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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xingty/3019379656/sizes/l/#cc_license)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국보 제 9호로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있는 백제 석탑이다.높이 8.33m. 149개의 잘 다듬어진 화강석으로 제작되었다.
과거 당평제탑(唐平濟塔)이라고도 하였는데 탑의 초층 탑신에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의 전승기공문(戰勝紀功文)인 「大唐平百濟國碑銘」을 사방(四方)에 새겨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비문에는 당(唐) 현경 5년(顯慶 5,서기 660년)이라고 각자(刻字)되어 있어 7세기 중반 이후에 탑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였었으나, 1979년부터 5년간의 발굴조사 결과 정림사의 창건(538∼660 추정)과 함께 건립된 탑임이 밝혀졌다.
신성한 백제 불탑에 「대당평백제국비명」이라는 낙서를 후대에 저질러 놓은 것이다.
정림사(定林寺)는 창건후, 고려시대인 서기 1028년에 중건되었음도 밝혀졌다.
정림사라는 명칭은 일제에 의해 발굴될 당시 출토된 명문에 의해서 였는데, 이 명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창건 당시의 명칭도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구부여군아(舊扶餘郡衙)의 부지내(敷地內)에서 내용이 같은 비가 발견됨으로서 두 종류의 평제비(平濟碑)가 현재 존재하는데, 두 비문의 석각시기, 내용,원래위치 등을 놓고 논란이 많다.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당평제비 또는 평제비라 일컫는 이 비명의 명칭은 대당평백제국비명이다.
제1면은 24행, 제2면은 29행, 제3면은 28행, 제4면은 36행 등 총 117행이며 각 행은 16자 또는 18자인데, 자경(字徑)은 4.5cm로 해서체(楷書體)이다. 제액(題額)은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의 8자를 2행으로 전서(篆書), 그 아래에 ‘현경(顯慶) … 계미건(癸未建)’이라고 2행으로 각서(刻書)했는데 전서체(篆書體)이다. 연대는 신라 660년(무열왕 7)이며, 내용은 대체로 소정방의 기공비(紀功碑)로서 당(唐) 고종(高宗)이 문무왕과 힘을 합쳐 백제를 쳐서 사비성(泗沘城)을 함락시키고 마침내 이를 토파(討破)한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문장은 사륙병려체(四六騈驪體)로 과대(誇大)한 필치를 사용하였고, 서체(書體)는 정해(正楷)로 당조(唐調)에 육조(六朝)의 여풍(餘風)이 가미되었다. 당(唐) 학사(學士) 하수량(賀遂亮)의 글에 당(唐) 학사(學士) 권회소(權懷素)가 썼다.
* 탁본의 출전은 일, 경도대학 도서관으로 확인결과 한 본(13번도)이 누락된 것으로 판명되어 이 부분은 국립중앙도서관의 복사본으로 대체하였다.
* 비의 전신 사진을 제외한 이 외의 사진과 판독문,해석문은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에서 발췌, 인용하였다.
* 원탁본의 제작에 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4. 3. 2. 1.
1-1 1
大唐平百」
濟國碑銘」
대당평백제국비명
1-2 2
顯慶五年歲在庚申八月己巳朔十五日癸未建」
洛州河南權懷素書」
【原夫皇王所以朝萬國制百靈淸海外而」
擧天維宅寰中而恢地絡莫不揚七德以」
御遐荒耀五兵而肅邊徼雖質文異軌步」
驟殊塗揖讓之與干戈受終之與革命皆」
載勞神武未戢佳兵是知洶水挻祅九」
遂戮洞庭構逆三苗已誅若乃式鑒千齡」
緬惟萬古當塗代漢典午承曹至於任重」
鑿門禮崇推轂馬伏波則鑄銅交阯竇車」
당,현경(顯慶) 5년 8월 15일 세우고, 하남 낙주(洛州)의 권회소(權懷素)가 쓰다.
