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8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상처받지 마세요!
요 19:31~37
<백세, 치매, 코로나 어머니와 음압병동의 아들>
엊그제 새해 인사차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 지금 감옥살이 하고 있어~”합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뭔 소리야, 감옥살이라니?”
금년에 백세가 되신 치매 노모께서 하필 코로나에 걸리셨답니다.
병원 음압병동에 입원하셨는데, 가족 중에서 한 명이 병실에서 환자를 돌봐야 한답니다.
코로나 상관없이 한 명이 돌봐야 한답니다. 그래서 친구가 일주일 전 함께 입원했대요.
백세의 치매 어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아들에게 온갖 애면 소리를 다 합니다.
“네가 내 아들이냐?” 했다가, “네 이놈, 네가 누구냐?”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별별 말씀, 온갖 말씀을 다 하면서 일주일을 보내는데,
“점점 올라와서 오늘 새벽에 정말 위험했어!”라고 하면서 뒷말을 못이어요!
어머니랑 함께 죽어버리자는 생각에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친구가 정말 ‘극한의 고통’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말 들을 때, 뭐라고 위로해야 합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말로 위로 하겠습니까? ~ 저는 친구와 통화하면서,
“너무나 속 상해하지마!” 하다가, “아, 상처받으면 안 되는데~”
“낳아주신 어머니가 극한의 상처를 주시네, 어머니로부터 상처 받으면 안돼, 상처 받지 마!”
제가 해 준 말은 상처 받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 우리가 살아있는 한, 속도 상하고, 상처도 받습니다.
살아 숨 쉬는 한, 속상하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속상하고 상처를 입을 때면, “그래, 내가 살아있으니 속상하고 상처도 받지!”
이렇게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그랬어요, 예수님도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속도 상하고, 상처도 받았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잘 이겨냈습니다.
속이 상해도, 상처를 입게 되어도 예수님은 잘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예수님 바라보면서 속상해도, 상처를 입게 되어도 견디어냅니다!”
“예수님 바라보면서 속상해하지 맙시다! 예수님 바라보면서 상처받지 맙시다!”
☞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상처받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받은 상처>
(34절)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로마 군인이 다가갔습니다.
창으로 옆구리를 푹 찔렀습니다. 거기서 피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예수님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요?
옆구리에 커다란 상처가 났습니다. 거기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당연하지요!
이때, 예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 가만히 계셨습니다.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아~ 이미 예수님은 숨이 끊어진 뒤였습니다.
숨이 끊어진 예수님의 옆구리를 로마 군인이 창으로 “푹” 찔러 상처를 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만히 계셨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여기서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35절입니다.
(35절)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무엇을 믿게 하려 함일까요?
(1) 십자가 위의 예수님 옆구리를 로마 군인이 “창으로 찔렀다.”
(2) 거기서 “피와 물이 쏟아져내렸다.”
이거 믿으라는 겁니다. ~ 진심으로 믿어지십니까?
우리에게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에 근거하여 “믿어집니다! 할렐루야~ 아멘!”
☞ 예수 안 믿는 과학자들, 의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에이, 거짓말, 죽은 사람의 몸에서는 물과 피가 쏟아지지 않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죽어서 시간이 좀 지나면 몸속의 피와 물이 굳어버립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숨을 거둔 직후입니다.
아직 몸이 따뜻합니다. 식지 않았어요! 그때 창에 찔렸어요!
그러니 피와 물이 쏟아집니다. 이것을 믿으라는 겁니다.
믿어지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예수님이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왜 창에 찔리는 상처를 받으시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준비일 & 뼈>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리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신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 날이 ‘준비일’입니다.
둘째, ‘뼈가 꺾이느냐, 보존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준비일
본문 31절에서 “이 날은 준비일이라” 그랬습니다.
무엇을 위한 준비일입니까? 유월절 명절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오늘 밤이 유월절입니다.
밤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은 집에는 죽음의 신이 방문합니다.
죽음의 신이 초태생을 모조리 죽이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양을 잡아서 고기는 구워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사신이 유월합니다.
패스 오버, 건너뜁니다. 출애굽할 때, 열 번째 마지막 재앙을 건너뛰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 밤이 오늘 밤입니다.
유대인들은 준비를 해야합니다.
집집마다 양을 한 마리씩 잡아야 합니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합니다.
이 전통이 지난 1,500년 동안 이어져왔습니다.
물론 양의 피를 매년 바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양 한 마리를 잡아서 구워 먹는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을 잡아 준비하는 ‘유월절 준비일’에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다!” 할렐루야~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찔려, 흘린 예수님의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한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로써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구원의 기쁨을 누려라!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렇게 다스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시기, 질투, 이기주의라는 본능적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시기, 질투, 이기주의 안 가진 사람 봤습니까?
