 믿으려 아니한다. 네 형제는 잘 양해해 주고 네 자신은 잘못한 줄로 자복함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 남이 너를 양해하기를 원하거든 너도 남을 양해해 주어라.
「준주성범」에서
[오요한 신부님의 '가톨릭 영성']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