대저 천자(天子)가 만국(萬國)에게서 조회를 받고 백령(百靈)을지배하는 까닭은 해외(海外)를 맑게 해서 천유(天維)를 일으키고 환중(寰中)에 자리를 잡아서 지락(地絡)을넓힘으로써, 칠덕(七德)을드날려 먼 오랑캐의 땅을 어거하고 오병(五兵)을 빛내 변방을 고요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비록 질(質)과 문(文)이궤(軌)를 달리하고, 걷는 것과 달리는 것이 길을 달리한다 해도 읍양(揖讓)의 전쟁에 대해서와, 수종(受終)의 혁명(革命)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전쟁과 혁명은) 모두 헛되이 뛰어난 무용(武勇)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요, 훌륭한 병사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이것으로 흉수(汹水)에서 재앙을 당기다가 구영(九嬰)이 마침내 주륙되고, 동정호(洞庭湖)에서 역모를 꾀하다가 삼묘(三苗)가 이미 주륙되었음을 알겠다. 이에 천년을 본보기로 삼고 천착하며, 만고(萬古)를 생각하니 출세해서 한나라를 대신하고, 사마(司馬) 벼슬을 맡아 조정을 계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은 착문(鑿門 : 문 뚫는 것 ?)을 중히 여기고 예(禮)는 추곡(推轂)을 높이 여기기도 하니 마복파(馬伏波)는 교지(交阯(趾))에서 동(銅)을 주조하고,---
1-3 3
騎則勒石燕然竟不能覆鯷海之奔鯨絶」
狼山之封豕況丘樹磨滅聲塵寂寥圓鼎」
不傳方書莫紀蠢玆卉服竊命島洲襟帶」
九夷懸隔萬里恃斯險阨敢亂天常東伐」
親隣近違】明詔北連逆豎遠應梟聲」
況外棄直臣內信祅婦刑罰所及唯在忠」
良寵任所加必先諂倖標梅結怨杼軸銜」
두거기(竇車騎)는연연(燕然)에서 돌에 (공을) 새겼으나 끝내 제해(鯷海)의 분경(奔鯨)을뒤집어엎거나 낭산(狼山)의 봉시(封豕)를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하물며 산의 나무가 다 닳아 없어지고 소리지르던 사슴이 고요해지며 단정(丹鼎)도 전해지지 않고 방서(方書)도 기록되지 않음에랴! 준동하는 이 오랑캐들이 도주(島洲 : 섬)에서 목숨을 훔치며, 요해처에 있는 구이(九夷)는 만리에 뚝 떨어져 있어서 이 지세가 험함을 믿고 감히 천륜(天倫)을 어지럽혀 동쪽으로는 가까운 이웃을 쳐서 가까이 중국의 (밝은) 조칙(詔勅)을 어기며, 북쪽으로는 역수(逆豎)와 연계되어 멀리 효성(梟聲)에 응한다. 하물며 밖으로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 요망한 계집을 믿어 오직 충성되고 어진 사람한테만 형벌이 미치며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이 먼저 총애와 신임을 받아 표매(標梅)에 원망을 품고 저축(杼軸)에 슬픔을 머금는다.
1-4 4
皇體二居尊通三表極珠衡毓慶日角騰」
輝揖五瑞而朝百神妙萬物而乘六辯正」
天柱於西北廻地紐於東南若夫席龍圖」
裒鳳紀懸金鏡齊玉燭拔窮鱗於涸轍拯」
危卵於傾巢哀此遺甿憤斯兇醜未親弔」
伐先命元戎使持節神丘嵎夷馬韓熊津」
우리 황제께서는 두 가지 것을(善을) 체득해서 높은 자리에 있으시고 세 가지 일에 통달하신 것이 매우 뛰어나시며, 성현(聖賢)의 용모는경사를 만들고 귀인(貴人)의 상(相)은 빛을 드날리셨다. 오서(五瑞)에 읍(揖)하여서 백신(百神)을 조회하고, 만물을 신묘하게 해서 육변(六辯)을 꾀하여 서북쪽에서는 하늘의 기둥을 바르게 하고 동남쪽에서는 지뉴(地紐)를 돌리셨다.
