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문학상 수상작>
도마
오은주
석양을 지고 와서 현관에 벗어두고
온몸으로 뒹굴었던 오늘을 총총 썬다
하루치 제물을 바치는 부엌의 둥근 신전
바닥에 납작 엎드려 하명을 기다린다
풀어 헤친 가슴팍 핏자국이 낭자해도
돌아서 눈물 훔치는, 경전이 놓친 시간
때로는 휘모리로 어떨 땐 자진모리로
수많은 칼날 받으며 차려낸 제단 앞에
늠연히 무릎을 꿇은 상처의 힘, 서럽다
올해의 발표작
하늘 저울
마당 어귀 긴 빨랫줄 하늘 무게 재고 있다
빗소리 바람 소리 해와 달 별과 구름
모두 다 올라앉아도 미동조차 없는 눈금
슬며시 신발 벗고 내 맘을 올려본다
바늘은 파르르르 붉은 선 넘어서고
버리지 못한 욕심이 하늘보다 무겁다
나 언제 물결치는 내 자신을 속였던가
비워도 다시 차고 떼어내도 달라붙는
무서운 조바심 앞에 옷을 몰래 벗는다
신작
경주역*
열차가 닿자마자 야생초들, 내린다
금불초 쥐꼬리망초 구절초 쑥부쟁이
오래된 플랫폼으로 꽃향기가 지나간다
*103년 동안 운행했던 경주역이 2021년 12월 28일 폐역이 되고 서경주역으로 옮김.
간절곶에서
끝없이 펼쳐진
쪽빛 바다 편지지에
갈매기 울음소리
파도 소리 받아 적어
당신께 띄워 보낸다
소망우체통 심장 속
수시로 일어서는
해일海溢같은 그리움아
일 년 후 받아 볼
엽서 위 글씨마다
해국이 피고 지고 또 피듯
그대와 나 피어나길
<대구시조> 2023. 제 27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