☞ 그런 사람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모니, 공자, 노자, 요순임금…
이들이 시기, 질투, 이기주의 없이 산 사람들입니까? ~ 아닙니다.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와 동시대 인물이 아니지만,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 그때부터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이 끊어진 직후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 그 이유가 첫째는 “준비일”과 관련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둘째는 “뼈가 꺾이느냐 보존되느나?”입니다.
둘째, 뼈를 꺾지 말라!
(31절)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준비일이 지나고 나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늘 안식일로 맞춰집니다.
유월절은 몇월 며칠로 정하지 않습니다. 몇월 첫째 주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이러한 명절이 없습니다. 설날은 1월 1일, 추석은 8월 15일입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은 이렇게 정해지지 않고, 안식일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관습에서 안식일은 매우 거룩한 날입니다.
안식일을 성스럽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시체들은 모두 치워야 합니다.
하필 예수님이 십자가 달린 날이 ‘준비일’입니다. 다음날이 안식일이고, 유월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모든 사람들을 끌어내려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로마는 속국의 종교의례를 존중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려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직 살아있다면 죽게 한 다음 끌어내려야 합니다. “참 잔인하지요?”
유월절, 안식일을 준비하면서, 아직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 중에서 살아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무릎 아래 정강이를 망치로 때려 꺾어버립니다.
그러면 온 무게를 버티고 있던 다리가 힘을 잃고, 양 손에만 무게가 실려 축 늘어집니다.
늘어지면서 가슴을 압박합니다. 곧장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끌어내립니다.
(32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준비일인 이 날, 골고다 언덕에는 예수님과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다음날 유월절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세 사람 모두 십자가 아래로 내려야 합니다.
먼저 두 강도를 확인하니,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로마 군인이 두 사람의 다리를 꺾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갔습니다.
(34절)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가서 보니, 예수님은 미동이 없습니다. 이미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확인을 해야 합니다.
(35절)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창으로 옆구리를 찌를 때, 만약 숨이 붙어있다면, ‘꿈틀’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으로 찔렸는데도 미동이 없습니다.
그 바람에 예수님의 정강이 뼈가 온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뼈는 유월절 준비일 어린양의 뼈입니다. 그렇지요?
유대인의 유월절 어린양은 뼈를 상하지 않도록 잡아서 구워 먹어야 합니다.
출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무엇을 강조합니까?
십자가에 달린 날이 준비일이었다.
십자가에서 뼈가 꺾이지 않았다.
이 두가지를 봐라! 예수 그리스도가 유월절 어린양이다.
(36절)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상처입지 마세요!>
살아서 상처를 숱하게 당했던 예수님, 십자가에서도 상처를 당합니다.
예수님이 당한 상처 중에서 가장 큰 상처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살아서 당한 상처입니다.
창에 찔림은 예수님이 죽어서 당한 상처입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당하는 상처, 죽어서 당하는 상처, 모두 이기고 승리하신 분입니다.
살아서는 십자가, 죽어서는 창자국!
이렇게 상처를 당하시고, 그 상처를 이기고 승리하심이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더 계시다가 승천합니다.
최고 영광의 자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할렐루야~
☞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이겨낼 수 있습니까?
설교모두에 백세, 치매, 코로나로 음압병동에 어머니와 함께 입원한 친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코로나로 음압병동에 들어가면 치매 약은 당분간 끊어야 한답니다. 기가 막힙니다.
대소변을 가리겠습니까? 행동을 가리겠습니까? 말을 가려서 하겠습니까?
그 극한 상황의 고통은 어쩌면,
십자가를 짊어지는 상처, 옆구리를 창에 찔리는 상처에 버금갑니다.
전화 끊을 때, “힘내, 속상해하지 말고, 상처받지 마, 내가 기도할게~”라고 말해줬습니다.
어제 다시 통화하는데, 친구가 말합니다. “기도해 줘서 고마워!”
예수는 믿지는 교회는 안 나가는 친구입니다. 기도해줘서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합니다.
<맺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은 모세의 구리뱀처럼 높이 달림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유월절 준비일입니다.
예수님이 일찍이 숨을 거둬 다리를 꺾이지 않은 것은 유월절 어린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물과 피를 쏟은 것은 우리가 물과 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사람 아담의 옆구리에서는 하와가 나왔습니다.
둘째 사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는 물과 피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정교하게 십자가 섭리를 베푸실까요?
살아가는 중에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속상하고 상처를 입게 되는 이 땅의 우리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이렇게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속상해 하지 말고, 상처받지 말라고” 이렇게 하십니다!
할렐루야~