대저 용도(龍圖)를 진열하고 봉기(鳳紀)를 모으며 금경(金鏡)을 매달고 옥촉(玉燭)을 가지런히 하셨도다. 학철(涸轍)에서 궁지에 몰린 고기를 빼내주고, 기울어진 새집에서 위태로운 새알을 건져 주시면서도 이 유민을 불쌍히 여기고 저 흉포한 무리를 분히 여겨 친히 조민벌죄(弔民罰罪)하지 않고 먼저 장군들에게 명하셨다.
사지절(使持節) 신구(神丘)·우이(嵎夷)·마한(馬韓)·웅진(熊津) --
2-1 5
等一十四道大摠官左武衛大將軍上柱」
國邢國公蘇定方疊遠構於曾城派長瀾」
於委水叶英圖於武帳標秀氣於文昌架」
衛霍而不追府彭韓而高視趙雲一身之」
膽勇冠三軍關羽萬人之敵聲雄百代捐」
軀殉國之志冒流鏑而逾堅輕生重義之」
등 십사도(十四道) 대총관(大摠管) 우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상주국(上柱國) 형국공(邢國公) 소정방(蘇定方)은 증성(曾城)에서 여러 번 구함(構陷)을 당하고 위수(委水)에서 긴 파란을 일으켰으며, 뛰어난 계획은 무장(武帳)에서 맞추었고 빼어난 기개는 문창성(文昌星)에 나타냈으니 위곽(衛霍)을 능가하면서도 따라잡지 않으며, 팽한(彭韓)을 굽어보면서도 높게 여긴다. 조운(趙雲)은 일신(一身)의 담력으로 용맹이 삼군(三軍)의 으뜸이 되었고 관우(關羽)는 만인(萬人)을 대적할 만한 능력으로 명성이 백대(百代)에 떨쳤다. 자기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죽을 뜻을 가지고 유적(流鏑)을 무릅쓰면서도 더욱 더 견고해졌고 목숨을 가벼이 하고 의(義)를 중히 여기는 --
2-2 6
心蹈前鋒而難奪心懸氷鏡鬼神無以秘」
其形質邁松筠風霜不能改其色至於養」
士卒撫邊夷愼四知去三惑厄頁氷泉以表」
潔含霜栢以凝貞不言而合詩書不行而」
中規矩將白雲而共爽與靑松而競高遠」
懷前人咸有慙德副大摠管冠軍大將軍」
▨▨▨衛將軍上柱國下博公劉伯英上」
▨▨▨▨▨風雲負廊廟之才懷將相之」
마음으로 앞장을 섰어도 (마음을) 빼앗기 어려웠다. 마음은 빙경(氷鏡)에드러나 있어 귀신도 그 형상을 감출 수 없고, 바탕은 송균(松筠)에(절조 갖추기를) 힘써 바람과 서리도 그 색깔을 고칠 수 없었다. 사졸(士卒)을 길러 변방 오랑캐를 어루만짐에 이르러서는 사지(四知)를 삼가고 삼혹(三惑)을 제거하여, 빙천(氷泉)을 고요하게 해서 깨끗함을 드러내고 서리맞은 잣나무를 품고서 정절을 굳게 하니 말하지 않아도 『시경(詩經)』·『서경(書經)』에 부합하고 행하지 않아도 법도(法度)에 들어맞는다. 흰 구름을 거느리고서 상쾌함을 함께 하고, 푸른 소나무와 더불어서 고고함을 다투면서도 멀리 앞사람을 생각하여 모두 덕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이 있었다.
