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신문 연재)
한국미술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 (46회)
매화점(梅花點)→무량보주(無量寶珠) (상)
하늘도 법당도 온통 무량한 보주가 가득
‘매화점(梅花點)’이란 용어는 단청 관련 모든 책에 예외 없이 나온다. 실제로 사찰 법당들은 물론,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조선시대 궁궐의 크고 작은 건물에 그 조형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그 조형에 시선이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왜 그 용어가 옳지 않은가? 옳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귀면은 인터넷에서 한자로 전환하면 금방 ‘鬼面’이 떠서 편리하지만, 용면은 전환할 수 없어 용(龍)과 면(面)을 따로따로 한자로 전환시켜야 한다. 시간이 걸리므로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보주(寶珠)’라는 용어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인터넷에서 단 번에 한자로 전환할 수 없다. 매화점 역시 자판 한 터치에 금방 뜬다. 인터넷에서는 ‘가장 옳은 용어는 뜨지 않고, 가장 그른 용어는 뜬다.’
매화점도 마찬가지다. 단청 전문가들의 모든 책에 매화점이란 용어가 있으나 설명이 없으며 더 나아가 법당이나 궁궐 건축에 왜 그리도 많은지 밝히지 않고 있다. 어찌하여 건축 곳곳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조형들이 그리도 많은가! 그토록 많다면 필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매화점이라는 것은 매화꽃을 닮아서 붙인 이름일 것이다. 매화-난-국화-대나무 등, 사군자(四君子)를 먹물 묻혀서 붓으로 쳐 본 사람은 금방 알 것이다. 언뜻 보면 매화를 연상하지만 매화는 결코 아니다. 이미 말했거니와 근대 이전의 조형미술에는 현실에서 보는 조형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외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조형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운’을 표현한 것이어서 장인 이외의 사람들은 그 보이도록 나타낸 조형들이 눈에 보일 리 없다. 사람들이 매화점이라고 부르는 조형은 ‘우주의 기운’을 표현한 것이다. 왜 그런지 증명해 나갈 것이다. 무한한 우주의 상징을 최대한으로 압축한 것이어서 인류는 그 조형의 구성 원리와 상징구조를 읽어내어 문자언어로 기록하지 않았다. 장인들은 충분히 알고 그렸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본 비슷한 사물을 보고 용어를 만들었으므로 매화점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영원히 매몰시켜 왔던 것이다. 단청 책들에 나오는 매화점에 대한 설명을 다음에 인용하여 읽어보기로 하자.
‘부리초’란 부재의 끝 마구리면에 장식되는 문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부연이나 서까래, 보, 도리, 평방, 창방, 사래, 추녀, 첨차의 부리가 모두 해당된다. 각 부리의 중심에는 간단한 단독 문양을 장식한다....부리초 문양으로는 먹 바탕에 백색 매화점이나 백색 태평화 등....이 사용된다. 매화점은 백색으로 중심의 꽃 심에 해당하는 원을 찍고, 다시 그 둘레에 원을 5~6개 찍어 완성한다. 태평화는 천하가 태평해 만사가 평안해지기를 기원하는 도안이다..... (『한국의 단청』, 곽동해 지음, p. 283)
태평화(太平花)도 한자로 전환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매화점과 태평화는 조형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을 지닌 것인데 이 글에서는 매화점만 다루기로 한다. 매화점의 정체를 밝혀보면, 한 마디로 ‘무량보주(無量寶珠)’를 말한다. 즉 중앙의 비교적 큰 보주에서 사방으로 여러 개의 작은 보주가 생겨나는 조형으로 그 조형의 역사는 유구하다.(도 1) 단청의 무량보주를 자세히 보면 중앙의 보주에서 주변의 보주에 모두 가는 줄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중앙의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가는 줄이 있는 조형은 말 할 수 없이 귀중하다. 그런 조형이 경우에 따라 줄이 없어진다. 우선 부석사 괘불의 하늘에서 그런 조형을 찾아볼 수 있다.(도 2) 원래 하늘에는 무량한 보주가 가득 차 있는데 그저 수많은 보주들로 가득 차게 하면 혼란스러우므로 중앙에 보주를 두고 주변에 보주를 두르는 단위의 조형을 만들어 검은 하늘에 가득 배치한다. 밤하늘이 아니다. 옛 사람들은 하늘이 깊어서 玄이라 표현했으므로 검게 칠한 것이지 밤하늘이 아니다. ‘별 같이 보주들이 가득 찬 하늘’이다. 불화의 이런 조형을 보고 매화점이라 부를 것인가?
도 1. 단청 도안
도 2. 부석사괘불의 하늘의 무량보주
11월 12일, 통도사 적멸보궁 조사하러 가면서 관음전(觀音殿)의 부연이나 서까래, 보, 도리, 평방, 창방, 사래, 추녀, 첨차 등 그 수많은 마구리는 물론 일체 부재뿐만 아니라, 지붕의 각종 기와에서 우리가 매화점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무량보주’라고 고쳐야만 하는 조형들이 명료하게 눈에 들어왔다. 무한한 우주의 압축인 법당전체에서 무량보주가 폭발하듯 발산하는 장엄한 드라마를 보았다.(도 3-1, 도 3-2) 보주들이 여러 개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보주라도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므로 무량보주라고 인식해야 한다.
도 3-1. 통도사 관음전의 각종 부재에서 발산하는 무량한 보주들.
도 3-2. 온통 보주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