부대총관(副大摠管)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위장군(衛將軍) 상주국(上柱國) 하박공(下博公) 유백영(劉伯英)은 위로는 ▨▨▨ ▨▨풍운(風雲)으로 정치를 할 만한 재주를 가졌고 장상(將相)의--
2-3 7
器言爲物範行▨士則詞溫布帛氣馥芝」
蘭績著旗常調諧鍾律重平生於晩節輕」
尺璧於寸陰破隗之勳常似不足平▨▨」
策口未涉言副大摠管使持節隴州諸軍」
事隴州刺史上柱國安夷公董寶德▨志」
飄擧雄圖傑立藝包三略策運後▨▨▨」
眞梅能令魏軍止渴無勞實纊終使楚卒」
忘寒副大摠管左領軍將軍金仁問氣度」
그릇을 품었다. 말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행동은 군대의 법칙이 되었으며, 말씀(詞)은 포백(布帛)을 따뜻하게 하고 향기는 연꽃과 난초의 향을 내었으며, 공적은 기상(旗常)에 드러나고 조리는 종률(鍾律)에 맞았다. 만년(晩年)의 절개보다 평생(平生)을 중히 여기고 짧은 시간보다 1척이나 되는 옥을 가벼히 여기며 매우 높은 공적도 항상 부족한 듯이 여겨 평책종책(平策縱策)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부대총관(副大摠管) 사지절(使持節) 농주제군사(隴州諸軍事) 농주자사(隴州刺史) 상주국(上柱國) 안이공(安夷公) 동보덕(董寶德)은 ▨는 드날릴 것에 뜻을 두고 걸출함은 뛰어나게 설 것을 도모했으며, 재주는 삼략(三略)에 통하고 계책은 후(後)▨를 움직였다. ▨▨진매(眞梅)하여 능히 위(魏)나라 군사로 하여금 목마름을 그치게 하고, 수고롭히지 않고도 솜옷을 채워 끝내 초(楚)나라 병졸로 하여금 추위를 잊게 했다.
부대총관(副大摠管) 좌령군장군(佐領軍將軍) 김인문(金仁問)은 기량(氣量)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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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雅器識沈毅無小人之細行有君子之」
高風武旣止戈文亦柔遠行軍長史中書」
舍人梁行儀雲翹吐秀日鏡揚輝風偃搢」
紳道光雅俗鑒淸許郭望重荀裴辯箭騰」
波控九流於學海詞條發穎掩七澤於文」
亮▨太傅之深謀未堪捧轡杜鎭南之遠」
온화하고 아담하며, 기국(器局)과 식견(識見)이 침착하고 굳세어서 소인배의 자잘한 행위는 없고 군자의 고매한 풍모만 있었으며, 그의 무(武)는 싸우지 않고도 드러났으며 문(文) 또한 부드럽고 원대했다.
행군장사(行軍長史) 중서사인(中書舍人) 양행의(梁行儀)는 구름같은 머리꾸미개로 빼어남을 드러내고 해거울로 빛을 드날리며, 풍모는 진신(搢紳)보다 뛰어나고 도(道)는 아속(雅俗)을 빛내어 거울은 허곽(許郭)보다맑고 덕망은 순배(荀裴)보다 중하였다. 분별 잘하는 것(辯箭)은 파도를 튀어 오르게 하여 배움의 바다에서 구류(九流)를 잡아당기고, 문장의 조리는 빼어남을 발하여 글 잘하는 사람에서 칠택(七澤)을가리웠다. ▨태부(太傅)의 심오한 계책으로도 그의 말 고삐 받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두진남(杜鎭南)의 원대한 계략으로도 그의 수레바퀴를 붙들 수 없었도다.
3-1 9
略何可扶輪暫遊鳳池式淸鯨壑邢國公」
運秘策縱驍雄陰羽開偃月之圖陽文含」
曉星之氣龍韜豹鈐必表於情源玄女黃」
公咸會於神用況乎稽天蟻聚迊地蜂飛」
類短狐之含沙似長虫也之吐霧連營則豺」
狼滿道結陣則梟獍彌山以此兇徒守斯」
잠시 봉지(鳳池)에 있으면서(중서성(中書省)에 있으면서) (이번 원정을 도와) 경학(鯨壑)을 깨끗하게 하였다.
형국공(邢國公)은 비책(秘策)을 움직이고 용감하고 굳세게 행동하여, 음우(陰羽)는 언월(偃月)의 계획을 열고 양문(陽文)은 샛별의 기운을 머금었다. 용도(龍圖)와 표검(豹鈐)은 반드시 정원(情源)에 드러내고 현녀(玄女)와 황공(黃公)은 신용(神用)에 모두 모였다. 하물며 하늘 끝까지 개미처럼 모여들고 땅을 삥 둘러 벌떼처럼 날아드는 것이 단호(短狐)가 모래를 머금은 것과 유사하고 장사(長蛇)가 안개를 토해내는 것과 비슷하여 영(營)을 서로 합치면 시랑(豺狼)이길에 꽉 차고 진(陳)을 맺으면 효경(梟獍)이 산에 꽉 참에랴! 이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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窮險不知懸縷將絶墜之以千鈞累碁先」
危壓之以九鼎于時秋草衰而寒山淨凉」
飇擧而殺氣嚴逸足與流電爭飛疊鼓共」
奔雷競震命豊隆而後殿控列缺以前驅」
氣妖氛掃之以戈戟崇墉峻堞碎之以」
衝棚左將軍摠管右屯衛郞將上柱國祝」
阿師右一軍摠管使持節淄州刺史上柱」
國于元嗣地處關河材包文武挾山西之」
이 궁벽지고 험한 곳을 지키고서는 매달린 줄이 장차 끊어져서 대단히 무겁게 떨어지고, 쌓아올린 바둑돌이 먼저 위태로와 구정(九鼎)으로 누르게 될 줄은 알지 못한다. 이때 가을 풀이 시들어 가을산이맑아지고 서늘한 바람이 일어 추운 기운이 심해지며, 빠른 걸음과 재빨리 지나가는 번개가 다투어 날고 첩고(疊鼓)와 분뢰(奔雷)가 다투어 친다. 풍(豊)·융(隆)에게 명하여 맨 뒤에 서게 하고 열결(列缺)에게앞장서게 하며, 간사한 기운과 요망한 기운은 칼과 창으로 쓸어버리고 높은 담과 가파른 성가퀴는 충붕(衝棚)으로 부숴버린다.
좌장군(左將軍) 총관(摠管) 우둔위랑장(右屯衛郞將) 상주국(上柱國) 축아사(祝阿師)와 우일군총관(右一軍摠管) 사지절(使持節) 치주자사(淄州刺史) 상주국(上柱國) 우원사(于元嗣)는 지역은 관하(關河)를 차지하고 있고 재주는 문무(文武)를 아울렀으며 산서(山西)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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壯氣乘冀北之浮雲呼吸則江海停波嘯」
咤則風雷絶響嵎夷道副摠管右武候中」
郞將上柱國曹繼叔久預經綸備嘗艱」
險異廉頗之强飯同充國之老臣行軍長」
史沂州司馬杜爽質耀璿峯芳流桂畹追」
風籋電騁逸轡於西海排雲擊水搏勁翮」
於南溟驥足旣申鳳池可奪右一軍摠管」
宣威將軍行左驍衛郞將上柱國劉仁願」
장엄한 기운을 끼고 기북(冀北)의 뜬 구름을 타고서 호흡을 하면 강과 바다가 파도를 멈추고 소리내어 꾸짖으면 바람과 천둥이 소리를 끊는다.
우이도부총관(嵎夷道副摠管) 우무후(右武候) 중랑장(中郞將) 상주국(上柱國) 조계숙(曺繼叔)은 오랫동안 정치에 참여하여 일찌기 어렵고 험한 것을 맛본 것이 염파(廉頗)의 강반(强飯)과 다르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늙은 신하와 같다.
행군장사(行軍長史) 기주사마(岐州司馬) 두상(杜爽)은 바탕은 아름다운 봉우리를 빛내고 향기는 계수나무밭에 흐른다. 바람을 따르고 번개를 밟아 서해(西海)에서 뛰어난 말을 달리며, 구름을 밀치고 물을 쳐 남해(南海)에서 굳센 깃촉을 잡으니 기족(驥足)이 이미 펴져서 봉지(鳳池 : 중서성 재상)를 가히 빼앗을 만하다.
우일군총관(右一軍摠管) 선위장군(宣威將軍) 행좌효위랑장(行左驍衛郞將) 상주국(上柱國) 유인원(劉仁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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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孝爲忠自家形國早聞周孔之敎晩習」
孫吳之書旣負英勇之才仍兼文吏之道」
邢國公奉緣」
聖旨委以斑條欲令金如粟而不窺馬如」
羊而莫頋右武衛中郞將金良圖左一軍」
摠管使持節沂州刺史上柱國馬延卿俱」
효성을 바탕삼아 충성을 하고 집에서 비롯해서 나라를 이루어 일찌기 주공(周孔)의 가르침을 듣고, 나중에는 손오(孫吳)의책을 익혔으며 이미 영용(英勇)한 재주를 띠고 아울러 문리(文吏)의 도(道)를 겸하였다. 형국공(邢國公)은 성지(聖旨)를 받들어 따르고 반조(斑條)를 위임받아 금(金)이 조와 같이 많아도 엿보지 않고 말이 양과 같이 순해도 조용하지 않게 하고자 했다.
우무위중랑장(右武衛中郞將) 김양도(金良圖), 좌일군총관(左一軍摠管) 사지절(使持節) 기주자사(沂州刺史) 상주국(上柱國) 마연경(馬延卿)은---
4-1 13
懷鐵石之心各勵鷹鸇之志擁三河之勁卒摠六郡」
之良家邢國公上奉」
神謀下專節度或中權陷陣或後勁先鋒出天入地」
之奇千變萬化致遠鉤深之妙電發風行星紀未移」
英聲載路邢國公仁同轉扇恩甚投醪逆命者則」
肅之以秋霜歸順者則涵之以春露一擧而平九種」
再捷而定三韓降劉弘之尺書則千城仰德發魯連」
之飛箭則萬里銜恩其王扶餘義慈及太子隆自外」
모두 굳은 마음을 품고 각기 맹위를 떨치고자 힘써 삼하(三河)의 굳센 군사를 끼고 육군(六郡)의 지체있는 집안을 거느렸다. 형국공(邢國公)은 위로 뛰어난 계략을 받들고 아래로 절도(節度)를 오로지 하여 혹은 중권(中權)으로 군대를 함락시키기도 하고 혹은 후경(後勁)으로 선봉이 되게 해서 하늘에서 솟아나고 땅으로 꺼지는 기이함으로 천번 만번 변화하며, 멀리까지 이르고 깊은 데까지 끌어당기는 기묘함으로 번개같이 일어나고 바람처럼 가서 성기(星紀)가 미처 옮겨지기도 전에 훌륭한 명성이 길에 가득 찼다. 형국공(邢國公)은 인(仁)은 전선(轉扇)과 같고 은혜는 투료(投醪)보다 심하여 명을 거스르는 자는 추상(秋霜)과 같은 위엄으로 숙청하고, 귀순하는 자는 춘로(春露)와 같은 은택으로 적셔 주었다. 한 번 군대를 일으켜 구종(九種)을 평정하고 두 번 승전해서 삼한(三韓)을 평정하여 유홍(劉弘)의 간단한 글을 내리니 천성이 덕을 우러르고 노련(魯連)의 비전(飛箭)을 쏘니 만리(萬里)가 은혜를 머금었다.
그 왕(王)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융(隆) 이외-----
4-2 14
王餘孝一十三人幷大首領大佐平沙吒千福國辯」
成以下七百餘人旣入重闈竝就擒獲捨之馬革載」
以牛車佇薦司勳式獻」
淸廟仍變斯獷俗令沐玄猷露冕褰帷先擇忠款烹」
鮮製錦必選賢良庶使剖符績邁於龔黃鳴絃名高」
於卓魯凡置五都督卅七州二百五十縣戶卄四萬」
口六百卄萬各齊編戶咸變夷風夫書東觀紀南宮」
所以旌其善勒彛鼎銘景鍾所以表其功陵州長史」
判兵曹賀遂亮濫以庸才謬司文翰學輕俎豆氣重」
風雲職號將軍願與廉頗幷列官稱博士羞共賈誼」
왕자(王子) (餘)효(孝)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거(牛車)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司勳)에 올리고 이에 청묘(淸廟)에 드렸다. 인하여 이 사나운 풍습을 바꾸어서 현묘한 꾀에 젖게끔 하였으니 면류관을 벗고 휘장을 걷음에는 먼저 충성되고 정성된 사람을 택하고, 생선을 삶고 비단을 만듦에는 반드시 현량한 사람을 선택해야 거의 부부(剖符)로 하여금 공적이 공황(龔黃)보다 뛰어나고 명현(鳴絃)으로 하여금 이름이 탁로(卓魯)보다 높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5도독(都督) 37주(州) 250현(縣)을 두고 호(戶) 24만, 口 620만을 각각 편호(編戶)로 정리하여 모두 오랑캐의 풍속을 바꾸게 했다. 대저 동관(東觀)에 기록하고 남궁(南宮)에 기록하는 것은 그 선행을 드러내기 위함이요, 이정(彛鼎)에 새기고 경종(景鍾)에 새기는 것은 그 공(功)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능주장사(陵州長史) 판병조(判兵曹) 하수량 (賀遂亮)이 외람되이 용렬한 재주를 가지고 잘못 문한(文翰)을 맡아 배움은 조두(俎豆)를 가벼이 여기고 기운은 풍운(風雲)을 중히 여기면서도 직책은 장군(將軍)이라 불리워 염파(廉頗)의 열(列)에 들기를 원하고 벼슬은 박사(博士)라 칭해져 가의(賈誼)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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爭衡不以衰容猶懷壯節提戈海外冀效涓塵六載」
賊庭九摧逋寇窮歸之隘意欲居中乃弁餘詞敬撝」
直筆但書成事無取浮華俾夫海變桑田同天地之」
永久洲移鬱島與日月而長懸其銘曰」
悠悠遂古茫茫厥初人倫草昧造化權輿冬巢夏穴」
殼飮鶉居以結以刻或畋或漁淳源旣往大道淪胥」
爰及三五代非一主揖讓唐虞革命湯武上齊七政」
下均九土屢擾干戈式淸區宇未漸西掖豈東戶」
奧我聖皇道叶穹蒼瑩鏡千古牢籠百王逖矣」
遠徼遐哉大荒咸稟正朔竝預封疆蠢玆九種獨隔」
우열을 다투기를 바란다. 쇠약한 용모라 하지 않고 오히려 장엄한 절개를 품어 해외(海外)에서 무기를 들고 근소한 것이라도 본받기를 바라고, 여섯 번 적정(敵庭)에 실려가고 아홉번 달아나다가 잡혀 궁벽해서 돌아와 설 때도 뜻은 거중(居中)하고자 한다. 이에 남은 할 말을 안하고 삼가 직필을 휘둘러 다만 성사된 일만을 쓰고 부화(浮華)는 취하지 않아 저 바다가 변하여 뽕밭이 되어도 천지가 영구한 것과 같이 하고 모래톱이 우거진 섬으로 바뀌어도 일월(日月)과 더불어 길이 매달리게 하고자 한다.
그 명(銘)에 이르기를 아득히 먼 옛날, 아득한 그 처음에 인륜(人倫)은 아직 혼돈하여 어두웠으나 천지 자연의 이치는 비롯되었다. 겨울에 보금자리를 지었다가 여름에는 방랑하며 껍질을 숨기고 순거(鶉居)하여 (집을) 맺기도 하고 새기기도 하며, 혹은 사냥, 혹은 고기잡이도 하니 청정한 근원이 이미 지나갔고 큰 도(道)가 빠져 없어졌다. 이에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미쳐 대대로 한 주인이 아니어서 선양(禪讓)을 한 것은 당요(唐堯), 우순(虞舜)이요, 혁명(革命)을 한 것은 탕왕(湯王)·무왕(武王)이니 위로는 칠정(七政)을 가지런히 하고 아래로는 九州를 고르게 하며, 여러번 무기를 소란케 하여 이에 천하를 맑게 하였으되 아직 서액(西掖)을 적시지도 못했으니 어찌 동호(東戶)에 미치겠는가?
아! 우리 황제께서는 도(道)가 궁창(穹蒼)에 화합하고 영예(榮譽)는 천고에 거울이 되어 뭇왕을 통합하니 멀고 먼 변방과 아득히 먼 대황(大荒)이 모두 정삭(正朔)을 품부받고 아울러 봉강(封疆)에 참예하였다. 준동하는 이 구종(九種)이 홀로 삼광(三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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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光叛換澤國憑凌水鄕天降飛將豹蔚龍驤弓含」
月影劒動星芒貔貅百萬電擧風揚前誅蟠木却翦」
扶桑氷銷夏日葉碎秋霜赳赳五營明明三令仰申」
廟略府齊軍政風嚴草衰日寒江淨霜戈夜動雲旗」
曉暎▨戟前驅吳鉤後勁巨猾授首逋誅請命威惠」
▨▨邊隅已定嘉樹不翦甘棠在詠花臺望月貝殿」
浮空疎鍾夜鏗淸梵晨通刊玆寶刹用紀殊功拒天關以永固橫地軸以無窮
막아놓고서 은혜를 베푼 나라에 배반을 하고 수향(水鄕)을 침범하니 하늘이 비장(飛將)을 내리고 표범이 읍양(揖讓)을 성하게 하며 활은 달그림자를 머금고 칼은 별빛을 움직인다. 용맹스런 군대 백만이 번개처럼 일어나고 바람같이 드날려 앞에서는 반목(蟠木)을 베다가도, 물러나서는 부상(扶桑)을 베어버리며 얼음은 여름해에 녹여버리고 잎은 가을서리에 부서지게 한다. 굳센 오영(五營)과 밝고 밝은 삼령(三令)으로, 우러러서는 묘략(廟略)을 펴고 굽어서는 군정(軍政)을 가지런히 하여 바람은 풀잎이 시들 때보다 엄하고 태양은 강물이 맑을 때보다 차도다. 서리같이 매서운 창은 밤에 움직이고 구름그린 깃발은 새벽에 빛나 재잘거리며 전군(前軍)을 찌르고 큰 소리치며 후비(後備)의 정병(精兵)을 잡아당기니 크고 교활한 놈이 머리를 바치고, 체포되어 주살될 놈이 목숨을 청한다. 위엄과 은혜가 ▨▨하여 변방 모퉁이가 이미 평정되고 아름다운 나무가 베어지지 않아 임금의 은혜를 읊고 화대(花臺)가 달을 바라보니 패전(貝殿)이 공중에 떠있고 그림을 새긴 종(鍾)이 밤에 울리니 맑고 맑은 깨끗함이 새벽에 통한다. 이 보찰(寶刹)을 깎아 특별한 공을 기록하니 천관(天關)을 막아서 영원히 견고하고 지축(地軸)을 가로질러서 끝이 없기를 바란다.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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